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게이트 토벌 시의 규칙,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국룰’에 가까운 몇 가지가 있었다.
그중 하나로 바로 지금의 상황을 들 수 있었다.
“탱커들은 앞으로 나서서 전선을 구축해! 딜러들! 너희들은 말 안 해도 알지? 버퍼들은 후방에 자리 잡고, 다친 사람들은 하나 씨에게 치료받아!”
게이트가 열리는 순간, 수많은 몬스터들이 게이트 밖으로 빠져나왔다.
튀어나오는 몬스터들을 막고 전부 죽이는 것이 게이트 토벌의 첫 번째 순서였다.
“다들 연습한 대로 해! 탱커들이 주의를 끌어 주는 동안 최대한 많이 잡아!”
몬스터들이 민간인들의 거주 지역으로 가면 일이 많이 곤란해진다.
인류는 수십 년 동안 그걸 겪었고, 그에 대한 대처법을 잘 알고 있었다.
‘게이트가 열리기 전에 대기하고, 열리고 몬스터들이 나오는 순간 바로 죽이는 것.’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튀어나오는 몬스터의 수는 엄청나게 많은 편이 아니었다.
그때 나오는 몬스터들만 다 잡으면, 그 이후로 몇 시간 동안 게이트 밖으로 몬스터들이 안 나왔다.
가끔씩 몬스터가 끊임없이 나오는 게이트가 있기는 있었지만, 그건 극도로 예외적인 경우였다.
그 증거로, 지금 내 눈앞의 게이트.
그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의 수가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몬스터들 더 안 나오지? 놓친 몬스터는 없고?”
“네, 길드장님! 더 없습니다.”
“좋아! 그럼 각자 빠르게 정비하고 바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모두 약 3분간 장비를 정비한 후, ‘카시아’ 길드의 길드장 김민호를 따라 전원이 게이트 안으로 향했다.
“박유진 씨. 제 곁에 붙어 계세요. 그리고 아까 말한 것처럼,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제게 말씀해 주세요. 알겠죠?”
“네, 알겠어요.”
대꾸한 후, 나는 주하나와 ‘카시아’의 길드원들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칠보산에 나타난 커다란 균열의 안쪽으로 말이다.
* * *
“크와와와와!”
“크르르르.”
게이트에 들어오고 약 20분 뒤.
“야! 몬스터들 뒤쪽으로 못 가게 잘 막아! 후방 라인이 무너지면 끝이야!”
“알겠어요, 길드장님!”
울창한 정글과도 같은 게이트 안에서 전투는 계속됐다.
‘역시, 게이트의 구조는 한결같네.’
나는 주변을 훑어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게이트의 내부 구조는 항상 던전, 그러니까 일종의 동굴 형태를 형성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뻥 뚫린 공간이 아닌, 벽과 천장이 있는 그런 장소였다.
다만 세부적인 모습은 게이트마다 확연히 달랐다.
당장 이 게이트만 해도 무슨 아마존과도 같은 정글이었다.
‘회귀하기 전에 가 본 던전들 중에 용암 지대, 그냥 평범한 동굴, 무슨 빙하 안. 참 다양한 곳들이 있었지.’
뭐,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이 정글 형태의 게이트.
‘내가 들은 것과 똑같네.’
내가 쓰던 단검, 자바니아.
자바니아가 발견된 던전이 바로 칠보산에 열린 이 정글 형태의 게이트라고 했다.
‘자바니아가 게이트에서 숨겨져 있던 장소는 분명…….’
자바니아를 구매했을 때 들었던, 당시에 쓸모없는 것이라 치부했던 정보들.
다행히도 기억하고 있는 그 정보들을 바탕으로, 나는 이 게이트 내부를 살폈다.
‘분명 게이트 진입 25분 후, 그 주변에 정글과 안 어울리는 대추나무가 있다고 했어. 그리고 그 나무 기둥 안에…….’
속으로 생각들을 정리하던 중.
“아악! 야! 호랑이들 달려온다! 조심해!”
“크와와와와!”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쳐 내며 전투를 이어 가는 헌터들.
여기서의 몬스터는, 정확히 말하자면 맹수들이었다.
그것도 주로 고양잇과의 맹수들 말이다.
‘이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가, 내 기억이 맞는다면 세이버투스였지.’
세이버투스, 그러니까 검치호와 닮은 맹수가 이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였다.
그리고 그 보스 몬스터와 비슷하게, 이 게이트에 서식하는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세이버투스와 같은 맹수였다.
호랑이, 재규어, 치타 등을 닮은 수많은 몬스터들이 끊임없이 달려들었다.
수십 마리의 몬스터들이 동시에 달려드는 광경이 꽤나 무섭기는 했지만…….
“다들 자리 유지해! 물러서지 마! 어차피 강한 몬스터들이 아니야!”
탱커들과 함께 전선을 유지하며 싸우는 김민호.
그리고 그의 말처럼, 이 게이트의 몬스터들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물론 어지간한 맹수들보다 강한 몬스터들이기는 했다만, 헌터들 입장에서 위협이 그닥 안 됐다.
‘이 게이트가 괜히 8급을 받은 건 아닐 테니까.’
9급보다 아주 약간 더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8급 게이트.
‘카시아’가 신생 길드는 맞지만, 고작 8급 게이트의 몬스터를 상대로 밀릴 길드는 아니었다.
“…어우.”
헌터들이 싸우는 걸 구경하던 중, 갑자기 하이에나처럼 생긴 몬스터가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손쉽게 피한 뒤 그 몬스터에게 반격하려 했는데…….
“끼엑!”
어디선가 날아온 불덩이를 맞고, 그 하이에나는 바로 산화했다.
“제 곁에 붙어 계세요, 박유진 씨.”
불덩이가 날아온 쪽을 바라보자, 마법의 발동을 마무리 짓는 주하나가 있었다.
“8급 게이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게이트니까요. 다치시면 안 되니까 제 시야 내에 계세요.”
“알겠어요.”
나는 대꾸하며 주하나 옆으로 다가갔다.
주하나는 내가 걱정돼서 그런 것이었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괜한 걱정이었다.
‘이 길드가 질 거 같지는 않으니까.’
몬스터들이 끝도 없이 달려들었지만, 헌터들은 능숙하게 그에 대처했다.
방금처럼 내 쪽으로 달려오는 몬스터들도 가끔 있었지만…….
“깨깽!”
주하나는 능숙하게 그런 몬스터들을 잡아 줬다.
길드 내의 유일한 힐러였지만, 그럼에도 공격력이 약한 건 아니었다.
‘생각보다 편하게 일을 할 수 있겠네.’
처음에 약간 걱정했지만, 몬스터들이 학살되는 모습을 보자 그 걱정이 전부 사라졌다.
아마 게이트의 토벌이 끝날 때까지 내가 다치는 일은 없을 거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밥값이나 해 보자.’
이 게이트에 온 목적은 단검을 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목적을 위해, 내가 선택한 수단이 바로…….
‘짐꾼이었지.’
나는 근처 몬스터들의 사체를 뒤적였다.
“흠, 이건 쓸만해 보이고…….”
몬스터들의 시체에서 나온 몇 가지 아이템들, 그리고 게이트 곳곳에 숨겨진 아이템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찾은 아이템들을 길드에서 지급해 준 가방 안에 넣었다.
‘짐꾼 일을 하는 것도 오랜만이네.’
짐꾼이 하는 일은 간단했다.
그냥 게이트 토벌대와 같이 들어가 헌터들이 잡은 몬스터의 사체에서, 그리고 게이트 곳곳에 보이는 아이템들을 챙기는 것.
그 일만이 전부였다.
“…여기도 있네.”
나는 근처 수풀에서 반짝이던 보석을 집어 가방 안에 넣었다.
가방, 그러니까 방금 말했듯, 내가 지금 메고 있는 이 가방은 길드에서 지급해 준 가방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짐꾼 전용 가방이었다.
생긴 건 평범한 가방이었지만, 그 안에 담을 수 있는 내용물의 한계치는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았다.
아마 내가 아는 게 맞는다면, 아마 승용차 두 대?
그 정도 무게까지 담을 수 있는 걸로 안다.
‘하지만 무게는 거의 안 줄어드는 편이라, 전투를 안 할 사람이 따로 맡아 줘야 하는 편이지.’
그래서 길드들은 게이트 토벌 전, 짐꾼들을 모집하는 편이었다.
토벌 중에 생긴 아이템들을 따로 주워 담아 줄 사람이 있으면 편했으니 말이다.
내가 지금 그 짐꾼 일을 하고 있었다.
‘적당히 하는 척하고, 자바니아나 찾으러 가야지.’
짐꾼 일을 통해 일당을 받아 가는 것도 중요했지만, 자바니아를 찾아내는 게 우선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발견되기 전에 내가 먼저 찾는 것도 중요했고 말이다.
‘기다리면서 기회를 보자.’
나는 열심히 싸우는 헌터들을 바라보며, 주위에 있던 아이템들을 보이는 대로 가방에 담았다.
* * *
“전부 고생했어! 잠시 쉬도록 해!”
게이트에 들어선 지 약 한 시간 후.
“주변 몬스터들은 다 정리된 거 같으니까, 30분 정도 여유롭게 쉬자! 하지만 몬스터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니, 최소한의 긴장은 유지하도록! 알겠지?”
더 이상 몬스터들이 안 나타나자, 김민호는 길드원들에게 재정비할 시간을 주었다.
‘게이트 내에 있는 몬스터들은 대충 다 정리한 거 같네.’
‘카시아’의 헌터들은 전부 자리에 앉은 채, 각자만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꽤 묵직해진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이제 중심부까지 거의 다 온 거 같네. 아마 조금만 더 가면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가 나오겠지. 그리고 그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리고 게이트의 중심을 무너뜨리면…….’
회귀하기 전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게이트를 심심풀이로 분석해 봤다.
아마 내 예상이 맞는다면, 이런 게이트는 분명 이 근처에서 매복 중인 몬스터가 있을…….
“고생했어요, 박유진 씨.”
“음? 아아, 아니에요. 오히려 주하나 씨와 다른 분들이 더 고생했죠.”
주하나가 다가와 내게 말을 걸자, 나는 잠시 생각을 접어 둔 채 그녀에게 대꾸했다.
“그건 그렇고, 아까 봤는데 마법 실력이 대단하시더라고요. 힐러시지만, 어지간한 딜러들보다도 화력이 좋으시던데요?”
“아아, 그건 별로 특별한 건 아니에요. 대부분의 힐러들은 기본적으로 공격 마법들을 몇 개는 배우는데…….”
그렇게 다시 한번 시작된 나와 주하나의 대화.
근데 주하나와 대화하면서 느낀 거지만…….
‘기억이 날까 말까 하네.’
주하나를 전에 어디서 만났는지, 조금씩 기억이 나는 거 같았다.
분명 병원에서 본 거 같았는데, 문제는 언제 그리고 무슨 상황에서 만났는지가 기억이 안 났다.
‘후우우, 뭐. 이건 나중에 생각하자.’
당장은 이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 말이다.
“네. 그래서 저도 원래 딜러 쪽으로 가려다가 치유 마법에 재능을 찾아서…….”
“그, 주하나 씨. 끼어들어서 죄송한데.”
나는 주하나의 말을 끊으며 입을 열었다.
“저 잠시 가 볼 곳이 있어서 그런데, 혹시 이 가방을 잠시 맡아 주실 수 있나요?”
“네? 가다니요? 이 게이트에서 어딜요?”
“아까 오는 길에 못 챙겨 온 아이템들이 있거든요. 한 다섯 개인가? 아무튼 못 챙겨 온 것들이 있어서 그것만 빠르게 다시 챙기고 오려고요.”
“아아, 그런 거라면… 근데 혼자서 괜찮으시겠어요? 제가 같이…….”
“마음은 감사하지만, 혼자 갔다 올게요. 어차피 오는 길에 몬스터들을 다 잡았으니, 위험한 건 없을 테니까요.”
“그래도…….”
“김민호 씨가 저 찾으시면, 설명을 잘 부탁드릴게요.”
주하나가 더 말하기 전에 나는 빠르게 못을 박았다.
“30분 안에 돌아올게요. 알겠죠?”
“네, 알겠는데, 그, 박유진 씨. 잠시만…….”
뒤에서 주하나가 나를 불렀지만, 나는 그녀의 외침을 무시한 채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단검, 그러니까 자바니아를 찾기에 지금보다 더 좋은 타이밍이 없었다.
‘아까 왔던 길에 대추나무가 있었어.’
나는 그 나무의 위치를 정확하게 기억해 놓고 있었다.
지금 빠르게 그 대추나무 쪽으로 가, 자바니아를 내 손에 넣으면…….
“어이, E급 친구. 어딜 그렇게 급히 가는 거냐?”
“…음?”
혼자서 걸은 지 약 3분 정도 지났을 즈음.
갑자기 남자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자바니아를 되찾는 데만 너무 집중하고 있던 탓에, 누가 다가오는지조차 못 들은 것이었다.
“E급 쓰레기면 짐꾼 일이라도 잘해야지. 갑자기 그렇게 자리를 이탈하면 안 된다고.”
“…정수민 씨. 저는 지금 그쪽과 놀 시간 없습니다.”
내 뒤를 따라온 C급 헌터를 바라보며, 나는 단호하게 내 의사를 표했다.
하지만 정수민은 그런 내 의사에 관심 없어 보였다.
“놀 시간? 내가 노는 걸로 보여? 내가 널 조지는 게 너에게 노는 걸로…….”
“정수민 씨, 딱 한 번만 말하겠습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눈앞의 이 한심한 남자를 한심하게 바라봤다.
“처맞기 싫으면 꺼지십시오. 저 진짜 시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