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회귀하기 전, 내가 막 B급 헌터로 올랐을 당시의 일이었다.
당시의 게이트를 처음으로 혼자 토벌하는 걸 시도했다가 큰 부상을 입었다.
* * *
‘X발, 이대로 뒤지는 건가?’
게이트의 토벌 자체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내장들을 여러모로 크게 다쳤다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다른 사람들과 같이 가는 건데…….’
혼자의 힘으로 C급에서 B급으로 올라온 것.
그래서 최근에 내 실력을 너무 과신했다.
“토벌, 으윽, 성공은 했는데…….”
문제는 처음으로 혼자 토벌을 시도했던 거라 전투에 있어 빈틈이 많았다.
특히 내 뒤를 봐 줄 사람이 없던 탓에 몬스터의 기습을 허용하게 됐다.
‘A급은 솔로 토벌을 밥 먹듯이 하고, B급들도 가끔 성공해서 나도 가능할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아직 내 실력에 부족한 점이 많은 듯했다.
특히 매번 다른 사람들과 같이 토벌을 갔던 터라, 혼자 토벌하는 건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고, 지금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하, X발. 일부러 나를 못 본 척하고 자빠졌네.’
게이트 토벌 후, 치명상을 입은 몸을 이끌고 근처의 병원에 겨우겨우 도착했다.
나는 재빨리 응급실에 들어가 치료를 받고자 했다.
하지만 30분이 지난 지금, 나를 치료하러 오는 의사는 없었다.
아니,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도, 더 나아가 병원의 관계자 그 누구도 내 근처에 오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껄끄럽냐, 이 개새끼들아.’
사람들이 왜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지 내가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E급에서 B급으로 급격히 치고 올라온 헌터.
한국에서, 아니, 전 세계적으로 처음 보인 경우였다.
헌터 역사상 그 누구도 이런 성장세를 보인 적이 없었다.
이에 감탄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를 안 좋게 보는 인간들이 대부분이지.’
괴물 또는 몬스터.
위험하고 기괴한 방법으로 성장했다고 나에 대해 떠들었다.
처음에는 그 헛소문을 신경 쓰지 않았지만, 어느새 그 헛소문을 대한민국 사람들 대부분이 믿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하다 하다 나를 진짜 몬스터라고 생각하는 인간들도 생겨나는 중이었다.
‘그래도 나 좀 살려 달라고, 이 X 같은 새끼들아.’
피가 흘러내리는 복부를 부여잡은 채,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의사들 중 그 누구도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전부 나를 없는 사람처럼, 그저 죽어 가는 한 마리의 몬스터인 것처럼 취급했다.
“…X발, 그래. 그냥 뒤지지 뭐.”
어차피 잃을 것도 없는 인생이었다.
유나가 죽은 후, 그냥 죽지 못해 계속 살았다.
차라리 그냥 이번 기회에 죽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지도 몰랐다.
물론 유나를 죽인 그 A급 개새끼를 못 죽인 게 한이지만…….
‘그래, 내가 어떻게 A급까지 올라가겠냐.’
B급까지 운 좋아서 올라온 거지, A급부터는 엄청난 벽이 있었다.
그냥 모든 걸 포기하고 여기서 뒤지는 것도…….
“아윽?! 아아악.”
온몸을 덮쳐 오는 고통.
동시에 온몸에서 힘이 서서히 빠지는 게 느껴졌다.
‘죽는 건가?’
죽음을 겪어 본 적이 없었지만, 나는 곧 죽게 될 거라고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렇게 죽는… 죽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안 죽었다.
정신을 잃고, 그 후 얼만지도 모를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천천히 눈을 다시 떴다.
“…그쪽, 누구죠?”
내 침대 곁에 서 있는 하얀 머리의 여인.
그녀는 내 상처에 치유 마법을 발동해 주고 있었다.
뭔가 싶어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고 했는데…….
“누워 계세요.”
여자는 단호하면서도 따뜻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근래 들은 말들 중 가장 따뜻한 목소리였다.
“아직 박유진 씨는 환자거든요.”
【 다음으로 얻을 장비 】
‘그래. 내가 주하나를 어떻게 잊고 있었지?’
칠보산 게이트에서 천천히 눈을 뜬 나는, 나를 돌봐 주고 있던 주하나를 조용히 바라봤다.
‘제가 누구냐고요? 의사는 아니고, 용혈 길드의 힐러예요. 지금 저희 길드원들이 토벌을 마치고 여기 왔는데, 지나가다가 박유진 씨를 아무도 안 봐주고 있는 걸 보고…….’
‘박유진 씨를 왜 도왔냐고요? 그야 사람이 힘들어하는데 당연히 도와야죠.’
‘박유진 씨가 안 무섭냐고? 으음, 솔직히 박유진 씨에 대한 소문은 들었어요. 근데 박유진 씨가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냥 뭐랄까, 제 감이 그렇게 말을… 네? 호구요? 초면에 그게 무슨 말씀…….’
회귀하기 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주하나와의 만남.
그 기억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 아직 일어나시면……. 아직 박유진 씨는 환자예요. 그러니 의사인 제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안정을 취하세요.’
‘의사는 무슨. 요즘은 힐러도 의사라고 쳐주는 시대인가 봐?’
‘요, 요즘 힐러들은 의학 공부도 해야 하는 시대라고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들과 함께, 나는 계속해서 주하나를 바라봤다.
“바, 박유진 씨? 아까부터 계속 저를 보시는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
주하나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내 시선을 피했지만, 나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래도 고마워요. 덕분에 살았네요. 크게 빚진 거니, 네. 연락처 주세요. 오늘 빚진 거 나중에 갚으러 올게요.’
‘네? 아니에요. 굳이 그럴 필요 없어요. 저는 그냥 할 일을 했을…….’
‘제가 빚지고는 못 사는 타입이거든요. 그러니 연락처 주세요. 오늘 저를 살려 주신 거, 나중에 꼭 갚을 테니까요.’
빚, 그래.
나는 주하나에게 목숨을 한 번 빚진 적이 있었다.
회귀하기 전에 그 빚을 갚겠다고 말했지만, 그 빚을 결국 갚을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못 갚은 것이었다.
‘그때 병원에서 만난 이후로 주하나를 만날 일이 없었지.’
연락하고 싶었지만, 그때부터 슬슬 몬스터들이 많아지던 시기였다.
내가 너무나도 바빠진 탓에, 주하나에게 연락한 건 몇 개월 후였다.
하지만 주하나는 내 연락을 받을 수 없었다.
‘죽었으니까.’
어쩌다가 인연이 닿게 된 주하나의 지인의 말에 따르면, 주하나는 과로사로 죽었다고 했다.
너무 착해서 모든 사람들을 있는 대로 치료해 주다가, 그러니까 까놓고 말해 호구처럼 일하다가 과로사했다고 한다.
결국 나는 그때의 빚을 갚지 못한 채 그저 앞으로 계속 나아가기만 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만 집중한 탓에, 주하나에 대한 건 서서히 잊었다.
‘…근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됐네.’
우연, 아니, 이런 건 운명이라고 해야 되나?
평소에 운명 따위는 안 믿었지만, 이런 상황을 마주하니 조금은 믿게 되는 거 같았다.
하지만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고마워요.”
“네? 뭐, 뭐가요?”
“저를 살려 줘서 고마워요.”
“네? 아, 이, 이건, 그. 박유진 씨가 그렇게 심하게 다친 건 아니고 그냥 탈진 증세만 있던 거라, 제가 한 건 별로…….”
“이 빚, 나중에 반드시 갚을게요.”
“빚까지는 아니에요. 방금 말한 것처럼 제가 한 건 별로 없는…….”
“갚을게요. 반드시.”
나는 대꾸한 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으, 뻐근하기는 하네.’
약한 E급의 몸 때문에 고생이었지만, 그렇다고 하루 종일 누워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안 갚아도 괜찮은데, 라고 중얼거리는 주하나를 놔둔 채, 나는 근처에 보이던 김민호 쪽으로 다가갔다.
“죄송해요, 김민호 씨. 저 때문에 출발 못 하고 있었죠?”
주변을 둘러보니 김민호를 포함한 카시아 길드 전원이 대기 중이었다.
아마 내가 쓰러진 것 때문에 잠시 기다려 준 거 같았다.
“제가 얼마나 쓰러져 있었죠?”
“15분밖에 안 쓰러져 있었어요. 그리고 사과할 필요 없어요. 저희를 위해 아까 그렇게 싸워 줬잖아요. 그리고 어차피 재정비할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기도 했고요.”
“그런가요?”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간단히 대꾸했다.
“뭐, 아무튼. 저는 이제 괜찮으니 바로 출발하죠.”
“진짜 괜찮은 거죠? 아까 갑자기 쓰러진 건…….”
“네, 진짜로 괜찮아요.”
“그렇다면야.”
내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자, 김민호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돌렸다.
“바로 출발한다! 다들 준비해!”
그렇게 카시아 길드의 헌터들은 게이트의 중심부를 향해 출발했다.
근데 출발하기 직전, 주하나가 다시금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박유진 씨?”
“네? 무슨 일이죠?”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건데, 아까 쓰러지신 거, 그거 혹시 불을 막은 것 때문인가요?”
“…네?”
“아까 저 늑대가 제게 불을 날렸잖아요. 그때 박유진 씨가 나타나서 그 불을 흡수했는데, 혹시 갑자기 탈진한 게 그거와 관련이 있나 해서요.”
“으음, 아예 없다고는 말 못 하죠.”
헬하운드가 날린 불덩이를 자바니아로 흡수했고, 흡수한 불덩이를 에너지원으로 삼아 신체를 강화했다.
그리고 신체 강화가 풀리자, 그 페널티로 받은 피로로 쓰러진 것이었고.
어떻게 보면 불덩이를 흡수해서 쓰러진 게 맞기는 했다.
‘눈썰미가 좋은 건 알겠는데, 이거까지 알아차렸다고?’
나는 주하나를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주하나는 자바니아에 대해서는 모를 터였다.
근데 이 사실을 대체 어떻게 알아차린…….
“알겠어요.”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주하나는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먼저 입을 열었다.
“대답 고마워요. 저희도 이제 갈까요?”
“…네, 어서 가죠.”
뭔가 꺼림칙했지만, 주하나는 이와 관련해 더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주하나와 같이, 다른 헌터들을 따라 게이트의 중심부를 향했다.
“아, 하나만 더요.”
“뭐죠?”
“저를 구해 줘서 고마워요. 박유진 씨 아니었으면, 지금쯤 저는 화상 때문에 고생하고 있었겠죠.”
“당연히 했어야 하는 일이었어요.”
“그렇다 쳐도, 제가 박유진 씨에게 목숨을 빚졌다는 사실은 안 달라지죠. 그러니까 저도 이 빚, 꼭 갚아 드릴게요.”
“아니, 굳이 그러실 필요 없어요.”
주하나는 회귀하기 전의 나를 살려 준 사람이었다.
빚은 오히려 내가 갚아야…….
“박유진 씨가 그랬잖아요, 제게 진 빚을 갚겠다고.”
“네, 그랬죠.”
“저도 똑같이 말씀드릴게요. 오늘 제 목숨을 구해 주신 거, 반드시 갚아 드릴게요.”
* * *
‘박유진 씨의 능력은 이능력의 흡수, 이런 것일 거야.’
게이트 중심부를 향하며, 주하나는 박유진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거대한 불덩이를 흡수할 방법은 헌터 고유의 능력 말고는 없을 테니까. 그리고 박유진 씨는 그 능력으로 나를 구해 준 거야.’
주하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퍼즐을 하나둘 맞춰 나갔다.
‘E급 헌터라 능력이 그리 강하지는 않을 텐데, 그럼에도 나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어 줬어. 탈진할 거 각오하고, 나를 구해 준 거야.’
박유진은 주하나에게 빚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하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자신이 한 거라고는 탈진한 박유진을 조금만 돌봐 준 것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근데 박유진 씨는 내 목숨을 구해 준 거야, 내 목숨을.’
어느 쪽의 빚이 더 큰지 굳이 비교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리고 주하나는 그런 박유진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나중에 반드시 따로 감사하다고 해야겠지.’
주하나는 이 게이트의 토벌이 끝난 후, 박유진을 따로 찾아갈 것을 마음먹었다.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박유진을 바라봤는데.
“…아.”
“음? 주하나 씨? 무슨 일 있나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주하나는 얼굴에서 열기가 오른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신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주하나 본인도 몰랐지만, 그녀는 그냥 기분 탓이라 생각하며 넘어갔다.
‘후우우. 그래, 게이트 토벌을 마치고 박유진 씨의 연락처라도 받아 가자. 나중에 따로 연락해서, 감사의 선물이라도 줘야지.’
오늘 진 빚을 갚기 위해 박유진의 연락처를 받아 간다.
주하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합리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