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다들 피해! 정수민! 뒤로 빠져!”
공포에 빠진 채 못 움직이던 정수민을 뒤로 끌어낸 후, 김민호는 자신의 길드원들에게 외쳤다.
“모두 전투 준비해! 탱커들! 빨리 준비해서 저 몬스터 앞으로 가! 어서!”
“저게 뭐죠?”
다리에 힘이 풀린 채 쓰러진 정수민을 치료하며, 주하나는 눈앞에 나타난 몬스터를 바라봤다.
“불을 내뿜는 검은 늑대?”
커다란 동굴로 변한, 정수민이 내리치던 바위.
그리고 그 동굴에서 나온 정체불명의 몬스터.
“나도 뭔지 모르겠, 으윽?”
김민호는 들고 있던 방패를 들어 올려, 검은 늑대가 내뿜는 불길을 막았다.
“…일단 확실한 건 약한 몬스터는 아니야. 지금까지 이 게이트에서 만난 몬스터들보다 훨씬 강한 거 같아.”
“동감이에요.”
주하나는 주변의 다친 헌터들을 빠르게 치유하며 대꾸했다.
김민호의 말대로, 갑자기 나타난 저 검은 늑대는 결코 약해 보이지 않았다.
“크르르르.”
몸길이가 약 4m, 높이가 2m는 되는 거대한 늑대.
늑대는 몸 주위에 불을 내뿜으며 카시아 길드원들을 바라봤다.
“다들 대열을 정비해! 탱커들! 나와 같이 이 늑대를 천천히 포위하는 거다! 알겠지?”
김민호는 육중한 갑옷을 입은 헌터들과 함께 거대한 늑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크르.”
“우왁? 불이…….”
“다들 조심해!”
늑대에게서 뿜어져 나온 불길 때문에 김민호와 탱커들은 당황했으나, 그들은 이내 다시 움직였다.
그도 그럴 게, 탱커들에게 그런 불꽃은 위협이 안 됐기 때문이다.
“탱커들이 주의를 끌고 있을게! 어서 공격해! 전부 총공격하면 잡을 수 있을…….”
“크와와와와!”
검은 늑대는 포효와 함께 자리에서 뛰어올랐다.
하지만 탱커들에게 뛴 것이 아니었다.
“어? 다들 조심해!”
늑대는 탱커들의 머리 위를 지나, 그들 뒤에 있던 헌터들을 향해 달려갔다.
김민호는 이에 재빨리 반응하려고 했지만…….
“끄아아아악!”
늑대는 탱커들 뒤에 있던 한 헌터를 이미 물어뜯기 시작했다.
“이수정 씨!”
주하나는 재빨리 마법을 발동해, 늑대에게 물린 헌터를 구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려는 순간, 늑대는 주하나와 눈을 마주쳤다.
“끄아악!”
“이수정 씨.”
늑대는 입에 물고 있던 헌터를 주하나의 앞으로 던졌다.
“이수정 씨. 좀만 버텨요. 제가 치료를…….”
주하나는 바로 그녀 옆에 몸을 낮춰 치유 마법을 발동하려 했다.
하지만 이수정이라 불린 헌터는 고개를 저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하나 씨, 저, 저는… 윽, 괜찮으니까 어서 피하…….”
“그게 무슨 말씀… 아.”
고개를 들자, 주하나는 이수정이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깨달았다.
검은 늑대가 주하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딜러와 버퍼들은 뒤로 빠져! 탱커들! 다시 전선을, 으아악?!”
김민호는 길드원들을 이끌고 주하나 곁으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늑대가 뿜어내는 불길이 갑자기 더욱 거세져, 근처로 아무도 접근할 수 없었다.
“으으윽, 불길이. 젠장… 아, 정수민! 주하나 씨를 어떻게든 지키고 있어! 이 불길만 어떻게 하고…….”
주하나 뒤에 넘어져 있던 정수민.
김민호는 정수민에게 주하나와 이수정을 지키라는 지시를 내릴 생각이었다.
그럴 생각이었는데…….
“으, 으아아악!”
정수민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고 있었다.
그는 다리를 삐었는지 절뚝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정수민은 그 다친 다리로 혼자 열심히 도망쳤다.
“저 X신 새끼가…….”
김민호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정수민을 바라봤다.
마음 같아서는 정수민에게 욕을 날리고 싶었지만, 김민호에게 그럴 여유가 없었다.
“주하나 씨! 좀만 버티세요. 곧 그쪽으로, 으윽?”
늑대에게서 더 강하게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그 탓에 늑대에게도, 그리고 주하나와 이수정에게 아무도 접근을 못 했다.
“하나 씨, 악. 저, 저는 버리고 가세요. 저보다 하나 씨가…….”
“안 버리고 갈 거예요.”
주하나는 피를 흘리는 헌터에게 치유 마법을 계속 써 주며, 눈앞의 늑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늑대가 달려들면, 주하나는 여차하면 마법으로 공격할 생각이었다.
“크르르르.”
늑대는 주하나를 조용히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뒤.
“화르르륵!”
늑대의 입에서 커다란 불덩이가 튀어나와, 그대로 주하나와 이수정이 있는 쪽으로 날아갔다.
“헉!”
갑자기 늑대에게서 발사된 불덩이.
그 불덩이는 매우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주하나가, 아니, 주하나 뿐만 아니라 다른 헌터들 전부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으윽.”
주하나의 코앞까지 날아온 불덩이.
주하나는 마법이라도 발동하고 싶었지만, 그럴 틈조차 없었다.
그렇게 불덩이가 그녀의 몸을…….
“…어?”
주하나는 불덩이가 자신을 덮칠 줄 알고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고통이 느껴지지 않아 눈을 떴는데…….
“…박유진 씨?”
오늘 길드의 짐꾼으로 지원 온 E급 헌터 박유진이 있었다.
특이하게 생긴 검은 단검으로 불덩이를 막는 박유진이 말이다.
“괜찮으세요, 주하나 씨?”
박유진은 주하나를 슬쩍 바라보며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 * *
‘저건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나는 눈앞의 거대한 검은 늑대를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헬하운드는 8급 게이트에서 나올 몬스터는 절대 아닐 텐데.’
지금 눈앞의 헬하운드는 6급 위험도의 몬스터.
이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인 세이버투스가 7급인 걸 생각하면, 헬하운드는 여기 있을 몬스터가 절대 아니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방금 이곳에 도착했을 당시.
카시아 길드원들이 헬하운드와 싸우는 걸 보자 여러모로 당황했다.
칠보산 게이트에 헬하운드가 있었다는 걸 회귀하기 전에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게 뭔 상황인가 싶었지만…….
‘일단 몸부터 먼저 움직였지.’
주하나가 공격당하는 걸 보자마자, 나는 생각하지 않고 일단 움직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주하나는 지켜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뭐, 어찌 됐든 저걸 쓰러뜨려야겠지.’
헬하운드가 날린 불덩이를 자바니아로 막으며, 아니.
막는 게 아니라, 불덩이를 자바니아에 흡수시켰다.
“…잘 먹어 치우는구먼.”
불덩이를 완벽히 흡수한 검은 단검.
이게 바로 자바니아가 지닌 힘 중 하나였다.
특정 이능력을 흡수해…….
‘계약자의 신체를 일정 수준 강화시킨다.’
나는 내 손등의 희미한 낙인을 바라봤다.
아주 옅었지만, 낙인은 붉은빛을 내고 있었다.
아마 방금의 불덩이로 내 신체 능력은 D급 헌터와 비슷한 수준으로…….
“방금 어떻게 하신 거예요?”
“…네?”
뒤에 있던 주하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당황했다.
“방금 저 불덩이 어떻게 막았죠? 그리고 저 단검은 못 보던 건데, 어디서…….”
“나중에 설명 드릴게요. 그리고 뒤로 피하세요.”
“네? 무슨, 어엇?”
헬하운드의 입에서 또다시 발사된 불덩이.
이번에도 빠른 속도로 날아왔으나…….
‘이런 단순한 공격은 안 통하지.’
나는 자바니아로 날아오는 불덩이를 또 막았다.
그리고 불덩이가 자바니아와 맞닿은 순간, 거대한 불덩이는 검은 칼날 속으로 흡수됐다.
“방금 그거! 방금 불덩이를 흡수한 거, 그거 어떻게 한 거죠? 혹시 박유진 씨의 능력이…….”
“나중에요. 그보다 저 헬하운드는 어디서 튀어나온 거죠?”
“헬하운드? 아, 저 늑대요?”
“네.”
“어어, 그러니까 아까 정수민 씨가 근처의 바위를 내려쳤는데…….”
주하나의 설명에 의하면 근처 바위가 동굴로 변하더니, 그 동굴에서 튀어나온 거라고 했다.
‘히든 몬스터, 뭐 그런 건가?’
가끔가다 그런 게이트가 있었다.
보스 몬스터보다 더 강한 몬스터가 숨겨져 있는 게이트들.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히든 몬스터가 나오는 경우였는데…….
‘이 게이트가 그 경우였나 보네. 그리고 그 조건을 충족시킨 건…….’
나는 근처에서 벌벌 떨고 있는 헌터, 그러니까 정수민을 슬쩍 바라봤다.
“…도움이 안 된다니까.”
회귀하기 전의 칠보산 게이트에서 헬하운드의 출현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
아마 내가 개입하면서 기존의 역사가 바뀐 거 같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후우.”
나는 헬하운드를 바라봤다.
“…….”
그리고 헬하운드 또한 나를 바라봤다.
그렇게 나와 늑대는 서로 잠시 눈을 마주쳤고…….
휙―!
나는 자바니아를 늑대의 머리를 향해 날렸다.
“크아아아아아!”
큰 포효를 내지르는 헬하운드.
하지만 이번에는 위협의 의미가 아닌, 고통스러워 내지른 포효였다.
그도 그럴 게, 자바니아가 헬하운드의 왼쪽 눈에 정확히 명중했기 때문이다.
“김민호 씨!”
헬하운드가 고통스러워하는 틈을 이용해, 나는 카시아의 길드장을 향해 외쳤다.
“헬하운드의 시선을 제가 끌게요. 김민호 씨는 길드 분들과 함께 공격에만 집중해 주세요!”
“네? 하지만 박유진 씨는 E급…….”
“저를 한 번만 믿어 주세요.”
이렇게 대꾸한 후, 나는 헬하운드 쪽을 향해 다시 고개를 돌렸다.
“돌아와라.”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른손에 자바니아가 다시 돌아와 있었다.
“오랜만에 몸 좀 풀어 보자.”
객관적으로 봤을 때, 헬하운드는 그리 강력한 몬스터는 아니었다.
6급 위험도의 몬스터였지만, 헬하운드는 6급 중에서도 최약체.
카시아 길드원들도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몬스터였다.
하지만 내가 굳이 나서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경험이 부족한 신생 길드고, 이 사람들은 헬하운드의 대처법을 모를 테니까.’
카시아 길드가 경험이 많았으면 내가 안 나섰어도 헬하운드를 제압했을 거다.
하지만 이들은 경험이 아직 부족했고, 그로 인해 갑작스럽게 등장한 헬하운드에 대한 대처가 미흡했다.
뭐, 그리고 사실 미흡할 수밖에 없기는 했다.
‘헬하운드는 잘 알려진 몬스터가 아니니까.’
헬하운드는 진짜 아는 사람만 아는, 상당히 보기 힘든 몬스터들 중 하나였다.
물론 나야 회귀 전에 여러 번 마주했지만, 이 길드의 사람들은 헬하운드를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을 터였다.
상대해야 하는 몬스터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으니, 이들이 헬하운드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크르르르.”
왼쪽 눈에서 피를 쏟아내며 나를 노려보는 헬하운드.
“크와와와!”
헬하운드는 포효를 내지르며 내게 돌진해 왔다.
그것도 온몸 주위로 불꽃을 두른 채 말이다.
“박유진 씨! 피하세요! 여기는 제가…….”
뒤에서 주하나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하지만 그녀는 이내 얼빠진 표정으로 말문이 막혔다.
“크아아아!”
내가 자바니아로 헬하운드의 목과 배를 찌르고, 그리고 헬하운드 위에 올라타 등을 찌르자…….
“어, 어떻게…….”
주하나는 믿기는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니, 주하나만이 아니었다.
“바, 방금 저 움직임 봤어?”
“저 짐꾼 친구 E급 헌터 아니었어? 어떻게 저런 속도로…….”
“속도의 문제가 아니야. 속도보다, 어떻게 저렇게 능숙하게 공격을…….”
카시아 길드의 모두가 헬하운드를 농락하는 나를 놀란 듯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리자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크와와와와!”
“그래, 그래. 빨리 끝내 줄게.”
헬하운드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을 익숙하게 피하며, 나는 자바니아를 헬하운드의 가슴에 찔러 넣었다.
“나도 빨리 돌아가는 편이 좋아. 너무 늦으면…….”
“크아아아아!”
“유나에게 잔소리 듣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