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 * *
‘그 코트를 어떻게 구해 와야 될까?’
주말이 지나고 어느새 월요일.
고연대학교의 학교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으며 속으로 고민했다.
‘그 코트는 언제든 찾으러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근데 코트를 얻는 거 그 자체가 문제야.’
코트, 그러니까 네메이아의 코트.
B급 헌터의 공격들까지 무난히 막는 방어력을 지녔고, 그 외에도 이런저런 좋은 기능들이 담긴 아이템이었다.
‘자바니아를 얻었으니, 다음 순서로 그 코트를 얻는 게 맞기는 해.’
자바니아가 내 검이라면, 네메이아의 코트는 나의 방패.
회귀 전에도 그 순서대로 그 둘을 손에 넣었고, 그게 제일 효율적이었다.
다만 문제라면 그 코트를 손에 넣는 그 과정이었다.
‘네메이아의 코트를 가진 몬스터가 어디에 서식하는지 알고 있어.’
그 몬스터를 죽이기만 하면 코트를 획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몬스터를 죽이는 것이었다.
‘지금의 내가 그 몬스터를 잡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
내가 C급이었을 당시 겨우겨우 잡은 몬스터였다.
지금의 내가 그 몬스터를 홀로 잡기는 힘들었다.
“하아아.”
지금의 내 입장이 상당히 암울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되냐?”
강해지기 위해서는 수련을 해야 했다.
그리고 수련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장비들이 필요했다.
근데 지금 그 장비를 못 구하고 있었다.
‘뭐, 굳이 따지면 장비가 필요 없기는 해.’
애초에 회귀 전, 그 당시에는 그냥 자바니아 하나만 갖고 꾸역꾸역 C급까지 올라갔다.
지금이라고 못 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미리미리 얻는 편이 편하겠지.’
수련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회귀 전보다 더 ‘효율적인’ 수련을 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A급 시절의 장비들을 이용하는 편이 좋았다.
‘흐음, 진짜 어떻게 하지?’
나는 잠시 속으로 고민했으나, 이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 생각해 봤자 딱히 뾰족한 수가 떠오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 당장은 이런 복잡한 생각보다…….
“밥이나 먹자.”
나는 방금 막 받아 온 학식을 바라보며 천천히 숟가락을 들었다.
“…맛있네.”
오늘 학식으로 나온 건 돌솥비빔밥.
다른 건 몰라도, 고연대의 학식이 맛있는 건 인정해야 했다.
‘한 그릇 더 먹을까?’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으면서 양이 넉넉하고 맛있는 밥.
한 그릇, 아니, 두 그릇도 더 먹을 수 있을 거 같았다.
‘게다가 시간도 많이 남았으니, 천천히 먹고 가도 상관없겠지.’
다음 수업까지 남은 시간은 약 두 시간.
여유로운 점심을 보내기에 매우 적절한…….
“야, 박유진.”
“…하아, 또 뭐냐?”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든다는 말이 있다.
나를 개보다도 못한 취급을 한 녀석이 누군지 확인하러 고개를 들었는데…….
“…이민아?”
“그래, 나다 X새끼야.”
밥 먹는데 내 앞에 나타난 갈색 단발머리의 여대생.
그녀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내가 와서 불만이라도 있냐?”
“다른 때였으면 불만 없었겠지만, 지금 내가 밥 먹는 거 안 보이냐?”
나는 내 앞의 비빔밥을 보란 듯이 가리켰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 이년아. 할 말 있으면 내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고, 이에 이민아가 내게 또 화를 낼 거라 생각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이민아라면, 나의 이러한 반응에 열을 냈을 테니까.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민아는 내가 예상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알겠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거지?”
“…음?”
“그럼 빨리 먹기나 해. 기다릴 테니까.”
이민아는 이렇게 말한 뒤, 내 바로 앞자리에 앉았다.
진짜로 내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릴 생각인 것처럼 말이다.
‘…뭐지?’
내가 아는 이민아는 이런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분명 이민아는 자기보다 약하고 보잘것없으면 깔볼 수 있을 때까지 깔보는…….
‘아, 그러고 보니.’
이민아.
방금 말한 것처럼, 이민아는 자기보다 아래라고 판단된 인간은 벌레 보듯이 봤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교육받았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자기보다 강하거나 자기를 이긴 사람은 확실하게 존중했다.
쉽게 말해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그런 타입이었다.
‘그리고 내가 지난주에 이민아를 이겼지.’
이민아의 반응으로 보건대, 그녀는 여전히 나를 마음에 안 들어 했다.
하지만 지난주에 내게 패배한 것 때문이지,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는 내게 보이고 있었다.
그 이민아가 내가 밥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니까 E급 따위의 말을 듣는다?
내가 지난주의 대련 때 못 이겼으면, 이민아는 내게 그런 기본적인 예의조차 안 보였을 거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
나는 내 앞에 앉은 이민아를 살짝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봤다.
하지만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이민아는 자리에 앉은 채 가만히 있었다.
“…야, 이민아.”
“왜?”
“너 설마 진짜로 내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냐?”
“네가 기다리라며.”
“아니, 그걸 진짜로 기다리는 건 대체 뭔, 하아아. 아니다. 잠깐만 기다려.”
나는 비빔밥을, 그러니까 대충 세 숟가락 남았던 양을 빠르게 먹어 치웠다.
원래는 천천히 맛을 음미한 뒤에 한 그릇 더 먹을 생각이었는데, 이민아 덕에 먹을 마음이 사라졌다.
그래서 그냥 빠르게 먹은 뒤, 나는 눈앞의 이 여대생부터 해결하고자 했다.
“후우우, 그래서 뭔 일인데?”
나는 깔끔하게 비워진 비빔밥을 옆으로 치우며 이민아에게 물었다.
“그리고 쓸데없는 이유가 아니면 좋겠다. 다른 건 몰라도 밥 먹는 걸 방해받는 건 딱히 좋아하지는…….”
“나랑 한 번 더 붙어.”
“응?”
“나랑 한 번 더 붙자고, 이 새끼야.”
이민아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지난주에 진 거, 나 그거 용납 못 해. 아니, 진 거 자체는 인정해. 하지만 다시 붙으면 내가…….”
“뭔 소리 하나 했는데, 이딴 말이나 하러 온 거였냐?”
나는 실소를 흘리며 갈색 단발머리를 바라봤다.
“이 이야기하러 온 거면 그냥 돌아가. 이런 걸로 시간 낭비하기 싫으니까.”
“시간 낭비? 넌 이게 시간 낭비로 보이냐?”
“쓸데없는 이유로 싸우는 게 시간 낭비지, 그럼 뭐냐?”
“일단 나랑 붙어 보고 말해. 그럼 나와 싸우는 게 시간 낭비가 아니라는 걸 직접 너에게…….”
“그러니까 너랑 안 싸운다고.”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내가 너랑 또 대련해서 얻는 게 뭔데?”
“그, 그건… 일단 나와 붙어 봐! 그러면…….”
“이민아, 네가 E급 따위에게 져서 억울하다는 건 알겠어.”
회귀하기 전, 나는 이민아와 그녀의 가족들을 만났다.
그 덕에 지금 이민아가 왜 이러는지 대충은 알았다.
“E급에게 진 B급이라는 소문이 학교에 다 퍼져서 쪽팔려 뒤져 가는 중이지?”
“너, 내 기분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나와 한 번 더…….”
“게다가 가족에게도 한 소리 들었지?”
“…….”
정곡이었는지, 이민아는 놀란 눈으로 말문이 막혔다.
“그걸 어떻게…….”
“뻔하지, 뭐.”
이민아의 언니와 오빠는 주말 동안 이민아를 놀렸을 게 뻔했다.
그리고 이민아의 아버지, 이진성은 아마 이민아에게 이런저런 진지한 이야기를 했을 테고 말이다.
‘뭐, B급이 E급에게 지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니까.’
아니, 엄밀히 따지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민아는 그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했다.
덕분에 그녀는 E급 따위에게 진 B급이라 전교에 소문이 다 퍼졌고, 심지어 가족들에게까지 한 소리를 듣고 온 것이었다.
‘그래서 나랑 또 대련하려는 거겠지.’
E급에게 진 건 실수, 그리고 그저 우연일 뿐이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을 테니까.
이런 이민아의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이민아와 다시 대련하고자 하는 마음은 안 들었다.
“다시 한번 말하는 거지만, 나는 의미 없는 싸움은 할 생각 없다. 알겠냐?”
지난주에 이민아와 대련한 건 유나를 빠르게 보러 가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민아와 대련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해 봤자 내 시간과 체력만 날리는, 전혀 득이 될 게 없는 짓.
나에게 전혀 의미가 없었는데, 굳이 할 이유가…….
“소, 소원 들어줄게!”
“음?”
“날 이기면 네 소원 하나 아무거나 들어줄 테니까, 나랑 대련해 줘. 내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딱 한 번만 달라고, 개새끼야.”
“…만약 내가 지면? 내가 질 경우의 페널티는?”
“그딴 거 없으니까 걱정 마. 넌 지면 지는 거고, 이기면 내게서 소원권을 받아 가는 거야. 어때? 이 정도면 됐지? 그러니까 제발 나와 대련 좀 해 줘. 너를 못 이기면 내 가족이 나를…….”
흐음, 소원권이라.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민아와 대련하고픈 마음은 안 들었다.
애초에 이민아에게 빌 만한 소원이 없는…….
‘잠깐만. 이 소원권, 잘만 하면…….’
내가 얻고자 하는 장비인 네메이아의 코트.
혼자서는 그 장비를 얻기 힘들었다.
하지만 만약 이민아의 힘을 빌린다면…….
“…소원권.”
“내가 약하지 않다는 걸 다시 증명을, 응? 뭐? 소원권?”
“소원권 오늘 받으면, 오늘 바로 써도 되는 거냐?”
“으으, 응. 그렇지. 하지만 내가 가능한 범위 내의 일밖에 못 하니까, 이상한 거 시킬 거면…….”
“좋아, 그럼 바로 가자.”
나는 방금까지 쓰던 식기류들을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도 빨리 끝내면 좋을 거 아니야, 그치?”
“태세전환 뭐냐?”
이민아는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소원권 이야기 나오자마자 적극적으로 변하네. 너 내게 시키고 싶은 거라도 있냐?”
“마침 딱 하나 있었거든.”
그리고 그 일에 B급 헌터인 이민아가 제격이기는 했다.
“야, 박유진. 미리 말하는 거지만 그 소원권은 네가 날 이겨야 얻는……”
“알고 있어. 그리고 걱정 마. 어차피 이기는 건 나일 테니까.”
“뭐, 뭐라고? 야! 지난주에 네가 한 번 이겼다고 X나 자신만만한 거 같은데, 오늘은 지난주처럼 쉽게 당해 주지…….”
“혓바닥이 길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런 건 말보다 실력으로 증명하라고, 오케이?”
* * *
약 30분 뒤, 고연대학교의 빈 체육관 안.
E급 헌터 박유진과 B급 헌터 이민아의 대결이 재성사됐다는 소문에 수많은 학생들이 체육관에 모였다.
지난주에 이민아가 박유진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는 걸 학생들은 전부 알고 있었다.
동시에 학생들은 이민아가 박유진을 잡기 위해 지난주부터 칼을 갈고 왔다는 소문까지 들었다.
그래서 대부분은 이번에 이민아가 이길 거라 예측했다.
아무리 박유진이라도 진심으로 싸우는 B급을 이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예상은 전부 빗나갔다.
“소원권.”
박유진은 피식 웃으며 자바니아를 단검집 안에 넣었다.
“오늘 바로 써도 괜찮다 했지?”
“크으으, 아아악.”
바닥에 대자로 쓰러진 이민아.
그녀는 상황 파악이 안 됐다는 듯, 그리고 안 믿긴다는 얼굴로 박유진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박유진은 피식 웃으며 이민아를 내려다봤다.
“오늘 저녁에 시간 비워 놔. 너랑 같이 갈 곳 있으니까.”
“오, 오늘 저녁?”
이민아는 힘겹게 상체를 일으키며 물었다.
“오늘 저녁에 어디를…….”
“잡고 싶은 몬스터가 있거든.”
박유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몬스터를 잡는 데, 네 도움이 필요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