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 * *
“어떻게 저런 움직임을…….”
주하나는 눈앞의 광경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아아!”
불을 내뿜으며 날뛰는 헬하운드.
쉽게 다가가기 어려울 정도로 위험해 보였다.
“가만히 좀 있어, 개새끼야.”
하지만 박유진은 평온한 표정으로 헬하운드의 주위를 돌아다니며 단검을 휘둘렀다.
헬하운드의 돌진, 그리고 헬하운드가 내뿜는 불을 전부 피하며 말이다.
“저게 어떻게 E급이지?”
주하나는 C급 헌터였다.
비록 후방에서 아군들을 치료해 주는 힐러 겸 마법사라 신체 능력이 C급 헌터의 평균보다는 아래였지만,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최소 D급이야. 아니, 잘만 하면 C급과 비슷할지도…….’
다른 건 몰라도, 박유진은 E급 헌터의 수준은 아니었다.
애초에 E급 이하의 헌터들은 헌터 외에 다른 일을 하는 편이 낫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박유진은 지금, 평범한 E급 헌터라면 못 보일 기술들을 보여 주고 있었다.
‘아니, 등급의 문제가 아니야.’
주하나는 단검을 헬하운드에게 찔러 넣는 박유진을 유심히 바라봤다.
‘저게 20살의 움직임이라고?’
헬하운드의 공격을 전부 피하는 박유진.
마치 연륜이 가득한, 현장에서 10년은 넘게 뛴 베테랑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이에 박유진에 대한 주하나의 의문이 점점 더 증폭되어 가던 중.
‘아,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주하나는 재빨리 정신 차리며, 박유진을 도울 마법들을 발동하기 시작했다.
‘목숨을 빚졌는데, 반드시 도와줘야지.’
몇 분 전, 박유진은 주하나에게 날아오던 불덩이를 막아 줬다.
단검 하나로 헬하운드가 날린 거대한 불덩이를 말이다.
그걸 떠올리자, 주하나는 어째서인지 심장이 조금 더 빨리 뛰는 느낌이 들었다.
본인이 왜 순간적으로 그런 반응을 보인 건지 의문이 들었지만…….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 중요한 건 박유진을 돕는 것, 그리고 저 검은 늑대를 잡는 것이었다.
‘이번 일 끝나고, 따로 찾아가 고맙다고 해야지.’
주하나는 박유진에게 식사라도 한 끼를 대접, 아니.
만약 박유진이 원한다면, 그녀는 그 이상의 것으로도 감사를 표할 생각이었다.
* * *
“어우. 좀 빨리 뒤져라, 이 개새끼야.”
헬하운드가 입에 내뿜는 불을 피하며, 나는 자바니아로 늑대의 힘줄을 베었다.
“크르르르…….”
“…내가 약해지기는 약해졌구나.”
회귀 전의 나였으면 칼질 한 번으로 쓰러뜨렸을 텐데, 지금 몇 분째 이 늑대와 대치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럭저럭 싸울 만은 하네.’
헬하운드는 6급 위험도의 몬스터였고, 나는 E급 헌터였다.
상식적으로 E급 헌터가 6급 위험도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게 가능했고, 이유도 따로 있었다.
‘회귀하기 전에 헬하운드와 여러 번 싸운 덕이지.’
몬스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던 시기.
그때 헬하운드를 여러 번 마주했다.
덕분에 헬하운드의 시야 범위라거나, 주요 공격 패턴들을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특히 시야 범위를 알고 있는 게 크지.’
나는 자바니아를 헬하운드의 입 주변에 한 번 찌른 후, 뒤로 빠졌다.
헬하운드는 나를 향해 입을 벌려 공격하려고 했지만…….
“크르르르?”
헬하운드는 이내 당황한 듯 머리를 양옆으로 흔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나는 진작에 헬하운드의 시야 밖으로 빠졌기 때문이었다.
시야 밖으로 빠진 채, 자바니아를 헬하운드의 허리에 찔러 넣었다.
“크아아아아!”
헬하운드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양의 불길.
다른 헌터였으면 바로 당했을 공격이지만, 나는 아니었다.
헬하운드의 이러한 공격을 예측한 덕에, 나는 어렵지 않게 불길을 전부 피한…….
‘…아, 저건 못 피하겠다.’
헬하운드의 입에서 발사된 불덩이.
지금의 내 신체 능력으로 피하기는 무리였다.
그렇다면….
“…잘 먹어 치우네.”
나는 자바니아로 불덩이를 막았고, 검은 단검은 이번에도 불덩이를 모두 흡수했다.
‘이래서 내가 자바니아를 계속 쓴 거지.’
이능력을 흡수할 수 있는 단검.
물론 흡수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었지만, 그 한계를 고려하더라도 너무 좋은 무기였다.
‘게다가 신체 능력을 강화시켜 주는 것도 엄청 좋고.’
내게 앞발을 휘두르는 헬하운드의 공격을 피하며, 나는 내 왼손의 낙인, 그러니까 붉은빛을 내는 낙인을 바라봤다.
‘이 정도 흡수했으면, 대충 D급 헌터와 비슷한 신체 능력이 됐겠지.’
자바니아는 이능력을 흡수하면, 내 신체 능력이 일정 시간 동안 상승했다.
뭐, 상승해 봤자 헌터 등급이 딱 한 단계 정도 올라가는 편이 다였지만 말이다.
‘물론 가끔가다 2단계씩 오를 때도 있기는 하다만, 그건 상당히 극단적인 경우고.’
아무튼, 자바니아로 헬하운드의 불을 계속 흡수한 덕에, 지금의 내 신체 능력은 D급 헌터와 엇비슷할 터였다.
그리고 당장은 D급 헌터의 신체 능력이면 충분했다.
근데 D급이면 헬하운드를 혼자서 잡는 건 무리일…….
“다들 넋 놓지 말고 공격 시작해! 저 늑대가 정신 팔린 지금이 기회야!”
“넵!”
“지금 바로 화력 지원을 하겠습니다!”
근처에서 들려오는 다른 헌터들의 목소리.
잠시 뒤, 카시아 길드 헌터들의 엄호 사격이 시작됐다.
‘그러고 보니 저분들도 있었구나.’
헬하운드와 싸우는 데 너무 집중했는지, 카시아 길드원들이 여깄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뭐, 그럼 일이 쉬워지겠네.’
카시아 길드원들의 실력이면 헬하운드는 충분히 잡고도 남았다.
“박유진 씨! 혹시 필요한 도움 있을까요?”
“헬하운드의 주의는 제가 계속 끌게요!”
나는 날아오는 불길을 피하며 김민호에게 대꾸했다.
“모든 길드원들, 탱커들까지 그냥 공격에만 집중하게 해 주세요. 헬하운드의 시선을 제가 계속 붙잡아, 윽?”
김민호에게 말하느라 정신이 팔려 내게 잠깐의 틈이 생겼다.
그리고 헬하운드는 나의 그러한 틈을 놓치지 않았다.
“에라이. 더럽게 뜨겁네.”
헬하운드가 날린 불길을 재빠르게 피했지만, 이번에는 완벽히 피할 수는 없었다.
잠시 한눈을 팔고 있던 터라, 왼팔에 화상을 입게 됐다.
‘뭐, 그래도 이 정도면…….’
전에 더한 부상들도 자주 입었던 터라, 이 정도는 버틸 만했다.
“아으으.”
근데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회귀하기 전, 그러니까 A급 헌터였을 당시의 몸이었으면 눈 깜박 안 하고 참았겠지만, 지금의 내 몸은 E급.
이런 화상도 내게 있어 작은 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장은 전투 중이라, 그냥 최대한 고통을 무시한 채 싸움을…….
“…음?”
갑자기 왼팔에서 느껴지는 따듯한 기운.
뭔가 싶어서 내려다봤는데, 왼팔의 화상이 치유되고 있었다.
“박유진 씨! 상처가 생기면 제가 바로 치료해 드릴게요!”
뒤쪽에서 들려오는 주하나의 목소리.
그쪽을 바라보니, 주하나가 내게 치유 마법을 써 주고 있었다.
“고마워요!”
나는 그녀에게 대꾸하며, 내게 달려드는 헬하운드를 피했다.
역시 아군에 힐러 한 명만 있어도 여러모로 편하기는 했다.
뭐, 아무튼.
“크와와와!”
“빨리 끝내 줄 테니까 재촉하지 마, 이 개새끼야.”
나는 눈앞의 검은 늑대를 마무리 짓기 위해 다시금 움직였다.
* * *
“…역시 별 것 없네.”
헬하운드의 목을 그어 확인 사살을 한 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칠보산 게이트에 히든 몬스터가 있을 줄이야.’
나는 자바니아를 다시금 단검집에 넣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회귀하기 전에 들은 정보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이번 일로 배웠다.
그러니 앞으로 조금은 더 주의한다 치고, 당장은…….
“박유진 씨. 진짜 E급 헌터 맞아요? 진짜로?”
나는 여러모로 수상하게 바라보는 주하나, 아니.
주하나 뿐만이 아니었다.
김민호를 포함한 카시아 길드의 모두.
그들 모두 말은 안 하고 있었지만,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네, 저 E급 맞아요. 정 궁금하시면 나중에 헌터 협회 데이터베이스를 뒤져 보세요. 거기에 제 정보가 대략 나와 있을 테니까요.”
“잘 싸우더라고요.”
내 근처로 다가온 김민호가 말했다.
“전혀 E급 같아 보이지 않았어요.”
“뭐, 그거야…….”
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내가 E급으로 안 보인 건 당연했다.
그도 그럴 게, 자바니아 덕에 신체가 일시적으로 D급 정도로 강화됐으니까.
하지만 그걸 설명했다가 자바니아 대해 설명해야 되고, 그러면 자바니아를 어디서 구했는지에 대해서도 말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러니 당장은 최대한 말끝을 흐리는 편이…….
“박유진 씨, 혹시 전에도 몬스터와 싸워 보신 적 있나요?”
그러던 중, 주하나는 내게 또다시 질문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나는 속으로 당황했지만, 최대한 태연히 입을 열었다.
“아니요. 근데 갑자기 왜 그런 걸 묻는…….”
“박유진 씨가 싸우던 모습, 그거 절대 초보 헌터의 모습이 아니었거든요. 분명 전에 여러 번 싸워 본 헌터에게서 느껴지는 연륜이 있었어요.”
“…그런가요?”
연륜, 뭐 느껴질 법도 했다.
15년 동안 현장에서 싸우기만 한 헌터인데, 오히려 안 느껴지면 그게 더 이상했다.
‘근데 이건 어떻게 설명해야 하냐?’
회귀했다고 말했다가는 그냥 미친놈 취급받을 게 뻔했다.
하지만 문제는 설명할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쓸데없이 눈썰미가 좋아 가지고.’
나는 주하나를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대답을 안 하고 싶었지만, 여기서 대답을 안 하며 오히려 더 이상해 보일 수…….
“하나 씨. 박유진 씨 곤란해하니까 너무 그렇게 묻지 마요.”
김민호가 타이밍 좋게 나와 주하나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박유진 씨에게도 개인적인 사정이 있겠죠.”
“네, 길드장님. 그리고 박유진 씨, 그, 곤란했으면 죄송하네요, 박유진 씨.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솔직히 말하자면 많이 곤란했었으나, 나는 굳이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아무튼 김민호의 도움 덕에 나는 무난히 이 상황을 넘길 수…….
“박유진 씨.”
“네?”
갑자기 내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이는 김민호.
이게 뭔 상황인가 싶었다.
“무슨 일이죠?”
“박유진 씨, 솔직히 E급 아니시죠? 무슨 이유 때문에 실력을 숨기시는 거 같던데.”
“어어, 그건…….”
사실 나는 내 본래 실력을 숨길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내가 회귀한 것과 관련된 일인지라, 대놓고 내 실력을 드러내기도 애매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보였다가는 일이 귀찮아질 게 뻔하니까.’
아까 헬하운드 앞에서 내 실력을 보인 건, 이 게이트에 있던 카시아 길드원들의 수가 적었기 때문.
소수의 사람들에게 내 실력을 드러내도 큰 문제가 없을 거라 판단했었다.
하지만 김민호가 이렇게 과도한 관심을 보인다면, 일이 확실히 귀찮아질…….
“걱정 마세요. 방금 말한 것처럼 캐묻지는 않을게요.”
“아아, 그런가요?”
“네, 대신 저희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죠.”
김민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박유진 씨가 나중에 엄청난 사람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네, 뭐. 그런 거라면…….”
더 캐묻지 않고 넘어가 준다면 나야 좋았다.
난 귀찮은 일은 사절이었으니 말이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김민호는 미소를 유지한 채, 하지만 동시에 진지하게 내게 말했다.
“박유진 씨 아니었으면, 제 길드원들 중 누구 하나 죽었을지도 모르니까요.”
“했어야 하는 일을 한 것뿐이에요.”
“…고마워요. 어찌 됐든, 박유진 씨의 개인 사정은 딱히 묻지 않고, 제 길드원들에게도 이와 관련해서 따로 말해 놓을게요.”
“그렇게 해 주신다면, 오히려 제가 더 고맙죠.”
내 실력의 근원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귀찮은 일이 늘어날 터였다.
하지만 그걸 막아 준다면야, 내 입장에서 나쁠 게 없었다.
“대신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는 거예요? 알겠죠?”
“네, 뭐. 알겠어요.”
“네. 그러면…….”
나와의 대화를 마무리 지은 김민호는 다시금 자신의 길드원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애들아! 재정비는 대충 다 끝났지? 슬슬 출발할까?”
“예!”
“방금 저 늑대 때문에 시간이 너무 지체됐어. 그러니 이제 바로 게이트의 중심으로 가서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린다. 전부 이해했지?”
“예!”
“이해했습니다!”
“좋아, 그럼 바로 출발, 아니. 출발하기 전에.”
김민호는 고개를 돌려 길드원 한 명을 바라봤다.
길드원, 그러니까.
“정수민.”
“…네, 길드장님.”
정수민은 지금까지 보였던 모습과는 달리, 상당히 소심하고 위축된 모습이었다.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안 할게. 하지만 이 게이트를 토벌한 후에, 나와 따로 이야기 나눌 준비 하고 있어.”
“기, 길드장님. 부탁할게요. 저 만약에 이번에도 쫓겨나면 더 이상 갈만한 길드가…….”
“그러니까 그건 이따가 이야기하자고. 지금은 게이트 토벌하는 데 집중해, 알겠지?”
“…네.”
김민호에게 대답하며 갑자기 나를 노려보는 정수민.
나는 딱히 해 줄 말이 없었기에 그와 잠시 눈을 마주치다 이내 고개를 돌렸다.
“어디 보자, 가방이…….”
이제 짐꾼 일을 해야 했기에, 나는 내 짐꾼용 가방을 챙겼다.
그렇게 다른 헌터들과 함께 출발할 준비를…….
“근데 박유진 씨?”
“네?”
“혹시 몸 상태가 안 좋다거나 하는 낌새는 없죠?”
“네, 그런 건 없죠.”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묻는 주하나에게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그건 왜요?”
“그냥, 아까 뭔가 무리해서 싸우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혹시라도 나중에 쓰러진다거나 하는…….”
“아, 뭐, 그런 거는 걱정 안 해도 될 거예요… 아마도.”
나는 내 왼손의 손등을 슬쩍 바라봤다.
붉은색 낙인이 여전히 빛나고 있는 손등을 말이다.
‘곧 빛이 사라질 텐데, 괜찮겠지?’
생각해 보면 자바니아의 신체 강화에는 약간이지만 페널티가 있었다.
회귀 전에는 그냥 A급 헌터의 몸으로 버텼지만, 회귀한 지금의 내 몸으로는 그 페널티를…….
“…아.”
생각을 끝마치기도 전에, 내 손등에서 빛나던 낙인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휘청이기 시작했다.
“박유진 씨!”
주하나는 놀란 목소리로 나를 부축했다.
하지만 나는 온몸에서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고, 동시에 서서히 눈이 감기고 있었다.
‘X발, 자바니아의 페널티가 이렇게 컸나?’
자바니아로 강화된 신체는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 해제된다.
그리고 해제된 후, 일정 시간 동안 내 신체는 극심한 피로를 느껴야만 했다.
원인은 몰랐지만, 아무튼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일종의 페널티였다.
회귀 전에는 이런 페널티를 아무렇지 않게 버텼다.
A급 헌터의 신체는 자바니아가 주는 피로를 거뜬히 버틸 만큼 튼튼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E급.’
회귀 전에 비하자면 너무나도 약한 신체.
그래서 그런지, 이 페널티가 내게 크게 다가왔다.
“박유진 씨? 박유진 씨! 몸 많이 안 좋으세요? 어디가 어떻게 아픈…….”
“심각한 건 아니고, 그냥 조금 피곤하네요.”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놀란 표정의 주하나에게 말했다.
“한숨 자고 나면 괜찮을 테니, 너무 걱정은 안 하셔도…….”
내가 말을 끝마칠 틈도 없이 내 두 눈이 감겼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정신을 잃었다.
얼만지도 모를 시간이 흐른 후.
“아우우, 온몸이 뻐근하네.”
자바니아의 신체 강화가 해제되면서 느끼게 되는 극심한 피로.
전에는 몰랐는데, 이게 말 그대로 ‘극심한’ 피로였다.
20살인데 어째 몸이 40대가 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박유진 씨, 괜찮으세요?”
“음? 아아, 주하나 씨구나. 네, 저는 괜찮아요.”
눈 뜨자마자 보인 검은 머리의 여성.
뭔가 머리가 편안했는데, 지금 보니 내 머리가 주하나의 허벅지 위에 놓여 있었다.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무릎베개?
그걸 주하나가 내게 해 주고 있었다.
“민폐를 끼쳤네요. 일단 몸은 괜찮아졌으니까…….”
“누워 계세요.”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주하나는 나를 바로 다시 눕혔다.
“아직 박유진 씨는 환자예요. 그러니 의사인 제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안정을 취하세요.”
“그, 이런 말은 죄송하지만 주하나 씨는 힐러지, 의사는 아니라고 생각… 아아.”
문득 떠오른 생각, 아니.
마침내 떠오른 기억.
나는 진지한 표정을 한 하얀 머리의 힐러를 다시 한번 바라봤다.
‘아직 박유진 씨는 환자예요. 그러니 의사인 제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안정을 취하세요.’
‘의사는 무슨. 요즘은 힐러도 의사라고 쳐주는 시대인가 봐?’
기억이 났다.
회귀 전, 내가 언제 주하나를 만난 건지 기억이 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