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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165)화 (165/167)

165화

제국이 안정되면서 네 사람은 더 자주 티타임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주로 황태후 리엔이 이끄는 것이었지만, 간혹 카리스가 초대하기도 했다.

[마침 정무도 한가하니 즐거움을 좀 줬으면 좋겠는데.]

그의 티타임 초대 편지였다.

리벨은 처음에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지금은 알았다.

“아니, 그냥 차 한잔하자고 하면 되지 뭐 이렇게 어렵게 말해?”

투덜거리면서도 그녀는 기꺼이 그 이상한 초대에 응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시스테인 역시 그녀와 함께 참석했다.

이전에는 시스테인이 있던 자리를 불쾌해했던 카리스도, 이제는 시스테인을 보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오셨습니까.”

그야 시스테인이 위아래를 확실하게 해 주니까.

이전처럼 위아래 없이 싸늘한 표정으로 쳐다보지 않으니, 그나마 볼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라고 카리스는 티타임 때마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가끔.

“폐하를 뵙습니다.”

리엔과 리벨이 늦어 카리스와 시스테인 두 사람만이 남을 때도 있었다.

처음에는 눈에 띄게 불편해하던 카리스도 몇 번 시스테인과 독대한 후에는 익숙해지고 있었다.

“앉아.”

카리스는 손짓했다. 그러면서 시스테인을 살폈다.

시스테인은 그가 허락한 후에야 자리에 앉았고, 언제나처럼 그에게 깍듯한 예의를 지켰다.

“아무래도 이건 계략 같아.”

카리스는 그런 시스테인에게 말했다. 시스테인이 멈칫했다.

“예?”

“너랑 내가.”

카리스는 자신과 시스테인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매번 티타임 자리에 일찍 오는 거. 그리고 어머니가 그때마다 리벨을 데리고 굳이 먼 곳을 나갔다 돌아오는 것까지.”

그가 팔짱을 끼었다.

“어머니 손에 놀아나는 것 같군.”

“그렇다고 외출을 막으실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시스테인이 찻잔을 들며 말했다.

그의 말에는 다소간의 웃음기가 깃들어 있었다.

“그건 그렇……지.”

카리스는 그 웃음을 보다가 멈칫했다. 시스테인 역시 짧은 침묵 사이에 원래대로 표정을 되돌렸다.

담담하기도 하고 무뚝뚝하기도 한 표정.

하지만 카리스는 그 표정이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시스테인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더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형!’

그렇게 스스럼없이 저를 불렀던 어린 시절 같은 미소도, 간혹 보이고는 했다.

그러다가 카리스의 얼굴을 보면 다시 얼굴을 굳히고는 했다.

지금처럼.

긴장한다는 뜻이리라.

“……마음에 안 들어.”

카리스가 툭 뱉듯 말했다. 시스테인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피어났다.

저놈은 아마 제가 웃고 있는 걸 모를 것이다. 근래 시스테인은 계속 저랬다.

저도 모르게 웃다가, 제 웃음에 놀라는 상대의 반응을 보고서야 웃음을 멈추는 것.

그래서 카리스는 반응하는 대신 시선을 돌려 버렸다.

“…….”

근데 어머니하고 리벨 걔는 왜 이렇게 안 오지?

카리스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평소엔 십 분 정도만 늦었는데.

오늘은 뭐 다른 변덕이라도 드셨나? 그가 불편한 얼굴로 시스테인을 살필 때였다.

“…….”

다소 편한 얼굴의 시스테인이 찻주전자를 기울이는 게 보였다.

그와는 달리 시스테인은 이 자리가 가시방석이 아닌 듯했다.

생각해 보면 이놈은 오래전부터 이랬던 것 같다. 어머니와 리벨을 포함해 넷이 처음 모인 티타임 이후로 쭉.

결국 카리스는 늘 불편해하는 건 자신뿐이었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해야 했다.

“…….”

이 자리가 가시방석이 아니게 되려면, 결국 제가 경계를 풀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마음을 풀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시스테인. 시스테인 폰 디란타.

……제국의 검이라.

제 동생의 이름을 입 안에서 굴려 본 그는 문득 어린 시절의 일을 기억해 냈다.

별장……에 갔던 것.

시스테인이 폭주하기 전에.

‘뭐가 이렇게 들떴어?’

‘어머니가 바쁘셔서 자주 못 놀러 가잖아. 놀 때 재밌게 놀고 와야지.’

시스테인은 떠나기 전날 들떠 있었다. 다음 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채로.

그렇게 그들의 마지막 휴가는 망가져 버렸다.

카리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시스테인.”

“예.”

시스테인이 바로 답했다. 형제의 시선이 오랜만에 마주쳤다.

이번엔 카리스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어색했지만, 시스테인이 살짝 놀란 눈을 할 때까지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놀러 가자.”

“……?”

멈칫하는 시스테인에게 그는 충동적으로 말했다.

“그 별장으로.”

수많은 황가의 별장 중 어디를 말하는지, 시스테인은 곧바로 알아들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카리스는 그 얼굴에서 걱정을 읽어 냈다.

낯설게도.

황성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달려와서 보였던 그 서늘한 표정 아래에도 저 걱정스런 얼굴이 있었을까.

생각에 잠겼던 카리스가 습관적으로 답했다.

“안 괜찮아.”

그는 손을 펴 보였다.

“널 시험하는 거다.”

네가 정말 나를 해칠지, 해치지 않을지 말이야.

그렇게 껄끄러운 말을 하면서 고개를 돌리고서야, 좀 낯설고 어색한 기분이 덜어졌다.

카리스의 입매가 비틀렸다. 그도 알았던 것이다.

방금 내뱉은 제 말이 불편할 정도로 제 진심과 어긋나 있다는 사실을.

“……알겠습니다.”

시스테인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잠시간의 텀을 두고 답했다.

그리고 카리스는 시선을 돌리고 있었기에, 시스테인의 옅은 미소를 알아채지 못했다.

*  *  *

“티타임은 오늘 황성에서…… 여신다고 했던 것…… 같은……데……요……?”

리벨은 그 시각, 리엔의 마차를 타고 점점 수도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리엔이 두 손을 펼쳐 보였다.

“아름다운 사람은 변덕이 심한 법이지.”

예? 리벨이 멈칫했다. 그 말씀인즉슨?

“오늘은 바깥바람을 쐬고 싶어졌어.”

리엔이 가볍게 말했다. 리벨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황제 폐하께서도 오고 계시는 거죠? 시스도……?”

시스는 분명 오늘 나갈 때까지만 해도 황성 티타임인 줄 알고 있었는데?

설마 하는 리벨에게 리엔이 화사하게 웃어 주었다.

“아니. 둘은 둘이 마시라고 해.”

“네?”

리벨이 입을 떠억 벌렸다.

화사한 리엔의 얼굴 옆, 열린 창문으로 나무 아래에 만들어진 야외용 티타임 자리가 보였다.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앞으로 구르고 뒤로 굴러서 봐도 저건 2인용 자리였다!

그그그그럼! 리벨이 입을 떠억 벌렸다.

이미 주변에 호위 인력이 있는 것 하며 준비된 모습까지, 날림으로 준비한 게 아니었다.

오늘 티타임은 처음부터 이러실 생각이었던 것이다!

리벨이 머리를 싸맸다.

맹수와 가련한(?) 시스테인을 함께 놓고 온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카리스가 또 어떤 막말을 해서 시스한테 상처를 줄지 몰랐다.

……물론 그렇게 연약한 사람은 아니지만 아무튼, 걱정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괜찮아. 네가 생각하는 참사는 없을 테니.”

리엔이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무엇보다 자꾸 우리가 같이 있어 주면, 둘이 친해질 기회가 없잖니.”

“그건…… 그렇긴 한데요…….”

너무 이른 것 아닙니까?

좀 더 두 사람에겐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리벨이 결국 머리를 싸맸다.

리엔은 티타임 자리에 가까워질수록 마차가 속도를 늦추는 것을 느끼며 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을 거라니까.”

애초에 네 사람이 자주 티타임을 가지게 된 건, 일명 리벨의 ‘대화가 필요해’ 극약 처방 때문이었다.

카리스는 자주 티타임을 가지자는 리엔의 제안(이라고 읽고 리벨의 아이디어)을 듣고, 처음에는 리벨의 동석을 요구했다.

‘고삐는 있어야 맹수 옆에서 안심하고 차를 들지.’

그렇게 말하면서.

하지만 그것도 익숙해지자 리벨이 조금 늦어도 별말 하지 않게 되었다.

시스테인이 그 어느 때보다, 심지어 반역 이전보다도 더 안정적인 상태라는 걸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자, 우린 우리만의 시간을 즐기자. 너와 난 나눌 이야기도 있지 않니.”

―달칵.

마차 문이 열리자 선선한 바람이 마차 안으로 불어 왔다.

먼저 내린 리엔이 리벨에게 손을 불쑥 내밀었다.

“오늘은 특별히 내가 에스코트해 주지.”

“녜?”

당황한 리벨은 혀가 꼬여 버렸다. 황태후 폐하의 에스코트요?

확신하건대 전 대륙에서 리엔의 에스코트를 받은 사람도 제안받은 사람도 리벨 자신밖에 없을 터였다.

“싫어?”

그 말인즉슨 거절하면 모가지가 요란한 방향으로 튈지도 모른다는 소리였다.

……무무물론 시스가 있으니 날 죽이시진 않, 않, 않겠지만!

그래도 본능적인 공포는 어쩔 수 없었다.

“그그그럴리가요.”

마침 남자도 아니시니 사교계 매너에도 맞고, 넵넵.

리벨은 재빨리 리엔의 손을 잡았다.

“나도 늘 에스코트받는 게 아니라 한 번쯤 에스코트해 보고 싶었거든.”

리엔이 그녀의 손을 이끌었다. 그녀의 에스코트는 처음치고는 능숙했다.

“그럼 해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리벨의 말에 리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런데 다들 에스코트해 주겠다고 하면 유서 쓸 시간을 달라고 하더구나. 소심한 아이들 같으니.”

매우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을까요? 나도 유서부터 썼어야 했나?

뜻밖의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리벨이 당황하는 사이 두 사람은 티타임 테이블로 안내되었다.

선선한 산들바람에 넓은 그늘까지, 야외 티타임을 즐기기에는 딱이었다.

마주 앉은 사람이 리엔 황태후만 아니었다면, 그리고 황제와 남편을 소박 맞히고 온 자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리벨은 저도 모르게 찬물부터 찾았다.

“아직도 그리 긴장되니?”

리엔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보다가 제 손끝을 살폈다.

“딱히 내가 너를 해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그그렇긴 하죠.”

그런데 목은 하나라 보통 겁을 먹게 되어 있답니다. 리벨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게다가 내 부탁도 잘 들어줬고 말이야. 무엇보다.”

리엔은 빙그레 웃었다.

“황가의 일원에 걸맞은 품격을 가지게 되었으니, 그리 불안해할 필요 없어.”

그녀의 말에 리벨이 멈칫했다.

품……격……? 리벨은 제 옷을 새삼 내려다보았다.

물론 품격이 옷으로만 정해지는 건 아니었지만 처음 리엔과 마주할 때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긴 했다.

상황도, 옷도.

“널 힘으로 억누르려던 이벨라 자작도, 네게 곤욕을 치르게 했던 것들도 모두 치워 버렸으니. 그리 긴장할 이유가 없을 텐데.”

리엔이 예쁘게 웃었다.

“내 아들들이 친해지길 바라는 것도 있지만, 내가 여기에 아가를 따로 부른 건 이유가 있단다.”

리벨은 그 말에 어느 날의 기억이 겹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야 당연히 리엔과 처음 만났던 날이었다.

“이유……라시면……?”

그녀가 침을 꼴깍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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