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뭐라고요?”
롤란드가 베니카에 대한 소식을 들은 건 저택으로 복귀한 직후였다.
“베니카 알레로 영애의 움직임이 수상합니다.”
그 이야기를 해 준 건 저택에 그보다 먼저 와 있던 필레 공작의 사람이었다.
“그녀가 오래전부터 디엘렌에 대한 정보를 취합하고 있던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걔가 왜요?”
우리 가문에 대해서? 뭐, 감찰에 찌르려고?
하지만 감찰에 찔러 봐야 알레로 가도 같이 끌려 들어갈 판인데, 굳이?
롤란드가 되묻자 필레 공작의 하인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어딘가에 밀고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게 감찰은 아니겠죠?”
“예.”
그럼……. 롤란드는 설마 하는 얼굴로 말했다.
“제도 주요 신문사하고, 알레로 가에 사람을 붙여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이게 뭐야, 응?”
기사를 흔들어 보이며 하는 롤란드의 질문에 베니카는 침묵했다.
그녀는 눈이 검은 천으로 가려진 채 어디론가 끌려와 있었다.
거긴 살롱이었지만 눈이 가려진 베니카가 그걸 알 리가 없었다.
“내가 감찰기사단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걸 네가 어떻게 알고 이런 걸 써?”
같이 들어간 것도 아닌데. 게다가.
롤란드가 눈을 가늘게 뜬 채 종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슈 기자. 이 이름 자주 봤는데, 응?”
최근에 디엘렌 가를 욕하는 기사에는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이름이 이 슈라는 이름이었다.
물론 그러기 전에도 잊을 수 없는 이름이긴 했다.
롤란드 자신과 리벨 이벨라의 이혼 소식을 알린 기자가 바로 슈였으니까.
롤란드는 어이가 없어 물었다.
“너였어? 이 슈 기자가?”
“…….”
베니카는 입을 닫아 버렸지만 답은 확실했다.
“허.”
롤란드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의 옆.
붉은 천을 젖히고 나온 남자가 롤란드 옆에 섰다.
롤란드는 그 얼굴을 보고 놀라 고개를 숙였다.
필레 공작가의 집사가 직접?
베니카가 롤란드 자신의 뒤를 캐고 있었다는 정황을 알리자마자, 필레 공작 측에서는 곧바로 반응했다.
롤란드 디엘렌은 이번 거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혹시나 베니카 알레로가 냄새라도 맡았다면 처리해야 했다.
그런데 필레 공작도, 롤란드 디엘렌도 상상도 못 했던 정체가 눈앞에 있었다.
슈 기자라고? 얘가?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자칫하면 기사가 날 뻔했어요.”
―찌이익!
슈의 기사를 찢어 버리며 롤란드가 말했다.
기사에는 디엘렌의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리에 대해서도 쓰여 있었다.
확실히 기사가 터졌으면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가족에게 이 정도는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집사가 말했다. 롤란드는 그 말에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차기 황제가 될 필레 공작의 가족이라.
이번 태양이 지고 나면 제 위세는 지금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그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다가 문득 물었다.
“그런데 이런 정보는 어떻게 아셨는지…….”
그 말에 집사가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러고는 롤란드에게 속삭였다.
“계획이 진행 중이니 롤란드 경께서 만나는 자들을 모두 지켜보라는 명이셨습니다.”
그 말에 롤란드가 멈칫했다.
“……나를 감시하고 계신단 말입니까?”
그 말에 집사가 부드럽게 고개를 저었다.
“감시가 아닙니다.”
그러고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중요한 역할이 아니십니까? 경을 보호하는 것은 가족으로서 당연한 일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아.”
그 말에 롤란드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폈다.
중요한 역할.
그 단어에 저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갔다.
“이거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롤란드가 크흠 목을 가다듬었다.
그러면서 새삼 생각했다.
‘역시 옳은 선택이었어.’
필레 공작이 말한 대로였다.
카리스가 황제로 있는 이상, 자신이 살아남을 방법은 없었다.
그러려면 제국의 주인을 바꾸면 되는 것이 아닌가?
어차피 현 황가에 찍힌 자신이 앞으로 제대로 된 귀족 생활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번 의전원 일처럼 뭐든 꼬투리를 잡아서 황가는 끝없이 디엘렌을 괴롭힐 것이다.
그렇게 당할 수는 없지.
“그런데 이자가 슈 기자였다니……. 의외로군요.”
그때 필레 공작의 집사가 말했다.
지목당한 베니카 알레로는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평소에 조심하던 걸 딱 오늘 한 번만 방심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들켜 버리다니.
롤란드 디엘렌도 당연히 정신없을 시기고, 알레로는 이미 몰락해서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은 지 오래인데 대체 누가 롤란드에게 이 사실을 찔러줬는지 알 수가 없었다.
“…….”
베니카는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눈이 가려진 채라 앞은 보이지 않아도, 롤란드가 다른 남자를 깍듯이 대하는 건 알 수 있었다.
분명 높은 자의 수하가 분명했다.
“저도 몰랐습니다.”
롤란드의 말이 어딘지 모를 방 안을 울렸다.
고개를 돌려 사람을 쳐다볼 정도의 찰나를 두고, 롤란드가 말을 이었다.
“방해될 것 같습니까?”
그 말에 베니카는 검은 천 속에서도 눈을 크게 떴다.
의자에 앉혀진 채, 손도 뒤로 돌려 묶여 제대로 움직일 순 없었지만 불안감에 몸을 움찔거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저런 말 뒤에는 으레 무슨 말이 오가는지 귀족인 그녀가 모를 리가 없었다.
“전, 전 아무것도 몰라요!”
뭘 알고 몰라야 하는지도 모른 채 베니카가 외쳤다.
얼굴은 새하얘진 채였다.
그때였다. 두 사람 말고 다른 목소리가 울렸다.
“왜, 쓸모가 있을 것 같은데.”
좀 더 중후한 목소리였다.
베니카가 멈칫할 때.
붉은 천 너머에서 직접 걸어 나온 필레 공작을 보며 롤란드와 집사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쓸모라시면……?”
롤란드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새로 나타난 중후한 목소리가 말했다.
“베니카 알레로 쪽이 아니라, 슈 기자 말이오.”
베니카가 다시 한번 움찔했다.
“…….”
그 뒤로 베니카에게는 십 년 같은 침묵이 지나갔다.
그사이 집사를 데리고 천 뒤로 들어간 필레 공작은, 그에게 자세한 명령을 내렸다.
―펄럭.
얼마 후 붉은 천을 젖히고 나온 집사가 베니카에게 다가왔다.
“목숨을 건지고 싶소?”
그 말에 베니카는 거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그럼 그 목숨을 살려 주는 대신 제안 하나 하지.”
꿀꺽. 베니카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이들이 대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저들의 손에 제 목이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기사를 쓰시오. 기자 슈로서. 기사 자리는 얼마든지 만들어 줄 테니.”
“무, 무슨 기사를……?”
베니카가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요즘의 세태에 대해서.”
“세태……?”
베니카가 되물었다. 남자는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황가가 제 잇속만을 불리고, 충성을 바치는 귀족들을 오히려 의심하는 이 말도 안 되는 세태에 대해 말이오. 충성을 바쳐도 돌아오는 것 없는 이 잘못된 하늘에 대해서 말이야.”
“……!”
베니카가 입을 떠억 벌렸다.
한마디로 황가를 욕하는 기사를 쓰라는 말이었다.
물론 신문에 그런 기사가 올라온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기자가 처벌받은 적은 별로 없었다.
신문사나 기자를 이유 없이 잡아들이면 황가를 향한 시선도 안 좋아질뿐더러, 그런 신문 기사라 해도 보통 내용이 교묘했기 때문이었다.
황족모욕죄를 적용하려면 황족을 욕하는 내용이 있어야 하는데, 보통 그런 신문 기사들은 ‘하늘이 나를 보지 못함인지, 올해는 이러쿵저러쿵’ 하면서 황가를 직접 탓하는 일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바라는 건 다른 듯했다.
“그, 그, 그건…….”
아무리 기사를 잘 돌려 쓴다고 해도 그런 기사를 쓴 기자들이 황가의 눈 밖에 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거절할 생각인가?”
남자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베니카가 몸을 떨었다.
황가의 눈 밖에 나느냐, 아니면 지금 당장 목이 달아나느냐.
선택하라면 당연히 후자였다.
베니카가 고개를 홱홱 저었다.
“할, 할게요.”
“그럼 기사는 여기에서 쓰지.”
그 말에 베니카가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느꼈다.
“저택으로 보내 주시면 거기서…….”
“마음에 드는 기사를 쓸 때까지는 그럴 수 없지.”
그 말에 베니카는 제 불길함이 현실화되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저택으로 두 번 다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녀의 몸이 덜덜 떨렸다.
* * *
며칠 후.
그렇게 슈가 기고한 기사는 그대로 황가로 흘러 들어갔다.
그 경로는 간단했다.
“크라이베리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있는 그림자가 가져온 정보입니다.”
감찰기사들이 잠깐 동안 다른 사람으로 완벽한 위장을 하는 것이 장기라면, 그림자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임무라는 이름으로 다른 제국민들처럼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도 했다.
주로 정보가 자주 오가는 곳에서였다. 유명한 의상실이나 큰 신문사 등.
당연히 크라이베리에는 오래전부터 황태후의 그림자가 숨어들어 일하고 있었다.
“폭로전으로 가시겠다?”
리엔과 함께 있다가 보고를 들은 카리스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런가 봐. 현명하지만 현명하지 못한 방법을 택했구나, 필레 공작.”
리엔이 빙그레 웃으며 말을 받았다.
확실히 ‘황가가 우리의 안전에는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익명으로 호소하려면 기사만큼 파급력 좋은 게 없었다.
게다가 크라이베리라면 대부분의 귀족이 보는 신문이니 더할 것이고.
하지만 폭로전으로 가겠다면 이쪽에는 슈보다 훨씬 파급력이 좋은 기자가 있었다.
리엔이 손짓했다.
“아가에게 연락하렴. 부탁할 것이 있다고.”
그림자가 곧바로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소식을 리벨이 받은 건, 그로부터 몇 시간 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