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 * *
“1800년대 초반에 미국은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를 구입하는데, 이때 미국의 영토는 기존의 영토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성장을…….”
이민아와 프리크를 잡은 그다음 날.
나는 고연대학교의 강의실에 앉아 교양 수업을 듣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듣는 척을 하고 있었다.
‘뉴스에 다 나왔구먼.’
나는 스마트폰을 통해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들을 보고 있었다.
어제저녁에 발견된 정찬우에 관한 기사들을 말이다.
[어제저녁, 11년 전에 실종된 정찬우 헌터의 시신이 발견됐다. 실종되고 시신조차 못 찾고 있던 정찬우 헌터는, 지난 11년간 ‘프리크’라는 유령형 몬스터에게 몸을 빼앗겼다고 한다. 프리크를 발견한 건 B급 헌터 이민아 외 1명으로, 그들은 어제저녁 혜화역에서 프리크와의 전투를 치렀다고 보도됐다.]
이민아 외 1명이라.
일단 내 이름은 언론에 밝혀지지 않은 듯했다.
‘이민아가 나를 배려해 준 건가?’
내가 괜한 관심을 안 받고 싶어 한다는 걸 눈치챈 건지 모르겠으나, 내 입장에서 나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만약 지금 관심을 받으면 일이 여러모로 피곤해졌기 때문이다.
‘당장은 관심을 끌 타이밍이 아니지. 적어도 C급은 된 후에 유명해져도 늦지 않아.’
회귀하기 전의 나는 잃을 게 없었기에 눈치를 안 보고 다녔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의 나는 잃을 게, 아니.
지켜야만 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 때문에 유나가 위험해지면 안 되니까.’
혼자 유나를 지킬 수 있게 되기 전까지, 나는 이목을 끌 생각이 없었다.
그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근데 문제는 이미 관심을 너무 많이 끌었다는 거지.’
회귀했던 첫날부터, 나는 이민아와의 1대1 대결에서 승리했다.
그 덕에 이미 지난주부터 나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은 상태였다.
‘적어도 고연대학교에서 이미 유명 인사가 됐고, 거기다 아마 이민아의 가족도 나를 알게 됐을 거야.’
그래도 그 두 개는 괜찮았다.
고연대학교에서 유명해진 거야, 내가 앞으로 안 나대고 다니면 자연스럽게 관심이 식을 게 뻔했다.
그리고 이민아의 가족도 큰 문제가 없는 게…….
‘이민아의 가족, 특히 이진성은 E급 따위에게 관심을 안 가지겠지.’
물론 B급인 이민아를 이겼기에 나에 대해 안 알아보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당장의 나는, 회귀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별 볼 일 없는 인간이었다.
아마 이진성의 성격상 나에 대해 10분?
그 정도의 시간 동안만 알아보고 이내 관심을 끌 게 뻔했다.
아무튼, 회귀한 지 약 1주일이 지났고, 지금까지의 상황을 돌아보자면…….
‘자바니아와 네메이아의 코트. 이 둘을 얻었지.’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얻게 된 최상급의 아이템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일주일 동안 얻을 걸 얻고, 그러면서도 최대한 관심을 안 끌었다.
일이 잘되고 있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제 저녁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 누나는 어떻게 하는 게 좋으려나?’
나는 하세리에게 온 문자를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박유진 씨, 안녕하세요. 하세리 헌터입니다. 혹시 잠깐 시간 되는 날이 있을까요?]
어제저녁, 내게 대뜸 시간이 있냐고 물은 하세리.
‘진짜 어떻게 하지?’
일단 당분간 바빠서 시간이 안 된다고 답장했다.
그 후로 하세리에게 연락은 따로 안 왔지만, 하세리의 성격상 조만간 다시 연락해 올 것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하세리가 내게 무언가 관심을 가지는 건 곤란한데.’
하세리는 관심을 갖게 된 인간에게 이상하리만큼 집착하는 편이었다.
나도 회귀 전, 그녀의 집착을 한 번 겪어 봤기에 알고 있었다.
‘뭐, 하세리가 내게 관심을 갖게 된 거 자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야.’
하세리가 인간에게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 집착이란 중증까지는 아니었다.
그냥 아주 가벼운 스토킹 정도?
게다가 하세리라는 인간 자체가 워낙 선한 면이 있어서, 그녀가 따라다니는 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라면 그녀의 가족이지.’
하세리의 가족은, 이민아와는 다른 의미로 골치가 아팠다.
만약 내가 이 시기의 하세리와 조금이라도 친해질 경우, 극단적으로 가면 내 신변이 위험해질지도 몰랐다.
‘내 신변이 위험해지는 건 상관없어. 문제는 유나지.’
유나가 다치는 거, 그것도 나 때문에 다치는 건 절대 용납 못 했다.
그러니 하세리와 친구가 되는 건 적어도 몇 년 뒤, 그러니까 하세리가 가족과 완전히 손을 끊게 된 후에 하는 게 맞았다.
‘좀만 기다리자. 어차피 하세리는 혼자서 잘 헤쳐 나올 테니까.’
이민아와는 다르게, 하세리는 가족 문제를 혼자의 힘을 해결했다.
그러니 나는 그저 기다리다가, 기회를 봐서 하세리를 내 지인으로…….
“오늘은 수업은 여기까지 할게요. 다다음주까지 과제 내는 거 잊지 마시고, 기말고사 관련 공지는 제가 따로…….”
“…아.”
속으로 생각들을 하던 중, 어느새 수업이 끝났다.
“…필기 하나도 못 했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라 뭘 할 수 없었기에, 나는 천천히 가방을 챙기며 강의실 밖을 향했다.
근데 강의실 밖을 나오자, 예상치 못한 인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민아? 너 여기서 뭐 하냐?”
“널 기다리고 있었다, 왜? 불만 있냐?”
“아니, 불만은 없다만, 왜 기다리고 있던 거냐? 그보다 내가 여기서 수업을 듣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알고 있던 거야?”
“다, 다 알 방법이 있어.”
“너 설마 네 길드 사람들 시켜서 내 시간표 뒷조사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
“어, 어떻게 알았, 아아. 아, 아니거든! 내가 시간 아깝게 왜 그런 짓을 하겠어?”
…어련하시겠어.
나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이민아를 바라봤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친구가 수업 다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이상하냐?”
“…너 진짜 친구가 없기는 했구나. 굳이 친구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게…….”
“닥쳐! 친구고 뭐고 너 죽인, 야! 왜 그런 눈빛으로 날 보는 거냐? 불쌍하다는 듯이 보지 말라고!”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이 녀석의 성격은 참 한결같았다.
그래도 이 편이 나았다.
가족에게 날개가 꺾인 후의 이민아는 여러모로 어두웠으니 말이다.
“알겠어, 인마. 알겠으니까, 나를 왜 찾아온 거야? 그것부터나 말해.”
“…너 오늘 수업 끝났지?”
“응, 그치. 이게 오늘 마지막 수업이었으니까.”
“점심, 안 먹었지?”
“안 먹었다만, 왜?”
“가, 같이 먹으러 갈래?”
갈색 단발머리의 여대생은 내 시선을 피한 채,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내가 아는 5성급 호텔이 근처에 있는데, 거기 레스토랑에서…….”
“그, 이민아. 미안한데 그런 고급 레스토랑은 내 돈으로 감당 못 하는…….”
“내, 내가 사 줄게.”
이민아는 재빨리 말했다.
“어제 프리크를 잡은 거. 네가 제일 고생했는데, 공적은 내가 다 가져갔잖아? 그래서 그, 내가 뭐라도 보답을 하는 게 맞는 거 같은…….”
“…훗.”
나는 작게 웃었다.
이민아, 그녀는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을 깔보는 성격이었다.
애초에 가족에게 그렇게 교육받아서, 그런 성격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녀석과 어찌어찌 친해지면, 이민아가 나쁜 애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회귀하기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근데 5성급 호텔이라…….’
이민아가 돈을 내 주겠다는 거면 굳이 사양할 생각 없었다.
하지만 나는 문득 부탁하고 싶은 게 생겼다.
“혹시…….”
“응?”
“오늘 말고 주말에 가도 괜찮을까?”
“주말? 상관은 없는데 굳이 왜…….”
“내 여동생을 데리고 가고 싶거든. 가능할까?”
솔직히 내가 봐도 억지스러운 부탁이었다.
5성급 호텔이면 비쌀 텐데, 내 밥값뿐만 아니라 유나 것까지 내 주는 거면 이민아 입장에서는…….
“알겠어.”
“음?”
“알겠다고. 주말에 네 여동생 데리고 와. 내가 사 줄게.”
내 예상과는 달리, 이민아는 쿨하게 내 부탁을 받아들였다.
“왜? 내가 그 정도도 못 해 줄 거라 생각했어? 나는 그래도 치, 친구에게는 관대하다고. 응, 관대하지, 응.”
“방금 그 말만 아니었으면 엄청 멋져 보였을 거다.”
“뭐, 뭐라고? 야, 내가 방금 한 말이 뭐 어때서?”
“친구 없는 거 너무 티 났어.”
“주, 죽을래?! 나 친구 있거든. 다, 당장 너만 해도 내 치, 친구잖아!”
“그치. 틀린 말은 아니지.”
나는 피식 웃으며 이민아에게 대꾸했다.
“아무튼 여동생 데려와도 괜찮다는 거지?”
“응, 괜찮아.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네 여동생을 한번 만나 보고 싶기도 했어.”
“그래? 왜?”
“너를 그렇게 헤프게 웃게 만드는데, 누구라도 궁금하지 않을까?”
“…딱히 할 말이 없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그럼 주말에 부탁할게.”
“나 돈 많으니까 걱정 마라. 이 누나가 다 사 줄게. 대신.”
“대신?”
“괜찮다면, 오늘 같이, 그, 둘이서 같이 점심 먹으러 갈래? 나 아직 점심 안 먹었는데, 너도 안 먹었다면서?”
“나쁠 거 없지.”
나도 마침 배가 고픈 참이었다.
“이 근처에 내가 아는 칼국숫집 있는데, 거기 갈까?”
“으음, 칼국수보다 한정식 어때? 여기서 조금 거리가 있지만, 맛이 좋은 곳 하나 있거든.”
“미리 말하지만, 너무 비싼 곳이면 나 감당 못 한다.”
“비싼 곳 아니야. 가성비 좋은 곳이니까 나만 믿고 따라와.”
이민아는 당당하게, 그리고 평소보다 어째 더 신난 모습으로 말했다.
“나, 나도 대학 와서 친구랑 같이 밥을…….”
이민아는 작게 무언가를 중얼거린 거 같았지만, 나는 그냥 못 들은 척해 줬다.
“아, 맞다. 그, 박유진?”
“음? 왜?”
“혹시 네 전화번호, 알려 줄 수 있을까? 아아, 그,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라, 주말에 너랑 만나려면 연락처 정도는…….”
“내게 안 물어봐도 그냥 네 길드 사람들에게 내 뒷조사 맡기면 되는 거 아니냐?”
“야! 나 네 뒷조사한 적 어, 없다니까! 지, 진짜로!”
“알아, 인마. 그냥 해 본 말이야.”
나는 피식 웃으며 내 코트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네 번호 입력해 봐. 내가 따로 문자 줄게.”
“어? 어, 알겠는데…….”
이민아는 그렇게 대답하며 내가 입은 검은 코트를 바라봤다.
“너 이 코트, 진짜 입었네?”
“이게 왜?”
“학교에 입고 올 줄은 몰랐지. 뭐, 죽은 사람이 입던 옷인 거야 그렇다 쳐도, 어어, 안 덥냐? 5월 중순에 코트를 입고 다니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다.”
“음, 딱히? 게다가 이 코트는 오히려 입고 다니는 편이 더 시원해. 이게 착용자에게 최적의 온도를 제공해 주거든.”
“튼튼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별 기능이 다 있구나?”
“기능이 많기는 하지.”
보기보다 얇은 코트였지만, 이 얇은 코트는 어지간한 공격들을 다 막아 내는 내구력을 지녔고, 그 외에도 엄청 다양한 기능들을 지녔다.
내가 괜히 이 코트를 10년 넘게 입고 다닌 게 아니었다.
“뭐, 됐고. 번호는 다 입력했냐?”
“응, 여기.”
“오케이. 저장했고, 이따 식당에서 문자 보내 줄게. 그때 번호 저장해.”
“알겠어. 그럼 빨리 먹으러 가자. 나 배고파.”
“그려, 그려.”
나는 피식 웃으며 앞장서는 이민아를 따라갔다.
그리고 그렇게 이민아와 같이 점심 먹으러 갈 줄 알았다.
또 다른 예상치 못한 인물이 안 나타났다면 그랬을 거다.
“박유진 씨!”
멀리서 누군가가 부른 내 이름.
뭔가 싶어서 고개를 돌렸는데.
“박유진 씨! 잠시만요! 저랑 잠깐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내게 달려온 붉은 머리의 여성.
“역시 학교에 계셨군요. 이쪽으로 오기 잘했네.”
하세리는 내 앞에 서며,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직감했다.
오늘 점심은 편히 먹기 글렀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