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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151)화 (151/167)

151화

―쩡!

그림자가 들고 있던 쌍검이 몬스터의 이빨을 막아 내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이쪽으로 몬스터가 더 몰리는 것 같은데.”

아까와는 달랐다. 마물들은 마치 어딘가에서 도망쳐 나오는 것처럼 허겁지겁 대공령 밖으로 달려 나오기도 했다.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마법진이 반응하기도 전에 뛰어나오는 것을 기사들이 간신히 막을 정도였다.

“대체 안에 무슨 일이 있길래.”

“전하께서 마물들을 쓸어 버리고 있는 것 같아.”

그림자들의 짐작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시스테인의 모습에 겁을 먹고 도망치는 마물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인간형의 마물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스테인이 그 마물을 상대하기 시작하면서, 다른 몬스터들을 상대적으로 막아 내지 못한 탓도 컸다.

“휴식조 교대!”

그때 먼 곳에서 감찰기사들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벌써 다섯 번째 교대였다.

*  *  *

“버틸 수 있겠어?”

리벨은 걱정스럽게 물었다. 어느새 그녀와 네 그림자 주변에는 몬스터들의 시체가 쌓이기 시작했다.

“아직까진 문제없습니다.”

그림자들이 답했다.

그들 역시 체력 비축을 위해 한 명씩 교대하고 있었다.

휴식 겸 마물을 상대하는 전선에서 빠진 자가 리벨의 옆을 지키는 것이다.

밀착 호위를 위해서도 있었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몬스터가 가장 많이 오는 곳에 서는 자리, 리벨 옆을 호위하는 자리, 그리고 양 날개를 지키는 자리로 구역을 나누어 자리를 바꿔 가면서 체력을 비축하는 것이었다.

“그림자들을 좀 더 데려올 걸 그랬나.”

리벨은 그렇게 뇌까리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가장 위험한 이곳에 많은 병력이 오지 못한 건, 많은 사람들이 움직일수록 마물들이 이쪽으로 몰려서 더 힘들어질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마물은 시스테인이 대부분 처리할 테니, 그림자들이 많을 필요도 없었다.

저런 놈이 나타날 줄은 몰랐지만.

―쨍!

한편, 검으로 마물의 핵을 찔러 마물을 쓰러뜨린 나인은 시스테인의 실력에 압도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힘을 마음껏 쓰지 못하던 시스테인은, 몇 번이고 리벨이 안심시켜 준 덕인지 점점 더 큰 힘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도 보다 안정적으로.

그는 매 순간 강해지고 있었다.

그것도 끝도 없이 강해지고 있었다. 어디가 그의 한계인지 나인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마물을 막아 내며 나인은 소리 없이 감탄했다.

그 역시 그림자로서 수많은 수련과 악조건을 헤치고 살아남은 자였지만, 무인으로서 시스테인의 무력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저건 그야말로 압도적인 재능과 노력이 합해진 결과일 것이다.

저 인간형 마물을 상대하는 동안에도 시스테인의 힘은 강해지고 있었다.

―콰앙!

검에 실린 마력이 묵직해진 건 물론이었다.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시스테인의 눈은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

처음 그 모습을 본 나인과 그림자들은 긴장했었다.

리벨의 호위 외에, 그들이 이곳에 온 목적이 저것 때문이었으니까.

시스테인이 완전히 이성을 잃었을 경우 리벨을 구해 내는 것.

시스테인이야 이성을 잃고 주변을 파괴한다고 해도 이성을 곧 되찾을 테지만, 그 순간 리벨의 목숨이 달아나 버린다면 그건 돌아오지 못할 테니까.

‘만일의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따라와 줬으면 좋겠군.’

그리고 그것을 명령한 건 리벨도, 그들의 주인인 황태후 리엔도 아닌 시스테인 본인이었다.

리벨은 그런 명령이 있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

그 명령 때문에 그림자들은 이 땅에 도착한 이래 줄곧 시스테인을 주의 깊게 보고 있었다.

그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한 건 물론이었다.

―콰콰쾅!

하지만 인간형 마물과 상대하는 시스테인은 아직까지는 큰 변화가 없었다.

“하아!”

그는 거칠어지는 검끝을 자제하지 못하고 검을 휘두르면서도, 안정적인 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건 그의 이성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크아아아아!

하지만 인간형 마물은 몇 번이고 그에게 부상을 당하고도 금세 회복했다.

주변의 마력을 흡수해 회복하는 듯했다.

그 모습을 살피던 리벨이 작게 말했다.

“저건 한 번에 없애야 할 것 같아.”

시스테인이 지금까지 몇몇 마물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 말에 나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런데 지금 사용하시는 마력량으로는 부족할 것 같습니다.”

그가 시스테인과 마물을 살펴보다가 말했다.

“저 마물을 감싼 마력이 너무 강합니다.”

그 말에 리벨이 시스테인을 살폈다.

그가 이성을 잃을수록 그가 쓸 수 있는 마력은 강대해지고 거칠어진다.

하지만 시스테인은 그걸 원치 않았다.

“…….”

리벨은 마물과 시스테인을 번갈아 보았다.

“하!”

짧게 기합을 넣어 검을 끊어치는 시스테인의 금발은 어느새 땀에 젖어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수많은 마물들을 처치하며 여기까지 왔다.

그가 아무리 마력이 강대하고 체력이 좋다고 해도, 결국 그는 인간이었다.

반면 마물인 저쪽은 밥도 잠도 휴식도 필요 없었다.

다시 말해 전투가 길어져 체력이 달린다면 시스테인이 먼저 쓰러진다는 소리였다.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지는 싸움이다.

리벨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 사실은 싸우는 시스테인이 더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챙!

하지만 검을 거듭 휘두르는 그는 마력을 폭주시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니, 폭주시켜야 이길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럴 결심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못 한다면, 리벨 자신이 해야 했다.

“시스!”

그녀의 목소리에 시스테인이 그녀를 돌아보려고 했다.

“보지 말고 듣기만 해요!”

그 말에 시스테인은 고개를 돌리려다 말고 마물의 공격을 막아 냈다.

―파악!

그 찰나를 파고든 마물의 공격을 시스테인은 간신히 막아 냈다. 팔에서 피가 튀었다.

리벨은 그 모습에 입술을 재차 깨물었다. 그러다가 외쳤다.

“무서워하지 마요!”

시스테인은 그 말에 다시 아주 잠깐 멈칫했다. 물론 그건 그림자들의 눈에나 띌 정도로 미세한 반응이었다.

리벨이 보기에 그는 거침없이 싸우고 있었다.

그래도 들리겠지?

그는 귀가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시스는 괴물이 아니에요!”

리벨이 외쳤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괴물이었던 적이 없어요!”

그녀가 꼭 해 주고 싶었던 말이었다.

당신은 단지 서툴렀던 것뿐이라고.

당신을 보호해 주고 당신의 편이 되어 주고 당신의 고민을 함께해 줄 사람이 없었던 것뿐이라고.

당신이 어렸을 때 황족인 가족에게 해가 될까 이곳에 격리되는 게 아니라, 가족과 함께 방법을 찾았다면.

감정을 억누른다는, 어린 그에게 치명적일 정도로 잔인한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성을 잃는 일이 더는 없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건 이미 지난 일이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러니까 억누르지 마요! 폭주해도 괜찮아요!”

아니, 그건 폭주가 아니었다. 리벨은 말을 정정했다.

“아무것도 참지 마요! 화나면 화내고, 마물이 거슬리면 확 썰어 버려요!”

대공비 입에서 나올 만한 표현은 아니었지만 리벨은 단어를 고를 틈이 없었다.

“사고 치면 내가 수습해 줄게! 시스도 이제 기댈 사람이 있잖아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리벨은 그에게 늘 그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당신이 내게 말해 준 것처럼.

당신이 어떤 모습이 되든 나도 당신 옆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말뿐인 위로가 아니라 직접 보여 주고 싶었다.

내 앞에서 폭주해도 나는 당신 옆에 있을 거라고, 그리고 나는 당신을 가라앉힐 자신이 있다고.

아니, 당신은 나를 해치지 않을 것임을 나는 안다고.

―쨍!

시스테인의 검이 다시 마물의 손톱과 얽혔다. 긴 손톱이 시스테인의 쇄골 언저리를 긁었다.

“……!”

피가 튀고 선명한 통증이 닿아 오자, 시스테인은 오히려 눈앞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그는 리벨의 예상대로, 정신없는 전투 속에서도 그녀의 말을 빠짐없이 들었다.

선명하게.

마력이 부딪히고 검이 마물의 외피에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 사이에서도 그 목소리는 귓가에 파고드는 듯했다.

‘시스도 이제 기댈 사람이 있어요.’

그 말은 특히 그의 마음에 가장 가까이 와닿았다.

그 순간, 그는 제가 어릴 때부터 무엇을 원했는지 명확히 깨달았다.

제 비밀을 털어놓을 사람을 원한 건 맞았다. 제 비밀을 알고도 옆에 남아 있을 사람을 원한 것도 맞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제가 원했던 것은, 제가 실수해도 한 번쯤은 눈감아 줄 사람이었다.

완전무결하지 않은 자신에게도, 단 한 번쯤은 기회를 줄 사람.

인간이 아닌 괴물이라서, 더욱 주목받는 괴물이라서, 밝힐 수 없는 황가의 수치라서 두 번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던 자신에게.

두 번의 기회를 주고 괜찮다고 말해 줄 사람을 원했다.

어릴 때는 모든 것에 서툴렀고, 크면서 모든 것에 완벽해지려던 그였지만 그는 인간이었다.

인간은 실수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 ‘역시 괴물은 인간 사이에 섞일 수 없다’며 손가락질하는 게 아니라, 감싸 주고 고민해 줄 사람 필요했다.

그리고 그는, 그런 사람을 얻었다.

리벨.

그녀는 내가 폭주하더라도 내 옆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내가 그녀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 확신이 든 순간.

―파아앗!

시스테인은 억누르던 마력을 완전히 풀어냈다.

눈에 푸른빛이 맺히는 것도 모자라, 검끝까지 푸른 마력이 맺혔다.

하지만 시야는 붉어지지 않았다.

전신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있는 것 같던 중압감에서 해방되자, 날 듯이 가벼운 몸에 강대한 마력이 거침없이 흘렀다.

―콰앙!

무심코 마물에게 검을 휘둘렀던 그는 눈을 크게 떴다.

푸른 마력으로 감싸인 검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힘을 보였다.

―그오오오오!

마물도 놀란 듯했다. 팔로 막아 내려던 마물은 그대로 주우욱 뒤로 밀려나 버렸다.

시스테인의 힘을 버티지 못한 것이었다.

“……!”

시스테인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제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알았다.

이성을 잃기 시작할 때마다, 그리고 사라졌던 이성이 돌아올 때마다 잠깐씩 느낀 그 해방감이었기에.

그는 자신이 폭주하고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이성의 끈은 단단하게 묶여 있었다.

그가 입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탓!

그의 몸이 빠르게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의 완전한 힘이 실린 검이, 인간형 마물의 몸을 꿰뚫었다.

―크아아아!

검에 종잇장처럼 꿰뚫린 마물이 괴성을 질렀지만, 마물은 더는 대항하지 못했다.

그러기엔 몸에 쏟아져 들어오는 마력이 너무 강했다.

시스테인은 선명한 시야로 마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물의 몸에 꽂은 검을 비틀었다.

―콰직!

어릴 때부터 이어졌던 그의 긴 악몽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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