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간이침대 위에 쓰러져 있는 유나.
그 광경을 보자, 나는 옛날에 있던 일이 떠올랐다.
옛날 일, 그러니까 싸늘한 시체가 되어 눕혀져 있던 유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유나야!”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나는 내 여동생의 이름을 외치며 그녀 쪽으로 달려갔다.
혹시 유나에게 뭔 일이 생긴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느껴졌다.
그랬는데…….
“어? 오빠! 오빠, 안 다쳤어?”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유나는 바로 눈을 뜨며 몸을 일으켰다.
“몬스터들은 어떻게 됐어? 다 잡았어?”
“어, 다른 헌터 분이 와서 잡아 줬어. 그보다 너는? 너는 괜찮아? 다친 데 없고?”
“나는 멀쩡하지. 처음부터 다친 곳 하나도 없었는데.”
“그럼 왜 누워 있던 거야?”
“어어, 그건 말이지. 아까 급식실에서 나현이와 나오자마자, 긴장이 풀리면서 다리에 힘도 풀렸거든. 그래서 헌터 협회에서 오신 분이 나 보고 쉬라고 이 침대에 옮겨 주신 거야.”
“아, 뭐야. 그런 거였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유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다. 진짜로 다행이네.”
“오빠, 그거 내가 할 말이거든?”
유나는 걱정스럽다는 듯이, 그리고 살짝 원망스럽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오빠가 다치지 않을까, 잘못되지 않을까,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괜한 걱정이야, 인마. 적어도 네가 있는 한, 나는 절대로 다치거나 죽을 생각 없거든.”
“…말이 쉽지.”
유나는 입술을 내밀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오빠가 헌터인 건 알지만, E급이라고 E급. 오빠가 헌터 일에 얼마나 안 적합한지 오빠도 잘 알고 있잖아.”
“뭐, 그렇기는 하지.”
E급 헌터는 헌터 일에 적합하지 않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가장 낮은 등급인 F급 헌터는 아예 일반인과 비슷한 취급이었고, E급은 그것보다 아주 살짝 더 나은 취급이었다.
E급 헌터였던 내가 그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 나아갔었지.’
당시에는 복수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남들이 하는 소리를 전부 무시하고 강해지는 데 매진했다.
결과적으로 E급도 하면 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고 말이다.
“오빠. 부탁인데, 다음에는 그러지 마. 나를 구하고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건 좋은데, 다음에 이런 상황 오면 그냥 나랑 같이 빠져나오자, 응?”
“하지만 그건…….”
“알아. 헌터니까 사람들을 지켜야 된다고?”
“…그렇지.”
“다른 사람들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 근데 그 사람들보다 오빠 자신을 가장 우선하도록 해 줘.”
유나는 나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오빠가 혹시라도 잘못되면, 나 혼자 살아갈 자신이 없거든. 엄마와 아빠도 잃었는데, 거기다 오빠까지 그렇게 되면…….”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래, 무슨 말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유나를 잃고, 나는 한동안 절망에 빠졌었다.
더 이상 의지할 가족이 없다는 사실이 내게 꽤 뼈아프게 다가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걱정 안 하지 마, 인마. 방금 말했잖아. 네가 있는 한, 나는 절대로 다치거나 죽을 생각 없다고.”
그리고, 라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유나에게 말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야. 내가 있는 한, 너는 절대로 다치거나 죽을 일 없을 거야.”
회귀하게 된 이번 인생의 가장 큰 목표.
같은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 유일한 가족을 두 번 다시 잃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빠 오늘따라 분위기가 많이 다른 거 알아?”
“그러냐?”
“오늘 아침부터 그랬는데, 오빠 뭔가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럴 수도 있지.”
회귀하기 전의 나와 회귀한 후의 나는 당연히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굳이 이 사실을 유나에게 말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말해 봤자 안 믿을 게 뻔했으니 말이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아무튼, 괜찮은 거지?”
“응. 괜찮아. 다친 곳은 없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병원 가서 검사 한 번 받자.”
“지금 바로? 근데 오늘 수업은…….”
“야, 내가 장담하는데 오늘 더 이상 수업 못 해. 아니, 아마 내일도 학교 쉴걸?”
“으음, 그렇기는 하네.”
상당히 난리가 난 신영중학교를 바라보며, 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병원 꼭 가야 해. 나 다친 곳도 없는데, 진료비만 버리고 오는…….”
“진료비 버려도 괜찮으니까 검사받아. 네 건강 확인하는데 돈 쓰는 건 전혀 안 아까우니까.”
“알겠어.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래, 그럼 어서 가자. 그리고 병원 진료받고, 집 가는 길에 족발도 사 가자.”
“음? 족발은 갑자기 왜?”
“오늘 아침에 내가 사 주기로 했잖아. 잊고 있었냐?”
“그건 그냥 해 본 말 아니었어? 우리에게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런 걸…….”
“우리 오늘 둘 다 고생했잖아. 스스로에게 이 정도 보상은 할 수 있는 거야.”
나는 피식 웃으며, 유나가 일어날 수 있도록 손을 잡아 줬다.
“따라와. 일단 병원부터 가자. 근데 그건 그렇고, 네 친구, 그, 나현이었나? 걔는 어떻게 됐어?”
“아, 나현이는 응급차 타고 바로 병원에 갔어. 근데 다리가 심하게 부러진 건 아니라 괜찮을 거야.”
“다행이네. 그래도 나현이, 그 친구는 너와 많이 친한 거 같은…….”
이렇게 평범한 대화를 나누며, 나는 유나와 같이 신영중학교를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 고연대학교 】
“맛있냐?”
“응, 당연히 맛있지.”
병원에서 유나가 진료를 받은 후.
나는 유나와 같이 집에 돌아가는 길에 족발을 샀다.
진료 결과 찰과상과 타박상이 조금 있었지만, 그 외에는 다친 곳이 없다고 의사가 말해 줬다.
‘다쳤다는 게 조금 속상하긴 하지만, 다리뼈가 거의 사라졌던 그때보다는 몇천 배는 나은 거지.’
회귀하기 전.
그때의 유나는, 리저드 라이더들에게 너무나도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그에 비하자면 찰과상과 타박상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이상의 치료비는 안 나오겠지.’
이게 가장 중요했다.
회귀하기 전에는 치료비를 감당하느라 유나까지 고등학교 때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유나는 그 과정에서 죽었다.
그때와 동일한 미래가 다가오는 걸, 오늘의 일로 막을 것인지도 몰랐다.
뭐, 아무튼.
“오빠도 얼른 먹어.”
족발을 사서 집에 온 후.
나와 유나는 조금 이른 저녁을 먹고 있었다.
“이거 오빠가 번 돈인데, 나보다는 오빠가 먹어야지. 게다가 오늘 나를 구하느라 고생을 한 건 오빠인데, 나만 이렇게 먹으면, 우웁.”
“먹고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너나 먹어, 인마.”
유나의 입에 족발 한 조각을 입에 넣어 주며 피식 웃었다.
“막국수도 있으니까, 그것도 먹고. 알겠지?”
“우웁. 알겠으니까 오빠도 좀 많이 먹어. 아까부터 나 혼자서만 거의 다 먹고 있잖아.”
“나는 네가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니까…….”
나는 유나의 입에 족발 한 조각을 더 넣어 줬다.
“많이 먹어.”
“음냐냠. 으으, 오빠가 내 엄마냐고?”
“어렸을 때부터 네 엄마 역할을 해 주기는 했지.”
“…그렇게 말하면 내가 할 말이 없잖아.”
“할 말 없으면 그냥 먹기나 해.”
나는 미소를 지은 채, 족발 한 조각을 이번에 내 입에 넣었다.
“그리고 너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거, 그거 거짓말 아니야. 진심으로 한 말이야.”
“…오빠도 어서 먹어. 그리고 고마워.”
“음? 뭐가?”
“오늘 학교에서 나 구해 줘서. 오빠가 아니었으면, 나 오늘 어떻게 됐을지도 몰라.”
“고마우면 많이 먹어라. 이 은혜를 갚고 싶으면 내게 건강한 모습만 보여 주도록 해.”
“안 그래도 아까부터 먹고 있거든?”
유나는 내 시선을 피한 채, 고기를 입에 넣으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이내 무언가 의문스럽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그건 그렇고, 오빠. 오빠 오늘따라 분위기가 어제와 진짜 많이 다른 거 알아?”
“아까도 그 말 하지 않았었냐?”
“그만큼 오빠가 평소와 다르다는 거야. 뭐라고 해야 되나, 그, 여유? 전보다 조금 더 여유가 생긴 거 같아.”
유나는 나를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여유가 전혀 없어 보였거든. 돈 벌고 오느라 지치고, 생기가 없었는데, 오늘 아침부터 갑자기 그 생기를 되찾은 거 같아.”
“…하기야. 그렇게 보일만도 하겠네.”
그래, 이 당시의 나는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회귀한 나는 아니었다.
돈이고 뭐고, 나는 그저 유나를 다시 볼 수 있게 됐다는 그 사실 하나에 너무 기뻤다.
유나 눈에 내가 생기가 넘쳐 보이는 건 당연했다.
“진짜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물론 오빠가 이렇게 기운 넘치는 건 보기 좋은데, 그, 있잖아.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불길하다는, 웁.”
“아무 일 없으니까 걱정 마.”
나는 유나 입에 또다시 고기를 넣어 주며 말했다.
“그보다 족발 산 거랑 병원에서 진료 봤던 거. 그거 영수증 네가 갖고 있지?”
“응, 여깄어.”
유나는 부엌에 있던 영수증들을 들고 와 내게 건넸다.
“…생각보다 돈을 많이 썼구나.”
“내가 말했잖아. 요즘 족발 비싸다고.”
“이제 남은 돈이…….”
나는 내 스마트폰을 꺼내 내 계좌를 확인했다.
“…애매하네.”
궁핍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동시에 여유가 있다 할 정도의 금액도 아니었다.
그래도 일단 있는 돈이라도 잘 분배한다면…….
“그보다 유나야. 너 용돈은 충분해?”
“용돈은 뭔 용돈이야. 우리한테 뭔 돈이 있다고.”
유나는 실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오빠가 맨날 혼자 돈 벌어 오게 하는 것도 미안한데, 내가 눈치가 있지. 용돈까지 받는 건…….”
“교통비는 필요하지 않을까?”
“나 학교 걸어 다니는 거 알잖아. 게다가 가는 곳이라고는 학교밖에 없어.”
“…그치. 그랬었지.”
우리 남매가 돈이 부족했던 탓에, 그 흔한 대중교통도 안 타고 다녔었다.
교통비 외에도, 나와 유나는 개인적으로 쓸 돈이 거의 없었다.
‘이렇게 보니 체감이 확 되네.’
체감이, 정확히 말해, 내가 얼마나 돈이 없었는지 체감이 되었다.
‘하아아, 진짜. 그놈의 돈, 돈, 돈.’
그래, 항상 돈이 문제였다.
유나의 학비, 생활비, 그리고 나의 등록금, 거기다 집세까지.
돈은 항상 우리 남매의 인생에 간섭했다.
‘우선 돈 문제부터 해결하자.’
여러 목표들이 있지만, 당장만큼은 돈이 우선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 번 정리해 보자.’
영수증을 옆으로 치우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강해지기 위해, 우선 기본적인 자본이 필요했다.
그리고 내가 돈을 벌기 가장 쉬운 방법은…….
‘역시 헌터. 아니, 굳이 헌터가 아니더라도 게이트와 관련된 일을 해야겠지.’
일당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수단이 그 둘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E급.
당장 헌터 일을 하기에는 너무나도 약했다.
‘뭐. 약한 거야, 그냥 강해지면 그만이니까 큰 문제는 아니지.’
나는 강해지는 방법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말했듯, 강해지기 위한 그 기초적인 자본이 내게 없었다.
즉, 자본 없이 강해져야 했고, 그 방법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게 있었다.
그건 바로…….
‘내 장비들부터 다시 구해 오는 거지.’
내 전류와 신체적인 능력을 성장시키는 것도 중요했다.
하지만 그건 단기간에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돈도 필요했다.
그래서 나의 능력을 기르는 건 나중에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장비들을 구해 오는 건 당장 시작할 수 있지.’
그런 의미에서, 내 장비들 중 당장 구해 올 수 있는 거라면…….
‘지금이 5월이었지.’
내가 20살 때 당시의 5월.
내 기억이 맞는다면 이즈음에 나타난 소형 게이트가 하나 있었다.
‘그 게이트는 아마 이번 주 주말에 나타날 거야. 그렇다면, 흐음. 이번 주는 조금 바쁘겠네.’
나랑 15년을 함께했던, ‘자바니아’라 불린 내 단검.
나는 우선 그 단검부터 다시 구해 올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