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 * *
“…그래서 그리폰을 잡기 위해서는 보석이나 황금으로 유인하는 게 최고죠. 또, 그리폰은 히포그리프와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그리폰은 길들이는 게 불가능한 대표적인 몬스터로 알려져 있어요. 그래서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항상 갈리는 몬스터죠.”
“…정확하네요.”
약 5분간 그리폰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설명한 박유진.
이에 강석우는 잠시 당황했지만, 그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야기 나온 김에, 박유진 학생. 한번 히포그리프에 대한 설명도 가능합니까? 히포그리프는 아마 저번 달에 제가 수업을…….”
강석우는 박유진이 마음에 안 들었다.
자신의 수업에 제대로 출석 안 하는 것도 이유였지만, 가장 큰 이유로는 박유진이 고작 E급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학교에 E급을 입학시키는 건 너무했어.’
강석우는 자신이 고연대학교의 교수라는 사실에 자부심이 있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학과의 교수를 맡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는데, 난데없이 E급 한 명이 기어들어 왔다.
C급도 겨우겨우 붙을까 말까 한 이 학과에, 무슨 특별 전형인가 무엇인가로 입학한 것이었다.
‘빨리 나가떨어지기나 해라.’
강석우는 박유진이 스스로 이 학교를 나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박유진이 가끔 그의 수업에 얼굴을 비출 때마다, 강석우는 그를 심리적으로 몰아붙였다.
스스로가 얼마나 재능이 없는지 깨닫게 하려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강석우는 오늘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의 원래 계획은 박유진이 잘 모를 것만 같은 질문들만을 해, 평소처럼 그를 다른 학생들 앞에서 망신 주려고 했다.
그럴 생각이었는데…….
“히포그리프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지능이 있다는 점이죠. 그래서 인간이 길들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몬스터인데, 보통 히포그리프와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하면 히포그리프가 반응을…….”
하지만 어째서인지, 박유진은 강석우의 모든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정석에 가까운 모범 답안들을 말이다.
‘…뭐지?’
지금까지 박유진은 단 한 번도 강석우의 질문에 대답을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강석우는 이런 박유진의 모습에 많이 당황했으나, 그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래 봤자 전부 아는 건 아니겠지.’
강석우는 몬스터만 수십 년을 연구해 온 교수였다.
그에 비해 박유진은 이제 막 20살이 된, 아직 몬스터도 제대로 못 상대해 봤을 학생이었다.
하지만 그건 강석우가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
“잘 대답하셨네요. 그렇다면 박유진 학생. 화염목인에 대한 설명도 가능합니까? 이것도 최근 수업에서…….”
“화염목인이요? 일본의 게이트에서 최초로 나왔던 몬스터 말씀이시죠? 그거라면 일단 기본적으로 죽은 고목에 사념이 들어갔다는…….”
이후로도 수월히 대답하는 박유진.
이에 오기가 생긴 강석우는 더 많은 질문을 계속했다.
“그렇다면 보가트에 대해서도 설명이 가능할까요?”
“영국의 게이트에서 출현하는 몬스터죠.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일으키고, 가축들에게 씌어 이상한 행동들을 하는 몬스터인데, 보가트를 물리적으로 없애기는 매우 힘들다고 알려져 있죠. 주로 마법을 쓸 수 있는 헌터들을 불러서 처리하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밴시에 대해 설명해 보시죠.”
“아일랜드의 게이트에서 최초로 출현한 몬스터로, 위험한 몬스터는 아닌데, 으으음. 가끔 사람들의 영혼을 흡수해 버리는 놈들이 있어, 유럽 쪽에서 꽤 위험한 취급을 받는…….”
“그럼 이번에는 만티코어에 대해 설명을…….”
강석우가 잘못 생각한 것, 아니.
잘못 생각한 것이 아닌, 생각 못 한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그도 그럴 게, 박유진이 회귀했다는 사실을 강석우가 알 턱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박유진이 회귀하기 전, 15년 동안 몬스터만 잡은 A급 헌터였다는 사실을 더더욱 알 리가 없었다.
강석우가 몬스터에 대해 오래 연구한 만큼, 박유진 또한 그만큼 열심히 연구했었다.
아니, 박유진은 할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를 잡기 위해 그는 몬스터에 대해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못 잡아 본 몬스터를 세는 게 빠를 정도로, 박유진은 지구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몬스터들을 전부 한 번씩 상대했었다.
그 결과, 박유진은 강석우만큼이나 몬스터에 대한 전문가가 되었다.
“아크라맨튤라에 대해서도 한 번 설명해 보시죠.”
하지만 강석우는 이 사실을 몰랐고, 그 결과 오히려 몰아붙여지는 게 박유진이 아닌 자신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강석우는 다른 건 몰라도 박유진에게, 그러니까 고작 E급에 불과한 학생에게 절대 지고 싶지 않았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교수는 점점 어려운 수준의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설명하는 김에 바실리스크에 대해서도 같이…….”
강석우는 표정이 어두워진 채로 문제를 계속 냈으나, 박유진은 그저 여유롭게 그 모든 것에 대답할 뿐이었다.
그리고 강의실의 학생들은 그 두 사람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정확히 말해, 학생들은 박유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 너 저거 알고 있었어?”
“아니, 만티코어와 아크라맨튤라는 배운 적이 없잖아.”
“배웠다 해도 저렇게 자세히 아는 건 뭔가…….”
수업에 아주 가끔 모습을 비추던 E급 헌터, 박유진.
강의를 듣던 학생들 대부분은 박유진을 내심 무시했다.
하지만 지금 박유진이 보여 주는 의외의 모습에 그들은 모두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학생들만이 놀라고 있던 건 또 아니었다.
‘똑똑한 친구네.’
붉은 머리의 헌터, 하세리 또한 박유진을 놀란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 *
어제 저녁.
신영중학교를 습격한 리저드 라이더 관련 일들을 전부 처리한 후.
“흐음, 그러니까 고연대학교를 다닌다는 거지?”
자신의 크고 화려한 아파트에서, 하세리는 전종원이 방금 보낸 메일을 확인하고 있었다.
“E급인데 고연대학교의 헌터학과는 대체 어떻게 간, 아아. 특별 전형이구나. 거기다 박유진의 집은 가난하고, 어렸을 때 부모를 잃고 여동생과 같이 사는 중이라…….”
헌터 협회의 데이터베이스에 있던 E급 헌터 박유진에 관한 파일.
전종원에게서 받은 그 파일을 읽으며, 하세리는 박유진에 대해 알아 갔다.
근데 알아 갈수록 하세리의 표정은 안 좋아졌다.
그도 그럴 게.
“뭐 특별한 게… 없네?”
E급 헌터, 부모님을 어렸을 때 잃고 여동생과 단둘이 사는 중.
그 두 가지 말고 박유진에 대한 특이한 점이 일절 없었다.
그리고 이건 하세리의 예상과 많이 달랐다.
“어떻게 아무 특이 사항이 없을 수 있지? 전류를 그렇게 활용하는데?”
하세리는 일렉트로 마스터들을 자주 봤지만, 박유진처럼 전류를 활용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하세리는 그런 박유진에게 관심이 갔다.
“E급인데 이런 식의 전류 활용을 보인 건 분명 재능이겠지.”
하세리는 헌터 협회에, 아니.
정확히는 자신의 편을 늘리는 데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박유진에게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전류로 자기력을 제어해, 인간 자석이 된다. 이런 일렉트로 마스터는 아마 세계 최초겠지. 게다라 자기력 제어 말고도, 만약 이런 식으로 전류를 조작할 수 있는 거면…….”
하세리는 박유진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그를 포섭하기 전에, 그녀는 박유진에 대해 보다 더 정확히 알아보고자 했다.
그의 평소 모습이 어떤지, 그의 성격이 어떤지 확인한 후에 판단을 내릴 생각이었다.
“고연대학교에 다닌다고 했고, 내일이 수요일이니까…….”
전종원이 보내 준 박유진에 관한 파일.
그 파일에 박유진이 이번 학기에 듣는 수업 시간표도 있었다.
“내일 11시에 강석우 교수의 수업을 듣네. 그럼 내일 아침 협회에 부탁해서 따로 고연대에 연락을 하면…….”
그렇게 하세리는 내일 직접 박유진에 대해 알아볼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금.
“아크라맨튤라가 지닌 독은 구하기 매우 힘든 약품으로 알려져 있죠. 그 독은 인간에게 치명적이지만, 활용에 따라서는 그 어떠한 약재보다 귀할 수도…….”
하세리는 박유진이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흐음.”
하세리는 능숙하게, 그리고 별 것 아니라는 듯 당연하게 설명하는 박유진을 바라봤다.
‘진짜 똑똑하네. 만티코어와 아크라맨튤라에 대한 건 그렇다 쳐도, 바실리스크에 대해서는 대체 어떻게 저렇게 잘 아는 거지? 특히 바실리스크의 탄생 과정은 어지간한 전문가가 아니면 알기 힘들 텐데?’
스물은 어리다면 어린 나이였다.
저 어린 나이에 몬스터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아는 박유진은 하세리 입장에서 여러모로 놀라웠다.
‘저 정도면, 적어도 몬스터들에 대해서는 나보다 더 잘 알겠는데?’
천재라 불리는 만큼, 하세리 또한 몬스터들에 대한 지식이 상당했다.
하지만 박유진이 말하는 걸 본 결과, 하세리는 직감했다.
자신보다 저 남학생이 몬스터에 관한 지식이 훨씬 많을 거라는 걸 말이다.
‘성격이나 인성적인 것들을 다 제쳐 두고, 이 정도면 바로 협회에 데려오는 게 좋겠는데? 전류를 활용하는 법을 다른 일렉트로 마스터들에게 알려 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여차하면 그냥 몬스터 관련 전문가로 협회에 놔두는 것도 괜찮은…….’
하세리가 속으로 이런 생각들을 하는 사이.
“박유진 학생. 그럼 천둥새에 대해서도 혹시 알고 있나요?”
“알고는 있죠. 근데 교수님. 제 기억이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이 교재에 천둥새에 대한 내용이 없던 걸로…….”
“알면 한 번 대답해 보세요. 박유진 학생이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하거든요.”
강석우는 억지로나마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그의 눈을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강석우는 박유진이 실수하기만을 노리고 있었다.
그가 실수하는 순간, 바로 지적을 하려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강석우의 바람과는 달리, 박유진은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미국 애리조나주의 게이트에서 최초로 나왔던 몬스터죠. 번개를 날릴 수 있는 힘을 지닌 몬스터이고, 동시에 날씨까지 일부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서 야외에서 상대하면 안 되는…….”
주변에서 놀라는 반응들, 그리고 살짝 인상을 쓰는 강석우까지.
하지만 박유진은 그런 반응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천둥새에 대한 설명을 계속했다.
설명하며, 박유진은 동시에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따 유나랑 같이 옷 가게라도 들릴까? 이때쯤에 유나가 키가 자라서 몇 벌 사 주는 게, 아아. 그리고 조만간 학원도 알아볼까? 유나 전에 학원 다니고 싶다고 내게 말한 적이…….’
대학교 수업이나 주변의 반응.
이런 것들보다 박유진에게 있어 그의 여동생이 훨씬 중요했다.
하지만 박유진은 모르고 있었다.
“흐으음. 재밌네. 아주 재밌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하세리의 눈빛이 순간 위험하게 빛났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