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 * *
‘아흐, 저 미친 아저씨. 사람 X나 귀찮게 하네.’
‘몬스터의 생태’는 11시부터 1시까지 하는 두 시간짜리 수업이었다.
근데 강석우, 저 미친 아저씨는 그중 한 시간을 내게 소비했다.
내가 계속해서 모범 답안들만 대답하자, 강석우는 눈으로 나를 욕하며 이내 포기했다.
그리고 남은 한 시간 동안 강의를 진행했다.
‘그나저나 다 아는 내용들밖에 없네.’
오늘 진행한 수업은 늑대인간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그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이해했다.
아니, 그냥 이미 알고 있던 내용들뿐이었다.
‘회귀하기 전에는 강석우. 저 인간의 수업 내용이 1도 이해가 안 갔었는데 말이야.’
확실히 15년 동안 몬스터를 수천, 수만 마리를 잡은 게 도움이 된 것 같았다.
뭐, 아무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할게요. 그럼 다음 수업 때 뵙도록 하죠.”
강석우는 교재를 덮으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그러면서 그는 잠시 나를 째려봤으나, 말 그대로 잠시였을 뿐.
강석우는 별말 없이 강의실을 떠났고, 학생들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어서 가 보자.’
교재를 가방 안에 대충 넣으며 나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바로 뒤에도 수업이 있던 터라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근데 다음 수업은 4시에 끝나고 유나와는 2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흐음. 그냥 듣지 말고 지금 출발할까?’
학교에서 집까지 가는데 대략 30분 정도 걸렸다.
지금이 12시 50분이었고, 2시까지 유나네 학교에 가려면 지금 출발하는 편이…….
“박유진 씨. 오늘 이렇게 또 뵙네요.”
“…하세리 헌터님.”
강의실 밖으로 나가려던 중, 내 앞에 익숙한 붉은색 머리가 나타났다.
“그러게요. 어제 뵈었는데, 오늘도 ‘우연히’ 뵙게 됐네요.”
나는 일부러 ‘우연히’라는 단어를 강조해서 말했다.
그리고 하세리는 나의 그러한 강조를 알아차린 듯한 표정이었다.
“네. 어쩌다 보니 또 뵙게 됐네요. 아, 맞다. 그리고 어제 신영중학교에서 있던 일 말인데요. 어제 박유진 씨의 활약 덕분에 많은 분들이 다치는 걸 막을 수 있었어요. 마음 같아서는 이에 대한 보상, 원하신다면 협회뿐만 아니라 서울시에서도 따로 상을 드리는 게 가능할 거 같은데, 혹시 오늘 수업 전부 끝나시면 저와 같이 협회에…….”
“제가 오늘 선약이 있어서, 같이 가는 건 힘들 거 같네요.”
방금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나는 이따 유나와 같이 장 보러 가기로 약속했었으니 말이다.
“아아, 그, 그런가요?”
하세리는 나의 거절은 예상 못 한 건지, 상당히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하세리라면 그럴 만도 했다.
‘회귀 전에 만났던 하세리도, 내가 거절할 때마다 저 얼굴이었지.’
상당한 위상을 지닌 헌터다 보니, 보통은 하세리의 제안에 거절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당당히 하세리의 부탁이나 제안을 거절했었고, 덕분에 하세리의 당황한 표정을 자주 감상했다.
“아, 네.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죠. 그, 으음, 그건 그렇고. 아까 수업 때의 모습을 인상 깊게 봤어요.”
“수업 때의 모습이라면…….”
“강석우 교수님의 질문에 전부 대답하던 거요. 몬스터들에 대해 상당히 잘 알고 계시더라고요.”
“아아, 그거요?”
그나저나 하세리에게 존댓말을 쓰는 게 어색해 죽겠네.
이 누님과는 서로 욕하며 몇 년을 보냈는데, 하루아침에 이렇게 정중하게 말하려니 적응이 안 됐다.
‘근데 그건 그렇다 치고. 이 누나가 이런 식으로 갑자기 내게 말을 거는 건…….’
아까 수업 때 인상 깊게 봤다는 내 모습.
그러니까 강석우의 질문에 내가 전부 대답하던 것.
게다가 하세리는 어제 분명 내가 전류로 쇠사슬을 다루는 것을 봤었을 거다.
‘전류를 그런 식으로 활용하는 건 내가 세계 최초였지. 그리고 하세리는 그걸 모를 리가 없어.’
그렇다면 하세리가 내게 이렇게 접근해 온 이유는 꽤 뻔했다.
“…하세리 헌터님.”
“네?”
“오늘 이 학교에 갑자기 오셔서, ‘우연히’ 제가 듣는 수업에 참관해 ‘우연히’ 저를 만난 거.”
“…그게 왜요?”
“그거 진짜 우연인가요? 아니면 하세리 헌터님께서 무언가 노리는 게 있던 건가요?”
“…후훗. 너무 티 나기는 했네요.”
하세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내게 말했다.
“솔직히 말할게요. 어제 전류로 쇠사슬을 다룬 거, 그거 전류로 자기력을 조종해서 한 거 맞죠?”
“비슷한 거죠.”
“그런 식으로 전류를 다루는 일렉트로 마스터는 본 적이 없어요. 게다가 만약 박유진 씨가 전류를 보다 다양하게 활용한다면, 박유진 씨의 존재 자체가 헌터계에 큰 파장을 불러올 거에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회귀하기 전, 내가 온갖 방법으로 전류를 활용하자, 전 세계의 일렉트로 마스터들은 나를 따라 하려고 온갖 난리를 다 쳤다.
하지만 결국 내 수준을 따라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기다 아까 박유진 씨는 몬스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더라고요. 근거는 없지만, 박유진 씨가 몬스터 관련 분야에서 엄청난 전문가일 거 같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뭐, 좋은 말씀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결국 하고 싶으신 말씀이 정확하게 무엇이죠?”
나는 하세리에게 질문했지만,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애초에 이 누님은 이익을 따져 가며 인간관계를 만들던 사람이니까.’
이익, 그러니까 헌터와 관련된 이익 말이다.
하세리는 자신에게 이익이 없다면 인간관계를 잘 생성하지 않았다.
“저는 박유진 씨를 헌터 협회에 영입하고 싶습니다. E급 헌터시지만, 엄청난 재능이 있다는 걸 확인했거든요. 그리고 저는 박유진 씨와 같은 훌륭한 인재를 놓치고 싶지 않아요.”
역시.
하세리는 내 예상 그대로의 답을 했다.
‘뭐, 보통이라면 헌터 협회에 들어가는 게 맞지.’
헌터 협회의 일원이 되는 것.
그것도 그 하세리가 직접 스카우트해 온 것.
보통 이 제안을 거절할 사람은 없을 거다.
그도 그럴 게, 헌터 협회에 입사하는 건 사실상 인생의 꽃길이 펼쳐진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게다가 무엇보다 하세리라는 연줄이 생기는 거니까.’
이런 것들만 봤을 때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회귀한 내 입장에서는 달랐다.
“그러니 나중에 시간 되시는 날에 저와 같이…….”
“하세리 헌터님. 말씀은 고맙지만, 저는 아직 헌터 협회에 들어가기에는 실력이 많이 부족한 거 같습니다.”
나는 최대한 정중히 하세리에게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하세리와 당장 인연을 맺는 건 절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최소한 5년 후, 그러니까 하세리의 가족 문제가 전부 해결된 뒤에 하는 편이 좋았다.
“무, 무슨 말씀이시죠? 박유진 씨, 저는 실력적인 측면이 아니라, 박유진 씨가 가진 그 재능과 몬스터에 관한 지식을 높게 평가한 거예요. 그러니 저와 같이 가시면 그 두 분야에서 꽃을 피울…….”
“말씀은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 재능을 혼자서 꽃피우고 싶네요. 남의 도움 없이, 제 혼자서요.”
나는 적당히, 그리고 최대한 정중하게 거절 의사를 다시 표했다.
“아아. 그, 그런가, 요. 그, 그렇군요.”
…아니, 거절 한 번 당했다고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건 뭐야?
물론 이 누나가 거절을 거의 안 당하는 편이라고는 하지만, 한 번 거절 당했다고 이러는 건 대체…….
‘아니야. 마음 강하게 먹자.’
하세리가 울 것 같은 표정을 짓자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단호해야 했다.
한순간의 정 때문에 미래를 망치고 싶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네, 그럼 하세리 헌터님. 제가 이제 바로 또 수업이 있어서 그런데, 이만 먼저 가 봐도 괜찮…….”
나는 당연히 하세리가 그냥 나를 보내 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하세리는 아직 포기한 눈빛이 아니었다.
오히려 무언가에 꽂혔을 때 보이던 눈빛.
회귀하기 전, 하세리가 내게 자주 보였던 그 눈빛이었다.
“혹시 다음 수업, 실전 전투라는 수업 맞죠?”
“네? 아아, 네. 맞는데, 그걸 어떻게 알고 계신…….”
“희나 언니가 하는 수업인가요?”
“…네, 뭐. 이희나 교수님의 수업은 맞는데.”
“알겠어요.”
뭐야, 이희나 교수와 하세리가 아는 사이였나?
이희나 교수도 꽤 젊은 교수인 건 맞았다만, 아니, 그보다.
‘이 누나는 또 왜 눈을 반짝이는 거야?’
방금 말했듯, 하세리는 현재 무언가에 꽂힌 눈빛이었다.
내 경험상, 이런 식으로 눈에 불이 켜진 하세리는 무언가 위험했다.
‘…별 것 아니겠지.’
회귀한 지 이제 이틀 됐는데, 벌써부터 뭔 일은 없을 듯했다.
물론 어제, 그러니까 회귀 첫날부터 몬스터들과 싸우기는 했지만, 그보다 더한 일은 없을 듯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 실전 전투 】
“자, 다들 모였지? 그럼 바로 수업 시작한다!”
실전 전투.
다른 수업들에 대한 기억은 애매했지만, 이 ‘실전 전투’라는 수업은 확실히 기억했었다.
아니,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간단해! 싸우고, 싸우고, 싸우는 거다! 나 출석 안 부르는 거 알지? 그냥 내 기억에만 강렬히 남으면 된다! 그게 출석이니까! 알고 있지?!”
그래, 이희나 교수.
아주 저돌적인 분이라 내 기억에 남았었다.
강의실에서 단 한 번도 수업을 안 하던 교수.
허구한 날 학생들을 야외, 또는 대학교 체육관에 불러 전투나 치르게 하던 교수.
평가 방식이 오직 전투 결과, 그것 딱 하나였다.
‘나를 여러모로 굴렸던 분이라 더 기억에 남기도 했지.’
강석우는 학생을 차별하던 사람이면, 이희나는 그 정반대였다.
모든 학생을 차별 없이 똑같이 대했다.
그래, 차별 없이…….
‘박유진! 일어서! 그것 맞고 쓰러지면 되겠냐?’
‘몬스터들은 그것보다 더 빠르다! 이것도 반응 못 하면 너는 현장에 나가자마자 죽는 거야!’
‘못 피하겠다고?! 알아서 피해! 못 피하면 죽는다 생각하고 피하라고!’
…내게 여러 가지 PTSD를 남긴 분이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이 수업, 일단 어떻게든 빠지는 게 좋을 거 같은데.’
1시부터 4시까지 진행되는 ‘실전 전투.’
유나와 2시까지 만나기로 했던 터라, 약속 시간에 맞추려면 이 수업은 처음부터 빠져야 했다.
그래서 원래는 그냥 이 수업에 아예 모습을 안 보일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체 휴강 안 하기로 유나와 약속했고, 애초에 그 약속이 아니었어도 나는 올 운명이었다.
그게 무슨 뜻이냐면…….
“아, 그리고 시작하기 전에. 오늘 갑자기 귀한 분이 오셨거든. 그분이 우리 수업을 구경할 거야. 자, 하세리! 앞으로 나와 봐! 적어도 학생들에게 자기소개는 해야지!”
“언니가 말 안 해도 할 생각이었어.”
학생들 앞으로 걸어 나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는 하세리.
저 붉은 머리 때문에 결국 이 수업에 반쯤 끌려오게 됐다.
나랑 같이 이희나 교수 수업에 가자고 한 하세리 때문에, 조용히 이 학교를 빠져나가고 싶어도 못 빠져나갔을 터였다.
“근데 세리야. 너 갑자기 왜 내 수업에 왜 온 거냐? 오늘 강석우 교수님? 그분 수업에도 참관했다고 들었는데, 내 수업에는 갑자기 왜?”
“…그냥. 언니 수업에서 보고 싶은 게 하나 생겼거든.”
“보고 싶은 거? 네가?”
“왜?”
“으음, 하기야. 인재 발굴도 네가 하는 일 중 하나였지. 그럼 여기서 보고 싶은 거라면, 네 눈에 들어온 학생이 있다는 거지?”
모여 있는 학생들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이희나와 하세리.
학생들은 그 두 여자를 재밌다는 듯이 구경했지만, 나는 전혀 관심 없었다.
나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였다.
‘유나에게 못 간다고 연락하…지는 말자. 기껏 회귀해서 유나랑 장 보러 가는 건데 이딴 수업이 뭐가 중요하냐?’
유나를 보러 가는 것이 내 유일한 관심사였다.
그러기 위해 이희나 교수에게서 몰래 이곳을 벗어나야 했는데…….
‘근데 이희나 교수의 눈에서 벗어나도, 감각에서는 못 벗어나.’
이희나.
내가 매우 높게 평가하는 헌터 중 하나였다.
지금은 고연대학교의 교수였지만, 대규모 몬스터 사태가 터진 후.
그녀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헌터가 되었다.
‘짐승과도 같은 여자였지.’
아니, 짐승보다 더한 여자였다.
특히 이희나의 감각.
지구의 모든 생명체보다 훨씬 뛰어난 그녀의 감각은 내가 결코 따라잡을 수 없었다.
‘능력이 폴리모프였나? 아무튼 짐승 같은 게 아니라, 진짜 짐승으로 변했지.’
능력의 범용성이 워낙 뛰어나, 온갖 현장에 불리던 헌터.
거기다 이희나는 변신을 하지 않아도 어지간한 동물들보다 감각이 뛰어났다.
‘내가 몰래 빠져나가려는 걸 어떻게든 눈치채겠지.’
회귀하기 전의 나는 최고의 암살자라 불렸다.
하지만 그랬던 나도 이희나 근처에 몰래 다가갈 수 없었다.
‘사실상 암살이 불가능한 대상이었지.’
그녀의 청력과 후각, 그리고 그 외의 모든 감각이 하나 같이 뛰어났다.
그래서 이희나를 상대로 무언가 몰래 하는 건 힘들었다.
회귀하기 전에도 못 했는데, 그때보다 훨씬 약해진 지금의 내가 할 수 있을 리가…….
“그래서 보고 싶은 학생이 누구냐? 말만 해.”
“근데 언니. 내가 이런 식으로 언니 수업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냥 나 없는 셈 치고 평소대로…….”
“괜찮으니까, 누군데? 걔가 싸우는 걸 보고 싶어서 여기 온 거잖아? 맞지?”
“그렇긴 한데…….”
“어서 말해 봐.”
“그러니까…….”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 짧은 순간 동안 하세리는 내 쪽을 바라봤고, 나 또한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1초도 안 되는, 아니.
거의 0.3초?
찰나의 순간 동안 눈을 마주쳤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이희나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쟤구나? 맞지?”
“어어…….”
“박유진! 나와 봐! 하세리 헌터님이 널 지목하셨다!”
체육관 모인 약 30명의 학생들.
그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향했다.
‘…X발.’
일이 쉽게 끝나지는 않을 거라고, 나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