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회귀한 지 아직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지만 또 몬스터와 싸우고 있었다.
회귀 직전까지도 몬스터와 싸웠는데, 회귀한 후에도 계속 싸우게 됐다.
원래 같았으면 이런 내 삶이 참 기구하다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딱히 들지 않았다.
‘유나의 미래를 바꿀 기회니까.’
유나가 죽게 된 건, 따지고 보면 이 사건이 발단이었다.
유나가 리저드 라이더에게 심각한 상처를 입었고, 나는 그런 유나를 치료하기 위해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끌어모았다.
결과적으로 유나는 치료했지만, 우리 남매는 더욱 가난해졌다.
그래서 유나는 돈 버는 걸 돕기 위해 고등학교 때부터 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돈 벌던 과정에서 유나가 죽었다.
‘유나가 오늘 다치지만 않으면, 그리고 유나의 미래를 바꿀 수만 있다면…….’
처음에는 의문이었다.
회귀를 했는데, 왜 하필 오늘 회귀를 했냐고 말이다.
하지만 이건 다 이유가 있었다.
나를 회귀시킨 존재들이 누군지 여전히 몰랐지만, 이들은 후회됐던 과거를 바꾸라고 아마 의도적으로 나를 이날에 회귀시킨 것일 터였다.
근거는 없었지만, 그런 직감이 들었다.
만약 이 직감이 맞는다면…….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지.”
그러려면 지금 해야 할 건 딱 하나였다.
“키케케켁!”
“키기기긱!”
나를 완전히 포위한 다섯 마리의 리저드 라이더.
유나가 상처를 입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
이 몬스터들을 계속 이곳에 붙잡아 놔야 했다.
“쿠워워워!”
들려오는 거대한 도마뱀의 울음소리.
그 소리와 함께 리저드 라이더가 내게 돌진해 왔다.
“케켁?!”
하지만 나는 그런 돌진을 가볍게 피한 후, 가볍게 몸을 날려 리저드 라이더의 얼굴에 내 무릎을 날려 줬다.
“키에엑?!”
도마뱀 위에서 넘어지며 아래로 떨어진 리저드 라이더.
하지만 그 몬스터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금 도마뱀 위에 올라탔다.
“내가 많이 약해지기는 했네.”
능력도 약해지고, 신체 능력도 약해졌다.
내가 쓰던 장비들이라도 있으면 모르겠네, 그것들조차 없었다.
‘이 상태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시간이나 끄는 거겠지.’
나를 점차 포위해 오는 리저드 라이더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1급부터 9급 위험도까지 나눠지는 몬스터들.
1급에 가까울수록 위험했고, 9급에 가까울수록 약했다.
리저드 라이더는 그중 8급 위험도의 몬스터였다.
쉽게 말해, 매우 약한 몬스터들 중 하나라는 뜻이었다.
‘한 마리였으면, 지금의 나라도 어떻게든 잡았을 거야.’
그러나 다섯 마리는 무리였다.
수많은 전투 경험이 있었지만, E급 헌터로서의 한계는 명확했다.
하지만 아까 말한 것처럼, 시간 끄는 것쯤은 가능했다.
“카아아악!”
“케키킥!”
거대한 도마뱀 위에 올라탄 리저드 라이더.
그들은 모두 육중한 갑옷을 착용했고, 거기다 모두 긴 쇠사슬이 달린 편곤을 들고 있었다.
그래, 쇠로 이루어진 육중한 갑옷과 긴 쇠사슬이 달린 편곤.
“뭐, 그 둘 덕에 시간은 확실히 끌 수 있겠네.”
거기다 잘만 하면 한두 마리 정도는 쓰러뜨릴 만도 했다.
다만 변수가 있다면 나의 능력.
E급 시절로 돌아온 터라, 내 능력이 현저히 약해진 상태였다.
물론 그걸 경험으로 극복할 생각이지만, 어쩌면 싸움 자체가 조금 힘들…….
“쿠워워워!”
“카아악!”
“…그래. 일단 싸우고 보자.”
나는 내게 날아오는 편곤을 피하며, 단검이 들린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아무것도 안 들린 내 왼손을 리저드 라이더들 쪽을 향해 뻗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이 들고 있는 편곤.
그 편곤의 쇠사슬 쪽을 향해 뻗은 것이었다.
“파직!”
“파지직!”
내 왼손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색의 전류.
아주 미약한 전류였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잠시 뒤.
편곤의 쇠사슬들이 내 의지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비슷한 시간, 신영중학교의 운동장.
“자! 다들 물러서세요!”
“몬스터들이 언제 급식실 밖으로 나올지 모릅니다! 다들 신속하게 움직여 주세요!”
“다친 사람들은 이쪽으로 와 주세요! 응급차 곧 온다니까, 위급한 환자들부터 이쪽으로…….”
대한민국의 헌터 협회에서 나온 사람들이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통제하고 있었다.
익숙하고 능숙하게 대처하는 협회의 사람들 덕에, 학생들과 교직원들은 조금씩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협회에서 온 사람들은 전부 일반인.
이 모든 혼란의 원인인 리저드 라이더들을 잡을 인력이 없었다.
신영중학교의 몇몇 교직원들과 학생들은 그 사실을 알았고, 그 때문에 여전히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근데 그렇게 일이 진행되던 중, 신영중학교의 운동장에 스포츠카가 들어섰다.
상당히 비싸 보이는, 붉은색 스포츠카가 말이다.
“저 왔어요.”
그 스포츠카에서 내린 붉은색 머리카락의, 키가 상당히 큰 여성.
그녀는 유유히, 그리고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죠?”
“아, 하세리 헌터님. 오셨습니까?”
협회 사람들을 지휘하던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일단 직접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건 나중에 협회장님께서…….”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전종원 씨. 상황 보고부터 해 주세요.”
하세리라 불린,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헌터가 전종원이란 남자에게 말했다.
“오는 길에 협회에서 대충 연락은 받았어요. 그러니까 몬스터들이 게이트를 벗어났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관악산에 나타난 7급 위험도의 게이트. 그 게이트에서 총 다섯 마리의 몬스터들이 탈출해, 이 학교의 급식실을 습격했습니다.”
“무슨 몬스터들이죠?”
“8급 위험도의 리저드 라이더. 총 다섯 마리입니다.”
“…하, 참 나.”
붉은 머리의 헌터는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었다.
“8급 위험도의 리저드 라이더. 고작 그거를 위해 저를, 그러니까 A급 헌터를 부른 거예요?”
“워낙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헌터들을 불러모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근처에서 사시는 하세리 헌터님께 연락을…….”
“됐고요. 오늘 관악산에 나타났다는 그 게이트에서 리저드 라이더들이 탈출한 거죠?”
“예, 그렇습니다.”
“그 게이트의 토벌을 맡았던 길드는 어디죠?”
“프라임 길드였습니다.”
“프라임 길드. 으음, 알겠어요. 나중에 제가 따로 문책하든가 해야겠네요. 게이트 토벌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의 안전이 우선이라고 제가 누누이 말을…….”
하세리의 말에 전종원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번 일이 끝난 후, 협회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많아질 거라고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지금 몬스터들이 급식실 안에 있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안에 들어가서 안 나온 지 얼마나 됐죠?”
“약 20분쯤 됐습니다.”
“안에 탈출 못 한 사람들이 있죠?”
“예, 그리고 아까 한 여학생 말에 의하면, 저 안에서 자신의 오빠가 리저드 라이더들과 싸우고 있다고 합니다.”
“싸우고 있다고요? 그 사람, 혹시 헌터인가요?”
“네, 근데 그게 말입니다.”
전종원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계속했다.
“그 여학생의 말에 따르면, 자기 오빠가 E급 헌터라고 했습니다.”
“…E급이요?”
“예, 분명히 E급 헌터라고 들었습니다.”
“…E급 헌터가 리저드 라이더 다섯 마리 상대하는 건 힘들겠죠?”
“쉽지는 않을 겁니다.”
“…어서 가 보도록 하죠.”
하세리는 이 말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급식실로 안내해 주세요. 제가 가서 10초 안에 끝낼게요.”
“알겠습니다. 따라와 주십시오.”
10초 안에 끝내겠다고 말한 하세리.
그녀의 그 말이 결코 허세가 아니라는 걸 전종원은 알고 있었다.
‘악마의 화염술사, 하세리.’
27살 때 최연소의 나이로 A급 헌터에 오른 천재.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주목 중인 잠재력이 넘치는 화염술사.
동시에 업무적인 능력도 뛰어나, 헌터 협회에서 상당한 선망을 받는 인물이었다.
“저 긴 건물이 급식실입니다. 지금 리저드 라이더들이 저기에서 날뛰고 있습니다.”
“몬스터들에 대한 건 걱정 마세요. 어차피 리저드 라이더 백 마리가 와도 제 상대가 안 되니까요.”
“알고 있습니다.”
“지금 중요한 건 저 안의 사람들이에요. 다친 사람들이 많을 테니, 미리 준비하고 계세요.”
하세리에게 있어 리저드 라이더들은 신경 쓸 문제 따위가 아니었다.
그녀의 관심사는 저 급식실 안의 사람들.
특히 방금 들은 E급 헌터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많이 다쳤겠지.’
E급 헌터가 혼자 리저드 라이더 다섯 마리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하세리는 그 E급 헌터가 심한 부상을 입었을 거라고 확신했다.
‘여학생의 오빠라고 했나? 그 여학생을 어떻게 위로해야 될까?’
하세리는 살짝 착잡한 마음과 함께 급식실에 진입했다.
붉은 머리의 헌터가 예상한 건 다치거나 죽은 사람들이 가득한 참상.
특히 헌터 혼자 몬스터들과 싸우다 쓰러져 있는, 그런 비참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그런 광경이 아니었다.
“키에에엑?!”
“크카카칵?!”
급식실에 들어가자마자 들려온 리저드 라이더들의 고통스러운 목소리.
“…엥?”
하세리가 예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다친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상태가 안 좋은 건 리저드 라이더들이었다.
“키케케켁?!”
리저드 라이더들이 공통적으로 들고 다니는 긴 쇠사슬의 편곤.
그 편곤의 쇠사슬들이 어째서인지 리저드 라이더의 목과 상체를 감싸고 있었다.
‘아니. 사슬들만이 아니야.’
리저드 라이더들이 입고 있던 육중한 갑옷.
그 갑옷들이 고정된 채, 리저드 라이더들이 못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리저드 라이더들에게 둘러싸인 한 남자가 있었다.
‘저 남자가 아까 말한 E급 헌터?’
단검을 든, 이제 막 성인이 된 듯한 외모의 남자.
그 남자는 허공에 손을 뻗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조종하듯이 말이다.
‘염동력 계열의 능력을 지닌 건가?’
하세리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염동력 외의 능력으로는, 사슬과 갑옷들을 저런 식으로 다루는 게 불가능했다.
하세리는 분명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자신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파지직!”
‘…전류? 설마 일렉트로 마스터?’
전류를 다루는 능력자, 흔히들 일렉트로 마스터라 불리는 능력자들.
하세리는 다양한 현장에 투입됐던 헌터라, 그동안 일렉트로 마스터들을 자주 봤었다.
그래서 박유진이 일렉트로 마스터라는 사실에 놀란 게 아니었다.
그녀가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전류를 저런 식으로 활용한다고?’
다른 사람이면 모르겠지만, 하세리는 바로 알아차렸다.
박유진이 전류을 이용해, 염동력 쓰는 것처럼 쇠사슬과 갑옷들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까 전류로 자기력을 제어해, 쇠사슬과 갑옷을 조종하는 것이었다.
“말도 안 돼.”
하세리는 이런 일렉트로 마스터를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