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23화 (23/240)

23화

【 첫 친구 】

‘격투가’ 정찬우.

A급 헌터이자, 한때 대한민국의 헌터들을 이끌었던 남자.

헌터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한 사람으로, 지금까지도 수많은 헌터들의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11년 전에 죽었다.

‘시신조차 발견되지 않은 죽음.’

11년 전, 혜화역에 나타났던 2급 위험도의 게이트.

거기서 그는 몬스터에게 죽었고, 시체가 게이트 어딘가로 사라졌다고 했다.

당시의 사람들은 정찬우의 시신이라도 회수하고자 했으나, 혜화역에 나타났던 게이트는 2급 위험도의 게이트.

‘시체를 회수할 여유가 없던 게이트였지.’

나 또한 2급 게이트에 자주 들어가 봐서 잘 알았다.

아무튼, 헌터들은 당시에 게이트의 토벌에 집중했고,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혜화역 게이트를 토벌하고 그 게이트의 몬스터를 전부 퇴치했다.

비록 그 토벌에서 헌터계의 큰 별이었던 정찬우를 잃었지만, 그 외에는 성공적이었다.

11년 전 당시의 사람들을 그렇게 생각했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회귀하기 전의 내가 혜화역을 들리기 전까지 그랬다.

‘알고 보니 모든 몬스터를 잡은 건 아니었지.’

게다가 정찬우의 시체를 못 찾은 건 다 이유가 있었다.

- 키이이익, 끄으으으.

시체가 저 꼴이 됐는데, 못 찾는 건 당연했다.

“그러니까 11년 전에 죽은 정찬우 헌터가, 저분이라고?”

“맞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11년 전, 이 근방에 게이트가 나타났고, 그 안에서 정찬우가 죽었지. 그리고 그 게이트의 코어를 부순 뒤에, 사람들은 정찬우의 시체를 찾으려고 했지만……. 못 찾을 수밖에 없었을 거야. 찾을 당시에 시체는 이미 게이트 안에 없었으니까.”

나는 우리 눈앞에 나타난, 검은 코트를 입은 거구를 보며 말했다.

“사람들은 당시에 게이트 안에 있던 모든 몬스터를 잡았다고 했지만, 사실은 아니었어. 딱 한 마리를 못 잡았거든.”

“그 몬스터가 프리크?”

“응. 프리크 한 마리를 놓쳤지.”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눈앞의 남자를 살폈다.

혹시라도 공격해 올 기미가 보이면 바로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정찬우의 시체에 빙의한 채 게이트 밖으로 몰래 빠져나온 거지. 그리고 그 후 11년 동안 이곳에서 몰래 살아온 거야.”

“11년 동안 안 들키고 지냈다고?”

“뭐, 아까 역장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무언가 이상해서 헌터들을 한 번 부르기는 했다더라. 근데 그때 아무것도 발견 못 했고,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야.”

나는 잠시 뜸을 들인 뒤 말을 계속했다.

“정찬우는 A급 헌터였어. 지금 저 프리크는 정찬우의 모든 힘을 활용하진 못하더라도, 어지간한 헌터들보단 신체 능력이 뛰어날 거야.”

“저 뛰어난 신체로 11년 동안 쥐새끼처럼 이 지하철에 숨어 살았다, 이거지?”

“승강장에 있는 사람들의 기를 몰래 빨아먹으면서 살았겠지.”

위이이잉!

근처에서 들리는 지하철 소리.

확인해 보니 저 멀리 승강장에 지하철이 방금 막 도착한 것이었다.

“아무튼, 이민아. 지금 저 프리크가 빙의한 정찬우는 아마 B급 헌터, 그러니까 너와 신체 능력이 비슷할 거야.”

“으흠, 그래?”

“프리크와 정면에서 싸워 줘. 나는 프리크의 빈틈을 노릴게.”

“이러려고 나를 부른 거였구먼?”

“그럼 내가 너와 왜 같이 왔겠냐?”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아마 정찬우의 저 코트를 치우면, 가슴팍에 하얗게 빛나는 보석이 있을 거야. 그 보석이 약점이라 그걸 파괴하면 프리크를 죽일 수 있어.”

“아아, 그래? 야, 근데 너 이런 거 왜 이렇게 자세히 알아? 프리크에 대한 건 그렇다 쳐도, 정찬우 헌터에 관한 것들은 어디서 들은 거냐?”

“그거야, 뭐. 다 알 방법이…….”

- 키이이익!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하던 중, 매우 고맙게도 프리크가 우리의 시선을 끌어 줬다.

- 키이이익! 키아아악!

- 지지직, 지직.

괴상한 울음소리가 정찬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러면서 주변의 전등들이 고장 난 것처럼 깜박거렸다.

“이야기는 나중에 해 줄게. 일단은 저것부터 잡자.”

“그래. 그러는 게 좋겠다.”

이민아는 양쪽 주먹을 든 채, 당장이라도 달려갈 자세를 취했다.

“그래도 박유진, 나를 잘 데려왔네. 정찬우 헌터라면 내가 존경하는 분들 중 하나인데, 그런 분을 편히 쉬게 해 주는 일? 그거라면 내가 기꺼이 해 줘야지.”

“적극적으로 나와 줘서 고맙다.”

나 또한 달려들 준비를 하며 말했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찬우와 3초 이상 눈을 마주치지 마. 프리크의 능력 중 하나가…….”

위이이이이잉!

말하던 도중, 지하철이 우리 앞을 지나갔다.

그 때문에 지하철이 지나가기 전까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민아, 프리크의 눈을 3초 이상 보지 마.”

지하철이 지나가자마자, 나는 바로 다시 이민아에게 말했다.

“프리크에게는 환각 능력이…….”

- 키아아아악!

괴상한 포효와 함께 프리크가 나와 이민아에게 달려들었다.

그래서 나는 말을 다 못 끝낸 채, 키가 2m 가까이 되는 남자와의 전투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 * *

퍽! 퍼억!

쾅!

지하철 선로 위에 울려 퍼지는 타격음.

“크윽?!”

정찬우, 아니, 프리크가 날린 주먹을 맞은 이민아는 그대로 뒤로 밀려났다.

“아으으. 빙의 당해서 약해졌다 해도 역시…….”

이민아는 거구의 남자에게 달려가 발 차기를 날렸다.

“정찬우는 정찬우구나!”

프리크는 팔을 들어 올려, 큰 어려움 없이 이민아의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방금의 그 발 차기는 속임수였다.

“진짜는 이쪽이야, 새끼야!”

늑대인간의 형태로 변한 이민아의 주먹.

이민아는 그 주먹을 프리크의 가슴을 향해 날렸다.

쾅!

반대 팔을 들어서 막았음에도, 프리크는 뒤로 멀리 밀려났다.

물론 프리크는 엄청난 신체 능력 덕에 바로 다시 일어섰다.

하지만 그 순간.

쉬익!

프리크의 가슴팍을 향해 날아온 검은 칼날.

키이이익?!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기습에 프리크는 반응조차 못 했다.

검은 칼날은 그대로 프리크의 가슴팍을 향해 날아갔지만…….

챙!

“후우, 역시나.”

정찬우의 시체가 입고 있던 검은 코트.

그 코트에 의해 박유진의 단검이 막혔다.

- …키아아악!

프리크는 박유진 때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박유진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박유진은 진작에 거리를 벌린 후였다.

“저 코트가 문제네.”

네메니아의 코트.

박유진이 노리는 저 코트는, 그의 예상대로 방어력이 매우 높은 아이템이었다.

“이민아, 최대한 저 코트의 가슴팍 쪽에 틈을 만들어 봐. 저 안에 분명 프리크의 핵이 있을 테니까, 그걸 파괴하면…….”

“내가 알아서 할게.”

“어? 뭐, 알아서 해라.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저놈과 3초 이상 눈을 마주치지 마. 아까도 말했지만, 프리크에게는 환각…….”

“그래, 알겠어!”

박유진에게 대충 대꾸하며, 이민아는 또다시 프리크에게 달려들었다.

제대로 이해한 거 맞지, 라고 뒤에서 박유진이 물었지만, 이민아의 귀에는 그의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그녀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였다.

‘내가 어떻게든 잡아내겠어.’

다른 사람도 아닌 ‘그’ 정찬우였다.

바로 그 ‘격투가’ 정찬우.

만약 자신이 11년 전에 사라진 정찬우의 시체를 되찾아온다면…….

‘내 가족 모두 나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야.’

프리크가 빙의했지만, 그래도 정찬우는 정찬우였다.

만약 직접 정찬우를 쓰러뜨렸다는 걸 입증한다면, 이민아는 가족에게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증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잡겠어. 박유진의 도움 없이 잡아 보겠어.’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박유진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거와 이거는 별개의 문제였다.

이민아는 박유진이 뭘 해 보기도 전에 프리크를 혼자 쓰러뜨리기로 마음먹었다.

혼자 쓰러뜨려, 자신이 직접 빙의당한 정찬우를 잡았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퍼억! 퍽!

콰쾅!

이민아는 강철로 강화된 주먹을 날리며 프리크를 몰아붙였다.

정찬우는 살아생전에서는 A급 헌터였지만, 죽고 프리크에게 빙의 당한 지금은 B급의 능력밖에 내지 못한다.

B급 헌터인 이민아와 같은 등급이었기에, 둘의 신체 능력은 엇비슷했다.

이민아는 그걸 잘 알고 있었고, 그녀는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하기 위해 열심히 공격을 이어 나갔다.

점점 생각을 안 하고, 이성보다는 본능에 몸을 맡긴 채로 말이다.

그렇게 이민아는 잘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던 중.

“야! 이민아! 고개 돌려! 3초 이상 바라보지 말라고 했잖아!”

“…어엇?”

프리크의 얼굴을 향해 집중적으로 주먹을 날리던 이민아.

그녀는 싸움에 너무 집중한 탓에, 프리크를 3초 이상 쳐다보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 어어엇? 왜 머리가…….”

이민아는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민아. 내가 전에도 말하지 않았었나?’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한 남자의 목소리.

“이, 이건…….”

머릿속에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시에, 이민아의 눈앞에 남자가.

그러니까 그녀의 눈앞에 자신의 아버지가 나타났다.

‘힘만이 전부야. 그래서 우리보다 강한 사람들은 존경하되, 우리보다 약한 사람들은 경멸하고 무시하도록 해. 어차피 그딴 벌레들은 알아서 도태될 거니까.’

‘하, 하지만 아빠. 아무리 그래도…….’

‘시끄러워. 나는 내 가족의 그 누구도 도태되기를 원하지 않아. 그러니 너를 더 빡세게 교육할 필요가 있겠어.’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

이에 이민아는 자신의 다리가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것은 어릴 적에 느낀 감정, 공포 때문이었다.

- 키이이익!

이민아가 환각에 빠져 공포에 떨며 뒤로 물러서자, 프리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프리크는 주먹을 들어 올려, 온 힘을 다해 이민아에게 날렸다.

하지만 프리크의 주먹이 닿기 직전.

“하여튼 말을 더럽게 안 들어요.”

신출귀몰하게 나타난 박유진.

그는 이민아의 뒷목을 잡아, 그녀를 저 멀리 뒤로 던졌다.

* * *

- 키이아아악!

“미치겠네.”

프리크가 날린 주먹을 피한 뒤, 나는 뒤쪽을 슬쩍 바라봤다.

내가 방금 전 뒤쪽으로 던진 이민아를 말이다.

“아빠, 엄마. 저 진짜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오빠도 알잖아! 내가 저분을 도운 건 그냥, 어, 언니! 나 좀 도와줘! 나, 나는 그냥 그분이 힘들어 보여서 그냥…….”

“3초 이상 눈을 바라보지 말라고 했잖아, 이년아.”

프리크의 핵심적인 능력은 빙의였지만, 그것 말고도 환각 증세를 일으키는 능력도 있었다.

환각의 조건은 프리크와 3초 이상 눈을 마주치는 것.

그리고 환각의 내용은…….

‘자신의 가장 끔찍한 기억이지.’

나도 회귀하기 전에 이것 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었다.

프리크의 환각에 걸려, 유나의 죽음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봤었다.

그 덕에, 나는 프리크의 저 환각 능력이 얼마나 X 같은지 잘 알고 있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 키이이익!

나는 내게 달려드는 프리크를 피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일이 곤란해졌네.”

프리크를 잡는 데 이민아의 힘은 필수였다.

E급 헌터 수준의 내 신체 능력으로는 정면 승부가 안 됐기 때문이다.

“아, 아빠. 제발. 저, 저는 그냥…….”

하지만 이민아는 저 꼴이 된 상태.

내 계획이 살짝 꼬인 것이었다.

‘그래도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

이 상황에서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몇 가지 더 있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 선택지들을 나열했고, 이내 결론을 내렸다.

“뭐, 밑져야 본전이니까.”

- 키이이익!

내게 주먹을 날리는 프리크의 공격을 피한 후, 프리크와의 거리를 최대한 벌렸다.

그러면서 나는 선로 근처에 놓여 있던 사슬들을 슬쩍 바라봤다.

녹슬지 않은, 새것처럼 반짝거리는 쇠사슬들이었다.

나는 그 사슬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 키아아악!

“그래. 한 번 해 보자.”

내게 또다시 달려드는 프리크.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움직였다.

파직―!

파지직―!

내 손에서 튀기 시작한 푸른 전류.

스르륵.

그에 반응하듯, 주변의 쇠사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염동력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다.

- 키이이익!

사슬들이 날아가 프리크를 붙잡자, 프리크는 포효를 하며 날뛰었다.

하지만 사슬들이 의외로 튼튼했던 탓에 프리크는 바로 풀려날 수 없었다.

“후우우. 여전히 쓰기가 빡세네.”

나는 땀을 흘리며, 근처의 사슬들을 프리크에게 더 날렸다.

- 키이이익!

프리크의 양쪽 다리를 사슬로 묶는 데 성공했다.

물론 사슬들이 오래 버티지는 못하겠지만, 당장은 시간을 벌어 줄 터였다.

“하아, 하아. 시간 나는 대로 능력을 키우든가 해야지.”

E급의 몸으로 능력을 활용하려니 여전히 힘들었다.

덕분에 내 전류를 조금 더 키워야겠다는 결심이 더욱 확고해졌다.

물론 그건 나중에 생각할 문제였다.

지금 당장은…….

- 키이이익!

“저 새끼가 먼저지.”

사슬로 묶였음에도 날뛰는 프리크.

이에 나는 재빨리 반응했다.

파지직―!

왼손에 뿜어져 나온 푸른 전류.

그에 반응하듯, 근처에 놓였던 철근이 공중으로 떠올라, 그대로 프리크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 키아아악?!

“어우, 더럽게 힘드네.”

약해진 전류로 철근을 던지려고 하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하아아, 후우.”

눈앞이 어지러웠고,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잠시 쉬고 싶었지만…….

- 키이이이익!

사슬로 묶인 채 날뛰는 프리크를 보자, 그 마음이 바로 사라졌다.

‘저 사슬로 묶어 두는 건 길어 봤자 2분이겠지.’

회귀하기 전에 나는 저 프리크를 한 번 상대해 봤고, 그 덕에 저 녀석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었다.

아마 지금의 내게 주어진 시간은 길어 봤자 2분.

그 2분 동안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야 했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수는 하나였다.

“야, 이민아.”

나는 근처에 주저앉은 갈색 단발머리에게 다가갔다.

“얼른 정신 차려,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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