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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143)화 (143/167)

143화

“시작됐나 보다.”

리벨은 슬쩍 문틈으로 바깥을 살폈다.

그녀는 시종들과 함께 있었다. 당연히 시종 차림이었다.

―한 마리도 새어 나가게 하지 마라!

―흐아아압!

―챙! 쨍!

병장기 소리와 기합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니 싸움이 시작된 게 확실했다.

시스는 지금쯤 게이트를 찾았거나, 게이트로 넘어갔을 것이다.

“후우.”

리벨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종과 시녀들이 모인 이 장소에는 그녀처럼 긴장한 자가 한둘이 아니었기에, 이상하게 보일 일은 없었다.

‘상대는 황성에 주는 피해는 최소한으로 줄이려 할 겁니다.’

회의 때 시스테인이 한 말은 그대로 적중했다.

그는 소형 마물 내지는 다른 마법적 장치로만 공격할 거라고 예상했고, 아니나 다를까 저들은 다른 영지에처럼 마물을 쏟아 내는 대신 독 안개를 먼저 퍼뜨렸다.

잘 다녀오시겠지?

리벨은 새삼 그가 있을 디란타 대공령을 생각했다.

‘황성기사단 병력을 무력화시킬 정도의 전력이 아니라면, 저 혼자 넘어가서 처리해도 충분할 거고요.’

이 역시 그가 회의에서 했던 이야기였다.

그는 계획의 중심, 마물이 나오는 게이트를 없앨 때를 제하면 리벨을 최대한 위험한 곳으로 데려가지 않으려고 했다.

어차피 싸우지도 못하는데 굳이 따라갈 이유도 없었기에, 리벨은 그의 말에 수긍했다.

‘다치지 말고 돌아오기, 약속!’

대신 약속을 받아 내는 건 잊지 않았다.

약속 어기는 사람은 아니니까 지금쯤 그는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으리라.

―달칵.

생각을 마친 리벨이 문을 열었다. 시종 차림의 그에게 다른 시종이 물었다.

“어, 어디 가게? 지금 바깥이 난리잖아.”

“기사들이 이곳에 모여 있으라고 한 거 못 들었어?”

그들의 말에 리벨이 답했다.

“어디까지 마물이 왔나 보려고.”

그녀의 말에 시종들이 제각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

“크흠.”

목을 가다듬는 자들도 있었다.

다들 자신들이 위험을 피했는지, 마물이 혹시 근처에 오지는 않았는지 내심 궁금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걸 살펴볼 용기는 없었던 참이었다.

그러는 중에 마침 자진해서 나가겠다는 자가 있는데 누가 말리겠는가?

“그, 그럼 어쩔 수 없지.”

“무사히 다녀와.”

어색한 분위기로 시종들이 그녀를 배웅해 주었다.

“다녀올게.”

리벨이 문밖으로 나갔다.

―달칵!

그리고 리벨이 나가자마자 문은 바로 닫혔다. 마치 그녀가 혹시나 끌고 올지 모를 마물들에게 발각되지 않으려는 것처럼.

“어휴, 매정한 사람들.”

리벨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저 사람들이 안 나오면 안 나올수록 좋았다.

저들 대부분은 전투 능력도 없을뿐더러 이번 계획을 모르는 자들이었으니 방해가 되면 방해가 됐지 도움 될 일은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곧 제 모습을 가다듬어 보았다.

평범한 남자 얼굴의 시종.

좋아.

“크흠.”

목을 가다듬은 리벨은 위층으로 달려갔다.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곳은 항성 중에서도 본관이니, 다소 떨어진 이곳 ‘리아나 관’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랬기에 긴장을 놓고 있는 기사들도 있었다. 리벨은 그런 자들의 정신을 번쩍 깨워 줄 생각이었다.

그건 시스테인이 게이트 너머로 가 있는 동안 리벨이 하기로 한 일이기도 했다.

목을 가다듬은 그녀가 외쳤다.

“몬스터야! 몬스터가 나타났어!”

나타났어…… 나타났어어어…….

계단에 대고 외친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건물 전체를 울리기 시작했다.

당황했는지 기사들의 발소리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게 정말인가!”

위에서 외치는 소리에 리벨이 크게 답했다.

“본관의 기사들이 고전하고 있소! 빨리 바깥에서 추가 병력을 불러야 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리벨은 그런 그들에게 쐐기를 박았다.

“곧 이 리아나 관에도 들이닥칠 거요!”

“전원 경계 태세!”

“제자리를 지켜라!”

곧 위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좋았어!

씩 웃은 리벨은 재빨리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화로에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넣었다가 빼내어, 리아나 관 옆에 놓인 짚 더미에 집어 던졌다.

―화르륵!

그건 그림자들이 미리 준비해 놓은 짚더미였다.

“연기가 올라오면 난리가 날 테니까 이쪽은 됐고…….”

리벨은 다른 관으로 재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그리고 그 관 옆에 있는 짚더미에도 불을 붙였다.

곧 반응은 왔다.

“불, 불이다!”

“불 속성의 마물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당장 불을 꺼!”

“마물을 찾아라!”

“도망쳐!”

마물을 잡겠다는 기사들과 도망치는 시종들로 순식간에 주변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리벨은 그사이에 시녀 모습으로 이미 모습을 바꾼 상태였다.

“꺄아아악! 어떡해요!”

그리고 충실하게 바람잡이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어떡하긴! 도망쳐!”

시종들이 사방팔방으로 우왕좌왕 흩어지기 시작했다.

“꺄악!”

리벨은 적당히 비명을 질러 주면서 주변을 살폈다.

자고로 개판인 모습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모습은?

건물 입구로 사람들이 도망치듯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저, 저길 보시오!”

게다가 본관의 비주얼은 이 상황에 딱이었다.

독 안개라도 퍼뜨린 건지 본관의 창문에서 보랏빛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본관에서 떨어지세!”

“독인 것 같소!”

보랏빛 연기는 점점 흐려지고 있었지만 시종과 시녀들을 더 혼란스럽게 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폐하께서는?”

“다행히 몸을 피하셨소이다!”

리벨이 충성스러운 시녀 하나의 외침에 재빨리 답해 주었다.

“다, 다행이군!”

시종들이 안심한 얼굴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빨리 도망치시오!”

리벨은 경악한 척 본관을 보고 있었다.

그사이 시종 하나가 그녀를 흔들어 깨우고 지나갔다.

음, 친절하시기도 해라.

리벨은 그들을 뿌듯함을 감춘 채 지켜보았다.

필레 공작은 지금쯤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며 좋아하고 있겠지만, 그건 아쉽게도 오산이었다.

순조롭게 계획이 진행되고 있는 건 이쪽이었다.

“으아아아! 저쪽에도 연기가!”

그거 내가 불붙여 놓은 건데.

더욱 난리가 난 시종들을 보며 리벨이 뇌까렸다.

이 시종과 시녀들은 충성스럽게 카리스와 리엔을 모셔 온 자들이었다.

이런 자들까지 속이는 건 좀 미안했지만, 이들 중에 혹시나 첩자가 있을지도 모르니 어쩔 수 없었다.

‘속이려면 아군까지 제대로 속여야지.’

그건 카리스의 의견이었다.

그의 말에 리엔과 시스테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 뒤로 그들과 함께 회의 끝에 만들어 낸 계획을 다시 한번 뇌리에 새기며, 리벨이 뇌까렸다.

“진짜 그 사람들하고 척 안 진 게 다행이지.”

그러다가 멈칫했다.

“……이미 척졌나?”

그 문제의 기사 쓴 순간부터 망한 거 아니냐?

하하하하지만!

아니, 지금 이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녀가 고개를 홱홱 내저었다. 아무튼 황성이 엉망이 되기 시작했으니 곧 그가 나타날 것이다.

누가?

아주 충심이 뻐렁치는 우리 필레 공작님께서!

*  *  *

확실히 필레 공작은 양반은 못 되는 자였다.

아니나 다를까, 황성이 엉망이 되고 시스테인이 마물을 처리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 필레 공작의 병력이 황성 근처로 모여들었다.

타고 온 말이 거품을 물고 쓰러질 정도로 빠르게 달려온 자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엉망이 된 모양새에, 이곳저곳에 흙먼지와 피로 더러워진 붕대를 감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사들과 그들의 지휘관, 필레 공작은 결연하기 그지없는 얼굴이었다.

“폐하, 이게 무슨 일입니까!”

황성의 견고한 성문은 아직 굳게 닫혀 있었다.

하지만 밖에서 보기만 해도 이미 황성 안은 개판이었다.

연기가 나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으며, 성벽 안쪽의 어수선함이 바깥에까지 들려오는 듯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일단 숨자고. 뭔가 사달이 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야.”

그 모습에 수도의 제국민들은 집으로 돌아가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있었다.

그건 리벨 측이 일부러 황성에 불을 내면서까지 노린 바이기도 했다.

‘이런 쓸데없는 해프닝에 제국민들이 쓸려 나가서는 체면이 살지 않지.’

회의에서 황제 카리스는 그렇게 말했다. 리엔 역시 동조했다.

이 사람들 폭군이라며?

사실 폭군이란 건 귀족 입장에서 서술된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면 결혼식장 지을 때부터 야근 수당 위험 수당에 식비까지 꼬박꼬박 챙겨 주고 휴무도 철저하게 지켜 주는 것이 복지가 예사롭지 않다 싶었다.

사실 이 사람들 츤데레 폭군 아냐?

리벨이 회의를 떠올리며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필레 공작이 외쳤다.

“폐하께 이 한 몸 바치겠습니다! 황성을 어지럽히는 폭도들을 처단하도록, 입궁을 허락해 주십시오!”

그의 목소리는 간곡하기 그지없었다.

성벽 위에서 시녀 모습으로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리벨이 감탄했다.

“이야, 누가 보면 세계 제일 충신인 줄 알겠네.”

리벨은 필레 공작의 모습을 살폈다.

그리고 결론 내렸다.

흙먼지에 피까지 묻어 나온 붕대며 내추럴하게 엉망인 헤어스타일까지.

음~ 뜨거운 전장에 필레 공작과 기사들을 살짝 데쳤다 꺼냅니다.

남들이 보기엔 그렇겠지만 분장 및 잠입, 위장 전문인 리벨이 보기에 성에 차는 모습은 아니었다.

분장 점수는 80점.

“너무 무기가 멀쩡하잖니, 쯧쯧.”

그녀가 혀를 찼다.

디테일에 신경을 못 쓰는 걸 보니 초짜들이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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