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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25화 (25/240)

25화

* * *

원래 같았으면 엄살 부리지 말라고 한마디 했겠지만, 이번만큼은 그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게.

“꺄아악! 이, 이거 뭐야, X발! 왜 갑자기 움직이고 X랄이야?! 어, 어서 떨어져!”

회귀하기 전의 나도 이것 때문에 꽤 놀랐었다.

당시에 프리크의 핵을 부순 뒤.

다 끝난 줄 알고 정찬우의 시체에 다가갔었다.

근데 그 시체가 갑자기 내 손목을 붙잡자, 나는 여러모로 식겁했었다.

‘최대한 태연한 척했지만, 솔직히 간 떨어지는 줄 알았지.’

내가 인생에서 가장 놀란 순간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뭐, 아무튼.

“이민아, 진정해.”

“내가 진정하게 생겼냐, 이 개새끼야?! 시체가 갑자기 내 손목을…….”

“알겠으니까 일단 진정하라고.”

만약 회귀를 안 했다면, 나 또한 이민아처럼 진정을 못 했을 거다.

하지만 나는 회귀를 한 인간이었고, 덕분에 지금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알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 봐.”

정찬우의 손에 붙잡힌 이민아.

정찬우를 떨어뜨리려는 이민아 곁으로 가, 그녀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진정하고, 움직이지 마.”

“…어, 응. 아, 알겠어.”

내가 침착하게 말하자, 이민아 또한 침착함을 되찾은 듯했다.

“천천히 정찬우 옆에 몸을 낮추는 거야. 나랑 같이 낮추자, 알겠지?”

“애 다루듯이 말하지 마.”

“아, 네, 네.”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면서 나는 이민아와 같이 정찬우 시체 옆에 천천히 몸을 낮췄다.

“야, 너 지금 이게 뭔 일인지 알고 있던 거야?”

“대충은 알고 있지.”

“…이 프리크에 대해서도 그렇고, 정찬우에 대해서도 그렇고, 너 대체 이런 것들을 어떻게…….”

“나중에 알려 줄게. 지금은 조용히 하고, 내 말을 따라 줘.”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아냐.

참으로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기에,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알겠으니까, 일단 내 손목을 잡은 이 소름 끼치는…….”

“조용히 해 봐.”

이민아의 입을 닫게 한 후, 나는 이민아의 손목을 붙잡은, 차갑게 식은 정찬우의 손 위로 내 손을 올렸다.

“정찬우 씨. 들리십니까?”

나는 침착하면서도 또박또박 말했다.

내가 시체에 말을 걸자 이민아는 나를 미친놈처럼 바라봤으나…….

“…자, 잘 들리, 네.”

정찬우의 입에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바, 박유진? 바, 방금 시체가 말을…….”

“조용히 하고 있어.”

나는 다시금 시체를 바라봤다.

시체, 그러니까 정찬우의 눈은 여전히 초점이 없었다.

마치 진짜 시체처럼, 멍하니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 눈에 아주 약간이지만 생기가 있는 듯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이 손을 놓으시고, 편히 쉬십시오.”

“…….”

잠시 이어진 침묵.

그리고 이내 정찬우의 차가운 손은 이민아를 놓아줬다.

“나, 나를 구해 준 게, 자, 자네인가?”

“예, 그렇습니다.”

“…고맙네.”

정찬우의 차가운 손이 이번에는 내 손을 붙잡았다.

“나를, 그 고, 통에서 해방시켜 줘서 진심, 으로 고맙네.”

“할 수 있는 걸 했을 뿐입니다.”

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회귀하기 전에 이미 겪었던 일이라, 내가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11년 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11년. 11년 동안 이 꼴로, 으윽. 벌써 11년이, 으으.”

정찬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

약간의 생기가 보였던 그의 눈 또한 점점 그 생기를 잃고 있었다.

“자네, 윽, 이름, 이 뭔가?”

“박유진입니다.”

“박유, 진. 나를 구해 줘서 고맙네. 보답, 이라고 하기에는 뭐하지만, 이 코트. 이 코, 트를 자네가 가지게. 가져가서, 유용하게, 나를 구한 것, 처럼, 다른 사람들도 도와주게.”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귀하기 전에도 이와 비슷한 대화를 했었다.

나는 그때의 데자뷔를 느끼며, 죽어 가는 정찬우를 바라봤다.

“소중하게 쓰겠습니다.”

“고맙, 네. 그리고 마지, 막으로 내 딸. 11년이나 지난, 으윽. 으, 내 딸, 내 딸에게 미안하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대신 전달을…….”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고맙네. 아아, 내 딸, 현지. 벌써 11년이면, 벌써 어른이…….”

정찬우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의 눈에 있던 약간의 생기가 사라졌고, 동시에 내 손을 붙잡던 그의 손은 바닥에 떨어졌다.

“…돌아가신 거야?”

“응, 11년 만에 드디어 눈을 감은 거지.”

나는 정찬우의 얼굴에 손을 가져가, 그의 두 눈을 조심히 감겨 줬다.

회귀하기 전에 했던 것 그대로 말이다.

“됐고, 움직이자. 이번 일을 마무리하려면 아직 할 일이 남았거든.”

* * *

“경찰 쪽에 연락했고, 지금 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헌터 협회 쪽에도 연락했으니, 그쪽에서도 곧 사람들이 올 겁니다.”

약 20분 뒤.

지하철 역장실에서 쉬던 나와 이민아 앞에 나타난 역장은 상황을 설명했다.

“정찬우 헌터님의 몸은 저희 직원들이 따로 옮겨 놨습니다. 이따 경찰들과 헌터들이 오면…….”

“예, 알겠어요.”

나는 역장의 말을 적당히 끊으며 입을 열었다.

“경찰과 다른 헌터들이 오면 그쪽으로 바로 갈게요. 그러니 그동안 저희는 잠시 여기서 쉬고 있도록 할게요. 괜찮죠?”

“아아, 네. 그럼 쉬고 계십시오.”

역장은 눈치 있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 오면 그때 다시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네, 알겠어요.”

“그럼 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몬스터를 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역장은 나갔고, 덕분에 역장실에 나와 이민아, 단둘이 남게 되었다.

“고생했어.”

역장이 나가는 걸 확인한 후, 나는 내 옆에 앉아 있던 갈색 단발머리 녀석에게 말했다.

“쉬운 몬스터가 아니었는데, 네 덕에 생각보다 쉽게 잡았다.”

“네 소원이었잖아. 소원권을 걸고 졌는데, 이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어.”

“허, 그러냐?”

“어, 그렇다. 그보다 너, 저 코트 진짜 입고 다니려고?”

이민아는 내 옆에 놓여 있던 검은 코트, 그러니까 얼마 전까지 정찬우가 입고 다니던 네메이아의 코트를 가리켰다.

“좋은 아이템인 건 알겠는데, 죽은 사람의 것을 입으면 찝찝하지 않냐?”

“으음, 딱히?”

나는 이 코트를 10년도 넘게 입고 다녔다.

그 덕에 입는데 거부감은 안 들었다.

“…너 진짜 특이하기는 하다.”

“그러냐?”

“E급이면서 B급인 나를 두 번이나 이겼지, 거기다 정찬우 헌터가 프리크에게 빙의 당한 것도 알고 있었지, 그것 말고도 특이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그런 의미에서 한 번 묻자. 너 정찬우 헌터가 프리크에 빙의당한 채 여기에 있다는 건 어떻게 알고 있었어? 게다가 아까 네가 했던 전류로 사슬을 다루는 건 뭐야? 그건 내가 아는 일렉트로 마스터들 중 아무도 못 하는…….”

“사람에게는 각자의 사정과 비밀이 있는 법이야.”

나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런 사정과 비밀을 전부 이해해 주는 게 대인배지. 그러니 너도 대인배가 되기 위해…….”

“그냥 말할 생각 없다고 해, 이 개새끼야.”

“네가 이해 좀 해 줘라. 나에게도 말 못 할 사정이 있거든.”

이 모든 걸 설명하려면 내가 회귀했다는 걸 밝혀야 하는데, 그걸 설명하면 일이 여러모로 복잡해졌다.

아니, 애초에 이민아가 믿을지부터 의문이었다.

차라리 이렇게 넘기는 편이 나았다.

“알겠어. 굳이 캐묻지는 않을게. 오늘 네 덕에 나름 특별한 경험을 했고, 너에게 도움까지 받았으니까.”

“그래?”

“정찬우 헌터는 내가 존경하던 분 중 한 명이었거든. 그분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데 도와준 건, 내게 있어 엄청 특별한 경험이지. 그리고 너에게 도움을 받은 건…….”

이민아는 내 시선을 슬쩍 피했다.

“아까 내가 환각을 겪을 때 네가 나를 도와준…….”

“그거라면 신경 쓰지 마. 당연히 도왔어야 했으니까.”

“아, 그, 그래? 그렇다면, 그 있잖아.”

“음?”

“내가 환각을 겪고 있을 때 네가 나에게 했던 말들 중에…….”

“아, 내가 네 친구 되어 주겠다는 그거?”

“으, 응. 그거 혹시…….”

“왜? 처음으로 친구 되어 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서 기뻤냐?”

“나, 나 너 말고도 친구가 있…….”

“진심으로 한 말이야, 인마.”

“…응?”

“네 친구가 되겠다는 거, 그거 그냥 한 말 아니라고.”

회귀하기 전의 나는 이민아와 그녀의 가족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민아가 어떤 미래를 맞이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잠재력이 뛰어났지만, 이 녀석의 망할 가족들이 그 잠재력을 전부 깎아 먹었지.’

거기다 막판에 그 날개를 아예 꺾은 게 이민아의 가족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민아가 그 결말을 또 맞이하지 않았으면 했다.

“원한다면 네 친구가 얼마든지 되어 줄게. 그러니까 이민아.”

“응?”

“네 가족에게 너무 휘둘리지 마. 네 가족이 너에 대해 뭐라 하든, 너는 그보다 훨씬 대단한 인간이니까. 그렇다고, 내가 보장할게.”

“하지만, 나는, 내 가족은, 나를…….”

무언가 말하기를 망설이는 이민아.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은 힘들겠지.’

평생 가족에게 휘둘리며 살았으니, 그럴 법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민아를 한 번 믿고 밀어주고자 했다.

이번만큼은 날개가 안 꺾인 채 날아다닐 수 있도록 말이다.

뭐, 아무튼.

“내가 한 말, 잘 생각해 봐라.”

“음? 뭐야? 너 어디 가?”

“난 집에 가려고. 너무 늦으면 여동생에게 혼나거든.”

나는 코트를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있던 일, 그거 나머지 절차는 부탁할게. 어려울 거 없으니까, 그 정도는 부탁해도 괜찮지?”

“그 정도는 가능하지. 그냥 적당히 진술만 잘 하면 되는 거니까.”

“좋아. 그럼 나는 가 본다.”

“야, 잠깐만.”

역장실을 나가려는 나를 이민아가 붙잡았다.

“근데 보통 몬스터 포획의 공로를 인정받으려면 현장에 우리 둘 다 있어야 해. 지금 네가 가면 오늘의 공로를 네가 인정 못 받을…….”

“아, 그거라면 그냥 너 혼자 잡았다고 해.”

“…뭐?”

“너에게도 그 편이 좋지 않겠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는 옆에서 보조만 했고, 중요한 건 네가 다 했다 하고, 프리크를 죽이고 정찬우의 시체를 되찾은 건 네 공로로 해. 오케이?”

“하지만…….”

“이러면 너도 네 가족에게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 거야. 너는 네 가족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쓸모 있다, 대충 이런 식으로 말이야.”

“네가 내 가족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런 말을…….”

“이것저것 알고 있지.”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뒤처리 부탁할게. 아, 그리고 혹시라도 정찬우 씨의 딸이 오면, 그분에게 정찬우 씨의 마지막 말을 전해 줘. 다른 건 몰라도 이건 꼭 해야 된다. 알겠지?”

“야, 박유진. 이거 언론에 나오고 헌터로서의 공적을 쌓을 수 있을 기회인데, 이 기회를 왜 걷어차는…….”

“오늘 고생했어. 내일 학교에서 보자.”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역장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검은색의 코트를 챙긴 채, 나는 혜화역에서 벗어났다.

* * *

“공적을 쌓을 수 있는 기회인데, 왜 걷어찼냐? 흐음.”

약 한 시간 뒤, 집 근처의 골목.

집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며, 아까 이민아가 내게 했던 말을 곱씹었다.

“이유라면 두 개 있지.”

첫째, 거기에 남아 있다가 정찬우가 남기고 간 코트를 뺏길 가능성이 있었다.

정찬우는 11년 전에 꽤 유명했던 헌터였다.

그런 헌터의 유품인 이 코트를, 경찰이나 헌터 협회 관계자가 그냥 가져가게 둘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최대한 빨리, 그리고 몰래 빠져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어차피 언론에 나오고 공적 쌓는 거야, 나중에 질리도록 할 테니까.”

내 목표는 회귀하기 전만큼, 아니.

가능하면 그 이상으로 강해지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수많은 일들을 겪고, 수많은 공적들을 쌓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오늘의 일 정도야 뭐, 그냥 버려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오늘의 공적이니 뭐니 하는 것보다.”

나는 입고 있던 검은색 코트를 바라봤다.

“이걸 얻었다는 게 제일 중요하지.”

정찬우의 코트, 그러니까 네메이아의 코트.

11년도 더 된 물건이었음에도, 상태가 상당히 양호했다.

물론 조금 더럽기는 했지만, 세탁하면 해결될 문제였다.

“확실히 편하기는 하네.”

5월 중순에 입은 코트였음에도 덥지가 않았다.

오히려 쾌적했다.

‘착용자에게 최적의 온도를 제공해 주는 게 이 코트의 기능 중 하나였으니까.’

한여름에 입어도 오히려 시원했다.

그것 외에도 다양한 기능이 있는 코트인 만큼, 이걸 오늘 손에 넣어서 만족스러운…….

우웅―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집으로 걸어가던 중, 내 스마트폰이 울렸다.

뭔가 싶어서 바로 꺼내서 확인했는데…….

“뭐지?”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하나 와 있었다,

그리고 문자의 내용은…….

[박유진 씨, 안녕하세요. 하세리 헌터입니다. 혹시 잠깐 시간 되는 날이 있을까요?]

“…이 누나는 내 번호를 또 어떻게 안 거야?”

내게 갑자기 연락해 온 붉은 머리의 화염술사.

이에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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