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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137)화 (137/167)

137화

[황가 의전원]

의전원을 나온 롤란드 디엘렌과 베니카 알레로의 손에 들린 서류에는, 황가의 문양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이건 몇 달 전에는 많은 자들이 손꼽아 기다렸지만, 지금은 두 사람만 간절히 기다리게 된, 그야말로 먼지 날리는 소식이었다.

―펄럭!

롤란드 디엘렌이 거칠게 종이를 펼쳐 보았다.

[베니카 알레로와 롤란드 디엘렌의 결혼은 무효였음을 황가 의전원의 이름으로 인정한다.]

그게 몇 달을 질질 끌며 두 가문을 진창 속에 처박아 버린 의전원의 결론이었다.

그 몇 달 동안 두 가문이 잃은 건 수도 없이 많았다.

제대로 영지를 돌보지 못했음은 물론이고 자꾸 황성으로 불려 가는 그들을 다른 귀족들이 곱게 볼 리가 없었다.

또 다른 비리가 터질까 옷깃조차 안 스치려는 귀족들 사이에서 고생한 시간을 떠올리며 베니카 알레로가 이를 갈았다.

“이제 다 끝이야!”

상단으로 일어난 가문으로서 이번 사건은 엄청나게 치명적이었다.

이미 거래처는 다 끊겼다. 창고엔 파리가 날리고 가문을 유지하는 데에 드는 돈 때문에 허리가 휠 지경이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의전원에서 감찰기사단으로 중간중간 이전되었던 두 사람의 ‘이혼 무효 논쟁’ 때문이었다.

‘뭐요? 감찰에까지?’

‘설마 알레로 가에서도……?’

더러운 건 디엘렌 가라고!

베니카는 소문이 날 때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수도 없이 그 비명을 삼켜 왔다.

그런데 이제 정말 끝인 것이다!

“드디어!”

롤란드 디엘렌도 그녀와 같은 결론이었는지 우렁차게 외쳤다.

―콰직!

그러고는 화가 나 의전원의 종이를 구겨 버렸다.

“헉.”

베니카는 놀라 딸꾹질할 뻔했다.

평소의 롤란드 디엘렌이었다면 황가의 문양이 찍힌 저 종이를 구겨 버리는 미친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너, 너 미쳤어?”

하지만 롤란드는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들키지만 않으면 되지, 뭔 상관이야?”

감찰에서 방금 하고 나온 몸수색을 또 할 것도 아니고.

가볍게 말한 그는 구긴 종이를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어 버렸다.

“미쳤나 봐.”

저 꼴을 누가 밀고라도 했다간 바로 감옥행이었다.

물론 본 사람도 베니카 알레로 자신밖에 없었고, 베니카 자신이 바로 나왔던 감찰기사단에 다시 들어가서 증인을 서면서 다시 사교계에 ‘알레로 가에도 뭔가 있다’ 따위의 소문을 퍼뜨릴 것이 아니라면 그럴 일은 없었다.

그걸 알기에 저러는 건가?

하지만 그래도 롤란드 디엘렌의 행동은 지나치게 대담했다.

권력자에 대한 것이라면 몸을 사리고 사렸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스윽.

간이 부은 롤란드와는 달리 정상인인 베니카는 의전원의 판결문을 곱게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흥.”

그 모습에 롤란드가 코웃음을 쳤다.

“이제 이걸로 지독한 악연도 끝이군.”

그러고는 손짓했다. 파리 쫓듯이.

“꺼져.”

“뭐?”

베니카는 그 말에 어이가 없어졌다.

귀족가의 영식이 어떻게 저런 상스러운 말을 할 수 있지?

아니 그건 둘째 치고 중요한 것이 있었다.

“악연? 이 악연 시작하게 만든 게 누군데 꺼지라 마라야?”

그녀가 외쳤다. 하지만 롤란드의 얼굴은 뻔뻔하기만 했다.

그가 손을 펴 보였다.

“이게 악연이 아니면 뭐지?”

그 뻔뻔한 얼굴에 베니카는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디엘렌이 구질구질하게 매달려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 돈 없어서 우리 가문에 들러붙었던 거 모를 줄 알아!?”

사교계 사람들도 하도 오래된 이슈라 잊었겠지만, 원래 이 ‘이혼 무효 논쟁’은 디엘렌 가가 알레로 가에 매달리면서 시작된 것이었다.

롤란드 디엘렌이 결혼식장에서 감찰기사단에 잡혀간 후.

‘결혼반지를 끼지 않았으니 이 결혼은 무효요!’

그렇게 외치는 알레로 가의 주장에 디엘렌이 정면 반박한 결과가 이거였다.

한마디로 그때 디엘렌이 구질구질하게만 굴지 않았으면 이럴 일도 없었을 거란 소리였다.

그런데 뭐? 악연?

“하, 그 푼돈?”

그런데 롤란드 디엘렌은 그 사실을 잊기라도 한 것처럼 거만하게 굴었다.

만면에 비웃음을 띤 그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

베니카는 새삼 그 뻔뻔한 꼴을 훑어보았다.

롤란드 디엘렌.

그는 이상하게도 요즘 들어 때깔이 더 고와지고 있었다.

일단 걸친 옷부터 비싼 티가 났다. 딱 봐도 연회장 갈 때나 맞춰 입던 고급 옷을 아무렇지 않게 입는 모습부터…….

베니카가 눈살을 찌푸렸다.

어디서 든든한 뒷배라도 잡은 건가? 얘가 요즘 왜 이러지?

그때였다.

“갖고 사라져라, 자.”

대뜸 품에서 지갑을 꺼낸 롤란드가 베니카 앞에서 돈다발을 흔들어 보였다.

“뭐, 뭐―”

그 황당한 꼴에 베니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이었다.

―휙!

롤란드가 그 돈다발을 허공에 휙 뿌려 버렸다.

팔랑이며 떨어지는 돈 사이로 롤란드가 말했다.

“이거면 갚은 거 아니냐?”

베니카는 어이가 없어 말도 잇지 못했다.

면전에서 이딴 모욕을, 그것도 롤란드 디엘렌에게 당할 줄이야!

“너……!”

베니카가 속으로 이를 갈았다.

“디엘렌 때문에 일어난 일이야, 다! 이 모욕, 반드시 갚아 줄 거야. 알았어?”

그러고는 날카롭게 외쳤다.

이게 대체 무슨 개고생이냐고!

당장 거래가 끊긴 것 때문에 가문의 앞길부터 걱정해야 할 판인데 저놈까지 사람 속에 불을 지르고 있었다.

“두고 봐!”

베니카가 그에게서 홱 돌아섰다.

그녀의 머릿속엔 의전원에서 아웅다웅하면서 본의 아니게 알게 된 디엘렌 가의 또 다른 비밀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흥, 두고 보라지!’

어차피 이번 의전원의 판결문으로, 디엘렌과 알레로는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분명 이런 기사가 올라올 테지.

[디엘렌 가와 알레로 가, 긴 싸움 끝에 결국 파국으로]

그녀 자신이 기자였으니 어떤 기사들이 올라올지는 충분히 짐작이 갔다.

그럼 사교계 사람들은 드디어 결론이 났다며, 알레로도 한통속이었으니 그렇게 오래 조사받았을 거라며 시시덕대겠지.

“흥.”

베니카가 콧방귀를 뀌었다.

어차피 그 기사로 같이 욕받이가 되어 주목받을 거라면, 디엘렌에 대한 기사 몇 개를 더 띄우는 게 좋겠지.

그럼 알레로보단 디엘렌에 모든 것이 주목될 테니까.

그녀는 베니카 알레로가 아니라 기자 슈로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입가에 찬 미소가 떠올랐다.

“아주 망신 좀 제대로 당해 봐라!”

그녀가 주먹을 꽉 쥐었다.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조금도 짐작하지 못한 채.

*  *  *

베니카 알레로는 기자 슈 외에도 몇 개의 기자 이름을 더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익명으로 활동했으니 아무도 그녀의 정체를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가장 파급력이 큰 ‘기자 슈’로 글을 쓸 생각이었다.

“알레로도 언급해야 한다는 게 좀 속이 쓰리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언급될 거라면 디엘렌의 비리를 모조리 폭로해서 저들이 얼마나 쓰레기인지 밝혀 버리면 된다.

그럼 알레로에는 자연스럽게 동정 여론이 모이게 되니까.

그러고 베니카 알레로 영애가 눈가에 손수건 몇 번 찍었다는 기사 한번 내주면 동정 여론은 완전히 끌어올 수 있다.

‘알레로 가가 휩쓸린 것이었군요.’

‘네, 저는 전혀 몰랐답니다…….’

그렇게 인터뷰 기사 내용을 머릿속으로 만들어 내던 베니카가 인상을 팍 썼다.

“만들어 낸 것도 아니지. 사실이잖아!”

디엘렌의 그 비리에 알레로가 휩쓸려 간 건 팩트였다.

물론 결혼하는 과정에서, 리벨 이벨라를 롤란드 그놈이 더럽게 내치는 바람에 좀 잡음이 있긴 했지만…….

“……내가 찬 것도 아닌데, 내가 무슨 상관이야?”

제 방에서 그렇게 날카롭게 중얼거린 베니카가 다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사각사각.

감정을 담은 펜 끝은 순식간에 기사를 하나 만들어 냈다.

[디엘렌은 감찰기사단 본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제목 좋고.”

기사를 훑어본 베니카는 그 끝에 제 사인도 하는 걸 잊지 않았다.

[기자, 슈]

“좋았어.”

기사를 정리해서 종이 봉투에 넣은 베니카가 옷장에서 검은 로브를 꺼내 들었다.

“감찰이 도움 될 때도 있네.”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감찰기사단이 알레로와 디엘렌의 관계를 알아보겠다며 대질신문을 한 덕에, 베니카는 디엘렌 가문이 또 온갖 더러운 일에 다 손댔다는 걸 알게 됐다.

불량배들과 손잡은 건 더러운 축에도 끼지 못했다.

불법 도박에 약물 생산에 별의별 것까지 다 손댔다고 했다. 저번에 디엘렌이 감찰에 잡혀 왔을 때 밝혀진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정보는 고스란히 베니카의 손에 들어왔다.

게다가.

“최근에 대체 누구 줄을 잡았길래 그렇게 날뛰는 거지?”

그녀는 잊을 수가 없었다.

‘이제 너랑 내가 이렇게 마주할 일이 얼마나 남아 있을 것 같아? 하.’

그렇게 비웃으며 말하던 롤란드 디엘렌의 얼굴에는 경멸이 서려 있었다.

‘이제 너 같은 지위 낮은 귀족들하고 난 어울릴 필요가 없어졌거든. 난 상류사회의 일원으로서 내 의무를 다할 생각이라.’

상류사회의 일원?

그 의무가 대체 뭔지는 몰라도 갑자기 상류사회 운운하는 것 하며 돈에 여유로운 모습에 입은 것에서 귀티가 흐르는 것까지.

분명 날이 갈수록 푸석푸석해지는 베니카 제 꼴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분명 무슨 줄을 잡은 게 분명하단 말이야.”

그 줄도 이 기사가 터지고 나면 싹 사라질 테지만.

이런 더러운 논란이 있는 가문과 더 손을 잡을 가문이 어디에 있겠는가?

―폭.

로브 후드를 뒤집어쓴 베니카가 재게 발을 놀렸다.

원래대로라면 위장을 위해 먼저 사람을 보내 놓거나, 아니면 평소 몇 번 그랬듯 크라이베리 신문의 팬인 척 들렀다가 몰래 기고를 하고 온다든지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마음이 급했다.

“어차피 우리 가문에 관심 있는 자들도 이제 없고…….”

전처럼 조심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크라이베리 신문사에 도착했을 때였다.

―팍!

신문사로 들어가는 그녀와 누군가가 부딪혔다.

“아야!”

그녀가 팍 밀쳐질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상대는 밀려나지도 않았다.

베니카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앞 좀 보고 다……!”

헉.

부딪힌 자의 얼굴을 확인한 베니카가 재빨리 로브 후드를 더 깊이 눌러썼다.

그녀와 부딪힌 자, 롤란드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내 전 약혼녀께서 이런 신문사엔 웬일이신지?”

그러면서 부딪힐 때 바닥에 떨어진, 베니카의 기사가 담긴 종이 봉투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런 것까지 들고.”

롤란드가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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