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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136)화 (136/167)

136화

그 후로도 회의는 이어졌다.

리엔이 참전하게 되면서 이번 필레 공작의 반역을 막을 병력은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일단 시스테인의 감찰기사단 전체.

전국에 퍼져 있을 리엔의 그림자.

그리고 카리스가 직접 길렀다는 암살자들까지.

거기에 시스테인이 마력을 제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더 숨길 필요가 없으니 그가 큰 전력이 된 것은 물론이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뛰어난 실력을 가진 황가의 기사단이 함께할 것이다.

기사단은 그렇다고 쳐도, 무엇보다 그림자-암살자-감찰기사단 세 세력이 처음으로 뭉치는 것이었다.

처음에야 좀 사이가 어색하기야 하겠지만, 그들의 협력이 이루어진다는 건 곧, 이 나라에 오가는 정보의 99%가 이쪽의 손아귀에 쥐어진다는 뜻이다.

정보전에서 압도적이라면 저들보다 정보가 빠른 것은 물론이요, 저들의 정보에 혼선을 줄 수도 있다는 뜻이고.

게다가 암살로는 따라올 실력이 없는 그림자와 암살자들이 뭉쳤으니 사람 몇 쓱싹하는 것도 순식간일 것이다.

심지어 그들이 서로를 견제하지 않는다니, 정보전이나 암살 면에서 이쪽을 능가할 집단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일이 끝나면 티타임이라도 갖는 게 좋겠어.”

회의를 끝내며, 리엔이 몸을 일으켰다.

“피 냄새를 씻는 데에는 티타임만큼 좋은 게 없지.”

티타임에서만 사람을 백 명 넘게 죽인 황태후 리엔이 말하니, 전혀 설득력 없는 말이었다.

“다 함께 말이야.”

하지만 그 뒷말에는, 리벨 역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리엔이 말하는 ‘다 함께’는 시스테인과 카리스가 함께 참석한 티타임을 말하는 것일 테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리벨에게, 리엔이 속삭였다.

“참, 아가가 성실하게 약속을 지켜 준 것 같아 기쁘구나.”

그녀는 예쁘게 웃고 있었다.

평소의 그 살벌한 웃음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부드러운 미소.

그녀의 손끝이 리벨의 볼을 톡톡 두드렸다.

“이번 일이 끝나면, 티타임에는 꼭 오도록 해.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니.”

리벨의 볼을 건드리던 손끝이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저보다는 여러분이 대화를 좀 하셨으면 좋겠는데……. 리벨은 저도 모르게 뱉으려던 말을 간신히 삼켰다.

리벨의 시선이 시스테인을 향했다.

“…….”

시스테인은 늘 그렇듯 침착한 얼굴이었지만, 리벨의 눈에는 왠지 그가 감추는 표정이, 한 겹 아래의 그의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는 조금 어색해하고 있었다. 물론 기분 나쁜 어색함은 아니었다.

감정을 늘 감추던 그의 얼굴에 저런 어설픈 표정이 떠오르는 것이 재미있으면서도 안심되었다.

“꼭 그럴게요.”

리엔에게 그렇게 속삭인 리벨이 시스테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좋은 시작이었다.

*  *  *

정보전은 현대에서도 중요하지만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다.

서로 존재를 알고만 있었을 뿐, 그 규모나 힘에 대해서까지는 알 수가 없었던 자들이 힘을 합치기 시작했다.

황제의 암살자들, 황태후의 그림자들, 그리고 감찰기사단까지.

그들이 떨떠름하게나마 손발을 맞추기 시작하자 조사 속도는 압도적으로 빨라졌다.

“정확한 용도는 자료 수집이 필요해 보입니다만, 마신전마다 근래에 새로 생긴 커다란 마도구가 있다고 합니다.”

먼저 마신전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감찰기사들은 용도를 알 수 없는 마도구를 발견했다고 했다.

그러자 그림자들은 마신전이 장치를 만든 시기의 주변 상권 흐름을 모조리 조사해, 마신전 사람들이 동물 내장과 곤충 사체 등을 소비한 자들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 또 어디서 많이 본 라인업이?

그 생각에 조사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 마도구는 마물을 조종하는 데에 쓰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조종하는 거야?”

보고를 받은 리벨이 물었다.

보통 먹이로 유인하려면 가는 길목(?)에 내장 같은 걸 뿌려 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마신전에서 곱창 파티를 하고 있으면 마물들이 마신전으로 몰려가지 황성으로 몰려가진 않을 텐데?

리벨의 질문에 그림자가 답했다.

“마신전 사제들만의 마력으로 움직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웬 주머니를 하나 꺼내 들었다.

“이 주머니를 차고 있는 자들은 각 지역 마신전에 있는 마도구를 통해 마물들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그림자가 꺼내기 전엔 몰랐는데, 꺼내자마자 주머니에서는 엄청난 냄새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리벨이 코를 막았다.

“주머니는 어디서 났어?”

리벨의 말에 답하는 건 황제의 암살자였다.

“뺏었습니다.”

그걸…… 곱게 뺏었을 것 같진 않은데……. 리벨이 눈을 깜빡이는 가운데, 이번엔 그림자가 설명을 덧붙였다.

“그 자리에는 분장한 감찰기사가 투입되었으니 들킬 염려는 놓으셔도 됩니다.”

암살자에 그림자에 투입된 감찰기사까지. 아주 손발이 척척 맞았다.

“……일단은 알겠어. 다른 문제는 없지?”

“예.”

그 말에는 그림자와 암살자가 입을 맞춘 듯이 말했다.

그리고 서로를 아직은 어색한 시선으로 마주 보았다.

대외적으로 황제 카리스와 황태후 리엔, 디란타 대공 시스테인이 힘을 합치는 것이 보여서는 곤란했기 때문에, 연락은 황태후의 그림자들이 맡게 되었다.

그 사이 리벨과 시스테인은 당연히 디란타 별저에 있었다.

평소처럼 시스테인은 두 기사단의 업무를 처리하고, 리벨은 대공가의 업무를 맡으면서.

물론 그사이에 대공령에 있는 몬스터의 규모를 더 정확히 추정해 공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림자들은 소식을 어떤 경로로 나르는지는 몰라도, 엄청난 속도로 황성과 별저 사이를 오가며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협력하게 된 만큼, 세 집단의 수장이 만나는 자리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

“…….”

그래서 황성 사용인의 99%는 모른다는 황가 전용 비밀 통로 안쪽 방에 자리가 마련되었다.

황제의 암살자, 황태후의 그림자, 그리고 감찰기사단.

카리스가 황태후 리엔과 시스테인을 경계하면서 그들을 모두 적으로 정의했기에 더욱 암살자들은 두 집단과 만날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 만나게 되는 것이었다.

그것도 검을 맞대는 게 아니라 아군으로서.

그건 세 집단에게도 큰 의미가 있었다.

카리스가 리엔과 시스테인을 향한 의심을 어느 정도 거두었다는 이야기이니까.

그리고 세 집단의 주인이 협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니까.

“……암살자들의 대표가 늦는군요.”

감찰기사단의 대표로 나온 건 감찰기사단 부단장 시엘이었다.

다른 감찰기사보다 대외 활동을 많이 하기에, 황성을 오가도 눈길을 받지 않는 그녀가 이번 회동에 나오기는 제격이라는 판단하에 보내진 것이었다.

“그러게요. 누가 올지 모르겠는데.”

시엘의 말을 받는 건 나인이었다.

그는 황태후의 그림자를 대표하는 자이기도 했다.

원래 황태후의 그림자에게는 지위가 없었다.

하지만 대공비 리벨 아래에서 오래 일하면서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된 나인은 자연스럽게 이 자리의 대표가 되었다.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자가 소통에 도움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통성명이나 하죠.”

나인의 말 뒤로 좀 더 침묵하던 시엘이 입을 열었다. 그녀가 나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감찰기사 시엘입니다.”

진녹색의 긴 머리칼에 날카로운 눈을 한 그녀는 나인을 살피고 있었다.

나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모두 서류를 통해 서로의 대략적인 존재는 알고야 있었지만,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아군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고.

“그림자, 나인입니다.”

그 말에 시엘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그림자들에게는 이름이 없다고 들었습니다만.”

“대공비 전하께서 내려 주셨습니다.”

나인은 그 말에 자랑스럽게 답했다. 시엘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흐음.”

그녀가 뭐라고 말하려는 때였다.

“……!”

“……!”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문 쪽으로 돌아갔다.

바깥에서 인기척을 느낀 탓이었다. 두 사람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암살자의 대표도 분명 하나일 텐데?

하지만 느껴지는 기척은 두 개였다.

하나는 구름 위를 걷든 가벼운 움직임이었지만 다른 하나는 아니었다.

마치 제 존재감을 뽐내듯 또렷한 걸음 소리가 그들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대체 누가 이런 회동 자리에서 저런 당당한 걸음 소리를 낸단 말인가?

늦는 것도 모자라서?

시엘이 눈썹을 치켜올렸을 때였다.

―달칵.

문이 열렸다.

그 문으로 소리 없이 들어오는 건 구름 같은 인기척을 가진 검은 옷의 남자였다.

“암살자의 대표이십니까?”

나인이 물었다. 그 말에 검은 옷의 암살자는 답 대신 제자리에서 비켜섰다.

그리고 그 뒤로 당당한 걸음걸이를 뽐내던 자가 들어섰다.

“?”

나인과 시엘의 시선이 빠르게 그자의 체형과 움직임을 훑었다.

걸음걸이며 체형과 움직임, 손끝을 움직이는 작은 습관까지.

그들의 머릿속에서 한 사람으로 상대의 정체가 좁혀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설마…….”

시엘이 입을 떼었다. 그때 검은 로브의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던 자가, 문을 닫으며 후드를 젖혔다.

“!”

“!”

시엘과 나인이 눈을 크게 떴다.

그들 앞에 서 있는 건 황제 카리스였다.

두 사람이 당황하는 가운데 카리스가 말했다.

“암살자 말고 시즈라고 불러라. 그리고 시즈의 대표는 나다.”

“예?”

시엘은 답지 않게 멍청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황제가 직접?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에 카리스가 고개를 기울였다.

“중요한 일이라면, 직접 지휘해야겠지. 나 자신이 아니면 누굴 믿을까.”

과연 카리스다운 말이었다.

결국 나인과 시엘이 짧게 그에게 묵례했다.

“그럼 각 집단의 활동 범위를 분명히 하죠. 일단…….”

시엘이 이끄는, 제국의 음지 속 회의가 시작되었다.

*  *  *

그리고 그러는 한편.

롤란드 디엘렌은 드디어 몇 달 만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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