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몬스터들이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있는 놈 없는 놈 다 몰려 나오는 것 같습니다!”
감찰기사들의 비명이 이곳저곳에서 터졌다.
원래 몬스터고 마물이고 종족 보존의 본능이 있는 법이었다.
다시 말해 다 큰 마물들만 ‘사냥’을 나오고, 어린 마물들은 둥지에 머무르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림자들과 시즈, 감찰기사의 전선을 덮치는 건 아직 덜 자란 마물들도 있었다.
“나쁜 상황은 아니야.”
그림자 미엘은 그 상황에 냉철한 판단을 내렸다.
어린 마물들까지 둥지를 버리고 뛰쳐나올 정도라면 마물들의 상황이 그만큼 안 좋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공 전하께서 일을 잘 끝내셨다는 뜻이다.
“곧 끝이다! 버텨라!”
같은 생각을 한 감찰기사 젠이 기사들을 독려했다.
“한계입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비명이었다. 벌써 몇 명의 기사가 정신을 잃었는지 몰랐다.
열두 번째 교대였으니 당연했다.
부상을 입은 감찰기사들의 빈자리를 그림자나 시즈가 메워 줘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그들은 정면 대결에 특화된 자들이 아니었기에, 몬스터를 맞이해 시간을 끄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조금만 더! 다 끝났다!”
마물을 베어 내던 감찰기사 젠이 외쳤다.
하지만 다 끝났다는 말과는 달리 몰려오는 몬스터의 수는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흙먼지에 디란타 대공령 방향이 안 보일 정도였으니까.
“4조와 7조, 8조는 더 버티지 못할 것 같습니다.”
결국 대기하던 감찰기사 한 명이 젠에게 달려와 보고했다.
아까 부상자가 났던 조였다.
부상자가 있는 조는 다른 기사들이 더 많은 체력을 써야 했기에, 더 빨리 체력이 소모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지금 체력 되는 대기 인원 투입시켜.”
젠이 빠르게 명령했다. 하지만 기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한계입니다!”
젠이 입술을 깨물었다.
―챙!
그는 검을 크게 휘둘러 뛰어오는 마물을 베어 냈다.
“그럼 7조랑 8조는 내가 커버할 테니까, 4조에 두 명 투입시켜서 한 자리 맡게 해.”
“그건…….”
기사가 머뭇거렸다.
그도 알았던 것이다. 쉬던 기사를 투입시킨다는 건 이제 기사들에게 잠깐의 휴식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는 남은 체력을 불태워서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죽음을 각오하라는 뜻이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기사는 비장한 얼굴로 뒤돌아 달려갔다.
“이쪽은 그림자가 맡아 주십시오!”
젠이 소리쳤다. 근처에 있던 미엘이 그가 있던 자리로 뛰어들었다.
―쩡!
미엘의 검이 마물의 외피와 부딪히는 소리를 뒤로하고, 젠이 감찰기사 7조와 8조 쪽으로 뛰어갔다.
“하아!”
그들은 정말 기합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전방과는 거리가 있는 위치인데도 몬스터들에게 밀리고 있는 게 보였다.
“물러서지 마라!”
젠이 그 자리로 뛰어들려는 순간이었다.
―쿠쿵.
“!”
그가 몸을 비틀거렸다. 주변의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그러면서 주변의 공기가 한순간에 무거워졌다.
“이게 대체…….”
젠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싸우던 기사들, 심지어 마물들조차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그건 기사들에겐 오히려 희소식이었다.
“단장님?”
젠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하늘에 떠 있는 건 시스테인이었다.
―쿠르릉!
그 위로는 새까만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단장님!”
불길한 먹구름에 젠이 그를 부른 순간이었다.
푸른빛으로 휩싸여 있는 그의 위로 낙뢰가 내리꽂혔다.
―쿠콰콰쾅!
아니, 정확히는 전류가 그의 검에 빨려 들어가듯 내리꽂힌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쾅!
번개 대신, 하늘에 있던 시스테인이 전장에 뛰어들었다.
―크오오오오!
놀란 마물들은 시스테인과 거리를 벌리려다 전열이 무너져 버렸다.
“뭐, 뭐야!”
놀란 건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몬스터들은 당황한 기사들을 노리는 대신 시스테인 쪽을 경계했다.
본능적인 공포 때문이었다.
―쾅!
마물 무리 한가운데에 떨어진 시스테인은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를 둘러싼 다수의 마물들이 힘없이 마력에 터져 나갔다.
“전열을 유지하라!”
젠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엉거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전장에 더 이상 자신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느낀 탓이었다.
“후방에 대공비 전하와 디란타 대공령으로 향했던 그림자들이 도착했답니다!”
젠은 다행스러운 보고를 들으면서도 전장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쿠쿵!
주인의 이성이 분명히 살아 있음을 말하는 듯, 선명하게 빛나는 검이 전장을 휩쓸고 있었다.
시스테인 폰 디란타.
전장의 모두는 전신(戰神)을 보고 있었다.
‘대공의 눈동자가 푸른 빛으로 빛날 때를 조심해라.’
‘그게 폭주의 신호니까.’
황제 카리스로부터 주의를 들었던 시즈조차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시스테인을 경계하려던 것을 그만두고, 들고 있던 검을 내렸다.
그들의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시스테인 폰 디란타는 아군이라고.
‘그놈이 다른 생각을 품진 않는지 살펴봐.’
카리스의 명령을 생각한 시즈들의 시선이 시스테인의 검 끝을 주시했다.
그의 검은 이 혼란스러운 전장에서도 정확히 마물들만 골라 베어 내고 있었다.
‘시스테인은 대공비 없이는 제 마력을 제어하지 못한다고 했지. 아군인 것처럼 굴지만, 난 직접 확인한 게 아니면 믿지 않아.’
‘이번 전투에서 그가 적인지, 아군인지 지켜봐라.’
‘가장 혼란스러운 순간에 그가 무슨 짓을 하는지, 너희에게 검을 돌리는지 지켜봐라.’
카리스는 시즈에게 그렇게 말했다.
‘너희에게 검을 돌린다면 반드시 한 명은 전장을 이탈해 알려야 한다. 하지만 검을 돌리지 않는다면…….’
시즈의 주인, 카리스는 적과 아군을 확실하게 구별하는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제게 쓸모 있는 인간과 쓸모없는 인간을 구분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가 아군이라는 뜻이겠지.’
시즈는 전장을 정리하는 시스테인을 보면서 보고할 내용을 정리해 냈다.
문서로 정리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아군입니다, 폐하.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
말없이 검을 늘어뜨리는 그림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시스가 제 손으로, 제가 가장 아끼는 아이를 해치지 않도록 해 주렴.’
황태후 리엔의 명령은 그들을 끝까지 긴장하게 했다.
폭주한 시스테인이 검을 인간에게 돌린다면, 그들은 목숨을 걸어서라도 리벨을 전장에서 이탈시켜야 했으니까.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똑같이, 그러나 다른 뜻으로 시스테인을 경계하던 시즈와 그림자들의 시선이 마주쳤다.
“…….”
“…….”
긴 전투에서부터 이어진 기묘하면서도 낯선 유대감이 두 집단을 감쌌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감찰기사들은 멍하니 제 단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원래 마검사셨나?”
“아닐걸?”
멍청한 소리를 지껄인 그들은, 몇 번 시선을 교환하다가 드러누워 버렸다.
“세면 좋은 거지.”
“맞아. 생각해 보면 원래도 마법만 안 쓰셨지 지금이랑 똑같으셨어.”
앞선 두 집단과는 달리 시스테인을 의심할 이유가 없는 그들은 안도의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물 한 모금?”
옆에 있는 그림자나 시즈에게 물통을 내밀기도 했다.
“…….”
“…….”
그리고 감찰기사를 보는 그림자와 시즈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이놈들은 어떻게 저런 모습을 보고도 태평할 수 있지?
……어쨌든 불과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서로 견제하는 관계에 가까웠던 세 집단 사이에는, 기묘한 친밀감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들의 세 주인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 * *
한편, 마신전.
―쩡!
대사제는 눈앞의 마도구에서 불길한 소리를 들었다.
눈을 감고 마력에 집중하고 있던 대사제가 눈을 부릅떴다.
“뭐야?”
마나가 뒤틀리는 느낌이 선명했다. 그리고 마물들과 연결된 거대한 마도구에는 금이 가 있었다.
그가 입을 떠억 벌렸다.
“이, 이게 왜 금이 가!”
그의 흑마법적 지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정도 규모의 마도구라면 현재보다 두 배는 더 많은 마물을 부릴 수 있었다.
충분히 안정적인 마도구를 만들었는데 왜?
이런 금이 가는 건 마물들의 이마에 한순간 수천 개의 번개라도 내리꽂히지 않고서야 불가능했다.
그만큼의 강력한 에너지가 한 번에 가해져야 한다는 소리였다.
“틈, 틈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대사제님!”
주머니에서 나는 냄새를 막기 위해 약간의 지능을 발휘한 사제들은, 모두 천으로 콧구멍을 틀어막고 있었다.
덕분에 다 함께 코맹맹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커헉!”
그중에 몇 명은 쓰러지기도 했다.
당황한 마사제들이 외쳤다.
“마물들과의 연결이 완전히 끊겼습니다!”
“뭐?”
대사제가 움찔했다.
한 명의 마사제가 담당하는 마물이 수십 마리다. 한두 마리씩 죽는 거야 마도구에 반응하는 다른 마물과 연결하면 금세 회복되니 타격도 없었다.
그런데 저렇게 쓰러진다는 건?
수십 마리의 마물이 한 번에 쓸려 나갔다는 소리였다.
“설마……!”
대사제는 불길함에 침을 꼴깍 삼켰다.
냄새 때문인지 침에서 구리구리한 맛이 나는 것 같았지만 그는 구역질을 참고 외쳤다.
“정신 차리고 조종 재개해!”
“옙!”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털어 낸 마사제들이 다시 집중하려고 할 때였다.
그들의 표정에 일제히 당황스러움이 떠올랐다.
“없, 없습니다!”
“헉……!”
그들이 외치는 순간 대사제도 몸을 휘청거렸다. 그에게 연결된 마물들도 모조리 연결이 끊겼으니까.
“뭔가 일이 꼬인 것 같습니다!”
“마물들의 수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우우우웅!
급기야 중앙 마도구의 색도 빨간색에서 주황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연결된 마물이 많을수록 붉은빛으로 빛나야 하는 물건인데!
뭔가 잘못됐다.
대사제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마지막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겠군.”
이건 그들에게도 리스크가 큰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판사판이었다.
“디란타 대공령에 있는 모든 마물들을 개방하라.”
커다란 마도구를 만들어 놓고도 모든 마물을 제어하지 않은 건, 그들을 제어할 마사제의 수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모든 마물들을 깨워 제국을 쓸어 버려!”
마물을 조종하는 게 아니라 마물들이 날뛰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국이 지옥이 된 후에, 마신전에서 나가는 것이다.
마물을 조종할 수 있는 건 마사제들밖에 없으니, 지옥이 된 제국에서 그들은 구원자가 될 것이었다.
약간의 희생과 부정적인 인식을 감수하더라도.
어쩌겠는가? 이 제국을 구할 수 있는 건 우리 마사제뿐일 텐데!
“알겠습니다!”
마사제들이 결연한 얼굴로 주머니를 들어 올렸다.
“후우.”
대사제는 숨을 크게 참고, 아니 마음을 단단히 먹고 냄새나는 주머니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제어구를 찢어라!”
―콰지지직!
마사제들과 함께 동시에 주머니를 찢어 버렸다.
“우욱.”
그 순간 주머니를 거쳐 올라오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악취가 올라왔지만, 그들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비록 냄새나는 시작이지만 이제 이 대륙은 우리의 손안에……!
―푸슈우우우웅…….
“?”
사제들은 주머니를 찢은 자세 그대로 굳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