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1화 (1/240)

1화

【 18년 전으로 돌아가다 】

내가 23살이었을 때, 내 여동생은 죽었다.

부모님을 오래전에 잃은 나와 내 여동생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았다.

하지만 그런 내 여동생이 죽었다.

막 고등학생이 됐던 아이가, 돈 버는 것을 돕겠다며 일하다가 죽었다.

아니, 살해당한 것이었다.

이에 나는 분노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약했기 때문이다.

‘여동생분을 죽인 사람이 A급 헌터라, 아무래도 저희가 뭘 하기는 힘들 거 같네요.’

경찰들이 내게 했던 말이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따졌다.

사람이 죽었고, 그 증거가 명백했다.

하지만 대체 왜 아무것도 못 하냐고 말이다.

‘A급 이상의 헌터들은 국가에서 특혜를 받고 있거든요. 쉽게 말해 법보다 위에 있는 사람들이라, 저희가 뭘 할 수 없을 거예요.’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경찰들의 말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내 여동생을 죽인 개새끼는 A급 헌터.

당시 나는 그저 약한 E급 헌터였다.

내가 너무나도 약했기에 여동생이 죽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마 그날부터였을 거다.

‘내가 언젠가 저 새끼를 내 손으로 직접 죽인다.’

강해지기로 마음먹은 것은.

나 또한 A급, 그러니까 법 위의 존재가 되어 여동생의 원수를 갚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후로, 나는 앞만 보고 달려 나갔다.

가진 거라고는 전기 능력 하나뿐이었지만, 나는 이 악물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했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성공했다.

[E급에서 A급으로 올라간 최초의 헌터.]

[헌터계 최고의 척후.]

[세계 최고의 암살자.]

[노력만으로 등급이 올라갈 수 있다는 걸 보여 준 위인.]

여동생이 죽고 6년 뒤.

나는 위로 올라갔고, 내 뒤로 수많은 칭호들이 따라붙었다.

하지만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내 여동생을 죽인 새끼를 죽이고 싶었고, 실제로 얼마 안 가 직접 죽일 수 있었다.

내 손으로 최대한 고통스럽게 그 개새끼를 죽였지만, 정작 죽인 후에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죽이면 속 시원할 줄 알았지만, 그런 감정이 전혀 들지 않았다.

어차피 죽여 봤자, 죽은 내 여동생이 돌아오는 게 아니었다.

‘…X같은 세상.’

결국 공허함만 남은 채, 나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아무런 목적 없이, 내가 6년 동안 해 온 걸 또다시 했다.

게이트를 토벌하고, 몬스터들을 죽이고, 위험인물들을 암살하는 등.

나는 내가 제일 잘하게 된 일들을 기계적으로 계속했다.

그러다가 내가 30살이 되던 해에 일이 터졌다.

- 그러니까 최근 들어 게이트와 몬스터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는 거죠?

몇 년 전부터였나?

어느 순간부터 게이트, 그리고 그 안에서 나오는 몬스터의 수가 엄청나게 증가했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이에 인류의 종말이니 뭐니 떠드는 인간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저 묵묵히 내 할 일만을 했다.

어차피 여동생을 잃은 시점부터, 나는 더 얻을 것도 더 잃을 것도 없었다.

[더 빠르게 나타나는 게이트들. 정부는 헌터들의 긴급 소집을…….]

[미국 정부. 계엄령을 선포해, 전 세계가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현재 인류가 역사상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인류 종말이라는 말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해가 흐를수록, 나는 그 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인류가 점점 몬스터들을 감당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박유진 님. 저희는 박유진 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지금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박유진 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박유진 님만큼이나 뛰어난 척후가 없는 마당이라, 이번 게이트에서 선발대를…….’

‘알겠으니까 재촉하지 마. 말 안 해도 할 거니까.’

인류가 위험해지니, 도망치는 헌터들이 다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도망치지 않았다.

말한 것처럼, 여동생을 잃은 시점부터 나는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계속 게이트를 토벌하고, 몬스터들을 죽여 나갔다.

그리고 내가 38살이 되던 해.

“크어억!”

몬스터의 주먹이 내 배를 뚫었다.

“아으, X발. 더럽게 아프네.”

배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

여동생을 잃은 후, 나는 죽어도 상관없다는 자세로 살아왔었다.

하지만 막상 죽음이 코앞에 다가오니,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드디어 네놈을 죽이는구나, 박유진.”

“…뭐야? 너 인간 말 할 줄 알았냐?”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몬스터가 있다고 듣기는 했다.

하지만 막상 직접 보니 신기, 아니.

신기하든 말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곧 죽게 생겼는데,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인간 측 최고의 척후인 네놈을 죽였으니, 드베르그 님께서 아주 좋아하시겠군. 네놈의 시체를 그분 앞으로 가져가마.”

“…드베르그?”

묘하게 익숙한 이름이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내가 몇 년 전 게이트에서 놓쳤던 몬스터였던 거 같은…….

“하아아. 뭐, 됐다.”

배에서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피.

온몸에 힘이 빠지며, 나는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유나야. 이제야 보러 가는구나.”

내 앞으로 다가온 몬스터.

그 몬스터는 내 가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고, 그 주먹은 그대로 내 심장을 관통했다.

그렇게 나는 죽었…….

‘…음?’

죽은 줄 알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정신이 멀쩡했다.

눈을 다시금 떠 주변을 둘러보니,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모든 것의 움직임이 정지된 채였다.

심지어 나조차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눈을 뜬 채, 조용히 주변을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 이 남자 맞아? 이 남자로 하는 것이 좋겠지?

그러던 중, 갑자기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여자의 목소리만 들려온 게 아니었다.

- 이분으로 합시다. 인류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것에 이만한 적임자는 없을 겁니다.

낯선 남자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죽게 되면서 내 머리가 이상해졌나 싶었지만, 그런 생각을 더 할 틈도 없이 남자는 말을 계속했다.

- 박유진 씨.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선택됐습니다.

“선택인지 뭔지 모르겠으니까, 요점만 말해.”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이왕 죽게 된 거, 그냥 빠르게 죽어 버리고 싶었다.

어차피 더 이상 삶에 미련이란 것도…….

- 박유진 씨에게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이 기회를 받아들이면 인류를 구할 수 있는…….

“그런 거면 딴 사람 알아봐. 나는 더 이상 싸우기 귀찮으니까.”

내 여동생, 그러니까 유나를 잃은 뒤.

나는 죽지 못해 살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이 망할 인생을 이제 마무리 짓고 싶었다.

기회니, 인류니, 그딴 건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 진짜? 진짜로?

이번에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진짜로 우리가 주는 이 귀중한 기회를 걷어차는 거야?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는데?

“그래, 다 필요 없으니까 그냥 죽여 줘.”

헌터계 최고의 척후로 몇 년째 구르며 살았다.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쳤다.

그러니 빨리 쉬고 싶었다.

만약 여자의 다음 말을 못 들었다면, 나는 기회고 뭐고 다 걷어찬 뒤에 죽었을 거다.

-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네 여동생을 다시 만날 수 있는데, 진짜 이 기회를 걷어찰 거야?

“…뭐라고?”

나는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내 여동생을, 유나를 다시 만날 수 있다고?”

- 예, 그렇습니다.

남자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 이 기회를 받아들인다면, 박유진 씨는 과거로 돌아가…….

“받아들일게.”

- 다시 한번 새 인생을, 예? 받아들인다는 말씀입니까? 아직 무엇인지 설명을…….

“유나를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뭐가 됐든 상관없어.”

유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 수많은 말들을 가슴에 담아 두기만 하고 하지 못했다.

그러니 유나를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준비가 되었다.

- …알겠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나중에 저희가 원하는 때에. 그때 박유진 씨는 저희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줘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응, 알겠어.”

유나를 다시 한번 만나는 거다.

그걸 위해서라면, 나는 뭐든 할 수 있었다.

- 뭐,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여동생분을 단 한 번만 만나는 게 아니기는 한데, 이렇게 간절하신 걸 보니…….

“뭐? 야, 그러고 보니 너희가 말한 그 기회. 그 기회가 정확히 뭐였냐?”

유나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리만 듣고 눈이 돌아가, 이 두 목소리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근데 아까 분명 남자가 과거로 돌아가 새 인생을 어쩌고 하던 거 같았는데.

- 다시 설명드리자면, 저희 박유진 씨를 과거로 보내…….

- 됐어, 뭘 또 설명하는 거냐? 설명하는 것보다 그냥 직접 보여 주는 편이 낫지.

남자의 말에 끼어든 여자.

그녀는 작게 웃더니, 이내 그녀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 다시 울려 퍼졌다.

- 아무튼 박유진. 중요한 건 이거야. 나중에 우리가 널 다시 찾아갈 거야. 그리고 그때 너에게 부탁을 몇 개 할 건데, 그 부탁을 무조건 들어줘야 해, 알겠지?

“…알겠다.”

- 되게 쉽게 조건을 받아들이네.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는 인생이니까.”

내 머릿속에 울려 퍼진 이 남녀의 목소리.

여러모로 수상했지만 상관없었다.

말했듯,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는 인생이었다.

유나를 다시 볼 수 있다면, 나의 이딴 인생은 아무래도 좋았다.

- 흐음. 네가 회귀한 후에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지가 궁금하네.

“회귀? 야, 회귀라니. 그건 또 뭔 개소리…….”

- 아무튼, 우리들의 계약은 성립됐어. 그러니 이번에는 후회 없는 인생을 보내기를 바랄게.

그리고 잊지 마, 라고 여자는 웃으며 말했다.

- 때가 되면, 우리의 요구를 반드시 들어줘야 된다는 것을. 알겠지?

이 말을 끝으로 머릿속에서 더 이상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동시에 시야가 점차 어두워지더니,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내 가슴을 꿰뚫고 있던 몬스터의 주먹, 그리고 배에 구멍에 뚫린 채 쓰러져 있던 나.

이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닌, 마치 꿈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 * *

“허억!”

나는 눈을 뜨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분명 나는 몬스터와 싸우다 죽음을 맞이했었다.

그러다 머릿속에 남녀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들리더니…….

“…음?”

주변을 둘러보자 보이는 광경에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낯선 광경이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도 익숙한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여기는 분명…….”

내가 20대 초반을 지낸 전셋집이었다.

방 하나에 적당한 크기의 거실, 그리고 작은 화장실 하나가 있던 전셋집.

그리고 나는 이 집의 거실에서 눈을 뜬 것이었다.

내가 늘 그랬던 것처럼, 거실에 이불을 편 채로 누워 있던 상태 그대로 말이다.

“이건 대체, 어? 잠깐만.”

거실에 있던 거울.

그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내가 알던 것과 달랐다.

아니, 나인 거는 맞았다.

하지만 훨씬 어리고, 훨씬 생기가 넘치는 모습의 나였다.

하지만 이건 대체 어떻게 된…….

‘잠깐만. 그러고 보니 그 여자 목소리가 분명 회귀라고 하지 않았나?’

회귀.

내가 아는 그 회귀가 맞는다면 분명…….

“…어디 보자.”

내 근처에 놓여 있던 스마트폰.

내가 어린 시절 오랫동안 써 왔던 그 스마트폰이었다.

그 스마트폰의 잠금을 해제해서 오늘의 날짜를 확인하자…….

“말도 안 돼.”

표기된 날짜는 내가 20살이 되던 해의 날짜였다.

18년 전, 그러니까 내가 20살 때로 돌아온 것이었다.

“근데 잠깐. 내가 20살이면 분명 유나가 아직…….”

그때 그 남자 목소리가 말했다.

여동생을 단 한 번만 만나는 것이 아닐 거라고.

그 말을 곱씹어 보면, 한 번만 만나는 것이 아닌 여러 번을 만난다는…….

“오빠, 일어났어?”

이 작은 전셋집에 있던 작은 방.

그 방문이 열리며, 매우 익숙한 목소리의 누군가가 나왔다.

매우 익숙하면서도, 그리웠던 목소리의 누군가가 말이다.

“어제 말한 거 기억나지? 나 내일 장 보러 갈 거니까, 혹시 필요한 거 있으면 오늘 저녁까지 나한테 미리 말…….”

“유나야? 너야? 진짜로 너야?”

나는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서 걸어 나온 내 여동생 앞에 섰다.

교복을 입은 어린, 이제 막 중학생이 된 내 여동생.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나의 유일한 가족이, 살아 숨 쉬며 내 눈앞에 있었다.

“진짜로 너야? 네가 살아 있는……. 너의 목소리를 내가 다시…….”

“오빠? 잠 덜 깼어? 아침부터 뭔 개소리를……. 어어? 오, 오빠? 왜 갑자기 울고 난리야?”

“…음?”

울다니?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나는 내 양쪽 볼에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유나를 잃은 후, 단 한 번도 눈물을 흘린 적이 없던 내가 말이다.

“오빠,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혹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유나야.”

“으, 응? 엇? 오, 오빠? 오빠 갑자기 왜 그래? 뭐 잘못 먹었어?”

내가 유나를 끌어안자, 내 여동생은 여러모로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눈물을 흘리며, 그녀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유나야.”

내 여동생을 다시 만나게 되면,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참 많았다.

하지만 막상 다시 만나게 되니, 그 말들이 생각보다 쉽게 입 밖으로 안 나왔다.

그리고 결국 내 입 밖으로 가장 먼저 나온 말은…….

“미안해. 진짜로 미안해.”

내 여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그 죄책감.

나를 오랫동안 짓누르고 있던 그 죄책감 때문인지, 미안하다는 말이 가장 먼저 나왔다.

“오빠? 미안하다니? 나 몰래 뭔 잘못을 저지른 거야? 그, 알겠으니까 울지 말고 일단 말로…….”

당황함이 느껴지는 유나의 목소리.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녀를 계속 끌어안았다.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을게.”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던 인생.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잃었던 소중한 것이 다시 생기게 된 인생이 되었다.

‘이번만큼은 절대로 잃지 않겠어.’

다시 얻게 된 기회.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자고, 나는 이 순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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