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처맞기 싫으면 꺼지라고? 처맞기 싫으면? 이 쓰레기가 미쳤냐?”
주먹을 든 채 내게 달려오기 시작하는 정수민.
그래도 꼴에 C급이라고, 그의 움직임은 꽤 빨랐다.
하지만 전에 이민아와 싸웠을 때처럼, 나는 더 빠른 적을 많이 상대했다.
“저는 분명 경고했습니다.”
“엇?”
정수민은 내 얼굴을 향해 빠르게 주먹을 날렸으나, 나는 그 공격을 큰 어려움 없이 피했다.
그러고는 나는 정수민의 턱을 향해 팔꿈치를 휘둘렀다.
“아아악!”
정수민은 턱을 붙잡으며 뒤로 쓰러졌다.
그래도 헌터는 헌터인지라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그의 다리가 떨리는 게 눈에 보였다.
“근데 C급치고는 몸이 많이 약하시네요.”
나는 정수민을 향해 날렸던 내 팔꿈치를 매만지며 말했다.
“E급에게 턱을 맞았다고 보통 이렇게 바로 나가떨어지지 않는데. 혹시 정수민 씨, 편법을 이용해서 등급을 억지로 올린…….”
“시끄러워!”
부들거리는 다리를 붙잡은 채, 정수민은 또다시 내게 달려들었다.
그는 이번에도 뻔한 동선으로 내게 주먹을 날렸다.
“크악!”
하지만 너무나도 뻔한 동선이었던지라, 나는 이번에도 가볍게 피했다.
피하고, 그의 정강이를 세게 걷어찼다.
“으윽?! 너, 대체 어떻게 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악?! 마법이지?! 대체 어떻게 이렇게 순간이동을…….”
“순간이동 아닙니다. 마법도 아니고. 그냥 제가 빠르고, 정수민 씨가 느린 겁니다.”
“시끄럽다고!”
정수민은 바로 다시 자세를 잡아 내게 돌진했으나, 나는 이미 그의 시야 밖으로 빠진 후였다.
“어? 뭐야? 또 어디로, 컥?!”
“솔직히 말씀해 보세요.”
“으억!”
주먹으로 정수민의 명치를 세게 치자, 그는 또다시 뒤로 나가떨어졌다.
“정수민 씨, 사실 C급 아니죠? C급이 이렇게 약할 리가 없는데……. 등급 검사하는 사람에게 뒷돈을 먹이고 등급을 속인 것 아닌가요?”
“너, 너! 너 E급 아니지? E급 따위가 어떻게 이런 움직임을…….”
“저는 E급 헌터 맞습니다. 그리고…….”
“커억!”
“정수민 씨는 E급 따위에게 개처럼 맞고 있는 C급 헌터, 아니. C급은 확실히 아닌 거 같네요.”
나는 주먹으로 정수민의 턱을, 나아가 팔꿈치로 그의 관자놀이를 적당히 세게 가격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확신했다.
정수민은 잘해 봤자 D급.
그것도 아슬아슬한 D급이라는 것을 말이다.
“으윽?! 크악!”
“쓰러져 계세요.”
나는 정수민의 다리를 걷어차 그의 중심을 무너뜨렸다.
“이, 이 새끼가, 네가 이러고도… 어? 왜, 왜 다리에 힘이…….”
“방금 관자놀이와 턱을 제대로 맞아서 바로는 못 일어날 거에요.”
나는 추한 모습으로 쓰러진 정수민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헌터 일을 열심히 하기 위해 대련을 많이 하고 다녔다면, 그 정도는 보통 바로 알아차리는…….”
“닥쳐! 네가 뭘 안다고 내게 훈수를, 아악?!”
“아는 게 있으니까 훈수를 두는 겁니다.”
나는 정수민의 손바닥을 살짝 밟으며 말했다.
이에 정수민은 나를 사납게 노려봤다.
“X발, 다리에 힘만 다시 들어오면 너는…….”
“최소 5분 동안은 다시 못 일어설 거에요. 그러니까 괜한 짓 하지 말고, 5분 동안 그냥 편히 누워 계세요.”
“이 어린 새끼가…….”
“그리고 조언을 하나를 하자면, 노력을 좀 더 하세요.”
나를 욕하는 정수민을 내려다보며, 나름 진지하게 그에게 말했다.
“나이가 젊지는 않아 보이지만, 그래도 D급이면 가능성이 없는 게 아니에요. 저 같은 E급보다는 성장할 가능성이 훨씬 높으니까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E급 이하 헌터들의 성장 가능성은 D급보다 몇 배는 낮았다.
E급 이하로는 성장할 가능성이 태생적으로 너무나도 낮았기에, 사람들은 E급 이하부터는 헌터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하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이 악물고 그 태생적 한계를 이겨 냈지만 말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D급이었으면, 나의 성장은 훨씬 더 수월했을 터였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마음먹고 노력하시면 더 성장할 수 있을 테니, 나중에 제대로 뭐라도 해 보세요.”
“네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제 말대로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안 그러면 나중에 정수민 씨도 짐꾼 일을 하고 다니게 될지 모르니까요.”
“닥쳐! 나, 나는 C급 헌터야! 너처럼 그딴 일을…….”
“뭐, 그건 알아서 하세요.”
나는 여전히 몸을 못 일으키는 정수민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아무튼 5분 정도 있으면 다리에 힘이 다시 들어올 거에요. 그러면 또 이상한 짓 하지 말고 바로 길드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세요. 아, 그리고 이 주변에 몬스터들은 없을 테니까, 공격당할 걱정 말고 5분만 편히 누워 계세요, 알겠죠?”
“너 이러고도 무사할 거 같아! 너 기다려! 내가 널 반드시 묵사발을…….”
“아, 네네.”
나는 대충 대꾸하며 다시 가던 길을 마저 갔다.
“그리고 제발 부탁인데, 일어나면 괜한 짓 하지 말고 바로 길드원들 있는 쪽으로 돌아가세요, 제발요.”
“X발! 너 거기 서! 넌 내가…….”
그렇게 게이트 바닥에 쓰러진 C급 헌터, 아니.
자칭 C급 헌터를 뒤로한 채, 나는 다시금 내 물건을 찾으러 출발했다.
정수민을 뒤로하고, 약 5분을 더 걸은 뒤.
“이 근처라 했었지?”
나는 게이트 내에 보였던 유일한 대추나무 앞에 도착했다.
“자,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
나는 그 대추나무 주위를 잠시 서성이며 중얼거렸다.
“이 게이트에서 자바니아를 찾았던 사람의 말에 따르면…….”
나는 손을 뻗어, 나무의 가지에 맺혀 있던 대추 한 알을 뗐다.
“게이트 탐방을 하던 도중, 피곤해서 잠시 대추나무 밑에서 쉬고 있었다. 그러다가 당이 떨어져서, 나무에 있던 대추를 하나 따서 입에 넣었다.”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린 뒤, 손에 있던 대추를 입에 넣었다.
‘그리고 대추를 입에 머금은 채, 손으로 나무를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데 그렇게 나무에 손을 댄 순간, 나무 중앙에 갑자기 커다란 옹이구멍이 나타났다.’
회귀 전, 자바니아를 구매할 당시.
당시 들었던 것들을 떠올리며, 나는 손을 나무에 가져갔다.
우우웅―
그러자 나무는 진동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나무 중앙에 커다란 옹이구멍이 나타났다.
딱 사람 손 하나가 들어갈 크기의 구멍이 말이다.
“…구라였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아니었네.”
입에 있던 대추를 목 뒤로 넘기며, 나는 내 눈앞에 나타난 옹이구멍을 바라봤다.
잠시 망설였지만, 나는 이내 그 구멍 안으로 손을 뻗었다.
“호기심에 옹이구멍 안으로 손을 뻗었고, 그 구멍 안에서 무언가 잡히는 게 있었다. 그리고 그걸 꺼내 보니…….”
회귀 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중얼거리며, 나는 옹이구멍 안에 있던 물건을 붙잡았다.
그 물건을 구멍 밖으로 가지고 나오자…….
“…꺼내 보니, 단검 하나가 있었다.”
검은색 단검, 그러니까 내가 회귀하기 전 주야장천 써먹은 자바니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좋았어.”
나는 미소를 지은 채, 단검집 안에 들어 있던 자바니아를 뽑았다.
칼날의 중앙이 갈라져 있고, 칼날 길이가 30cm나 되는 단검.
내가 기억하던 자바니아의 모습 그대로였다.
“생긴 것도 그대로고, 무게도 그대로. 그리고 손맛까지 전부 내가 기억하던 그대로네.”
회귀하기 전, 그러니까 내가 죽기 직전까지 들고 있던 나의 무기.
그리고 이렇게 회귀한 후에 다시 손에 넣게 되자, 기분이 여러모로 묘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감성적인 생각은 이따가 하자.”
나는 오른손에 든 자바니아의 칼날을 왼손에 가져가, 망설임 없이 왼손의 손바닥을 베었다.
“열아홉의 주인을 거쳐 간 칼날이여.”
왼손에서 흘러내리는 피.
나는 그 피가 자바니아의 칼날 위에 떨어지게 했다.
“나를 새로운 주인으로 받아들여라.”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바니아 주위로 검붉은 기운이 잠시 나타났다.
하지만 말 그대로 잠시였을 뿐.
그 검붉은 색의 기운은 이내 사라졌고…….
“읏.”
내 왼손에 따끔한 통증이 있었다.
하지만 잠깐 따끔했을 뿐.
이내 왼손을 확인해 보니, 자바니아로 베었던 상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 손등에 검붉은 색의 낙인이 생겼다.
괴상한 모양의, 보일 듯 말 듯 한 희미한 낙인이 말이다.
“계약은 잘 맺어졌네.”
이 낙인 덕에 자바니아와의 계약이 잘 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회귀하기 전의 그때처럼 말이다.
‘뭐, 계약 안 해도 충분히 좋은 단검이기는 하지.’
어지간한 공격은 다 막는 칼날.
전에 핵폭탄급 위력의 폭발에도 형태를 유지했으니, 내구도는 이미 증명됐다.
게다가 절삭력이야 말할 것도 없고…….
“계약으로 얻는 이득도 나쁘지 않지.”
자바니아와의 계약을 통해 얻는 이점은 두 가지.
일단 자바니아는 특정 이능력의 공격을 흡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흡수한 양에 따라, 자바니아는 내 신체를 일시적으로 강화해 줬다.
그게 첫 번째 이점이고, 두 번째 같은 경우에는…….
휙―!
나는 자바니아를 게이트 안쪽으로 멀리, 그러니까 내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날 정도로 멀리 던졌다.
그렇게 자바니아가 내 시야에서 사라진 걸 확인한 후.
“돌아와라.”
내 중얼거림이 끝나기도 전에, 내 손에 자바니아가 돌아와 있었다.
다시 날아오거나 그런 식이 아닌, 단검이 순간이동 한 것처럼 내 손에 돌아온 것이었다.
“이게 제일 큰 장점이지.”
어떤 상황에서든 내 손으로 돌아오는 것.
내가 던졌든, 적에게 빼앗겼든 상관없이, 자바니아는 항상 내 손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 점 때문에 10년 넘게 자바니아를 갖고 다녔다.
“이번에도 잘해 보자고.”
내 손의 검은 단검을 잠시 바라본 뒤, 나는 이내 단검집 안에 집어넣었다.
‘이제 슬슬 돌아가자.’
단검집을 허리의 벨트에 채운 뒤, 나는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김민호가 아까 30분 쉰다고 했었으니, 지금 출발하면 아마 적당한 타이밍에 도착할 듯했다.
‘일단 가면서 아이템들 적당히 몇 개 찾아서 챙겨 가자. 일단 주하나에게 아이템들을 주우러 갔다고 온다고 말했으니까. 그리고 그것 말고도…….’
허리의 자바니아를 매만지며 머릿속의 생각들을 정리했다.
근데 그 과정에서 문득 든 생각이 하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정수민은 잘 돌아갔겠지?’
일단 근처에 인기척이 안 들린 걸 보면, 나를 따라온 거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아마 카시아 길드원들이 쉬는 곳으로 돌아갔을 터였는데…….
‘뭔 이상한 사고를 치지 않겠지?’
이유 모를 불안감이 들었다.
그리고 내 오랜 경험상, 이런 이유 모를 불안감의 열에 여덟은 맞는 편이었다.
* * *
비슷한 시각, 카시아 길드원들이 쉬고 있던 장소.
“늦게 오네.”
주하나는 박유진이 놓고 간 짐꾼 가방을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역시 같이 가는 편이 나았을…….”
“너무 걱정 마세요, 하나 씨.”
카시아의 길드장, 김민호가 그녀 곁에 오며 말했다.
“아까 보니까 되게 똑똑한 친구인 거 같더라고요. 아마 별일 없이 돌아올 거에요.”
“그렇겠죠?”
“게다가 아까 오는 길에 몬스터들을 전부 잡아 놨으니까, 박유진, 그 친구가 습격당하는 일은 없겠죠.”
“그것도 맞죠.”
“그건 그렇고, 하나 씨.”
김민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박유진이 꽤 마음에 들었나 봐요? 아까 계속 같이 다니더라고요.”
“으음, 그거야, 열심히 사는 친구인 거 같기도 해서…….”
주하나는 열심히, 그리고 항상 노력하는 인간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눈에 박유진은 좋게 보였다.
E급이면서 자신의 역할을 조금이라도 하기 위해 짐꾼에 도전한 것.
그러면서도 대학까지 다니는, 자기보다 어린 남자.
“그 친구 얼굴이 꽤 반반하게 생기긴 했는데, 설마 하나 씨에게도 드디어 봄날이…….”
“에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길드장님.”
장난스럽게 웃는 김민호와 어이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는 주하나.
두 사람은 휴식을 취하는 다른 길드원들 사이에서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근데 그러던 중.
“X발, X발, X발.”
저 멀리서 길드원 한 명이 혼자 걸어오고 있었다.
“X발, X 같은 새끼. 그딴 쓰레기가 나를…….”
“정수민 씨?”
걸어오는 남자를 바라보며 주하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갔다 오는 거예요? 그보다 얼굴에 상처가…….”
“시끄러워, 이 년아! 너까지 날 동정하는 거냐, X발!”
“정수민! 갑자기 또 왜 이러는 거야?”
주하나에게 욕하자 옆에 있던 김민호가 나섰지만.
“너도 시끄러워! 나보다 나이도 어린 게 꼴에 길드장이라고…….”
정수민은 이미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자기보다 어린, 그리고 자기보다 약하다고 생각한 E급에 손도 못 쓰고 패배하고 온 정수민.
그 탓에 정수민은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X발! 이 새끼도 저 새끼도!”
다른 길드원들 전부 정수민을 쳐다봤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은 채 욕을 외쳤다.
“하나 같이 나를 무시하고, 왜 하나 같이 내 가치를 몰라주냐고!”
이 말과 함께, 정수민은 근처에 있던 커다란 바위에 주먹을 세게 내리쳤다.
“정수민 씨! 손에서 피가…….”
“꺼지라고, 이 년아!”
주하나는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봤지만, 정수민은 그저 눈앞의 바위를 주먹으로 내리치기 바빴다.
그렇게 피 나는 주먹으로 바위를 다섯 번 정도 내리쳤을 즈음.
쿠쿠쿵―
“응?”
“뭐야?”
“가, 갑자기 땅이 흔들리는 거 같은…….”
땅에서 울리는 거대한 진동.
그리고 동시에, 정수민이 내리치던 바위의 형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평범하게 생긴 커다란 바위에 거대한 동굴이 생겼다.
“뭐, 뭐야?!”
정수민은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X발, 이건 또 뭔…….”
“크르르르.”
정수민이 내리치던 바위.
그 바위는 동굴로 변했고, 그 동굴에서…….
“크와와!”
그 동굴에서 정체 모를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