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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142)화 (142/167)

142화

필레 공작의 계획대로 제국 각지는 마물들에게 공격당하기 시작했다.

몇몇 가문에서는 마물들을 막아 내고 있다곤 하지만, 마신전의 사제들은 제국 대부분의 영지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했다.

“아주 좋아.”

살롱의 붉은 천 뒤에서, 필레 공작은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각 영지가 엉망이 되었으니 이제 곧 황성에 마물을 소환할 차례였다.

그럼 자신이 등장할 시간이 되는 것이다.

“때가 다 되어 가는군.”

목을 돌리며 몸을 푼 그가 손안의 쪽지를 내려다보았다.

마신전 사제들이 가져다준 쪽지였다.

[토르 영지, 고전 중. 1시간 이내로 뚫릴 것으로 보임]

[케이안 영지, 뚫림]

간단하게 각 영지의 상황을 전해 주는 쪽지들이었다.

그리고 그 쪽지들 뒤에는 꼭 비슷한 내용의 코멘트가 붙어 있었다.

[약속을 잊지 않길 바라오.]

약속이 무엇인지야 뻔했다.

“흥.”

필레 공작이 코웃음을 쳤다.

“말도 안 되는 욕심을 부리는군.”

헛소리를 하고 있는 저 마사제들은 일이 끝나면 그가 손수 처리할 자들이었다.

―쿵쿵!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붉은 천 너머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들어와라!”

그가 소리 높여 답하자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붉은 천 아래로 보이는 옷자락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마신전의 사제였다.

근데 재게 발을 놀리는 것이, 지금까지 쪽지를 가져다준 자들과는 달리 어딘가 급해 보였다.

“무슨 일이지?”

지금까진 순조롭다더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그의 물음에 마사제가 다급하게 말했다.

“황성에서 기사들이 나온 것 같소!”

“오.”

필레 공작이 짧게 감탄했다.

예상보다 빠른 대응이었다. 좀 당황스러울 정도로.

영지들이 몇 개는 쓸려 나가고 나서야 황성의 기사단이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킬 줄 알았건만.

“좋아. 그럼 황성에 마물들을 소환하시오.”

“이렇게 일찍?”

마사제가 멈칫했다. 필레 공작이 손을 펴 보였다.

“어차피 황성이 빈집이 되면 소환하기로 한 것 아니었소? 지금이 적기인 것 같은데.”

“……흠.”

마사제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문을 닫고 나갔다.

―달칵.

문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필레 공작이 다시 픽 웃었다.

“제깟 기사들이 아무리 기어 나와 봐야, 디란타 대공령에서 남하하는 마물들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지.”

게다가 황성에 게이트가 열릴 거라곤 생각도 못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함부로 기사들을 빼는 걸 보면.

순서가 좀 바뀌긴 했지만 그가 써 놨던 몇 개의 시나리오 중 하나일 뿐이었다.

―찰랑!

그가 설렁줄을 잡아당기자 문밖에 대기하고 있던 자가 소리 없이 문을 열었다.

“부르셨습니까.”

“슬슬 움직인다. 격전을 치른 것처럼 분장하는 건 잊지 말고. 우린 ‘황성을 위해’ 움직이는 거다.”

그 말에 잠시 말이 없던 기사 차림의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목소리는 결연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랫것들도 계획이 진행될수록 바뀔 세상에 대한 기대가 부풀고 있는 것이리라.

―탁.

미소를 감추지 않은 필레 공작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방금의 기사가 감찰기사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채로.

*  *  *

―쿠쿵, 쿵!

“긴장을 풀지 마라!”

황성의 기사들은 모두 긴장한 상태였다.

얼마 전 침입자가 있어 황태후 리엔의 심기가 아주 불편해졌기 때문이었다.

리엔은 그녀답게 그 심기를 숨기지 않았고, 당연히 기사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손끝 하나, 목소리 하나에 제 목숨들이 왔다 갔다 하니 긴장하는 건 당연했다.

“개미 한 마리도 빠져나갈 틈을 줘선 안 된다!”

그러면서 황성기사단과 제도기사단은 황성 전체에 거듭 경계를 강화했다.

황성기사단장인 나크 역시도 신경을 곤두세운 상태였다.

“자리를 이탈하는 자는 즉시 엄벌에 처할 것이다!”

그가 외쳤다.

그리고 그 말이 울린 지 일 분도 안 되어, 그는 불편한 광경을 목격했다.

“거기, 뭐 하고 있는 거야!”

그가 본 방향의 한 기사가 서서히 뒷걸음질을 치며 복도에서 물러나고 있었던 것이다.

“자리 이탈하지 말란 소리 못 들었나!”

그가 빠르게 기사에게 다가갔다.

“단, 단장님, 뭔가 이상한 게 있습니다……!”

“무슨―”

그리고 기사와 같은 것을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기사가 물러난 복도에는 보라색 연기 같은 것이 가득 차 있었다.

그건 스멀스멀 복도로 흘러나오고 있기도 했다.

“독, 독 안개?”

나크가 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그가 크게 외쳤다.

“모두 창문을 열어라! 독 안개다!”

“창문 열겠습니다!”

―덜컹!

더욱 경계가 날카로워진 기사들이 일제히 복도의 창문을 열었다.

“어디서 나오는 독 안개지?”

황성기사단장 나크의 말에 처음 안개를 발견한 기사는 조심스럽게 복도 안쪽을 가리켰다.

“시종 전용 숙소인 것 같습니다.”

“시종들은?”

“황성의 경계가 강화되면서 숙소를 비운 상태입니다.”

기사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황성기사가 된 지 얼마 안 된 자였다.

툭. 그를 격려하듯 어깨에 손을 얹어 준 나크는 독 안개를 노려보았다.

“안개가 나오는 마도구가 있는 건 확인했나?”

그가 물은 순간이었다.

―파지지지직!

눈앞의 독 안개에 불이 붙어 버렸다.

“!”

“으아악!”

놀란 나크와 기사가 후다닥 복도에서 물러섰다.

그런 그들의 뒤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디, 디란타 대공 전하?”

굳이 인기척을 감추지 않은 자는 바로 시스테인이었다.

독 안개를 태운 푸른 마력을 갈무리한 그가 두 기사에게 손짓했다.

“이곳은 내가 맡지. 복도로 독 안개가 아닌 다른 게 나오진 않는지 경계하도록.”

그의 말에 나크와 기사가 바짝 허리를 세웠다.

“알겠습니다!”

그들이 답하자 디란타 대공은 아직 덜 사라진 독 안개 사이로 거침없이 걸음을 내디뎠다.

“거기 아직 독 안개가 있……!”

나크가 놀랄 때였다.

―화르륵!

독 안개에 불이 붙어 사라져 버렸다.

그 모습에 나크가 어색하게 입을 뻐끔거렸다.

“―었는데…… 없어졌네.”

크흠. 그가 목을 가다듬었다.

그러면서 새삼 시스테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리실 때는 괴물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많은 마력을 가졌다는 소문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마법사가 아니라 검사의 길을 선택했고, 마력이 있다고 해도 ‘마법은 제게 맞지 않는다’며 마탑의 영입 요청을 몇 번이나 거절했다고 했다.

그래도 마력을 쓸 수는 있다고는 들었다.

그런데 저렇게 능숙하게 쓸 줄 아는 분이었나?

나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황성기사단장 나크라고 했던가.

시스테인은 리엔이 그에 대해 평했던 것을 떠올렸다.

‘순수한 권력욕이 마음에 드는 자야. 다루기 가장 쉬운 유형이지.’

‘저런 자들은 강력한 권력을 가진 자가 내린 명령이라면 제 몸을 불태워서라도 이행하거든.’

‘그럼 내게는 작지만 저들에게는 큰 보상을 내리면 그만이야.’

리엔의 목소리는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분명 어린 시절에 들은 말인데도 그랬다.

첫 폭주가 있고 나서 십수 년간 리엔과의 교류가 거의 없었는데도 그녀는 낯설지 않았다.

어제까지, 일주일 전까지 함께 있었던 것처럼.

낯선 사람의 목소리를 떠올릴 때면 말의 내용만 떠오를 뿐 목소리는 떠올릴 수 없었지만, 리엔과 카리스의 목소리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오래 떨어져 있었는데도, 그랬다.

그리고 그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독 안개를 먼저 흘려보낼 줄은 몰랐는데.”

생각에 잠겼던 시스테인은 곧 생각을 털어 냈다.

기사의 말대로 안개가 흘러나오는 게이트가 시종의 숙소에 있는지, 숙소 문을 열자마자 독 안개가 짙어진 탓이었다.

물론 이 정도 농도의 마법 독 안개로는 시스테인에게 기침도 하게 만들 수 없었다.

―화르륵!

그래도 그는 복도에 있을 기사들을 위해 독 안개를 없애며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자욱하게 낀 방에 도착했다.

―우우웅!

그래도 그의 눈에는 분명히 보였다. 침대 아래에서 새어 나오는 검은빛의 불길한 마력이.

―쿵……!

한 손으로 침대를 밀어 버리자 그 밑에는, 예상대로 게이트가 있었다.

“…….”

리벨과 함께 아스테아 백작가에서 봤던 것처럼 쌍방향 게이트였다.

마물을 황성으로 불러들이면서도, 유사시에는 저들이 대공령으로 탈출하려고 만들어 둔 게이트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마물을 조종할 방법이 있으니, 상황이 나빠진다면 최선의 선택이 될 거라 여겼을 터였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둔 비상용 탈출구는, 시스테인에게 좋은 이동용 게이트가 되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걸음을 내디뎠다.

―화악!

게이트 위에 서자마자 주변의 풍경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익숙한 디란타 대공령의 마력.

그리고…….

―크르르……?

산처럼 쌓인 식량을 뜯어 먹느라 정신없는 마물들이 보였다.

게이트 바로 옆에는 독 안개를 만드는 마도구가 놓여 있었다.

―콰직!

시스테인은 한 손으로 마도구를 종잇장 구기듯 부숴 버렸다.

그 살벌한 소리에 마물들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오금이 저릴 모습이었다. 수십의 마물이 한 번에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니.

하지만 시스테인이 한 생각은 하나였다.

이 정도 수라면 리벨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다.

다소 안심한 그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스릉!

검을 뽑은 그의 앞으로 곧 몬스터들이 덮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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