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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139)화 (139/167)

139화

“누가 뭔 기사를 쓴다고?”

이게 드디어 미쳤단 말인가?

슈가 리벨 제 욕을 쓰는 거야, ‘그래…… 네 간 비대증이 아직 완치가 안 됐구나…….’ 하고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림자를 통해 전해진 슈의 기사 내용은 엄연히 황가를 욕하는 내용이었다.

정확히는, ‘제국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황가는 제 안전만 챙길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이런 기사 터뜨리고 나서 마물을 불러올 생각이란 말이지?”

이건 알아본 저들의 계획에는 없었던 것이었다.

아마 슈의 정체를 최근 들어서 어떻게 알게 된 모양인데.

확실히 이쪽에서 먼저 소식을 접하지 못했으면 조금 여론이 복잡해질 뻔했다.

하지만 크라이베리에 정보통이 없을 리가 없었다.

리벨은 슈가 썼다는 기사 내용을 거듭 보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아직 신문에 나진 않은 거지?”

“예. 며칠 후에 나올 내용입니다.”

[하늘에게 묻는다.]

그렇게 거창하게 시작되는 신문 기사를 본 리벨은 다시 한번 감탄했다.

“혹시 얘 장래희망이 거름이래?”

그 말에 그림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크흠.”

대신 반응한 건 옆에서 업무를 보던 시스테인이었다.

헉.

순간 리벨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누가 방금의 말을 귀족다운 말이라 믿겠는가?

“…….”

아무리 기자 일 하던 게 90%쯤 뽀록났다고 해도 그건 취미잖아!

사교계 활동을 해야 하는 그녀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시스테인이 달갑게 여길 리 없었다.

리벨이 슬그머니 그를 보니, 그는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모른 척하는 거잖아! 누가 봐도 못 들은 척하고 있잖아!

그런 발연기로 예의 차리지 마!

리벨은 제 방정맞은 입을 찰싹찰싹 때렸다. 그러고는 그림자를 돌아보았다.

시스테인이 고개를 돌린 채 웃다 말고 저를 보는 것도 모르는 채.

“아, 아무튼 그래서 슈의 기사를 막자는 거지?”

리벨의 말은 다소 어색한 투로 튀어나왔다. 시스테인은 그 말에 제 말을 얹었다.

“벨 기자의 힘을 빌리면 될 것 같습니다.”

“쿨럭!”

그리고 그 말은 리벨의 속이 얹히게 했다.

제힘을 빌리는 거야 쉽지요, 넵!

근데 아직도 내가 수습 기자 같냐고요! 으아아아으아아아아아!

리벨은 속으로 비명을 질러 댔다.

물론 그 비명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 그럴 것 같긴 한데……. 벨 기자의 힘을 빌린다고 해도 슈의 기사를 아예 못 올리게 할 순 없을 거예요.”

리벨은 집 나간 이성을 찾아 헤매며 말했다.

“특히 이런 기사는 신문사에서도 위험 부담은 있지만 주목도가 엄청난 기사라 쉽게 포기하진 않을…….”

리벨이 뇌까렸다. 그러다가 멈칫했다.

“주목도…….”

슈보다야 ‘귀족가의 폭풍’ 벨이 더 유명하긴 하다.

이런 핫한 기사만 아니었어도 내가 기사를 제대로 내면, 슈의 기사 따위는 중국산 슈크림빵에 들어간 슈크림보다 더 티가 안 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런데?

하필 내용이 이런 거네?

그럼 내가 같은 내용의 기사를 쓰지 않는 한, 자극적인 기사에 열광하는 대중들은 자연스레 슈의 기사에 반응하기 마련이다.

내가 무슨 내용으로 춤을 춘다고 해도 슈가 묻히는 건 잠깐, 결국 슈의 기사가 이슈가 되게 되어 있단 말이지.

그럼 근본적인 걸 없애야 한다는 뜻.

“지금까지 슈 기자가 쓴 기사 다 가져와 줄래?”

리벨이 그림자에게 손짓했다.

그림자가 곧바로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러는 사이, 시스테인이 리벨을 바라보았다.

그를 무심코 돌아보았던 리벨이 슬그머니 시선을 내리며 말했다.

“어차피 슈의 기사가 이미 기고되었다면 크라이베리에 실리는 건 막을 수가 없을 거예요. 그럼 차라리…….”

리벨이 시선을 슬그머니 들어 시스테인을 보았다.

그는 진지한 얼굴로 리벨의 말을 듣고 있었다.

“슈 기자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게 더 나을 거예요.”

슈는 평소에 아직 일어나지 않았던 일도 기사로 먼저 써 버리는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면 바로 ‘가장 소식이 빠른 기자’ 타이틀을 채갔고, 그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슬며시 기사를 빼 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몇몇 귀족가에 대한 헛소문을 내놓고 ‘난 그저 의혹을 제기했을 뿐’이라며 빠져나가기도 했다.

리벨은 그런 점들을 쫙 모아 지적할 생각이었다.

슈가 평소에 헛소문을 내는 기자였다는 걸 알면, 당연히 그녀가 낸 기사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게다가 하필이면 그 기사를 쓴 상대가 ‘슈 기자’라면?

“그리고 상대가 슈 기자라면, 확실히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방법이 있어요.”

그 말에 시스테인이 불쑥 물었다.

“벨 기자의 기사로 말입니까?”

“네.”

리벨은 답하다가 하마터면 혀를 씹을 뻔했다.

그녀의 답에 시스테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또 누군가의 소문을.”

“아아아아니거든요!”

리벨은 그의 말에 손을 마구잡이로 내저었다.

제가 미쳤습니까?

그 일의 업보가 지금 나를 깔아뭉개고 있는데 두 번 그런 짓을 하게?

“절대, 두 번 다시 그런 짓 안 해요!”

그녀가 확고하게 외쳤다.

“진실만 쓸 거예요. 확인된 진실이요.”

그러면서 거듭 강조했다. 그녀의 말에 시스테인이 리벨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리벨의 또렷한 눈과 그의 가라앉은 푸른 눈동자가 마주쳤다.

마치 거울이라도 보는 것처럼, 양심을 비춰 주는 거울처럼 깨끗한 그 눈을 보면서 리벨이 말을 이었다.

“정말로요. 그러니까…….”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손을 뻗어 살짝 잡아 본 시스테인의 손은 다소 차가워져 있었다.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기자 벨에 대해, 그리고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날처럼.

그가 자다가 폭주했던 날처럼.

그래, 이럴 것 같았다.

리벨은 속으로 뇌까리면서 그의 손을 두 손으로 꽉 잡아 주었다.

“오늘은 악몽 꾸지 말기.”

그녀가 속삭였다. 시스테인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웃어 버렸다.

몇 달 전의 그라면 상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미소가 그려졌다.

“……리벨이 옆에 있어 주신다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리고 약속을 지켜 주신다면요.”

리벨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에요.”

두 번 다시 어기지 않을 약속이었다.

*  *  *

“일사천리야.”

필레 공작이 계획을 진행하면서 생각한 바는 이러했다.

“기사는 거사가 시작되기 전에 터뜨린다. 지금껏 이런 기사가 없었던 것도 아니니, 마물이 나타나는 시기와 겹친다고 해도 수상하게 여기는 자는 없겠지.”

―탁!

필레 공작은 슈가 쓴 기사를 테이블 위에 펼쳐 놓은 채 만족스럽게 웃었다.

현 황제 카리스와 리엔의 치세 아래에 공포를 가진 귀족들은, 기자들의 익명을 빌려 현 치세가 너무 폭력적이며 강압적이라고 비판해 왔다.

카리스와 리엔의 정책은 평민들에겐 좋은 것들이 많았지만, 귀족인 그들에겐 정반대였으니까.

[하늘은 우리를 버리셨는가?]

[하늘로 향한 부질없는 목소리들]

그런 기사가 뜰 때마다 사교계는 당연히 시끄러워졌다.

그리고 그 기사로 뭔가 논란이 생기면 황가에서 직접 해명하는 일도 있었다.

“이번에도 해명 좀 해야 할 거다.”

필레 공작이 씩 웃었다.

이번에 슈 기자가 문제로 삼은 것은 황태후 리엔의 취미에 갈려 들어가는 돈과 함부로 피를 보는 황제의 심성 등이었다.

물론 그런 한탄 속에 자연스럽게 섞인 요점은 이것이었다.

[황성 주변 영지에 몬스터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데도, 각 영지에 신경도 써 주지 않는다]

물론 몬스터로 인한 피해야 각 영지가 처리하는 거고, 황가에서는 그들이 도움을 요청하기 전엔 병력을 안 보내는 게 관례지만 평민들이 그걸 알 리가 있나.

영지의 안전에 관심이 없는 황제라는 낙인을 찍는 게 중요했다.

그래야 지금은 저들에게 좋은 정책을 펼친다며 황제를 좋아하는 멍청한 제국민들이 줄어들 테니까.

그리고 이 기사가 뜬 후 얼마 안 있어, 그 영지민들은 실제로 무능한 황성을 보게 될 것이다.

제국민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황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게 될 것이다.

전국에 들끓는 마물에게 죽어 나가면서.

“마신전은?”

웃음을 터뜨린 필레 공작이 옆에 서 있던 집사에게 물었다.

“거의 다 준비됐다고 합니다. 이제 남은 세 구역에만 마도구를 설치하면 됩니다.”

그럼 정말 거의 거사가 목전까지 온 거다.

필레 공작이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영지들은 어떻지?”

“최근에 연결이 풀린 게이트가 하나 있다고 합니다만, 마력적인 문제였다고 합니다. 금방 복구했습니다.”

그 말에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없다고 합니다. 이번엔 완벽하게 보완했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잘할 것이지, 쯧.

필레 공작은 혀를 차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게이트가 이번 계획의 중심이다. 문제없이 관리하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집사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필레 공작이 팔짱을 끼었다.

“디란타 대공 쪽은 어떻지?”

“평소와 다를 바 없습니다. 아직 디란타 대공이 대공령에 갈 시기도 아닐뿐더러, 대공령에서 따로 온 연락이 있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집사의 보고에 필레 공작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피었다.

“하긴, 아무리 디란타령 놈들이라도 마물이 들끓는 대공령 구석구석까지 조사하진 않겠지.”

일부러 마물들을 디란타 대공령의 끄트머리, 저택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몰아 둔 이유가 그것이었다.

수가 불어난 걸 일찍 들켜 봐야 디란타령에서 귀찮게 굴기만 할 테니까.

“뭐, 그 숫자의 마물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괴물이 있을 리도 없고.”

필레 공작이 집사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마신전 쪽의 마물 조종법은 우리 쪽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건가?”

“예. 그들은 알려 주지 않으려고 했습니다만, 마신전 쪽의 인물을 하나 섭외해 마법사들에게 가르치라 일렀습니다.”

“좋아.”

집사는 아주 만족스럽게 일을 처리하는 자였다. 필레 공작은 손수 집사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마신전 놈들, 일회용 패 주제에 비싸게 구는군.”

그러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흥, 코웃음을 친 그가 뇌까렸다.

“마신전을 햇빛 아래로 나오게 해 달라? 웃기는 소리.”

그 조건으로 마신전과 손잡은 거지만, 필레 공작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황제가 되면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게 마물과 몬스터인데, 그 마물들을 이끄는 마신전을 옹호하라고?

미친 소리지.

그는 이번 일이 끝나자마자 마신전의 마사제들을 모아 햇빛 아래에 놓아주긴 할 생각이었다.

해가 잘 드는 사형장에.

이번 마물 사태는 마신전의 주도로 일어난 일이었고, 그 위기에서 자신을 구하기 급급한 황가를 물리치고 제국민들을 구한 게 바로 필레 공작이다!

그 정도 선전만으로도 멍청한 제국민들은 환호할 것이다.

“앞으로도 차질없이 준비하도록.”

필레 공작이 손짓했다.

“알겠습니다.”

집사가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필레 공작은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결국 감추지 못했다.

마신전 사제들도 그와 똑같이, 그를 버리는 일회용 패로 보고 있다는 사실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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