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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141)화 (141/167)

141화

릴라 영지는 몬스터 관리가 잘되는 조용한 영지였다.

비록 영주가 릴라 자작으로, 작위는 높지 않았지만 그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영지민이 곧 돈을 낳는 거위란 걸 아는 그는 영지민들의 안전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자작은 그게 다 제 욕심을 위해서 이러는 거라며 늘 기사들을 닦달했지만, 기사들은 그가 영지민들을 생각하는 참귀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작지만 분위기만큼은 단란한 영지가 바로 릴라였다.

게다가 황가와의 사이도 나쁘지 않아서, 릴라 자작은 무려 세 달에 한 번 정도는 황성에 직접 가는 영주이기도 했다.

“오늘도 평화롭구만.”

“그렇겠지. 얼마 전에 몬스터 토벌은 다 했으니.”

그런 릴라 영지의 경비를 서는 기사들이 한가하게 하품을 할 때였다.

―타닥, 탁!

말발굽이 흙바닥을 거칠게 박차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응?”

두 기사가 놀라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았을 때였다.

―히히힝!

사람을 실은 채 달려오던 말이 돌연 흥분하여 날뛰었다.

“저, 저런!”

그러자 말에 타고 있던 기사는 말에 몇 초간 간신히 매달려 있다가, 결국 바닥으로 나동그라져 버렸다.

―히히히힝!

주인을 떨어뜨린 것도 모자라서 말은 멀리로 달려가 버렸다.

“마갑을 보니 우리 영지 말이 맞는데?”

놀란 기사들은 일단 말에서 떨어진 자에게 달려갔다. 낙마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게 더 중요했다.

“이봐!”

쓰러진 사람에게 달려간 기사들은 곧 경악했다. 달려온 사람이 피투성이였던 것이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있어? 응?”

같은 기사복을 입은 자에게 기사들이 거듭 물었다.

다친 기사는 간신히 말했다.

“몬스터가……, 몬스터가 오고 있…….”

그리고 말을 하다 말고 혼절해 버렸다.

두 기사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몬스터는 없을 텐데?”

분명 다 토벌했잖아?

릴라 영지는 이맘때쯤이 가장 한가한 시기였다. 피 볼 일도 별로 없는 시기가 지금인데?

하지만 이 기사의 상처는 진짜였다. 두 기사의 얼굴이 긴장감으로 물들었다.

“이게 어떻게 된…….”

그들이 몸을 일으켜 말이 달려온 길을 살펴볼 때였다.

―쿠쿵, 쿠쿠쿵……

기묘한 땅울림이 두 사람에게 전해져 오기 시작했다.

몸무게가 꽤나 나가는 것들이 두서없이 달려오는 듯한 기척.

“?”

설마 하는 얼굴로 언덕 너머를 내다보는 그들 앞으로, 점점 보랏빛의 음침한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 저게 뭐야!”

기사들은 기겁했다. 그들은 릴라 영지에서 오래 일한 기사들이었지만 저런 불길한 보랏빛 기운을 두른 몬스터는 본 적이 없었다.

“전, 전투 준비!”

한눈에 봐도 심상치 않은 놈들이었다.

“여기 환자가 있다! 옮겨! 그리고 실제 상황이니 훈련받은 대로 움직여라!”

기사들이 목청을 높이며 성벽에 손짓했다.

이미 기사가 쓰러진 걸 본 성벽 위의 기사들이 들것을 들고 달려 나오고 있었다.

―쿠쿠쿵, 쿠쿠쿵!

그리고 그들에게 전해져 오는 진동은 점점 더 커져 갔다.

“처음 보는 몬스터 무리다! 상대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할 때까지는 최대한 방어적인 진형을 유지한다!”

“예!”

기사들이 침착하게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훈련이 잘된 기사들이었다.

“…….”

하지만 훈련으로만 되면 세상이 그렇게 쉽진 않았을 것이다.

다소 먼 언덕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면 마신전의 사제 하나가 씩 웃었다.

―사락.

그리고 쪽지에 무언가를 써낸 그는 곧바로 몸을 돌렸다.

아무리 훈련이 잘되어 있어 봐야 닿으면 살이 녹고, 목을 잘라 내도 달려드는 마물들을 처음 상대한다면 초토화되는 건 순식간일 터였다.

더 지켜볼 필요도 없겠군.

―우웅!

마사제의 허리춤에 달려 있던 마력석 중 하나가 회색 가루로 변해 흩어져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그의 앞으로 일회용 게이트가 생겨났다.

그의 손에 들린 쪽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계획은 순조로움. 릴라 영지 곧 초토화]

그가 게이트를 넘어가자, 언덕에 누군가 있었던 흔적은 씻은 듯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안 있어, 릴라 자작의 기사들은 마사제의 예상대로 고전하기 시작했다.

“놈, 놈들에게 공격이 전혀 안 통합니다!”

“베어 내면 두 마리가 되는 놈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상대한 몬스터들과는 다른 것 같습…… 아악!”

그들이 전선을 유지하려 애쓸 때였다.

“저기요!”

성벽 안쪽에서 그들을 올려다보는 무리가 있었다. 활을 쏘던 기사가 당황해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다름 아닌 영지민들이었다.

“뭐, 뭡니까? 위험한 거 안 보여요? 당장 들어가십시오! 비상 상황입니다!”

기사의 눈은 사명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영지민……이 아니라 그림자와 감찰기사들은 농기구를 든 채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저희도 돕겠습니다!”

“제가 왕년에 용병으로 이름 좀 날린 놈입니다!”

기사들은 그 모습에 눈시울을 붉혔다.

영지민들이 고전하는 모습을 보다 못해 함께 싸우러 나와 준 것이다.

하지만.

“기사의 의무는 영지민을 지키는 것이오! 우리 앞에서 피를 흘리는 영지민을 볼 수는 없소이다!”

다른 기사 하나가 외쳤다.

“당장 가족을 데리고 대피하시오!”

그 말에 농민 차림의 감찰기사와 그림자들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완전 꼴통인데?”

물론 말과는 달리 그림자들과 감찰기사들은 릴라 영지의 기사들을 나쁘게 보지 않았다.

정말 사람을 지키기 위해 검을 든 자들이 저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저 마물들을 처리하려면 아쉽게도 기사들의 보호 아래에서 탈출해야 했다.

그림자 중 하나가 외쳤다.

“기사님들도 우리 영지민들 이웃의 아들딸이 아닙니까! 이런 위기에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옳소!”

“옳소!”

연기에는 도가 튼 감찰기사들이 목소리를 높여 공감했다.

“위험하다니까!”

하지만 그들의 정체를 알 리 없는 릴라 영지의 기사들은 기겁했다.

그런 그들을 보던 감찰기사와 그림자들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이미 그들은 전장 상황을 다 파악한 상태였다.

아직 전선은 성벽으로부터 먼 곳에 있었다. 그렇다면?

“가즈아아아아!”

―끼리리릭…… 쿵!

우렁찬 소리와 함께 농민 차림의 감찰기사 하나가 성문을 여는 장치를 당겨 버렸다.

“미, 미쳤소!?”

기사들이 기겁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릴라 영지민의 모습으로 하나가 된 감찰기사와 그림자들은 농기구를 꼬나들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영지를 지켜라!”

“와아아아!”

십수 명의 영지민이 성문 밖으로 튀어 나가자 기사들이 기겁했다.

“뭐, 뭐 하는 짓이오!”

“기사님들을 지켜라!”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기사들이 경악하는 가운데, 농민들은 방어 전선을 뚫고 겁도 없이 마물들에게 돌격했다.

물론 그사이 그림자와 감찰기사들 사이에는 사인이 오갔다.

‘몰려오는 마물들을 사전에 차단한다. 기사들의 시야 밖에서 움직여.’

지휘를 맡은 그림자의 손짓에, 몇몇 농민 차림의 그림자들이 슬그머니 모습을 감추었다.

혼란스러운 전장 한가운데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그들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

―스릉! 챙!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우렁찬 기합을 뿜으며 달려 나온 농민(?)들과 마물이 부딪쳤다.

당연히 전선에서 싸우던 기사들은 기겁했다.

“당장 들어가십시오! 이곳은 우리가 지킵니다!”

하지만 이미 농민(?)들은 무아지경이었다.

검도 아니고 곡괭이나 삽 따위를 든 그들은 엄청난 힘으로 마물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금세 전장의 변화로 나타났다.

“아니, 대체…….”

기사들은 곧 할 일을 잃고 허망하게 검을 늘어뜨려야 했다.

분노한 농민(?)들이 마물들을 마구잡이로 해치우며 전선을 앞으로 넓혀 나간 탓이었다.

누가 봐도 평범한 자들은 아니었다.

“……정말 농사짓던 사람들 맞아?”

달려들던 마물들이 꼬리를 말고 도망가려는 것을 쫓아가 잡기까지 하는 농민(?)들을 보며 기사들이 중얼거렸다.

―캬오오!

이내 마지막 마물의 단말마가 울린 후.

농민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어깨를 풀며 기사들에게로 돌아왔다.

떨떠름한 표정의 기사들과 개운하다는 표정의 농민(?)들의 시선이 마주쳤다.

“정, 정말 우리 영지민이 맞소?”

결국 기사가 물었다. 그림자 중 하나가 말했다.

“당연하지!”

그렇게 외치고는 곡괭이를 쳐들며 외쳤다.

“오늘은 내가 맥주 한 잔씩 돌리겠네! 풍년을 위하여!”

“풍년! 풍년!”

“와아아아아!”

그러고는 성문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

“???”

전장에 남은 기사들은 떨떠름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다가 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저들이 정말 영지민 같습니까?”

한 기사가 선임 기사에게 물었다. 선임 기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처음 보는 얼굴들이야. 게다가 훈련받은 듯한 움직임―”

그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여, 여기……!”

죽지 않은 마물들이 있는지 확인하고 돌아다니던 기사 중 하나가 놀라 외쳤다.

“무슨 일이지!”

아직 살아 있는 놈이 있단 말인가!

후다닥 달려간 기사들은 곧 기이한 것을 확인했다.

“이건…….”

“……황가의 문양 아닙니까?”

기사들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지키기 위해 검을 든 자들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제가 모시는 주인이 큰일을 해내길 바라고, 자연히 검을 든 자들이 가장 우선으로 속하고 싶어 하는 곳은 황성의 기사단이었다.

그랬기에 알 수 있었다.

그들 앞에 떨어져 있는 작은 펜던트가, 황성 기사단이 차고 다니는 검 손잡이 끝에 술과 함께 달려 있는 물건이라는 것을.

“설마…….”

기사들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방금 그 농민들.

제식훈련을 받은 것 같은 일관된 움직임과 실력.

“황가에서……?”

그들이 눈을 끔뻑였다.

지금껏 폭군이라고만 알려져 있던 황제 카리스와 황태후 리엔이었다.

게다가 어제는 기사까지 뜨지 않았는가?

[하늘에게 묻는다.]

그렇게 시작된 기사가 영지민들에겐 관심이 없는 황가를 지탄하는 내용이라는 걸 모르는 자는 없었다.

물론 그 기자가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밝혀지긴 했지만.

하지만 그 기사가 내심 마음에 담겼던 건 사실이었다. 확실히 지금의 황가는 폭정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었으니까.

정말 무슨 일이 터진다면, 신문 기사에 쓰여 있는 대로 황성마저 버리고 저들끼리 도망쳐 버리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했던 자들도 펜던트를 보고 생각을 싹 바꿔 버렸다.

게다가.

“가까운 곳에서 마물들의 전투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먼 곳에서 외침이 들려 왔다.

“뭐? 가까운 곳?”

기사들이 다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이쪽 전선을 지켜 내기도 바빴던 기사들이었다.

그럼 저곳의 마물들은 누가 상대했단 말인가?

“피해는?”

“없습니다! 마물들의 시체뿐입니다!”

그 외침에 선임 기사는 바로 알아챘다.

이건 아까 그 농민, 아니, 황가 기사들의 솜씨였다.

“왜 정체를 밝히시지 않고 그렇게 오셨지?”

“그야 황가 기사님이 오신다면 우리가 긴장하지 않고 싸울 수 있었겠소?”

“하긴…….”

기사들이 의견을 모았다. 그러면서 황성이 있을 방향을 새삼 돌아보았다.

황가의 병력들은 그들을 몰래 돕고 떠난 것이었다.

“……황제 폐하 만세.”

기사가 뇌까렸다.

그리고 그런 일은 제국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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