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어디 보자.’
나는 잠시 젓가락을 내려놓은 채,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찾았다.”
그리고 나는 이내 찾고자 하는 것을 찾았다.
‘경기도 수원 칠보산에서 게이트의 흔적이 발견. 이번 주 일요일에 게이트가 열릴 것으로 추정 중.’
내가 회귀하기 전, 거의 10년 동안 썼던 단검.
그 단검은 칠보산의 게이트에서 처음 발견됐었다.
회귀하기 전의 나는 그 단검을 매우 비싼 돈을 들여 구매했지만…….
‘이번에는 직접 찾으러 가 줘야지.’
단검이 나타나는 게이트, 그리고 단검이 게이트의 어디에 위치했는지까지 전부 알고 있었다.
그러니 돈 쓸 거 없이, 그 게이트 안에 들어가 슬쩍 가져오면 됐다.
다만 문제는…….
‘그 게이트 안으로 들어갈 방법이지.’
뭐, 그래도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거 자체는 어렵지 않을 터였다.
E급 헌터지만, 나도 일단은 헌터였다.
게다가 칠보산 게이트의 위험 등급은 아마 8급.
가장 낮은 9급 다음인 8급으로 선정됐었으니, 이 게이트는 소형 길드들이 노릴 것이었다.
그 점을 잘 이용하면…….
“오빠. 폰 그만 보고 오빠도 좀 먹어.”
“어? 어어, 먹을게.”
“그리고 국수도 좀 먹어. 같이 먹으면 더 맛있… 으음? 오빠, 뭐 보고 있는 거야?”
유나는 내 스마트폰 화면을 슬쩍 바라봤다.
“게이트? 짐꾼 신청? 오빠, 돈 벌려고 게이트에 들어가려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오빠. 돈 버는 건 좋아. 근데 게이트는, 게이트는 아니야. 오빠가 헌터라는 건 알지만, 게이트는 너무 위험해. 나는 오빠가 다치거나, 잘못되는 건 절대 원하지 않…….”
“학교에서 하는 활동 같은 거야. 몬스터와 싸운다거나 하는, 그런 위험한 건 절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진짜지?”
“응, 진짜로.”
“…소리친 건 미안. 그냥 오빠가 걱정돼서. 솔직히 지난번에 오빠가 공사 현장에서 다쳤을 때 내가 얼마나, 우웁.”
“늘 말하는 거지만, 걱정해 줘서 고맙다.”
나는 유나 입에 족발을 한 조각 넣어 주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어. 아니, 애초에 네가 걱정할만한 일은 안 할 거야.”
“우무물, 아으. 다쳐 오기만 해 봐. 나 그때 진짜 가만 안 있을 거야.”
“알겠어, 인마. 알겠어.”
유나를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며, 나는 막국수를 입에 넣었다.
‘거짓말해서 미안하다, 유나야.’
학교 활동이라느니 하는 건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유나가 괜히 날 걱정하는 건 원치 않았기에 거짓말한 것이었다.
‘그래도 유나를 생각해서라도 다쳐 오지 말자.’
방금 유나가 말한, 공사 현장에서 다친 것.
그 일은 기억났다.
일 좀 하다가 다쳤던 건데, 그때 유나가 나 다친 것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었다.
유나가 그런 모습을 또 보이는 건 원치 않았으니…….
‘에이, 뭐. 문제없겠지. 내가 설마 다칠 일이 있겠어?’
이래 보여도 나는 A급 헌터이자, 최고의 암살자이자 척후였다.
칠보산에 나타난 8급 위험도의 게이트?
솔직히 말해, 생채기 하나 안 날 자신이 있었다.
‘근데 방금 학교 활동이라고 핑계를 댔는데, 생각해 보니까 내일 학교를 가야 되는구나.’
내 기억이 맞는다면 나는 내일 대학교에서 들어야 할 수업이 있었다.
내일이 수요일이었고, 스마트폰에 저장된 시간표에 따르면…….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수업이었지.’
정확히는 11시부터 1시까지 이론 수업.
1시부터 4시까지는 실전 수업이었다.
게다가 내일은 학교에서 수업 듣는 것 외에도 스케줄이 하나 더 있었다.
“유나야.”
“응?”
“너 내일 장 보러 간다고 했지?”
“어, 내일 갈 생각이었지. 왜?”
“같이 갈래? 나 내일 학교 끝나고.”
“같이 가면 나야 좋지. 근데…….”
유나는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내일 학교를 가냐 안 가냐에 따라 내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몰라. 오늘 몬스터들이 습격한 것 때문에 지금 학교가…….”
“내가 장담하는데, 너희 내일 휴교할 거다. 아마 하루 정도는 쉴 수밖에 없을 거야.”
10년도 넘게 헌터 생활을 하며, 몬스터들에게 습격을 받은 학교들을 자주 봤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교들은, 습격당한 다음 날에 열에 아홉은 쉬었다.
“그래? 그럼 내일 같이, 으음. 근데 오빠 내일 수업 4시에 끝나지 않아?”
“어, 맞아. 그게 왜?”
“아, 그게. 내일 마트에 세일하는 날이거든. 근데 세일이 3시까지 해서, 아무래도 혼자 갔다 오는 편이…….”
“아, 그건 걱정 마. 그럼 내가 내일 2시까지 집에 올 테니까, 같이…….”
“오빠.”
유나는 한숨을 쉬며 진지하게 말했다.
“자체 휴강이니 뭐니, 그런 거 또 하지 마. 돈 내면서 학교 다니는데, 수업을 빠지면 돈을 날리는 거잖아.”
“그래도 너랑 장 보는 거면…….”
“나 혼자 갔다 올 테니까, 그냥 수업 듣고 와.”
유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오빠가 벌어 오는 돈이기는 하지만, 그 돈이 허투루 안 쓰였으면 하거든.”
“…으음.”
하긴, 유나는 원래 이런 성격이기는 했다.
회귀하기 전에도, 유나는 내가 학교 수업을 빼먹는 걸 좋게 보지 않았다.
‘근데 유나와 같이 장 보러 가고 싶단 말이지.’
유나와 같이 다니며, 일상을 보내는 것이 내 오랜 소원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여동생이 나 보고 수업을 빠지지 말라고 하니 난감했다.
“혹시 수업이 일찍 끝난다거나, 내가 합법적인 방법으로 수업에서 일찍 나오는 건…….”
“마음 같아서는 그냥 수업 다 듣고 오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까지 나랑 같이 가고 싶다면야.”
“내일 최대한 일찍 올게.”
“다시 말하지만, 자체 휴강 같은 건 안 된다. 그리고 적어도 2시까지는 집에 와야 해, 알겠지? 세일이 3시까지니까, 적어도 2시에는 출발해야 하거든.”
“알겠어, 인마. 아무튼, 마저 먹자.”
“어, 알겠, 아! 오빠, 내가 알아서 먹을 테니까 또 내 입에 넣지 마!”
“아, 네네.”
나는 피식 웃으며 내 여동생을 바라봤다.
* * *
다음 날.
일단 유나의 학교는 내 예상대로 휴교했다.
유나의 말에 따르면 아마 내일 다시 갈 거 같다고 했다.
아무튼 그 덕에, 나는 유나의 배웅을 받으며 등교할 준비를 할 수 있었다.
“학교 조심히 갔다 오고, 수업 빼먹지 마. 알겠지?”
“알겠어, 인마. 알겠다고.”
나는 놓고 가는 교재는 없는지, 가방을 한 번 더 확인했다.
“이따 2시까지 오면 되는 거지?”
“늦어도 2시까지 오는 편이 좋지. 세일이 3시까지니까.”
유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못 오거나 늦을 거 같으면 미리 연락 줘. 지난번처럼 또 오빠가 안 와서 한 시간이나 기다리고 있기는 싫거든.”
“아아, 그때는 미안.”
다른 건 몰라도, 이건 기억이 났다.
유나와 같이 외식하기로 했는데, 하필 그날 개같은 교수에게 붙잡혀 약속 시간에 늦었던 일이었다.
아마 최근의 일이었을 터였다.
“미안하면 연락 꼭 해. 뭐, 어쨌든. 학교 잘 갔다 와.”
“그래. 고맙다.”
“고맙기는 내가 더 고맙지.”
유나는 미소를 지은 채 나를 올려다봤다.
“어제 나를 구해 주고, 지금까지 계속 나를 지켜 주면서 키워 줬잖아. 늘 말하는 거지만, 고마워, 오빠.”
“…고마운 거 알면 됐다.”
유나의 그 말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지만, 나는 최대한 티를 내지 않은 채 대꾸했다.
“학교 갔다 올게. 이따 보자.”
* * *
고연대학교.
서울에서 나름 상위권 드는 대학이자, 전국에서 몇 없는 헌터학과를 보유하고 있는 대학.
“여기도 오랜만이네.”
회귀하기 전.
당시에 나는 이 학교를 23살에, 그러니까 유나가 죽은 후에 자퇴했다.
강해지기 위해 물불 안 가리고 있었을 때라, 대학 따위는 안중에 없던 것이었다.
“자퇴한 이후로 여기 오는 건 처음인가?”
23살부터 38살까지.
약 15년간 이 학교에 발을 들인 기억이 없었다.
‘뭐, 애초에 이 학교에 별다른 추억이 없었으니까.’
고연대학교에서의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없었다.
수업을 자주 땡땡이칠 정도로 학교에 애착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나저나 학교 하나는 더럽게 크다니까.’
아까 말한 것처럼, 고연대학교는 서울에서 나름 상위권에 드는 명문대 중 하나였다.
거기다 한국에서 몇 없는 헌터학과를 운영하고 있던 터라, 정부에서 온갖 지원금이 다 나왔다.
‘헌터가 국가에게 있어 귀중한 재산이니까.’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헌터의 강함이 곧 국가의 강함이라는 공식이 성립됐다.
그랬기에 한국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헌터 육성에 꽤 공을 들인다고 했다.
‘내가 지금 스물이니까… 이때 한국의 헌터는, 아마 국가들의 순위를 매겼을 때 중상위권쯤이었지?’
이때쯤의 대한민국은 딱 적당하고 무난하게 헌터를 관리하던 나라였다.
하지만 이후 몬스터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헌터들이 전 세계적으로 하나둘씩 종적을 감추자…….
‘막판에는 한국이 최상위권이 됐었지. 나 하나 덕에.’
당시에 A급이나 S급 헌터들도 모습을 감추던 때였다.
그랬기에 자리에 남아 꿋꿋이 일한 나를, 정부에서 매우 고맙게 여겼었다.
다 도망가는 와중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켜 준 나 같은 A급 헌터는 흔치 않았으니 말이다.
“근데 A급이라…….”
나는 내 오른손을 슬쩍 들어 올렸다.
파직―
아주 약하게 발현되는 전류.
이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뭔가 아쉽네.”
회귀하기 전의 내 인생, 그러니까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다고 말했던 내 인생.
그 인생에서 딱 한 가지 아쉬웠던 게 있다면, S급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 마지막 문턱을 넘기 직전이었는데, 하필 그때 죽었지.’
조금만 더, 그러니까 딱 2년 정도만 내 능력의 강화에 투자했으면 S급에 올랐을 터였다.
E급에서 시작해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는데, 그걸 못 했다는 게 아쉽다면 아쉬운…….
“에휴, 됐다. 이제 와서 그게 뭐가 중요하냐.”
20살로 돌아온 덕에, 내가 15년 동안 쌓아 온 힘을 전부 잃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힘은 다시 쌓으면 그만이야.’
힘을 다시 쌓는 건, 어떻게 보면 필수였다.
전에 유나를 잃은 건, 내가 약해서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한 번 뭐라도 배워 보자.”
나는 이 거대한 학교 부지에 있는 수많은 건물들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뭔가를 더 배울 것이 있나 싶었다.
최강의 헌터는 아니었지만, 나름 내 분야, 그러니까 암살과 정찰에서는 정점을 찍은 나였다.
E급에서 A급으로 올라간 최초의 헌터였던 내가 가르침을 받아도 되나 싶었지만…….
‘배움에는 끝이 없다. 이 말이 괜히 나온 건 아닐 테니까.’
옛 말씀 중 틀린 게 없다고 하니, 한 번 믿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그나저나 11시부터 1시가 몬스터의 생태라는 이론 수업이었고, 수업이 프톨레 건물 203호였나?”
그렇게 나는 옛 기억을 되짚으며, 천천히 내 강의실을 찾아갔다.
* * *
‘여기도 오랜만이네.’
10시 55분.
나는 시간에 맞춰 강의실에 도착했다.
그리고 강의실에는 나 외에도 다른 학생들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익숙한 얼굴들이 몇 명 보이네.’
익숙한 얼굴들, 그러니까 몇 년 뒤 헌터로 이름을 날릴 학생들이 몇몇 보였다.
나랑 대립하기도, 나랑 협력하기도 했던 그런 헌터들 말이다.
‘저 새끼는 박정우였나? 27살 때 내게 시비 걸다 나가떨어진 놈이었고, 저 생머리는 김승라? 나름 끝까지 버티다가 죽은 녀석이었고, 저기 저 녀석은 이민아인 거 같고…….’
강의실의 구석에 앉은 채, 나는 조용히 학생들을 살폈다.
그렇게 옛날 기억들을 떠올리며 시간을 보내던 중.
“자, 안녕하세요. 다들 오셨죠?”
강의실에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들어왔다.
“바로 출석부터 부르겠습니다.”
“…하.”
나는 저 아저씨를 보자마자 실소를 흘렸다.
그도 그럴 게, 저 아저씨는 내 기억에 여러모로 남았던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강석우 교수.’
나랑 사이가 여러모로 안 좋았던 교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