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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8화 (8/240)

8화

내가 대학교 때 만난 교수들은 대부분 까먹은 편이었지만, 저 아저씨만큼은 기억에 남았다.

내게 D라는 성적을 준 처음이자 마지막 교수였기 때문이다.

‘근데 그건 그렇고, 저 여자는…….’

출석을 부르는 강석우의 옆쪽.

저 아저씨를 따라 강의실에 들어온, 붉은색 머리의 여자가 있었다.

‘엥? 잠깐만, 하세리?’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키가 큰 여자.

그녀는 분명 하세리가 맞았다.

‘아니, 하세리는 여기에 왜 온 거야?’

갑자기 강의실에 모습을 드러낸 A급 헌터.

이에 나뿐만 아니라, 강의실의 다른 학생들도 꽤 놀란 얼굴들이었다.

“야, 저분, 하세리 아니야?”

“응, 헌터 협회의 그분이잖아. 나 전에 뵌 적 있어.”

“저분이 왜 여기에 오신 거야?”

차기 S급 헌터 중 한 명으로 지목되는 화염술사, 하세리.

그녀는 헌터 업계에서 상당히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의문을 표하고 있었다.

대체 저런 대단한 사람이 왜 이 강의실에 왔는지 말이다.

‘내가 저 누나랑 자주 붙어 다녀서 체감을 못 한 거지, 하세리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엄청난 사람이었어.’

내가 회귀하던 그날 기준으로, 하세리는 S급을 달성한 헌터였다.

동시에 세계 최강의 화염술사로 이름을 날렸다.

아직 세계적으로 위상을 떨치고 있진 않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내에서의 위상은 무시 못 했다.

그래서 더더욱 의문이었다.

하세리가 왜 여기 왔는지를.

‘일단 강석우가 안 놀란 거로 봤을 때, 미리 이야기를 나누고 여기를 온 건 확실한데…….’

나는 도저히 하세리의 행동 원인을 파악 못 하고 있었다.

회귀하기 전에 나름 오래 알고 지낸 누나라 성격은 대충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도저히 그 이유를…….

‘잠깐만. 혹시 나를 보러 온 건가?’

문득 든 생각이었다.

어제 신영중학교에서 하세리는 내가 리저드 라이더를 붙잡고 있는 걸 봤다.

그러니까 전류를 이용해 쇠사슬을 다루는 광경을 봤을 터였다.

그리고 일렉트로 마스터들 중 그런 식으로 전류를 다루는 건 나 말고는 없었다.

‘만약 진짜 그런 거라면, 하세리의 성격상 내게 관심을 보일만 해.’

헌터 협회 소속의 하세리는 인재 영입에 은근히 진심인 편이었다.

실제로 회귀하기 전, 내 전류의 활용을 보자마자 하세리는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 전류의 활용이 뛰어나다 해도 나는 E급이었다.

‘하세리는 그래도 인재 영입의 기준이 꽤 높은 편이야. E급에게는 관심을 보일 리가 없을 텐데?’

최소 D급은 되어야 하세리는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내가 아는 하세리라면, 고작 E급 헌터를 보기 위해 이 학교에 찾아왔을 리가 없었다.

아니, 나를 찾아온 거면 내 뒷조사를 했다는 의미일 텐데, 하세리는 그런 짓을 할 만큼 한가한 헌터가 절대 아니었…….

“박세훈. 어, 왔고. 그리고 박유진…….”

하세리를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하던 도중.

출석을 부르던 강석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박유진 학생은 오늘도 안 왔을 테니, 다음에는…….”

“저 왔습니다.”

“…어?”

“저 여깄습니다.”

내가 손을 들며 입을 열자, 강석우는 여러모로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박유진 학생, 오늘 웬일로 수업에 왔네요?”

“…오면 안 되는 건가요?”

“아니, 그건 아니고. 매번 안 오다가 갑자기 와서 조금 놀란 거죠.”

“그런가요?”

하긴, 내 기억을 되짚으니 강석우의 이러한 반응이 이해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게, 이때의 나는 학교 수업을 듣는 것보다 돈을 버는 데 더 혈안이던 때였다.

내 등록금부터 시작해 생활비, 거기다 유나의 생활비와 용돈, 그리고 식비와 전기세 등의 비용까지.

돈이 여러모로 궁했던 시기라, 학교보다는 노가다 현장에 더 모습을 자주 비추던 나였다.

그래서 수업을 꽤 자주 빼먹었었다.

‘특히 강석우의 수업에는 더더욱 안 나타났었지.’

내가 개인적으로 안 좋아했던 교수라, 더더욱 그의 수업을 빠지고 노가다를 하러 간 기억이 있었다.

근데 이렇게 나열을 해 보니, 저 교수가 내게 D를 준 이유가 어째 납득이 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뭐가 어찌 됐든, 그건 예전의 나였다.

회귀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고자 하는 나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맞겠지?

“네, 뭐. 아무튼 일단 왔으니까, 네. 출석 마저 부를게요. 서강우, 네. 오셨고…….”

강석우는 잠시 나를 아니꼽게 쳐다봤지만, 그는 다시금 시선을 돌리며 출석을 마저 불렀다.

그렇게 나는 조용히 출석이 다 불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박유진. 쟤가 걔지? 그, 무슨 특별 전형으로 들어왔다는 애?”

“사회 수급 뭐시기? 그 흙수저 전형 있잖아. 그걸로 헌터학과에 입학한 최초의 사례라며.”

“근데 E급에다가 학교도 제대로 안 다닌다고 했는데, 저럴 거면 뭐하러 이 학교에…….”

근처에서 수군거리는 학생들.

그들의 말소리가 너무나도 잘 들렸지만, 나는 굳이 반응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이때의 나는 그런 뒷담을 들어도 딱히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힘들게 이 명문대에 들어왔지만, 정작 제대로 다니지 못했지.’

돈도 없으면서 고연대에 굳이 입학한 건, 더 나은 삶은 살 기회를 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동시에 돈이 급했고, 나는 학교에 다니면서 노가다를 병행할 생각이었다.

‘학교 다니면서 노가다. 그걸 전부 감당할 수 있을 줄 알았지.’

하지만 그건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고, 결국 학교와 일.

이 두 가지의 균형을 못 맞추게 됐었다.

‘둘 중 하나만을 선택했어야 했는데, 두 가지 모두 가지겠다고 욕심부리다가 큰코다쳤지.’

어렸을 때의 내가 저지른 실수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실수를 겪었기에, 이번에는 그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후회 없는, 제대로 된 인생 계획을 세워 보자.’

나름 인생 2회차였으니, 충분히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울 자신이 있었다.

“네, 오늘 오랜만에 이 수업에 학생들이 전부 출석했네요.”

속으로 생각하던 중, 강석우는 출석 체크를 마무리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네, 그러니까 ‘오랜만에’ 전부 출석했네요.”

강석우는 내 쪽을 슬쩍 바라보며 말했지만, 나는 별다른 반응 없이 그와 눈을 조용히 마주칠 뿐이었다.

“아무튼. 오늘 수업 시작하기에 앞서, 여기 오신 이분이 누군지는 다들 아시죠?”

강석우는 잠시 나를 째려보다, 이내 학생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 아침에 헌터 협회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는데, 여기 계신 하세리 헌터님이 저의 강의에 참관하고 싶다고 했어요. 저야, 당연히 거절할 이유가 없어 승낙했고, 학생분들도 괜찮죠? 하세리 헌터님이 저희의 수업을 구경하셔도.”

당연히 그 누구도 하세리의 참관에 반발하지 않았다.

굳이 안 괜찮을 이유가 없었고, 하세리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대단한 위상을 지닌 헌터였다.

헌터를 지망하는 학생들 입장에서, 하세리와 같은 공간에서 수업을 듣는다는 게 오히려 영광일지도 몰랐다.

“저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응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교수님.”

하세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저를 넓은 마음으로 받아 준 학생 여러분들께도 감사를 표합니다.”

붉은 머리의 헌터는 학생들 쪽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에 강의실의 학생들은 짧게 박수를 쳐 줬다.

그리고 박수 소리가 이내 잠잠해지자, 그녀는 다시금 강석우 쪽을 바라봤다.

“강의에 방해가 되면 안 되니, 저는 없는 사람 취급하시고 평소처럼 진행하시면 됩니다, 교수님.”

“예,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하세리 헌터님은 원하신다면 여기 앞에 앉으시면 됩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앞에 앉으면 학생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저는 저기 뒤쪽에 앉도록 할게요.”

“아아, 네. 그게 편하시다면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네, 그럼 수업을 시작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하세리는 강의실에 뒤쪽, 그러니까 나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가 빈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하세리가 자리를 잡은 후, 강석우의 강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네. 지난주에 394페이지까지 했었을 겁니다. 늑대인간에 대한 내용은 끝났을 테고, 오늘은 캇파라는 몬스터와 최근 게이트에서 많이 출현하는 외눈거인에 대해…….”

몬스터의 생태.

이게 내가 듣는 이 수업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말 그대로 게이트에서 출현하는 몬스터들에 대해 배우는 수업이었다.

‘…다 아는 내용들이네.’

강석우 교수의 수업을 한 귀로 흘리며, 나는 이 수업의 교재를 빠르게 훑어봤다.

‘응, 전부 다 아는 내용들이야.’

옛날이었으면 이 교재에 나온 내용들을 하나도 이해 못 했을 터였다.

그때의 나는 몬스터를 직접 만난 적이 거의 없었고, 거기다 강석우의 수업을 제대로 들은 적이 손에 꼽힐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니지.’

10년 넘게 몬스터만 사냥했던 나였다.

온갖 몬스터를 다 만나 본, 오히려 못 만나 본 몬스터를 세는 게 빠를 정도로…….

“그래도 복습하는 의미에서 지난주에 배운 그리폰에 대해 이야기를 한번 해 볼 생각인데, 박유진 학생.”

“네?”

“그리폰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리폰이요?”

“네, 지난주 수업 때 제가 수업한 내용이에요. 물론 그때 박유진 학생은 없었지만, 열의가 있는 학생이라면 따로 혼자 공부하셨겠죠?”

아무렇지 않게, 평온하게 말하는 강석우.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확실한 적의, 그리고 비웃음이 담겨 있는 게 보였다.

‘그냥 나 망신이나 줄 생각인가 보네.’

이 아저씨의 레퍼토리는 뻔했다.

내가 모른다고 대답하면 그것 갖고 내게 잔소리를 해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것.

회귀 전에 몇 번 당해 봐서 잘 아는 수법이었다.

‘하아아, 내가 이래서 저 아저씨를 싫어했었지.’

물론 수업에 제대로 출석 안 한 내 잘못이 있는 건 맞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교수라는 인간이 학생에게 이딴 짓을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옳은 행동은 아니었다.

‘나이 처먹고 잘하는 짓이다.’

원래 같았으면 이렇게 속으로만 욕을 하며, 정작 저 망할 교수에게 아무 말도 못 했을 거다.

그래, 원래 같았으면 그랬을 거였다.

“박유진 학생. 설마 모르는 건가요? 허허, 지난주에도 수업을 빠지셨는데, 그래도 최소한 이 학교의 학생이라면 혼자서…….”

“그리폰에 대한 설명을 원하시는 거죠?”

나는 속으로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리스의 게이트에서 처음 나타났던 그리폰, 그거 말씀하시는 거 맞죠?”

“네? 아아, 네. 그 그리폰이 맞죠. 근데 박유진 학생, 그걸 어떻게 아는…….”

“그럼 그리폰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그것도 원하신다면 아주 자세하게 하겠습니다.”

15년 동안 현장에서 구르기만 했던 헌터의 짬밥.

그 짬밥을, 저 망할 교수에게 지금 보여 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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