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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154)화 (154/167)

154화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 주머니들이 일제히 파괴되는 순간, 과도한 마력을 받은 중앙 마도구가 터질 듯이 새빨갛게 빛나야 했다.

그러면서 대륙의 모든 마물들이 미쳐 날뛰어야 하는……데……?

이 싱거운 소리는 뭐지?

심지어 주황빛이나마 내고 있던 마도구는 허무한 소리를 내며 꺼져 가고 있었다.

“뭐, 뭐― 우웁!”

당황해 입을 벌린 대사제는 냄새를 견디지 못하고 뒷걸음질 쳤다.

주머니의 내용물이 밖으로 나오자 당연히 엄청난 냄새가 주변을 휩쓸기 시작한 탓이었다.

“우우욱!”

결국 대사제는 품위(?)를 버리고 바닥에 무지갯빛 토사물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와, 냄새 엄청난데.”

그때 천장에서 사람 한 명이 뚝 떨어져 내렸다.

대사제가 당황했다.

“누구우우웁!”

“어우.”

천장에서 떨어져 내린 시즈는 대사제에게서 물러섰다.

아무리 이런 꼴 저런 꼴 다 보는 암살자라지만 살아 있는 놈의 따뜻한 무지갯빛 액체를 산지 직송으로 뒤집어쓰고 싶진 않았다.

“그러니까 이게 마물을 조종하는 데에 쓰였다는 거지?”

그때 감찰기사 한 명이 다가와 거대한 마도구를 툭툭 건드렸다.

“정보에 따르면 그래.”

시즈가 간단히 답했다. 감찰기사는 냄새를 참으며 물었다.

“어떻게 조종하는데? 냄새로?”

그 말에 답하는 건 뒤이어 나타난 그림자였다.

“흑마력이 원래 이곳에 집중되어 있었을 거야.”

대사제는 냄새 사이로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누구냐! 이곳은 외부인이 감히 들어올 수우우웁! 있는, 우우우욱!”

말을 하려면 말을 하고 토를 하려면 토를 해라, 쯧쯧.

눈도 귀도 코도 괴로운 광경에 시즈가 손을 내저었다.

“그럼 못 들어오게 했어야지.”

그러고는 대사제의 목에 검을 들이댔다.

“이놈만 체포하면 되겠군.”

“이이익!”

대사제는 주먹을 꽉 쥐었다. 뭔가 잘못됐다.

외부인에겐 위치도 알려지지 않은 이 지하 신전에 외부인이, 그것도 셋씩이나!

게다가 체포라고?

“그렇게 둘 순 없지!”

대사제의 손이 마도구에 닿았다.

마력을 폭발시켜서 이곳을 초토화하고 탈출시키는 수밖에!

―…….

하지만 마도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체 이게 무슨…….”

마물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반응을 해야 하는데?

“조종할 마물이 있어야 그걸 쓰지.”

감찰기사는 대사제를 한심하게 보다가 마도구를 살폈다.

“어우, 냄새. 근데 진짜 이거 쓰면 마물 목소리가 들리나?”

“어, 어떻게 알았지?”

대사제가 당황했다. 마물의 목소리를 듣는 건 당연히 마물과 연결될 수 있는 마사제들뿐이다.

그리고 현재 남아 있는 마사제 중 가장 흑마법의 절정에 가까운 자신이 모르는 마사제가 있을 리가 없었다.

“외부인이 알 수 있는 정보가 아닌데!”

“그야 우리 쪽에 붙은 사제들이 있거든. 그러게 아랫사람 관리를 잘했어야지.”

감찰기사가 혀를 찼다.

“꼰대 짓 하면서 아랫사람 갈구지 말고.”

대사제가 그 말에 버럭 했다.

“뭐라고!”

“됐고 냄새나니까 얼른 돌아가지.”

그때 시즈가 대사제의 두 손을 뒤로 돌려 묶어 버렸다.

그러면서 말했다.

“일단 이걸 어떻게든 조종해서 잔존한 마물의 존재부터 알아봐야겠어. 이들이 놓친 마물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협조할 성싶으냐!”

대사제가 분노했다. 시즈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이쪽에 붙은 마사제도 있고, 무엇보다 이 방 안엔 대사제 혼자가 아니었다.

“그럼 딴 놈들한테 물어보면 되겠―”

그렇게 말하며 무심코 앞을 보던 시즈가 멈칫했다.

―스릉, 탁.

그리고 마침 검을 집어넣고 있던 그림자와 눈이 마주쳤다.

당연히 근처의 마사제들은 깡그리 죽어 엎어져 있었다.

“…….”

“…….”

“…….”

세 침투조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림자가 머뭇대다 말했다.

“아니, 우린 목격자는 없애는 게 습관이라서……. 근데 이미 포섭한 자들이 있으니 이놈들은 필요 없잖아?”

그의 말에 시즈는 곧바로 납득했다.

“하긴.”

일 처리가 좀 번거롭겠지만 이놈들을 어차피 살려 둘 생각도 없었다.

시즈가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감찰기사는 심각한 얼굴로 이마를 짚었다.

“서류에는 그럼 뭐라고 써야 하지?”

보고서는 올려야 할 거 아냐? 그의 고민에 그림자는 간단히 대꾸했다.

“어차피 그 서류 보시는 분들은 계획 다 아시는 분들이잖아. 대충 올려.”

“대……충?”

시스테인의 관할 아래에 있는 감찰기사단에 대충이란 단어가 있을 리가 없었다.

“어떻게?”

감찰기사가 되묻자 그림자가 짧게 고민했다.

“음…….”

그러다가 툭 뱉듯 대꾸했다.

“깔끔하게 목 땄음?”

“…….”

감찰기사에게는 전혀 도움 되지 않는 조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림자들은 보고서보다는 직접 리엔에게 보고하는 경우가 많아, 보고서의 형식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철저하게 서류로 관리되는 양지의 집단인 감찰기사단은 달랐다.

감찰기사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따위로 쓰라고?”

“안 돼?”

시즈도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림자와 비슷하게 돌아가는 집단인 탓이었다.

“안 돼!”

감찰기사가 비명 지르듯 외쳤다.

아무래도 세 정보 집단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에는 좀 시간이 걸릴 듯했다.

“놔라! 이놈들!”

세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대사제가 발악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 사람은 그를 끌고 나가는 데에 집중했다.

대사제가 뭐라고 발악하든 빨리 이 냄새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만큼은, 세 집단 모두가 동일했던 것이다.

*  *  *

시스테인의 황성 귀환은 원래 훨씬 나중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대공령에서의 전투로 지쳤을 가능성을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스테인은 물론이고 디란타 대공령의 경계를 막기로 한 그림자와 시즈, 감찰기사들까지 지체 없이 한 번에 수도로 복귀했다.

그리고 그들이 귀환하는 날, 수도 사람들은 하늘을 떠다니는 믿기지 않는 물체를 보았다.

“……저택?”

수도 사람들이 거대한 그림자에 당황할 동안, 저택 안에서는 부상자의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돌아올 줄은 몰랐어요.”

리벨은 아직도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지친 사람이 많다지만 집 하나를 통째로 뽑아서 날아올 줄은 몰랐지!

하늘이란 걸 알려 주는 것처럼 창밖으론 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부상자들을 한 번에 옮기면서 빠르게 귀환할 방법이 달리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시스테인이 침착하게 말했다.

물론 그의 작전은 그의 강대한 마력과 현재 상황을 봤을 때, 아주 적절한 계획이었다.

대신 문제라면.

“그, 제, 제집은…….”

집주인이었다.

그들은 제집이 통째로 뽑혀서 하늘을 나는 장면을 라이브로 봐야 했다.

당연히 그들은 집을 빌려줄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잠시 저택을 빌렸으면 하는데.’

시스테인은 전투가 끝나자마자 디란타 대공령 내 인근 저택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하필 운이 안 좋게도(?) 그 저택이 바로 이 저택이었다.

‘물, 물론입니다!’

부상자가 많다는 말에 집주인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그들은 디란타 대공령에서 오래 살아온 집안으로, 가문에서 디란타의 기사도 몇이나 배출한 가문이었다.

부상자를 치료하겠다는데 당연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약과 붕대가 충분할진 모르겠습니다만…….’

그들이 그렇게 방 안으로 들어가 급히 구급 물품을 찾고 있을 때였다.

―쿠르르릉!

갑자기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일입니까!’

당황해서 거실로 뛰쳐나온 집주인 부부는 창밖의 들판이 들썩거리는 걸 발견했다.

‘거대한 마물이다!’

디란타 대공령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면 십중팔구는 마물의 짓이었으니, 일반적으로는 정답에 가까운 말이긴 했다.

하지만 그들의 말에는 감찰기사들도, 시즈도, 그림자들도 그들을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그 마물들 우리가 좀 전에 다 없앴거든?

그리고 다음 순간, 집주인들은 시스테인의 손에서 푸른빛의 마력이 퍼져 나오며 집을 띄워 올리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집, 집이 난다요!’

그들이 당황한 나머지 존대와 반말이 섞인 말을 멍청하게 외치는 동안 통째로 날아오른 2층의 아담한 저택은, 지금 수도 상공을 날고 있었다.

“일이 끝나면 돌려보내 주지.”

시스테인은 간단하게 대꾸했다.

리벨은 그 모습을 보면서 집주인들에게 미안하다는 얼굴로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러면서 시스테인을 돌아보았다.

무덤덤하다는 건 뭘까?

사람 살던 집을…… 우지끈 뽑아서 비행기처럼 쓰면서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거……?

―우우웅!

저택 안이 이래저래 바쁜 사이.

수도의 모든 사람의 시선을 받은 저택은 아주 천천히, 부상자들이 다치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황성 근처 공터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근처에는 카리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연락은 받았지만.”

―콰직.

그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구겨 버렸다.

그의 무뚝뚝한 동생은 이 상황을 전서구 하나로만 딸랑 전했던 것이다.

[일이 모두 끝났습니다. 중상자 다수이며 빠른 시간 내에 일제히 복귀하겠습니다.]

“중상자가 다수인데 어떻게 빠른 시간 내에 복귀하나 했더니.”

다시 봐도 어이가 없네?

그는 종이를 뒤로 집어 던져 버리며 주변에 손짓했다.

그의 주변에는 정체 모를 비행 물체의 등장에 긴장한 채 검을 뽑은 기사들과 시즈들이 있었다.

하지만 카리스는 집을 감싼 푸른 마력만 봐도 누구의 짓인지 알 것 같았다.

“칼 집어넣어. 그리고 부상자들을 옮길 준비를 해라.”

그렇게 말하던 그가 멈칫했다.

아니, 저택이 통째로 오는 거면 굳이 부상자들을 옮길 필요가 없나?

“아니, 그냥 황가의 의사들을 이쪽으로 불러.”

그가 손짓하자 멈칫했던 시즈들이 검을 집어넣고 빠르게 움직였다.

“알겠습니다!”

―쿠우웅…….

그러는 사이 훗날 병원으로 개조될 2층짜리 저택이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앉았다.

“내, 내 집…….”

그리고 그때까지도 집주인들은 나중에 3층 호화 저택을 하사받을 미래를 상상하지도 못한 채, 집이 사라질 위기에 달달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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