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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19화 (19/240)

19화

그 이후로 별일 없었다.

나와 카시아 길드 전원은 게이트의 중심부에 도착했고, 거기서 칠보산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 세이버투스를 마주했다.

세이버투스, 그러니까 무슨 코끼리만 한 크기의 검치호.

크기뿐만 아니라 생긴 것도 상당히 위험해 보이는 몬스터였지만, 그 몬스터는 생긴 것만큼 강하지 않았다.

“후우우, 죽었네. 다들 고생했어!”

김민호는 검을 세이버투스에 목에 찔러 넣어 확인 사살한 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세이버투스가 지키고 있던 보석.

정확히 말하면, 땅에 박힌 축구공 크기의 보석.

김민호는 검을 휘둘러 그 보석을 일격에 박살 냈다.

쿠르르르르―

보석이 박살 나는 것과 동시에 흔들리기 시작한 게이트의 내부.

거기다 울창한 정글을 이루던 수많은 나무들이 하나둘 시들기 시작했다.

‘게이트의 코어를 없앴으니, 이 게이트도 이제 일주일 안에 사라지겠네.’

다른 건 몰라도, 헌터들은 게이트의 코어를 반드시 없애야 했다.

게이트 내의 몬스터를 다 잡아도, 게이트의 코어를 못 없애면 전부 의미가 없었다.

그 원리를 아무도 파악 못 했지만, 게이트의 코어가 존재하는 한, 일정 시간이 지나면 게이트 내에 몬스터들이 다시 나타났다.

‘뭐, 아무튼 방금 코어를 없앴으니 더 이상 몬스터가 나타날 일은 없겠네.’

그렇다는 건, 이제 이 게이트 토벌을 천천히 마무리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제 재정비하고 바로 여기를 나가자.”

“네, 알겠습니다.”

길드장의 말에 대답한 카시아 길드원들은 무기와 장비들을 정리하며 게이트를 나갈 준비를 했다.

‘그나저나 진짜 뭐 별 것 없기는 했네.’

나는 죽은 세이버투스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7급 위험도의 몬스터, 세이버투스.

여기서는 보스 몬스터였지만, 회귀 전, 대규모 몬스터 사태가 터졌을 당시.

그 당시에는 그저 흔하디 흔한 잡몹 정도였다.

카시아 길드가 이제 막 생겨난 신생 길드기는 했지만, 세이버투스를 못 잡을 수준은 절대 아니었다.

내가 예상했던 그대로 말이다.

‘물론 헬하운드가 나타났던 게 예상외였지.’

그 늑대 때문에 몸 좀 굴렸지만, 결과적으로 잘 마무리됐으니 상관없었다.

죽지 않았고, 전투 과정에서 조금 다쳤지만 주하나에게 바로 치료받았고…….

‘무엇보다 자바니아를 얻었지.’

나는 내 허리에 있는 검은 단검을 슬쩍 바라봤다.

이 단검을 얻고 살아서 이 게이트를 나간다.

그게 내 목표이었고, 그 목표를 깔끔히 달성했다.

뭐, 엄밀히 따지자면 아직 이 게이트를 나간 건 아니었지만…….

‘곧 나갈 수 있겠네.’

게이트의 중심부,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보스방으로 오는 동안 어지간한 몬스터들은 전부 사냥당했다.

그러니 이 게이트에서 나가는 거 자체는 문제없을 터였다.

‘빨리 나가서 유나나 보러 가야지.’

나는 내 여동생을 떠올리며 다시금 몸을 움직였다.

게이트에서 빠르게 나가기 위해 내가 지금 해야만 하는 일이 하나 있었다.

“흐음, 여기서 챙길만한 아이템들이…….”

나는 보스방을 돌아다니며, 눈에 보이는 아이템들을 짐꾼용 가방 안에 던져 넣었다.

게이트를 조금이라도 빨리 나가려면, 이 짐꾼 일을 빠르게 끝내는 게 이득이었다.

‘이런 맹수들이 사는 정글에 왜 창과 방패 같은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챙길 건 챙겨야지.’

나는 괜찮아 보이는 아이템들, 그리고 특이한 재료들을 보이는 대로 가방 안에 던져 넣었다.

“박유진 씨. 도와드릴까요? 가방 무거우면 제가 잠깐 들어 줄 수도 있어요.”

“네? 아니, 뭐, 굳이 그러실 필요는…….”

“아, 혹시 저 나무 위에 있는 가죽 망토를 챙기려고요? 그건 제게 맡기세요. 제가 마법으로…….”

중간에 주하나가 적극적으로 나를 도와주려고 하자 조금 당황했지만, 나는 굳이 그녀의 도움을 사양하지 않았다.

* * *

“모두 고생했어!”

약 한 시간 뒤.

게이트 내에서의 모든 일을 마친 나와 카시아 길드는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

“고생했지만, 아직 일 다 안 끝난 거 알지? 일단 아무나 수정이를 먼저 병원에 데려가. 하나 씨가 치료했지만, 정밀 검사 한 번 받는 편이 좋을 테니까. 그리고 제이야. 헌터 협회에 연락해서 칠보산 게이트의 토벌을 마무리했다고…….”

게이트의 토벌이 끝났음에도, 길드장인 김민호와 그의 길드원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그게 어떤 느낌인지 잘 알았다.

게이트 토벌 후에 해야 하는 자잘한 것들.

회귀 전의 나는 그런 걸 매우 귀찮아했다.

“현우야. 박유진 씨에게서 짐꾼 가방 받고, 그거 헌터 협회에 가져가 줘. 아이템 정산 전에 해 봤으니까 어떻게 하는지 알지?”

“네. 그럼 바로 출발할게요.”

힘이 상당히 세 보이는 헌터가 내게서 가방을 받아 가, 이내 산 아래쪽을 향해 먼저 내려갔다.

“그리고 지금 또 해야 하는 일이, 아, 맞다. 정수민.”

“…네, 길드장님.”

“먼저 길드 숙소에 돌아가 있어. 일 다 끝낸 후에 따로 이야기 좀 하자.”

김민호는 단호하게 정수민에게 말했다.

이에 정수민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길드장님. 그 늑대를 불러낸 건 의도가 아니라 사고였…….”

“알아. 네가 일부러 안 그런 거 알고, 그것 때문에 뭐라고 할 생각 없어. 그런 실수 정도는 내가 넘어가 줄 수 있거든.”

하지만, 이라고 김민호는 말을 계속했다.

“하나 씨와 수정이가 못 움직이는 상황에서 그냥 도망친 건 이야기할 필요가 있어. 헌터들은 몬스터를 사냥하는 직업인데, 사낭감에게서 도망치는 헌터는, 그것도 동료를 버리고 도망치는 헌터는… 으음. 말 안 해도 알지?”

“하지만 그건 제가…….”

“숙소로 먼저 돌아가 있어.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알겠습니다.”

정수민은 몸을 돌려, 산 아래쪽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근데 그는 걸으면서 나와 눈을 마주쳤는데…….

으득―

정수민은 소리가 들릴 정도로 이를 갈며, 나를 노려봤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어이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정수민이 헬하운드를 보고 도망친 건 내 잘못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도망친 건 그냥 본인이 겁 많은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 탓이 아니었다.

‘뭐, 애초에 저런 인간은 끝까지 남 탓만 하는 법이니까.’

본인에게서 잘못을 찾지 않고, 남의 탓만 하는 인간.

그런 인간들을 자주 봤고, 그런 인간들의 말로는 대부분 안 좋은 편이었다.

아마 정수민의 말로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박유진 씨.”

“음? 아, 김민호 씨.”

하산하는 정수민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중, 김민호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또 무슨 일 있나요?”

“그런 건 아니고, 오늘 고생 많았어요. 짐꾼으로 와 줬는데, 아까 직접 전투에 참여했잖아요.”

“별 것 아니었어요. 아까도 말한 거지만,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뿐이에요.”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뿐.

그래, 나는 사람을 살릴 수 있었고, 살린 것뿐이었다.

“아무튼 고마워요. 그리고 돈은 오늘 협회에서 받는 대로 바로 보내 드릴게요. 거기다 오늘 직접 전투에 참여했으니, 원래 드려야 할 돈에 조금 더 얹어 드릴게요. 괜찮죠?”

“…굳이 사양하지는 않을게요.”

돈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으니 말이다.

“네, 그럼 이따 돈 보내면 따로 연락 드릴게요. 그리고, 으음, 네. 뭐, 이제 더 이상 일이 없으니 집에 가셔도 될 거 같네요.”

“네, 알겠어요. 그럼 저는 먼저 가 보도록…….”

“아, 근데 가기 전에, 혹시 있잖아요.”

김민호는 나를 붙잡으며 말했다.

“제 길드에 들어오실 생각 있나요? 아, 물론 지금 말고 나중에 학교 졸업하고 나서도 괜찮고요.”

“아아, 어어어, 길드요?”

길드.

사실 나는 회귀 전에도 특정 길드에 안 들어갔다.

게이트 토벌대에 참여한 것도 대부분 용병으로 참여한 거지, 나는 그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나는 어딘가에 소속된 채, 그곳의 규율에 묶이는 걸 별로 안 좋아했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그리고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일을 진행하는 것이 취향이었다.

“죄송하지만 당장은 길드에 대한 생각이 없네요.”

나는 거절의 의미를 돌려서 말했다.

그리고 김민호는 그걸 눈치 있게 알아들은 듯했다.

“네, 아쉽네요. 그래도 혹시라도 생각이 생기면 마음 편히 연락 주세요. 박유진 씨 같은 헌터라면 언제든지 받아 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아까 게이트에서 제가 한 말 기억하시죠? 앞으로도 저희 친하게 지내요.”

“뭐, 그 정도쯤은 상관없죠.”

“후훗, 오늘 고생 많았어요. 집에 잘 들어가시고, 다음에 또 만날 기회가 있기를 바랄게요.”

“김민호 씨도 고생 많았습니다.”

김민호에게 간단히 인사한 후, 오늘 얻은 자바니아와 함께 하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하산하기 전,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그 일을 하기 위해, 나는 주하나를 찾아 주변을 둘러…….

“박유진 씨!”

“아, 주하나 씨.”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했나?

내가 주하나를 찾으려고 하자, 그녀가 먼저 내게 다가왔다.

“이제 가시려고요?”

“네. 할 거 다 했고, 게이트 토벌도 끝났으니 가야죠. 근데 가기 전에 마침 주하나 씨를 찾고 있었어요.”

“그래요? 사실 저도 박유진 씨를 찾고 있었어요. 다른 게 아니라, 혹시 제게 박유진 씨의 전화번…….”

“이거 받아 가세요.”

“에?”

“제 연락처에요.”

내 전화번호가 적힌 포스트잇을 건네자, 주하나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호, 혹시 제가 연락처를 물을 걸 알고 계신…….”

“네? 무슨 말씀이시죠?”

“아, 아니에요?”

“네, 제가 주하나 씨께 제 연락처를 따로 드리고 싶었거든요.”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 그저 태연히 말했다.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아니면 혼자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일이 생기면 연락하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제가 달려갈 테니까요.”

“네? 왜 굳이 그런…….”

“제 목숨을 구해 주셨잖아요. 게이트 안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빚 지고는 못 사는 타입이에요. 그래서 언젠가 그 빚을 갚아 드릴게요.”

“빚은… 오히려 제가 졌죠. 만약 박유진 씨께서 그 불을 안 막았더라면, 저는 지금쯤, 아니. 그보다 저는 박유진 씨의 목숨을 구하지는 않았어요. 박유진 씨께서 탈진으로 쓰러진 거지, 치명상을 입거나 하지는…….”

“아니요, 주하나 씨는 저를 구하셨어요.”

나는 주하나의 두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주하나 씨는 모르겠지만, 저는 주하나 씨의 도움을 확실히 받았거든요.”

주하나의 눈.

내가 죽어 갈 때,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 주던 그 눈이었다.

“아무튼, 도움 필요하면 망설이지 말고 연락 주세요. 그럼 제가 바로 달려갈게요. 알겠죠?”

“…아, 아아. 네 아, 알겠… 어요.”

주하나의 눈을 계속 바라보자, 그녀의 얼굴이 어째서인지 약간 상기된 상태였다.

“그, 그리고, 그, 잠시만요.”

주하나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무언가를 입력했다.

우웅―

잠시 뒤, 내 스마튼폰이 울렸고, 그걸 꺼내서 확인해 보자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와 있었다.

“제 전화번호예요. 박유진 씨도 힘든 일 있으면 제게 연락하세요. 저도 오늘 목숨을 빚졌으니, 이 빚을 반드시 갚아 드릴게요.”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지만, 일단 알겠어요.”

나는 주하나의 번호를 저장한 뒤, 이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다시금 바라봤다.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요, 주하나 씨. 나중에 또 만날 기회가 생기면 좋겠네요.”

“네, 그, 네. 저도 만나서 반가웠어요.”

나랑 눈을 마주친 힐러는 더 빨개진 얼굴로 내 시선을 피했다.

나는 그런 주하나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이만 가 보도록 할게요. 다음에 뵙도록 하죠.”

“네? 아,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저도 이제 집에…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

“다른 사람들을 챙기는 것도 좋지만, 자기 자신이 제일 우선이라는 걸 반드시 잊지 말아 주세요.”

“네? 그게 무슨 뜻이죠?”

“…있어요, 그런 거.”

회귀하기 전, 주하나는 치료만 계속하다 과로사했다.

그러니까 호구처럼 모두를 돕다가 죽었다.

그 사실이 떠올라, 나는 주하나에게 개인적인 조언을 하나 해 준 것이었다.

‘이번에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

피투성이의 인생을 살았던 탓에, 수많은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지인의 장례식을 치르기 싫었다.

뭐, 아무튼.

방금 주하나에게 한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하산하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참 알찬 하루였네.’

하산하며, 나는 익숙하게 손을 허리에 가져갔다.

허리, 그러니까 자바니아의 손잡이 위로 자연스럽게 손이 갔다.

‘이번에도 잘해 보자, 자바니아.’

생각보다 쉽게 획득한 단검을 바라보며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나는 문득 뒤를 슬쩍 바라봤다.

“하나 씨! 현지 씨 아직 팔이 아프다는데, 혹시…….”

“네! 지금 가요!”

어느새 다시 길드원들을 열심히 치료해 주는 주하나.

모든 사람을 편견 없이 도와주던 그 모습은, 내가 기억하던 그대로였다.

“…그래. 소중한 인연들을 잃지는 말아야지.”

회귀했을 당시에 했던 결심을 떠올리며, 나는 천천히 칠보산 게이트에서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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