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 * *
마도구 제작자, 바렐.
대한민국에서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지만, 바렐이라는 이름은 유명했다.
게이트 토벌에 쓰이는 대부분의 마도구들은 바렐이 제작했으니 말이다.
전에 카시아 길드와 같이 칠보산의 게이트를 토벌하러 갔을 때.
그때 짐꾼으로 갔던 내가 썼던 짐꾼용 가방.
그 가방도 바렐이 만든 것이었다.
그 외에도, 게이트 토벌 때 일상적으로 쓰이는 대부분의 마도구들은 전부 바렐의 손을 거쳤다고 한다.
‘대단한 사람이고, 그만큼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났지.’
하지만 그 엄청난 자부심과는 별개로, 바렐은 자신의 얼굴이 드러나는 걸 원치 않아 했다.
신비주의를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 엄청난 유명세에 비해 바렐, 그러니까 고민수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나 또한 회귀하기 전에 운 좋게, 그리고 우연히 고민수를 알게 된 것이었다.
‘게다가 또 특이한 점이라면, 돈을 크게 밝히지 않는다는 점이었지.’
수십 년 동안 마도구를 팔아 돈을 엄청나게 축적해서 그런지, 내가 만났을 때의 고민수는 금전적인 걸 내게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격과 실력을 따졌다.
양산용 목적으로 만든 게 아닌, 고민수가 직접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만든 아이템들.
고민수는 단순히 돈 따위에 그 아이템들을 제공하지 않았다.
- 그럼 네 실력을 한 번 내게 보여 보거라!
“원하시는 대로 해 드리죠.”
나는 내게 달려오는 키 3m의 로봇의 공격을 피하며 대꾸했다.
마치 회귀하기 전에, 내가 혼자 이곳을 처음 왔던 때처럼 말이다.
그때의 고민수도 나를 이 커다란 로봇으로 맞이해 줬다.
‘고민수에게서 아이템을 얻어 내는 방법은 간단해.’
자질과 그에 맞는 실력이 있다는 것만을 보여 주면 됐다.
여기서의 자질은 얼마나 용감하고 당당한지 등의 인성적인 면을 보는 것이었고.
위이이잉!
“으윽.”
실력적인 면은 말 그대로, 헌터로서 얼마나 잘 싸우는지를 뜻했다.
고민수는 헌터의 실력을 중요하게 봤다.
회귀하기 전에 그가 했던 말에 의하면…….
‘자신의 작품이 어중이떠중이보다 위인에게 쓰이는 편이 좋다, 대충 이런 말을 했지.’
내게 달려들어 주먹을 내리찍는 로봇을 피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튼 중요한 건, 고민수는 돈보다 그 사람의 자질과 실력에 따라 아이템을 제공했다.
‘회귀하기 전의 나는 고민수에게 어려움 없이 아이템을 얻어 냈지.’
그럴 수밖에 없던 게, 회귀하기 전의 나는 급격한 성장을 보인, 헌터 역사상 유례가 없던 놈이었다.
당시의 내 인성이 개차반이기는 했었지만, 그걸 다 커버할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고민수는 그런 나를 흥미롭게 생각했고, 덕분에 그에게서 어렵지 않게 아이템을 얻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회귀한 지금의 나는 그저 E급 헌터.
실력이 아직 많이 부족한 녀석이었다.
그래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일단 성격적인 면은 합격인 거 같았고…….’
고민수가 당당하고 용감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빌딩에 들어서자마자 고민수에게 아이템을 내놓으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처음에는 조금 긴가민가했으나, 고민수의 반응을 보니 통한 듯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내 실력적인 부분이지.’
방금 말한 거처럼, 지금의 나는 E급이라 실력적인 면에서 많이 부족했다.
그러나 내게는 경험이 있었다.
아직은 E급이지만, 내게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
대충 그렇게만 보여 줘도, 고민수의 마음에 들 터였다.
‘그럼 한 번 해 보자.’
내 목표는 고민수에게서 아이템을 얻어 가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눈앞에 나타나 나를 공격하는 이 로봇을 쓰러뜨려야 했다.
‘고민수가 마법으로 직접 만들고, 원격으로 조종하는 로봇.’
그 고민수가 만든 로봇답게, E급의 능력으로는 못 잡는 몬스터였다.
원래 같았으면 말이다.
‘나는 이 로봇의 상대법과 약점을 알고 있어.’
회귀하기 전에 한 번 상대했던 덕에, 나는 이미 이에 대해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해야 할 건 하나였다.
- …어?
로봇의 공격을 피하고, 왼쪽 다리의 관절 쪽에 다가가 자바니아를 찔러 넣었다.
물론 로봇이 두르고 있는 갑주 때문에 깊게는 못 찔러 넣었지만, 로봇을 휘청이게 만들기 충분했다.
- 무, 무슨?
그리고 원격으로 로봇을 조정하던 고민수를 당황시키기에도 충분했다.
- 어떻게 그쪽을 정확히…….
“다 방법이 있습니다.”
저 로봇의 주요 움직임을 담당하는 파츠는 여덟 개.
나는 그 여덟 개의 위치를 전부 알고 있었다.
즉, 그 부분만 집중적으로 공략하면, E급인 나라도 충분히 할만했다.
- 아까 보인 당당함이 허세는 아니었던 모양이구나.
고민수의 이 말과 함께 로봇의 가슴에 나타난 마법진.
그리고 이내 그 마법진에서 푸른 불길이 튀어나왔다.
“에라이.”
나는 재빨리 그 불길을 피했다.
물론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지만, 어제 구해 왔던 네메이아의 코트.
이 코트가 그 불길의 대부분을 막아 줬다.
- 꽤 재밌는 코트를 입고 있구나. 자, 그럼. 이것도 막아 보거라!
로봇의 가슴에 나타난 또 다른 마법진.
그리고 이번에는 푸른색의 전류들이 나를 덮쳐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살짝 미소를 지은 채, 그 전류들을 전부 맞아 줬다.
“시원하네요.”
- …전류 관련 능력을 지녔나 보구나.
로봇은 이내 공격을 멈추며, 잠시 나를 조용히 바라봤다.
- 지금 보니까, 젊은이. 자네는 E급 헌터였군. 탈로스에게 장착해 둔 스카우터가 그렇게 알려 주는구나.
“탈로스? 아아, 탈로스라면…….”
- 지금 자네가 싸우는 이 로봇의 이름이지.
아무튼, 이라고 말하며 고민수는 말을 계속했다.
- 자네는 E급치고는 움직임이 꽤 좋다는 걸 알겠네. 스카우터가 아니었으면, 자네를 절대 E급 헌터 따위로 볼 수 없었을 거야.
“칭찬 감사합니다.”
- 후훗. 하지만 어디까지나 E급치고는 잘 싸우는 거지, 내 기준에서는 아직 부족해. 나, 이 바렐이 직접 만든 아이템을 원한다면, 탈로스 정도는 혼자 힘으로 쓰러뜨려야 할 걸세.
“걱정 마세요. 그 정도는 어렵지 않으니까요.”
지금의 나는 회귀 전보다 많이 약했다.
특히 회귀 전, 고민수의 저 탈로스와 처음 만나 싸웠을 때와는 비교조차 못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길 자신이 있었다.
- 당돌하구먼. 그럼 한 번 실력을 보여 보거라!
탈로스의 가슴을 중심으로 또다시 마법진이 나타났다.
그리고 나는 자바니아를 들어 올리며 움직일 준비를 했는데, 그 순간.
화르르륵!
갑자기 나타난 불길이 나와 탈로스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게 뭔가 싶어서 잠시 당황하고 있었는데…….
“박유진 씨. 꽤 즐기시던 거 같은데, 중간에 끼어들어서 죄송해요.”
“하세리 헌터님?”
붉은 머리의 헌터.
그녀 주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불길 때문에 나와 탈로스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갑자기 왜…….”
“제가 민수 아저씨의 이런 방식을 별로 안 좋아해서요. 죄송한데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친절한 미소와 함께 내게 말한 후, 하세리는 나랑 대치하던 거대한 로봇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녀의 미소는 사라졌고, 동시에 표정도 많이 어두워졌다.
“민수 아저씨. 제가 전에도 말하지 않았어요? 손님이 오면 다짜고짜 탈로스를 내보내지 말고, 직접 내려오라고 했잖아요. 게다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탈로스로 싸움을 거는 건 대체 뭐 하는 거예요?”
- 하지만 세리야. 싸우는 건 저 젊은 친구도 원하는 거 같았잖아? 그리고 빌딩 꼭대기에서 1층까지 내려가는 것보다 탈로스를 이용해 맞이하는 편이 훨씬 더 효율적…….
“사람 만나는 데 뭔 효율을 따져요?”
- 네가 그렇게 말해 봤자 전혀 설득력 없단다. 자기에게 편한 사람만 골라 가면서 만나는 네가 어떻게 보면 인간관계 면에서 제일 효율을…….
“시, 시끄럽고, 당장 1층으로 내려와요.”
화르르륵―
하세리의 불길이, 정확히 말하자면 탈로스 주위의 불길이 더욱 강해졌다.
“탈로스가 녹아 사라지는 꼴 보기 싫으면 지금 당장이요.”
* * *
“만나서 반갑네. 나는 고민수, 흔히들 ‘바렐’이라고 부르는 사람이지.”
약 5분 뒤.
우리 앞에 나타난 고민수는 내게 인사했다.
“만나서 반가워요, 고민수 씨. 다시 인사드리는 거지만, 박유진이에요.”
나는 이제 막 40대가 된 듯한 아저씨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 유명한 바렐 님을 만나게 되어 영광이네요.”
“나, 참. 영광은 무슨. 근데 그보다, 자네. 내가 바렐이라는 건 어떻게 안 거냐? 내 지인들 중에 내 정체를 말하고 다녔을 녀석은 없고, 세리. 저 녀석이 남자에게 홀렸다 쳐도 그걸 말하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 말이야.”
“아저씨, 그러니까 쓸데없는 소리는 제발 좀…….”
“다 알아낼 방법이 있었어요.”
나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하지만 설명하려면 이야기가 너무 길고 복잡하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네요.”
“그래, 알겠다. 말한 것처럼, 난 남의 비밀을 꼬치꼬치 캐묻는 취향은 없거든.”
고민수는 대충 말하며, 조금 떡 진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그러던 중, 옆에 있던 하세리가 내게 말을 걸었다.
“민수 아저씨가 생각보다 젊어서 놀랐죠, 박유진 씨?”
“어어, 네. 뭐…….”
“목소리와 말투만 들으면 할아버지인데 말이에요.”
사실 회귀 전에 고민수를 직접 한 번 만났던 터라, 그가 어떤 인물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모르고 있던 건 따로 있었다.
“근데 하세리 씨는 고민수 씨와 꽤 친한가 봐요?”
하세리가 고민수와 아는 사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친하다는 거는 오늘 처음 알았다.
아니, 친한 정도가 아니라 뭔가 가족을 보는 느낌까지 들었다.
“이 빨간 머리가 다섯 살 때부터 자라는 걸 지켜봤었거든.”
내 질문에 고민수가 입을 열었다.
“20년 넘게 알고 지낸 거라 서로 볼 거 못 볼 거 다 봤지.”
“아아, 그렇군요.”
“그래, 뭐. 아무튼, 박유진이라고 했지?”
“네, 박유진이요.”
“일단 탈로스를 소환해 다짜고짜 자네를 공격한 건 사과할게. 탈로스로 자네를 맞이한 건 그렇다 쳐도, 보자마자 공격한 건 이 빨간 머리 말 대로 잘못한 거니까.”
고민수는 이렇게 말한 뒤, 이내 한숨을 쉬며 하세리를 슬쩍 바라봤다.
“근데 자네가 이해해 주면 고맙겠네. 내게 이렇게 당당하게 아이템을 달라고 요구한 사람은 자네가 처음이었거든. 그래서 자네가 얼마나 잘 싸울지 너무 궁금했었어.”
“그런가요?”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사실 이 말을 고민수에게 똑같이 들은 적이 한 번 있었으나, 나는 굳이 그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근데 나도 자네도 그냥 즐겁게 잘만 싸우고 있었는데, 이 빨간 머리가 눈치 없이 끼어든 건, 뭐. 이것도 내가 사과할게. 20대 후반이 되도록 자기 아랫사람만 대해 가지고 눈치가 없는…….”
“시끄럽다고, 아저씨.”
하세리는 따지듯 말했으나, 고민수는 그저 허허 웃을 뿐이었다.
“왜? 맞는 말이잖아?”
“나 그래도 이제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나름 눈치껏…….”
“그래, 잘했어. 근데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자.”
고민수는 나와 하세리를 한 번씩 바라보며 말했다.
“세리야. 네가 원하는 대로 직접 내려와서 손님을 맞이했고, 직접 얼굴을 보면서 인사까지 했어. 그러니 이제부터 다시 내 방식대로 해도 되겠지?”
“또 박유진 씨에게 전투를 시키려고? 아저씨, 제발 부탁인데 그런 방법 말고 좀 평화롭게…….”
“세리야,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양보 못 한다.”
고민수는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내 아이템이 자격 있는 사람들의 손에서만 쓰였으면 하거든. 그래서 그들의 자격을 확인하기 위해 나만의 방식을 쓸 뿐이야.”
“나도 그건 알아. 아는데, 박유진 씨는 E급이시잖아. 만약 아저씨의 그 시험인가 뭔가를 하다가 다치면…….”
“방금 그 말, 오히려 박유진에게 실례일걸?”
고민수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기 이 친구는 E급이 맞지만, 아까 봤을 때 결코 E급의 실력은 아니었어. 더 위였지. 게다가 저렇게 자신감이 넘치는 데에는 무슨 이유가 있지 않겠어?”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하세리 헌터님. 걱정 마세요.”
나 또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고민수 씨의 말씀대로 다 이유가 있거든요.”
“좋아. 아주 마음에 드는 자세야. 헌터라면 그쯤은 해야지.”
고민수는 진심으로 즐겁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박유진.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자네가 내게서 받아 가고자 하는 아이템이 뭔가? 혹시 미리 생각해 둔 게 있나?”
“고민수 씨께서 만든 ‘무한 와이어’라는 아이템을 얻고 싶습니다.”
“음? 무한 와이어? 다른 좋은 것들도 많은데, 왜 하필 그걸?”
내 대답에 고민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아이템이라면, 솔직히 말해 그냥 덤으로 줄 수도 있어. 근데 자네가 왜 굳이 그걸 얻고자 하는지 물어도 될까?”
“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아이템이거든요. 그리고 제가 가장 잘 쓸 자신이 있는 아이템이기도 하고요.”
“…갑자기 궁금해지네.”
이 말과 함께, 고민수의 손에 마법진이 나타났다.
어떠한 마법을 발동한 거 같았는데, 그게 무슨 마법인지…….
째짹!
잠시 뒤, 계단 쪽에서 새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고민수의 어깨 위에 새 한 마리가, 아니.
새의 모습을 한 로봇이 무언가를 든 채 고민수의 어깨 위에 앉았다.
“자, 받거라.”
고민수는 새 로봇이 들고 온, 주먹 크기의 쇠상자를 내게 던졌다.
“이거는…….”
나는 이게 무엇인지 잘 알았다.
카라비너처럼 생긴 무언가가 달린 상자.
그 카라비너를 잡아당기자, 철로 이루어진 와이어가 상자에서 끌려 나왔다.
“네가 원하는 그 무한 와이어다.”
“이걸 왜 지금 제게…….”
“궁금해졌거든.”
고민수는 이 말과 함께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아까부터 조용히 있던 탈로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무한 와이어는 그렇게 좋은 아이템이 아니야. 하지만 네가 그 아이템을 가장 잘 쓴다는 말을 듣고 궁금해졌어. 네가 어떻게 싸우는지, 네가 저 와이어를 어떻게 활용할지. 너무 궁금해졌어. 그리고 나는 궁금한 못 참는 성격이거든.”
“그럼 이걸 제게 준 건…….”
“그걸 써서 탈로스와 싸워 봐. 만약 이기면 저 와이어도 주고, 원한다면 내 제작품 중에 하나를 더 골라 가게 해 줄게.”
“…훗, 고민수 씨. 그 제안, 후회 안 할 자신 있나요?”
“응, 전혀 후회 안 할 거니까 한 번 보여 봐.”
고민수는 이 말과 함께 손을 또다시 휘둘렀다.
그러자 탈로스는 빠른 속도로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아니, 당황은커녕 그저 미소만을 지었다.
철컥.
허리의 벨트에 상자를 장착한 후, 나는 상자에 달려 있던 카라비너를 잡아당겼다.
휘리리릭!
길게 늘어나는 와이어.
나는 그 와이어를 천장에 보이던 배관을 향해 던졌다.
와이어가 배관에 튼튼하게 감기는 걸 확인한 후, 나는 상자에 있던 버튼을 눌렀다.
휘리릭!
와이어는 다시 상자 속으로 빠르게 되감겼다.
그리고 나는 와이어에 몸을 맡긴 채, 빠르고 익숙하게 천장의 배관 위로 이동했다.
“다시 한번 물을게요, 고민수 씨.”
배관 위에 올라탄 나는, 익숙하게 와이어를 정리하며 내려다봤다.
“아저씨? 방금 박유진 씨가 저걸 어떻게…….”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놀라고 당황한 모습의 하세리와 고민수.
나를 공격하던 탈로스는 그 옆에서 멀뚱멀뚱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제안, 진짜 후회 안 하실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