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 * *
이민아.
그녀의 아버지는 ‘용혈’ 길드의 길드장, 이진성이었다.
그리고 이진성은, 이민아를 강하게 키웠다.
강함만이 전부라고 그녀를 세뇌했다.
그 결과, 이민아는 이진성이 원하는 대로 자랐다.
강자만을 존중하고 약자는 무시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덕분에 이민아는 박유진을 좋게 볼 수 없었다.
‘꼴에 헌터라고 나대는 E급.’
최소 D급 이상은 되어야 헌터를 할 수 있다는 게 이민아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박유진은 E급이면서 이민아와 같은 대학에 들어왔다.
‘뭔 이상한 전형으로 겨우겨우 들어왔으면서 학교도 제대로 안 다닌다고 하고, 하여튼…….’
이민아는 박유진을 한 번쯤 밟아 주고 싶었다.
박유진이 자신의 주제를 파악할 수 있게끔, 헌터는 E급 따위가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끔.
이민아는 벼르고 있었고, 오늘 그 기회가 왔다.
‘내가 이기겠지.’
이민아는 자신이 박유진에게 패배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체급의 차이부터 능력의 상성까지, 전부 이민아가 우위였다.
이민아는 그저 박유진을 어떻게 가지고 놀지, 그를 어떻게 사람들 앞에서 밟아 버릴지만을 고민했다.
하지만 그건 이민아의 실수였다.
“주먹을 어디에 휘두르는 거냐?”
“언제 내 뒤로…….”
“또 허공에 휘두르네.”
“크악?!”
이민아부터 시작해 이희나와 하세리, 그리고 둘의 대련을 구경하는 학생들까지.
모두 눈앞의 광경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너 대체 내 시야에서 어떻게 사라지는…….”
“이게 짬밥이라는 거야, 인마.”
“아악!”
이민아의 관자놀이를 단검 손잡이로 찍어 버린 박유진.
이민아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반격했으나, 그녀의 공격은 박유진에게 닿지 않았다.
왜냐하면 박유진은 이민아의 시야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뭐하냐니까?”
“끄악!”
이민아의 시야 밖에서 나타난 박유진은 단검으로 그녀의 허벅지를 베었다.
이민아는 바로 반격을 시도했으나 박유진은 또다시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뒤, 박유진은 이민아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마법인가? 아니, 마법은 아니야. 마법의 기운은 안 느껴져.’
헌터들 중 마법을 쓰는 자들도 있었다.
이민아는 처음에는 마법이라 의심했다.
하지만 마법 특유의 기운이 안 느껴져, 이민아는 자신의 추측이 틀렸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이템을 쓰는 건가? 근데 무슨 아이템을 쓰는 거 같지는…….’
반격하려고 하면 시야에서 사라지는 박유진.
이로 인해 이민아는 박유진에게 타격을 못 주고 있었다.
“빨리 좀 끝내자.”
박유진이 이민아의 허리에 칼날을 휘두르며 말했다.
“나 약속 시간에 늦으면 안 되거든.”
* * *
‘빠르기는 빠르네.’
확실히 B급은 맞는지, 힘과 속도가 엄청났다.
그중 힘은 내가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이민아의 주먹을 한 대라도 맞았다가, 나는 바로 골로 갈 게 뻔했다.
물론 힘의 차이는 그렇다 쳐도…….
‘속도의 차이는 대처할 방법이 많지.’
방금 말했듯, 이민아는 빨랐다.
하지만 나는 더 빠른 적들을 상대했었다.
“이 개새끼가 어디를, 아악?!”
“근데 너, 어지간히 튼튼하기는 하구나.”
이민아의 턱을 향해 주먹을 날렸으나, 이민아는 살짝 휘청거릴 뿐.
오히려 내 주먹이 더 아플 지경이었다.
‘B급이면 기본적인 신체 능력 자체가 좋을 테니까.’
하지만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기에, 딱히 당황스럽지는 않…….
“너,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
“음?”
“그거 어떻게 하는 거냐고! X발, 내 시야에서 갑자기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거 말이야!”
“아, 그거? 별것 아닌데?”
시야에서 사라졌다 갑자기 나타나는 것.
별것 아니…라고 하기에는 애매했다.
그도 그럴 게, 이 기술을 완벽히 터득하는 데 몇 년이나 걸렸으니까.
‘간단한 기술이기는 해.’
이 기술에 명칭은 없지만, 굳이 만들자면 ‘시야 벗어나기’라 할 수 있었다.
시야 벗어나기.
말 그대로 적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상대의 시야 범위를 확인한 후, 상대가 뭘 하기도 전에 그 시야 밖으로 몸을 던진다.’
내가 15년 동안 밥줄로 써먹은 기술 중 하나였다.
물론 적의 시야를 완벽히 파악해야 쓸 수 있는 기술이라 실제 전투에서 활용하는 것이 꽤 어려웠다.
하지만 난이도가 높은 만큼, 완벽히 터득하면 그 밥값은 했다.
‘게다가 나는 이 기술을 진작에 마스터했지.’
이 기술 하나로 이민아를 상대로 버티고 있었다.
B급과 E급의 체급 차이와 능력의 불리한 상성을 이겨 내면서 말이다.
“너 또 어디로 사라진, 크억?”
이 ‘시야 벗어나기’와 내 15년간의 경험.
그 둘 덕에 이민아를 농락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두 요소 외에도…….
‘아직 전투 경험이 많이 없나 보네.’
이민아의 움직임이 너무나 단조로웠다.
눈 감은 채로 싸워도, 이민아의 움직임을 예측해 싸울 수 있을 정도였다.
뭐, 눈 감고 싸우는 건 다음에 해 보는 걸로 하고…….
‘어디 보자, 시간이…….’
나는 이민아의 공격을 피하며 체육관의 벽에 걸린 시계를 슬쩍 확인했다.
1시 23분.
2시까지 유나에게 가려면 이 대련을 이제 빠르게 끝내야 했다.
‘이민아에게 유효한 타격을 주는 방법, 딱 하나 있지.’
그 방법 자체는 매우 단순했다.
챙―!
이민아가 날린 주먹을 오른손에 든 단검으로 흘려 냈다.
그런 후, 왼손에 전류를 불러낸 뒤.
“우웁?! 야! 무하논 짓…….”
그 왼손을 그대로 이민아의 입에 넣었다.
내 손이 조금 큰 편이라 손가락 몇 개만이 이민아의 입속으로 들어갔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야! 무하논 지시, 크아아아악!”
이민아의 입속으로 전류를 흘려보내자, 이민아는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그래. 이 방법이 유일했지.’
내가 A급이었을 시절이면 모르겠으나, 한낱 E급의 전류로는 이민아에게 타격을 못 줬다.
적어도 신체의 외부에는 피해를 못 줬다.
‘신체의 내부는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니까.’
이민아의 피부에 내 전류가 안 통했지만, 그녀의 신체 내부에는 통했다.
그걸 깨달은 후, 이민아와 대련할 때마다 그 점을 노렸다.
내 손을 신체 안쪽, 그러니까 주로 입이나 코, 때로는 귀 안에 넣은 뒤 전류를 흘려보내면 내 승리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내 승리지.’
나는 전류를 조금 더 이민아의 내부로 흘려보낸 후, 손을 그녀의 입에서 빼냈다.
이민아는 잠시 휘청이더니, 이내 눈이 뒤집히며 쓰러졌다.
“…별 것 없네.”
A급에서 E급으로 돌아왔지만, 지난 15년간의 경험과 기술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이민아가 아직 미숙하다 해도, 그녀는 B급.
B급 헌터를 이긴 걸 보면, 내 실력이 지금 어느 정도인지 대략적인 척도를…….
“X발. 으윽, 야. 너, 어, 어디 가냐?”
이희나 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이민아가 눈을 뜨며 몸을 일으켰다.
“아, 아직 안 끝났어. 내, 내가 너 같은 것 따위에게 질 리가 없는…….”
“…내가 약해지기는 했구나.”
나는 내 왼손에 흐르는 전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회귀하기 전이었으면 단번에 기절시켰을 텐데, E급 시절로 돌아온 탓에 전류의 위력이 생각만큼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뭐, 상관없었다.
“크억!”
내게 달려드는 이민아를 가볍게 피한 뒤, 단검 손잡이로 그녀의 턱을 세게 쳤다.
그런 후, 왼손을 또다시 그녀의 벌려진 입에 넣었다.
“끼아아악!”
감전당하자, 이민아는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그녀가 쓰러지는 걸 확인하며, 나는 시계를 다시금 바라봤는데.
‘1시 25분.’
이제 진짜 가 봐야 했다.
그러니 이희나에게 말한 뒤…….
“어, 어딜 가려고. 아, 아직 안 끝났어. 나 너에게 지고 싶지 않…….”
“…빨리 끝내자.”
나는 한숨과 함께 다시 한번 이민아의 주먹을 피했다.
* * *
“희나 언니?”
“응?”
“박유진, 진짜 E급 맞는 거겠지?”
“…일단 서류상 E급은 맞아.”
이희나는 하세리와 함께 이민아와 싸우는, 아니.
이민아를 농락하는 박유진을 바라봤다.
“흐음, 박유진. 쟤 저렇게 잘 싸웠나? 분명 지난주까지만 해도 D급 상대로 겨우 버티던 녀석인데, 오늘 갑자기…….”
“언니, 저건 잘 싸우는 정도가 아니야.”
하세리는 박유진을 자세히 바라봤다.
이민아의 시야에서 정확하고 빠르게 벗어나는 움직임도 대단했지만…….
‘뭔가 연륜이 느껴지네.’
아직 20살도 안 된, 그것도 하세리 본인보다도 어린 학생이었다.
근데 그런 박유진에게 연륜이 느껴지자, 하세리는 박유진에게 더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확실해. 분명 나중에 크게 될 인재야.’
하세리는 박유진을 어떻게 끌어들일지 고민했다.
하세리의 본능이 박유진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세리가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던 중.
“저 이제 가 봐도 될까요?”
박유진이 이희나와 하세리 앞으로 걸어오며 입을 열었다.
“대련 끝났습니다.”
박유진은 자신의 뒤쪽을 가리켰다.
그쪽에 이민아가, 눈이 뒤집힌 채 기절해 있었다.
“…박유진.”
이희나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고 했지?”
“네, 최근에 일이 있었죠.”
“오늘 갑자기 잘 싸우게 된 것도, 그 변화와 관련 있는 거냐?”
“…없다고는 말 못 하죠.”
박유진은 잠시 망설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이제 가 봐도 되죠? 제가 이민아를 이기면 보내 준다고…….”
“솔직히 네가 이길 줄은 몰랐어.”
이희나는 체육관 중앙에 쓰러져 있는 이민아를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E급이 B급을 이기는 건 불가능하… 아니, 불가능하지는 않지. 온갖 수단을 다 끌어들이면 가능하니까. 하지만 그것도 쉬운 건 아니고, 심지어 너는 순수한 정면 승부에서 이긴…….”
“교수님.”
이희나의 말이 길어질 거 같아 보이자 박유진은 재빨리 그녀의 말을 끊었다.
“가 봐도 될까요?”
“내 수업 도중에 빠져나간다는 게 마음에 안 들지만, 약속은 약속이니까. 대신 박유진, 너 다음 수업 전까지…….”
“가 보겠습니다.”
이희나의 말을 또 끊은 뒤, 박유진은 도망치듯 체육관 출구로 향했다.
“…세리, 네가 왜 박유진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건지 알 거 같다.”
“솔직히 내가 박유진에게 관심을 가진 건 전투 관련이 아니었…….”
“이제 전투 쪽으로도 관심이 생겼잖아, 안 그래?”
“…그렇기는 하지.”
붉은 머리의 헌터는 굳이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흐음, 그래도 갑자기 저런 모습을 보여 주니까 많이 당황스럽네. 다음 수업에는 내가 직접…….”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박유진은 내가 데려갈 거니까 괜히 건들지 마.”
하세리는 나름 진지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희나는 그런 하세리를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봤다.
“으휴, 야. 30살이 다 되어 가면서 유치하게 그게 뭐냐?”
“뭐 어때? 내가 박유진에게 먼저…….”
“알아서 해라, 알아서 해. 나는 동생이 반한 남자를 뺏는 취향 없으니까.”
“반한 게 아닌…….”
“늬예, 네.”
능글스럽게 웃으며, 이희나는 체육관 중앙에 쓰러진 이민아 쪽을 향해 다가갔다.
“아주 제대로 기절시켜 놨네.”
이희나는 이민아 곁에서 몸을 낮추며, 그녀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전류로 딱 기절할 정도의 피해만 입혔어. 그 이상의 부상은 보이지 않아.’
박유진은 자신의 능력을 매우 섬세하게 조작했다.
이희나가 아는 헌터들 중, 전류를 이렇게 섬세하게 다루는 사람은 몇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박유진을 다시 이곳에 부르고 싶었지만, 이희나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몸을 일으켰다.
“자! 다들 다시 내 주위로 모여 봐. 수업 계속해야지!”
박유진도 박유진이었지만, 이희나는 일단 교수였다.
그녀는 다시금 학생들을 불러 모아 수업을 시작했다.
“몇 명은 여기 이민아를 교내 병원 쪽으로 데려가 줘. 아, 그리고 오늘 하세리가 왔잖아? 내가 특별히 너희에게 하세리와 붙어 볼 기회를 줄게!”
“언니? 나 지금 박유진을 따라갈 생각이었…….”
“야, 너 내 성격 몰라? 내가 공짜로 널 내 수업에 참관하는 걸 허락해 줄 거라 생각했어?”
“그건 무슨…….”
그렇게 이희나를 중심으로 다시금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수업을 탈출한 박유진은, 빠르게 달리며 고연대학교의 교문을 지나고 있었다.
* * *
“…또 늦게 오네.”
오후 2시 4분.
박유나는 집의 현관에 선 채 작게 중얼거렸다.
“연락 주기로 했으면서.”
박유나는 교문에 등을 기댄 채, 살짝 서운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박유나의 오빠, 박유진.
그는 어제부터 여러모로 이상했다.
일어나자마자 눈물을 흘린 것부터 시작해, 의미 모를 행동과 말들.
거기다 어제 리저드 라이더들에게서 구해 준 그 모습은, 박유나가 알고 있던 박유진과는 많이 달랐다.
‘뭔가를 숨기고 있는 건 확실해.’
박유나는 박유진이 거짓말을 하면 바로바로 알아차리는 편이었다.
그런 그녀의 시선으로 봤을 때 지금의 박유진은 수상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도 그럴 게…….
‘가족이니까.’
박유진은 어렸을 때부터 박유나를 지켜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박유진은 박유나를 소중히 대했고, 박유나 또한 그만큼 박유진이 소중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겠지.’
이상하게 행동했지만, 박유나는 자신의 오빠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체 언제 오는 거냐고?”
그것과 시간 약속은 별개의 문제였다.
“벌써 2시네.”
시간은 흘러, 2시 10분.
최근 박유진이 약속 시간에 한 시간이나 늦은 적이 있던 터라, 10분은 박유나에게 그리 길게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박유나가 서운한 건 박유진이 늦어서가 아니었다.
‘늦을 거 같으면 연락을 달라니까.’
등교하기 전에 그렇게 강조해서 말했음에도 박유진에게서 온 연락이 없었다.
자신의 말을 무시한 것 같은 기분이 든 탓에 박유나는 이유 모를 서운함이…….
“헉. 후우우. 야, 미안. 오래 기다렸냐?”
“…응?”
속으로 박유진에 대해 생각하던 박유나는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고 박유진이 나타나자 깜짝 놀랐다.
“오빠? 언제 온 거야?”
“음? 방금 왔는데?”
“오는 소리 못 들었는데?”
“…못 들었을 수도 있지.”
박유진의 버릇 중 하나였다.
암살자이자 척후로서 활약하던 탓에, 박유진은 조용히 움직이는 것이 습관이었다.
그래서 박유나 곁으로 빠르게 달려왔음에도, 박유나는 그의 인기척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아무튼, 늦어서 미안.”
물론 박유진은 굳이 이것을 언급할 생각이 없었다.
“오래 기다렸지?”
“10분밖에 안 기다렸어. 한 시간 늦었던 것보다는 낫네.”
“…미안.”
“농담이야, 오빠.”
하지만, 이라고 박유나는 나름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늦을 거 같으면 미리 연락 달라고 했잖아.”
“그것도 미안.”
“알면 됐어.”
박유나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근데 오빠 진짜 일찍 왔네. 수업은 잘 해결했어?”
“교수님께 잘 말씀드리고 나왔다.”
“진짜지? 저번처럼 수업 도중에 탈주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그런 짓 안 했으니까 걱정 마.”
정당한 방식으로 수업을 빠지고 온 터라, 박유진은 당당했다.
“알겠어, 오빠, 알겠어. 아무튼, 장 보러 갈까?”
박유나는 신발장에서 장바구니를 꺼내며 말했다.
“3시에 세일 끝난다는 마트부터 가자.”
“그래. 어서 가자.”
이렇게 대꾸하며, 박유진은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의 여동생을 바라봤다.
회귀하기 전, 박유진이 항상 소망했던 것.
바로 다시 한번 자신의 가족과 일상을 보내는 것이었다.
“으으음? 오빠? 무슨 좋은 일 있어? 아까부터 왜 그렇게 웃으면서 바라보는 거야?”
“있어, 그런 게.”
박유진은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박유나에게 대꾸했다.
“그보다 너도 아까부터 조금씩 웃던데, 너도 뭐 좋은 일 있냐?”
“아니, 뭐, 좋은 일이 있다기보다는…….”
박유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박유진의 시선을 피했다.
“그냥, 오빠와 오랜만에 이렇게 같이 시간을 보내는 거 같아서, 뭔가 나쁘지 않다고 해야 하는…….”
“내가 그렇게 좋은 거면 그냥 말을…….”
“아아, 좀! 징그러운 소리 하지 마!”
박유나는 나름 힘껏 박유진의 팔뚝을 치며 말했다.
“그런 게 아니라 오빠가 요즘 너무 일만 해서 걱정했단 말이야. 밤 새 가면서 돈을 버니까 너무 걱정됐는데…….”
“그냥 나랑 같이 있게 돼서 좋다고 해, 인마.”
“그런 거 아니라고!”
“아, 네네.”
가족, 그러니까 자신의 여동생과의 일상.
그 일상을 다시 되찾게 된 박유진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 * *
‘흐음, 그나저나 슬슬 주말의 계획을 준비해야지.’
유나와 마트에서 장을 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이번 주 주말에 수원에 게이트가 하나 나타날 예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게이트에서 내가 회귀하기 전에 썼던 단검을…….
“오빠. 이거 살까? 집에 대파 없었잖아.”
“음? 어, 그래. 그것도 사자.”
“응, 이것도 사고, 아. 근데 돼지고기는 다음에 사자. 돈이 부족…….”
“돈은 걱정 마. 내가 다 벌어 오면 되니까.”
“…오빠. 돈이 빠듯할 거 같으면 그냥 솔직하게 말해 줘. 나 오빠가 무리하면서까지 돈 벌어 오는 걸 보고 싶지는…….”
“걱정은 고마운데, 괜찮아. 사고 싶은 거 다 사.”
“진짜 괜찮은 거지?”
“응, 진짜로 괜찮아.”
돈.
그래, 일단 돈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었다.
‘자바니아부터 먼저 구해 오자.’
어차피 돈은 헌터 일을 본격적으로 하면 많이 벌 수 있었다.
그러니 헌터 일을 하기 위한 기초 작업부터 철저하게 할 생각이었다.
‘주말에 칠보산에 게이트가 나타났었지. 그 게이트 토벌대의 짐꾼 신청은 완료됐으니, 거기에 들어간 후에…….’
이번 주 주말.
나는 회귀 후 처음으로 게이트에 갈 예정이었다.
물론 변수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거기서 내 단검을 손쉽게 획득해 올 수 있다고 확신을…….
“오빠. 집에 양파와 감자 있었나?”
“으음, 있지 않았나?”
“그런가? 몰라. 일단 사자. 세일할 때 사 놓으면 후회 안 하겠지.”
“그럼 카트에 담고 천천히…….”
“아, 맞다! 된장 안 샀다! 오빠, 빨리 와! 세일 끝나기 전에 사야 한다고!”
“천천히 좀 가, 인마.”
학교도 다니고, 여동생과 장도 보고, 이제 조만간 게이트도 가야 되고.
회귀한 지 이제 이틀이 지났지만, 벌써부터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여동생과 이렇게 함께할 수 있으니, 나는 행복하게 웃을 수 있었다.
‘어떻게든 강해지자.’
이 행복을 잃지 않기 위해 강해질 거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말에 가는 그 게이트.
거기서 원하는 걸 반드시 얻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