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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과의 결혼, 저도 지금 알아 (166)화 (166/167)

166화

“난 지난 이십여 년보다, 지난 일 년 동안 내 아이들에 대해 알게 된 게 더 많아.”

리엔은 가만히 고개를 기울였다.

“그게 네 덕이라는 건 너도 부정할 수 없겠지? 아무리.”

그녀가 테이블에 팔을 짚은 채, 리벨에게 얼굴을 가까이했다.

“내 앞에서는 겸손해지려고 노력하는 너라도 말이야.”

목숨 보전하려는 저의 행동이 그렇게 겸손해 보이셨습니까? 리벨은 고개를 끄덕여야 할지 고민했다.

리벨의 떨리는 시선을 보고 웃음을 터뜨린 리엔이 몸을 뒤로 물렸다.

“처음의 약속은 이것이었지. 네가 시스의 감정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내가 너를 비호해 줄 테니.”

그녀가 손을 펴 보였다.

“자, 너도 나도 약속을 지켰어. 나는 그림자를 보내 네 목을 지켜 주었고, 너는 시스의 감정을 훌륭하게 이끌어 냈지.”

리엔이 여유롭게 말했다.

“그러니 우리의 약속도, 비밀도, 여기서 끝이야.”

그 말에 리벨은 멈칫했다. 잠깐, 끝?

그럼……

“그…… 혹시 앞으로 비호도 안 해 주시겠다는 뜻?”

리벨은 저도 모르게 뱉어 버렸다. 그러고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나온 말은 나온 말이었다.

눈을 깜빡이던 리엔은 박장대소했다.

“그리 해석될 수도 있겠어. 맞아, 난 더 이상 약속에 매여 네 생명을 지켜 줄 이유는 없지.”

리벨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이이이것이 리사구팽 엔딩? 진짜로?

“저, 저, 유서 아직 안 쓰고 왔는데.”

리벨은 저도 모르게 아까 들은 레퍼토리를 읊어 버렸다. 리엔이 손을 내저었다.

“시시하게 굴지 마. 물론 처음 약속할 때에야 네 목을 날릴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냐.”

여여역시 그랬던 거죠! 리벨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시스가 네 정체를 중간에 알아채면 그것도 그것대로 좋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그그그것도 역시 그랬던 거죠! 리벨의 얼굴은 이제 시퍼레졌다.

리엔은 시시각각 변하는 그녀의 얼굴을 즐겁게 관찰하다가 말했다.

“근데 상황이 바뀌었어.”

“……?”

슬그머니 눈치를 살피는 리벨에게 리엔이 말했다.

“너는 시스의 감정을 이끌어 낸 것으로도 모자라, 그 아이가 왜 마음을 닫았는지도 알아냈지. 그뿐만이 아니라…….”

리엔은 황성이 있을 방향을 보다가 리벨에게로 다시 시선을 주었다.

“이제 그 아이는 너를 필요로 해.”

리엔은 깍지를 낀 두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때까지도 리벨은 굳어 있었다. 원래 목이 달랑달랑하면 사람 머리가 안 굴러가는 법이었다.

필요로 하니까 열심히 살라는 뜻인가요? 그럼 살려 주신다는 건가요?

리벨의 머릿속이 쓸데없는 방향으로 팽팽 돌아갈 때였다.

결국 리엔이 말했다.

“우리 아가, 그렇게 표정에 모든 걸 드러내면 어디 가서 등쳐 먹히기 딱 좋아.”

“그래서 당했잖아요.”

리벨은 저도 모르게 뱉어 버렸다.

“…….”

“…….”

그리고 입을 틀어막았다. 내내내가무슨소리를!

“응?”

리엔이 화사하게 웃는 가운데 리벨이 결국 줄줄이 말을 늘어놓았다.

“그 편집국장 놈 때문에! 이 사달이 난 거 아니에요! 제가 그 괴상한 기사 내 가지고……!”

결국 등쳐 먹힌 것 맞잖아요! 왜 사람을 팩트로 때리고 그러세요! 리벨은 울상이 되었다.

리엔은 눈을 깜빡이다 웃음을 터뜨렸다.

“자아 성찰이 빠르구나. 그래……, 내 아가이니, 특별히 알려 줄게.”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게 한 건 네가 처음일 거야. 그렇게 말한 리엔이 속삭여 주었다.

“요컨대 우리 사이의 계약 조건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란다.”

“계약…… 조건이요?”

리벨이 멈칫했다. 아무리 봐도 사람 죽일 얼굴은 아니었다.

물론 리엔 황태후는 웃는 낯으로 사람을 썰어 버리는 사람이긴 했다.

그래도 1년여 봤다고 리벨은 저 웃음이 진짜 웃음이란 걸 알 것 같았다.

살기 어린 미소가 아니라.

“그래.”

이래서 우리 아가, 어떻게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가지?

뇌까린 리엔이 손을 펼쳐 보였다.

“자, 보렴. 너는 약속을 완전히 이행했을 뿐만 아니라 시스의 마음까지도 가져갔지. 그런데 그런 네게 내가 손을 대면 어떻게 될까?”

“그야…….”

제가……죽으면……?

참사랑 대신 참사만 남겠죠……? 리벨은 제가 위험해질 때마다 저보다 더 그녀를 걱정했던 시스테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마 내가 죽으면 그 사람은.

“……많이, 슬퍼하겠죠.”

“그럼 시스의 마력은?”

그 말에 리벨이 멈칫했다.

즈아아아암깐.

시스테인은 지금 마력을 완전히 제어할 수 있는 상태였다. 그 증거로 그는 리벨과 거리를 두고 오랫동안 있어도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디란타 대공령에서 완전히 제힘을 폭발시키면서, 오히려 제힘을 제어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리벨 덕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아니라고 말해도 그는 거듭 말했다. 리벨 덕이라고.

당신이 없으면 안 될 것 같다고.

다시 혼자가 되기는 싫다고.

‘이제 혼자가 아니잖아요.’

그렇게 말해도 그는 리벨에게 분명히 말했다.

‘당신은, 내게 가족과 다른 의미입니다.’

‘당신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가 있습니다. 오직 당신만이.’

그 말을 떠올린 리벨의 얼굴이 달달하게 달아올랐다. 밤에 그렇게 속삭여 주는 건 정말 반칙이었다.

“어때, 이제 조금 알 것 같니?”

리엔의 말에 리벨은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달아오른 얼굴은 산들바람이 식혀 주었다.

그러자 슬슬 머리가 돌기 시작했다.

“이전에 폐하와 제가 약속했을 때에는, 시스의 감정이 돌아오면 폐하께는 더 이상 제가 필요 없으셨을 거예요.”

살벌한 사실이었다. 리벨의 말에 리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런데 지금은 아니고요. 시스는 저를 필요로 하고, 제가 아니면 안 된다고 했고…….”

나 역시 그렇고.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던 리벨이 눈을 깜빡였다.

잠깐, 이거…….

그럼…… 상황이 반대 아니야……?

리벨이 슬그머니 리엔을 쳐다보았다.

“요컨대 제가 갑이란 말씀……?”

리엔은 그 말에 눈썹을 치켜올렸다.

“말을 가리지 않는 당돌한 모습이 좋았지만, 때로는 거슬린단 말이야.”

리벨의 얼굴이 다시 새파래졌다. 하지만 맞잖아요! 나 없으면 안 된다며!

“맞아. 네 말대로야.”

리벨이 눈을 반짝였다. 리엔은 손을 펴 보였다.

“그러니 넌 내게 원하는 걸 요구할 자격이 있지. 물론 그와는 별개로 네 재롱이 즐거웠으니.”

리엔은 눈부시게 웃었다.

“네 부탁을 들어주고도 싶고.”

어머니와 다름없는 사람.

그 말은 리벨의 귀에 쏙 들어왔다. 언젠가 알현실에서 시스와 함께 안아 주던 리엔의 모습도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원하는 걸 말해 보렴. 내게 많은 걸 가르쳐 준 아가.”

그녀가 눈부신 볕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세상 무서운 것 없는 것 같던 칼은 트라우마를 안고 있었고, 시스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여리고 여린 아이였지. 네가 가르쳐 준 사실들이야.”

그녀가 손을 펴 보였다.

“정보의 대가라고 생각해도 좋아. 자, 소원이 있니?”

그 말에 리벨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단…… 생명의 위협은 없는 거죠, 저?”

그야 당연한 일이었지만 리엔이 웃어 버렸다.

“이상한 데에서 철저한 구석이 있어. 다른 건?”

“그리고, 제가 원래 기자 일을 때려치우려고 했거든요?”

긴장이 풀리자 말이 막 나오는 것 같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물론 리엔은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네가? 그럼 크라이베리를 볼 이유가 없겠구나.”

그렇게까지 제 기사를 즐기셨습니까? 준비되지 않은 리벨 앞에 뜻밖의 열혈 팬이 떨어져 내렸다.

“그런데 시스가 그러지 말라고 해서, 그냥 하려고요.”

사람 말은 끝까지 들읍시다! 리벨이 속으로 외쳤다.

그 말을 들은 것처럼 리엔이 불쑥 말했다.

“중요한 말 먼저 했어야지.”

……아, 예.

리벨은 식은땀을 훔치며 말했다.

“대신…… 그, 마침 들어주신다니 말씀드리는 건데요.”

리벨은 슬그머니 리엔에게 물었다.

“신문사도 세워 주실 수 있나요?”

“응?”

의외의 소원에 리엔이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갑질하는 편집국장 없는 신문사요!”

물론 그 편집국장은 내가 하게 될 것이다! 리벨이 눈을 반짝였다.

“크라이베리처럼, 귀족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큰 신문사요.”

거기에서 마음껏 진실을 보도할 것이다.

시스테인이 준 방법을 통해서.

리엔이 그 말에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대신.”

그녀가 눈을 가늘게 떴다.

“크라이베리처럼은 안 돼, 아가.”

“네?”

그럼 쪼그만 신문사라도…… 리벨이 제 말을 주워섬길 때였다.

리엔은 가볍게 말했다.

“당연히 내 아가가 가질 것이라면 최고의 것이어야지.”

네? 리벨이 눈을 크게 뜬 사이에 그녀가 손을 펴 보였다.

“이 년.”

그러다가 손가락을 하나 접었다. 검지만 세운 그녀가 검지를 까딱였다.

“아니, 일 년이면 되겠구나.”

어느 날 하늘에서 똑 떨어져 내린 신문사를 사람들이 신뢰할 리가 없다.

신문사를 만들어 줘도 자연스럽게 만들어 줘야 할 테니.

“네 선물을 준비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 말이야.”

리엔의 말에 리벨이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그렇게, 1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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