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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146)화 (146/167)

146화

불길한 생각이 대사제의 머릿속을 스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설마 망했나?

그때 다른 사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무 늦는 거 아닙니까?”

그 역시 당연히 코맹맹이 소리였다.

“설마…… 우욱.”

“그런…….”

다른 사제들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며 웅성거리다가 냄새에 황급히 입을 닫았다.

차마 말을 더 잇지 못하고, 망한 거면 어쩌냐는 불안감만이 시선을 타고 그들 사이를 메우기 시작했다.

대사제는 멈칫했다.

마신전의 대사제라는 어두침침한 이미지답지 않게 그는 긍정의 힘을 믿는 사람이었다.

불길한 생각을 하면 불길한 일만 일어나는 법!

대사제가 근엄한 얼굴로 말했다.

“어차피 공작의 계획이 무너져도 상관없다. 이 마물들을 막을 자는 없으니!”

그 말에 불안감에 서로를 마주 보던 마사제들이 안정을 되찾았다.

“…….”

“…….”

맞아, 맞아. 결국 필레 공작도 마물로 쓸어 버릴 계획이었으니 상관없지.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생각들은 죄다 비슷했다.

그들이 그렇게 냄새와 싸우는 사이.

“…….”

그들 중 하나가 슬그머니 모습을 감추었다.

죄다 같은 옷을 입고 지옥 같은 썩은 내장 냄새를 인내하느라 정신없는 사이 빠져나간 건 젊은 마사제였다.

그는 문제의 방에서 멀리 떨어지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리고 복도에서 청량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천국이다!

“후하후하후하!”

맑은 공기가 이렇게 귀한 것인 줄 누가 알았을까?

젊은 마사제 카르도는 기쁜 얼굴로 마음껏 공기를 만끽했다.

2년 전 어린 마사제로서 마신전에 들어온 이래, 별의별 일을 다 해 봤지만 이번 일은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이번 일만 끝나면 난……!”

그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지금껏 대사제와 선배 사제들이 해 댔던 온갖 구박을 떠올렸다.

그러다가 얼마 전 내밀어진 구원의 손길 역시 떠올렸다.

‘네가 2년 차 마사제라는 카르도구나?’

그렇게 말하는 자는 카르도도 아는 얼굴이었다.

이 제국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자.

‘리, 리엔 황……!’

‘조용히.’

분명 잠들 땐 마신전에 있었는데, 눈을 떠 보니 다른 방이었다.

대체 언제 끌려왔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당시 카르도는 덜덜 떨었다. 나, 난 죽는 건가? 설마 마신전의 계획이 들통난 건가?

복잡한 생각을 하는 가운데, 리엔이 말했다.

‘너를 해치고자 온 게 아니란다. 내 이야기를 들어 보겠니?’

그녀의 눈썹은 처연하게 처졌다. 카르도는 그 표정에 멈칫했다.

그녀는 정말 무엇을 간절하게 바라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내 목숨을 취하려면 이런 곳에 데려오는 게 아니라 눈 뜨기도 전에 처리했을 거 아냐?

이건 뭔가 내가 쓸모가 있다는, 아니,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부탁하려는 건가?

조금 표정을 회복한 카르도는 리엔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자 처져 있던 리엔의 얼굴이 밝아졌다.

‘좋아. 고마워.’

그러고는 심각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제국 어디에든 내 눈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

‘예, 예.’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마신전이 지하로 숨어들었으니까.

그런데 마신전까지 들킬 줄이야……!

게다가 마신전은 몇 겹의 흑마법 장벽을 뚫어야 들어올 수 있는 곳이었다. 대체 어떻게 들어와 자신을 데리고 나왔는지 의문이었다.

물론 눈앞의 리엔은 그걸 말해 줄 생각은 없는 듯했다.

‘근데 최근에 마신전에서 재미있는 일을 한다고 들었어.’

‘……!’

그 말에 카르도는 다시 떨었다.

역시 다 들킨 건가!

긴장할 때, 리엔 황태후는 의외의 이야기를 했다.

‘근데 그런 걸 왜 몰래 하는지 모르겠어, 나는.’

‘예?’

저도 모르게 되물은 카르도에게 리엔 황태후가 손을 펴 보였다.

‘디란타령에 대해 들어봤니? 거긴 마물이 늘 끓어 넘친단다.’

마사제인 카르도가 디란타령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곳의 마물을 배양시켜 네댓 배로 수를 불린 게 마신전이었으니까.

‘그 마물들은 아무리 해치워도 끝나질 않지……. 그런 마물들을 막기 위해 제국 기사들의 희생이 심해.’

‘최근에는 디란타 대공이…… 막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에 리엔 황태후가 다시 처연하게 웃었다.

‘그것도 한계가 있지. 그 아이가 언제까지나 대공령에만 붙어 있을 수는 없으니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황태후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마물들을 완전히 해치울 수 없다면, 마법을 써서 조종한다……. 그것도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아. 아니, 아주 구미 당기는 생각이야.’

뭐라고? 이야기를 듣던 카르도는 제 귀를 의심했다.

저 말은 우리의 방법을 태양, 즉 양지의 중심인 황가의 인물이 인정한다는 건가?

카르도가 침을 꿀꺽 삼켰다.

마신전의 현재 목적은 양지로 올라서는 것.

숨어 지낼 필요 없이 100년 전처럼 자유롭게 지내는 것. 나아가 권력을 잡는 것.

그런데 현 황가의 실세인 리엔이 이 흑마법에 관심을 보인다고?

‘내게 와서 직접 제안했더라도, 나는 받아 주었을 텐데.’

리엔의 말은 카르도의 생각에 쐐기를 박는 듯했다. 그가 눈을 크게 뜨자, 리엔이 거듭 말을 이었다.

‘내가 합법적인 것만 하진 않는다는 거, 다 알음알음 알지 않니?’

그 말에 카르도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 황제의 어머니 리엔, 그녀는 법 위에 있는 자였다.

‘하긴, 그렇게 마신전이 양지로 올라와도 카르도 네 인생이 바뀌진 않을 테니, 네가 날 도와줄지는 모르겠구나.’

그때 리엔은 불쑥 그렇게 말했다.

카르도가 멈칫할 때 리엔은 그의 지난 몇 년을 함께해 온 것처럼 말했다.

‘여전히 마신전 바닥이나 쓸고 내장이나 맨손으로 쓸어 담으면서, 구역질도 참아야 하는 인생이겠지.’

그 말에 카르도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리엔 황태후는 그런 그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그런 공감을 받은 건 리엔에게서가 처음이었다.

‘야, 우리도 전엔 다 그랬어.’

‘어딜 2년 차가 기어올라?’

다른 마사제들은 그렇게 말하면서 여유롭게 라떼나 들이켰기 때문이었다.

‘마족들이 날뛴 건 100년이나 지난 일이야. 대륙엔 이미 마족이 없는데, 100년 전의 퀴퀴한 율법 때문에 그 좋은 방법이 음지에 묻히게 된다니……, 난 반대야.’

그렇게 말하며 리엔은 달콤하게 속삭였다.

‘그런데 네 윗전들은 내 말을 들어주지 않고 있고……, 어때, 네가 이 신전의 유망주라던데.’

그녀가 미소 지었다.

‘네가 내 생각을 들어줄 수 없겠니? 대륙의 모든 인간들과, 마신전, 그리고 너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말이야…….’

그 유혹은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카르도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결국 그는 리엔 황태후의 비밀스러운 제안을 받아들였다.

“곧이야, 곧.”

회상을 마친 카르도가 재차 주먹을 쥐었다.

리엔 황태후가 그에게 부탁한 것은 간단했다.

‘마도구의 사용법을 알려 줄래?’

그리고 그건 이미 다른 제국의 마법사들에게 알려 준 후였다.

‘아, 이걸 이렇게 조절하면 됩니까?’

‘일반적인 마법과는 많이 다르군요.’

그리고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마법사들이 카르도 자신에게 존댓말을 쓰며 흑마법을 배워 갔다.

양지의 마법사들이 흑마법을 익히다니!

이건 100년 만에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흑마법을 양지로 끌어낸 자는 나, 마사제 카르도가 될 것이다!

그가 고개를 당당하게 쳐들었다.

*  *  *

그리고 같은 시각.

배신자가 나오는 것도 모르고 방 안의 대사제는 숨을 참고 있었다.

“앞으로 딱 한 시간.”

흐읍, 냄새! 그가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다.

“한 시간만 더 기다려 보고 연락이 안 오면, 그땐 그냥 마물을 움직인다.”

그의 말에 방 안에서 몇몇 마사제가 발을 굴렀다. 한숨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십 분은 안 되겠습니까?”

“미쳤나? 우웁!”

한 마사제의 말에 무심코 답했던 대사제가 입을 틀어막았다.

그는 토악질이 올라오기 직전이었다.

“그럼 이십 분이라도…….”

사제 하나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대사제가 얼굴을 구겼다.

이것들이! 자꾸 말 걸지 말라고! 토 나올 것 같다고!

“삽십, 우욱! 그럼 삼십 분!”

대사제가 결국 외쳤다. 그러면서 차라리 빨리 필레 공작에게 연락이 오길 빌었다.

필레 공작, 이게 미쳤나! 뭐 하는 거야!

게이트 앞에서 곯아떨어지기라도 한 거야, 뭐야?

“…….”

“…….”

머릿속을 오가는 거친 욕과 함께 그들은 30분의 지옥을 더 감내했다.

하지만 그래도 게이트는 잠잠했다.

그리고 딱 30분이 지났을 때.

“안 옵니다.”

“30분입니다.”

시계를 벼락같이 본 사제들이 말했다.

그러자 코맹맹이 목소리로 대사제가 외쳤다.

“때가 되었다, 형제들이여!”

우웁! 그는 토악질을 정신력으로 틀어막으려 애썼다.

“디란타에서 남하하는 마물들을 지휘한다! 제국 전체를 휩쓰는 거다!”

긴 시간을 기다려 온 그의 말에 마사제들이 소리 질렀다.

“우오오오오오!”

그런데 그 뒤에, 조금 이상한 소리가 섞여들었다.

“우오오로로록.”

결국 누가 토를 참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기폭제가 되어, 마도구가 있는 방에는 또 다른 지옥이 펼쳐졌다.

……아무튼, 그로부터 십수 분 후 계획은 어떻게든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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