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 * *
바렐로서 이름을 날리기 전, 고민수 또한 한때 헌터였다.
유능한 마법사로, 후방에서 아군들을 지원했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다양한 헌터들을 만났고, 그래서 알 수 있었다.
‘대단한 움직임이야.’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여, 치고 빠지는 박유진.
고민수는 그걸 보자마자 박유진이 절대 만만찮다는 걸 직감했다.
‘E급이고 뭐고의 문제가 아니야.’
고민수는 탈로스와 싸우는 박유진을 바라봤다.
박유진은 탈로스의 주요 파츠들만 집요히 공격하고 빠졌다.
너무나도 깔끔한 그 공격들도 볼만했지만, 고민수의 눈을 끄는 건 따로 있었다.
“세리야?”
“응?”
“저 친구, 뭐 하다 온 친구야?”
“나도 모르지. 박유진 씨를 알게 된 지 아직 일주일도 안 됐거든. 근데 왜?”
“…와이어를 저렇게 잘 다루는 사람을 처음 봤거든.”
와이어를 던져 고지대로 능숙하게 올라가는 박유진.
아니, 고지대로 이동하는 것에만 와이어를 쓰지 않았다.
먼 거리를 이동할 때도 와이어를 이용했다.
거기다 탈로스의 목에다가 던지는 등, 공격적인 용도로도 와이어를 썼다.
“헌터 일을 하던 시절에 와이어를 다루는 인간들을 몇 번 봤어. 그 인간들은 전부 하나같이 와이어를 잘 활용했지만…….”
와이어를 이용해 탈로스의 머리에 올라탄 박유진.
탈로스의 목에 단검을 몇 번 찔러 넣은 뒤, 공격당할 거 같아 보이자 와이어를 이용해 재빨리 빠졌다.
마치 손발처럼 자연스럽게 와이어를 사용했다.
“박유진, 저 친구는 그거와는 수준이 달라. 마치 와이어를 평생 쓴 느낌이야.”
고민수는 일절의 과장도 하지 않았다.
그는 박유진처럼 와이어를 잘 쓰는 헌터를 본 적이 없었다.
‘E급은 맞는 거 같네. 움직임은 유연하지만, 신체적인 능력 자체는 그리 뛰어나지 않아. 게다가…….’
탈로스에게 전류를 날리는 박유진을 바라보며 고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능력 자체도 그리 강한 편이 아니네. 딱 E급 평균 수준이야.’
탈로스는 C급, 아니, 잘만하면 B급 헌터도 단신으로 잡을만한 위력을 지닌 로봇이었다.
원래 같았으면 E급 따위는 탈로스에게 진작 나가떨어졌어야 했다.
하지만 박유진은 탈로스와의 격차를 경험과 연륜으로 상쇄했다.
“아저씨.”
“왜?”
“아저씨가 봤을 때, 박유진 씨가 탈로스를 쓰러뜨릴 수 있을 거 같아?”
“장담하는데 10분 안에 탈로스는 쓰러질 거다.”
고민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저 친구가 잘 싸우기는 하지만, E급이라는 한계 때문에 원래 못 이겼을 거야. 하지만 어째서인지…….”
“탈로스의 약점을 전부 알고 있다고?”
“여기 오기 전에 네가 따로 알려 준 거 아니지?”
“맹세코 아니야.”
“그럼 탈로스를 보자마자 약점들을 알아차린 건가? 만약 그런 거면 눈썰미가 엄청 좋은…….”
박유진이 싸우는 걸 지켜보며 고민수와 하세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근데 그러던 도중.
파지지직―!
박유진의 손에서 흘러나온 푸른 전류.
그리고 그와 동시에, 1층의 구석에 쌓여 있던 철봉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철봉들은 일제히 날아가, 박유진을 향해 달려들던 탈로스의 바로 앞에 꽂혔다.
쾅―!
쾅―!
대충 스무 개쯤 되던 철봉들은 탈로스의 주위에 원 모양으로 꽂혀, 거대한 로봇을 가두었다.
박유진은 그걸 태연히,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해냈다.
하지만.
“무슨? 저건 대체…….”
그걸 전부 지켜보던 고민수는 경악했다.
고민수는 그동안 다양한 일렉트로 마스터들을 만났다.
그러나 그 일렉트로 마스터들 중 방금의 박유진처럼, 전류를 통해 자기력을 제어하는 헌터를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전류를 저런 식으로 활용한다고?”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아저씨에게 말 안 했구나.”
하세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박유진 씨는 전류를 다루는 데에 재능이 조금 있는 거 같더라고.”
“저건 재능이 조금 있는 수준이 아니야. 전류를 저런 식으로 전투에 활용하는 건…….”
“알아. 대단하지. 나도 처음 봤을 때 아저씨보다 더 놀랐다니까.”
하세리는 고민수에게 대꾸하며, 탈로스와 싸우는 박유진을 바라봤다.
“내가 이렇게까지 박유진 씨에게 관심을 보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 그냥 좀 잘 싸우는 E급 헌터였으면, 내가 이렇게까지 관심을 안 가졌을 테니까.”
“…네가 관심을 가질만하네.”
고민수는 지금까지 박유진에 대해 꽤 후하게 평가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방금의 광경을 본 그는, 지금까지의 그 후한 평가들조차 과소평가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았다.
“저 친구, 올해 20살이라고 했나?”
“그랬을걸?”
“박유진을 네 편으로 끌어들일 생각이라고 했지?”
“그치. 왜?”
“…….”
고민수는 잠시 조용히 박유진을 다시 바라봤다.
와이어와 단검을 이용해 탈로스를 조금씩 갉아먹는 박유진의 모습에, 고민수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저 친구와 좋은 관계를 오래오래 유지해라. 알겠지?”
“갑자기 그건 왜?”
“내가 장담하는데, 박유진. 저 친구는 나중에 엄청난 인물이 될 거야.”
고민수는 C급 헌터로서 헌터 생활을 마무리했지만, 그의 통찰력은 A급 헌터 못지않았다.
그리고 지금 그 통찰력이 그에게 말해 주고 있었다.
“얼만큼이나 대단해질지 모르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해. 박유진은 분명, 나중에 대한민국 최고의 일렉트로 마스터가 될 거야.”
* * *
회귀한 지 약 일주일.
그 일주일 동안, 나는 이 와이어를 한 번도 못 썼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이 와이어를 쓴 소감은…….
‘그래. 내가 이 맛에 이걸 쓰는 거지.’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그동안 이 와이어가 없어 내 기동성이 크게 떨어졌었다.
덕분에 그동안의 전투에서 여러모로 답답함이 많았는데, 이걸 다시 쓰게 되자 그 답답함이 단번에 사라졌다.
위이이잉!
내게 주먹을 날려 오는 탈로스.
나는 여유롭게 그 주먹을 피한 뒤, 와이어를 그 거대한 로봇의 목에 날렸다.
그 후, 와이어를 이용해 탈로스의 머리 위에 또다시 올라탔다.
‘이 와이어를 어떻게든 다시 내 손에 넣어야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자바니아를 탈로스의 목에 찔러 넣었다.
갑주의 틈 사이로 정확히 검은 칼날을 찔러 넣자, 탈로스의 움직임이 방금 전보다 더욱 둔해졌다.
하지만 둔해졌음에도 여전히 나보다 빨랐다.
“이크.”
손을 뻗어 나를 붙잡으려고 하자, 나는 재빨리 탈로스의 목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내려오는 과정에서 나는 1층 구석에 쌓여 있던 철봉들을 발견했고, 이내 아이디어가 떠올라 그걸 바로 실행했다.
파지직―!
내 손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전류들.
그러자 구석의 철봉들이 내 쪽으로 날아왔다.
쾅―!
쾅―!
날아온 철봉들은 그대로 탈로스 주위에 원 모양으로 꽂혔다.
그렇게 탈로스는 철봉들에게 둘러싸여 움직임이 제한됐다.
‘지금이다.’
이런 상황은 계산 못 한 건지, 탈로스는 아주 잠깐 머뭇거렸다.
그리고 나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휘리릭―!
나는 와이어를 또다시 탈로스의 목을 향해 날렸다.
정확히 말해, 방금 내가 자바니아로 만든 탈로스의 갑주 사이의 틈.
그 틈을 향해 와이어를 날렸다.
휘릭―!
와이어는 이번에도 역시 탈로스의 목을 정확히 감았지만, 나는 이번에는 그의 머리 위로 이동하지 않았다.
파지지직―!
대신 다른 걸 선물해 줬다.
와이어를 붙잡고 있던 손에 전류를 발생시키자.
위이이잉!
전류가 와이어를 타고 이동해, 그대로 탈로스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전류는 내가 자바니아로 만들어 둔 틈 사이로 정확하게 들어갔다.
펑―! 퍼펑―!
전류가 탈로스의 갑옷을 통과해 안쪽으로 스며들자, 탈로스의 내부에서부터 폭발음이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겨우 이 정도로 탈로스가 쓰러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 고민수가 만든 거라, 쉽게 고장 나지는 않겠지.’
거기에 무엇보다 지금의 내 전류는 약해도 너무 약했다.
E급 헌터의 전류로 탈로스에게 유효한 피해를 주기란 어려웠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지속적인 피해를 누적시키면, 결국에는 내가 이기겠지.’
물론 내가 탈로스의 손에 안 잡힌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것이다.
나의 약한 E급 신체가 탈로스에게 잡힌다?
아마 그 즉시 묵사발이 날 게 뻔했다.
하지만 나는 안 잡힐 자신이 있었다.
더 빠르고 더 강한 적들을 많이 만났던 터라, 탈로스 정도는 충분히 할만했다.
“자, 그럼.”
나는 탈로스의 목을 감고 있던 와이어를 회수한 후, 다시 움직이려고 했다.
근데 움직이려던 그 순간.
“그쯤이면 됐다.”
들려오는 고민수의 목소리.
그리고 그와 동시에 탈로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고민수 씨의 시험에 통과한 건가요?”
나는 탈로스의 목에 감겨 있던 와이어를 회수하며 고개를 돌렸다.
고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다가왔다.
“자네의 실력은 충분히 봤어. E급 헌터지만, 그럼에도 자네가 얼마나 뛰어난 재능을 가졌는지 잘 확인했어. 그리고 분명 시간만 충분히 주면, 탈로스쯤은 결국 쓰러뜨렸겠지.”
“뭐, 아마 그랬을 겁니다.”
고민수의 말대로, 시간만 충분했으면 저 거대한 로봇을 결국 잡았을 거다.
“아무튼, 시험은 통과야. 내가 만든 아이템을, 자네가 충분히 다룰 자격이 있다는 걸 봤으니까.”
“그렇다면, 이 와이어는…….”
“가져가도록 해. 그리고 이 무한 와이어는 자네에게 주는 게 맞는 거 같아. 자네처럼 와이어를 이렇게 잘 쓰는 사람은 처음 봤거든.”
하긴, 그럴 수밖에 없을 거다.
나는 회귀하기 전, 와이어를 극한까지 다루었다.
장담하는데, 나만큼 와이어를 잘 다루는 사람은 전 세계를 뒤져 봐도 없을 터였다.
뭐, 어쨌든.
“그럼 고민수 씨가 만드신 이 아이템, 감사히 받아 가도록 할게요.”
나는 내 허리의 장착된 작은 쇠상자를 내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이걸로 거의 다 얻었네.’
무기, 자바니아.
방어구, 네메이아의 코트.
그리고 내 이동기나 마찬가지인 무한 와이어까지.
내가 회귀하기 직전까지 쓰던 주요 아이템들 중 세 개를 벌써 손에 놓은 것이었다.
‘이제 남은 건 실키의 가면, 그거 하나인가?’
사실 그 외에도 다양한 아이템을 썼다.
하지만 내게 핵심적인 아이템은 이제 그 가면 하나만 남은 것이었고, 나머지는 천천히 회수해도 되는…….
“대단했어요, 박유진 씨.”
언제 다가온 건지, 하세리는 내 바로 앞에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잘 싸운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아까 와이어 타고 날아다니는 거요. 그거 어떻게 한 거죠? 게다가 그 정도의 기동성이면 저와 같이 게이트 토벌하러 갈 때 할 수 있는 역할들이 훨씬 많아지는…….”
“가만히 좀 있어라.”
“아, 아저씨?”
“박유진과 할 이야기 있으면 나중에 해라.”
붉은 머리의 헌터를 뒤로 옮긴 고민수는 다시금 나를 바라봤다.
“난 아직 이 젊은이와 할 이야기가 남았거든.”
“할 이야기요?”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고, 이에 고민수는 바로 대답했다.
“아까 내가 제안한 거 잊은 건 아니지? 탈로스를 이 와이어 갖고 이기면…….”
“아아. 와이어도 주고…….”
“내 제작품 중 하나를 선택할 기회까지 준다고 했지.”
고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한 뒤, 몸을 돌려 건물의 계단 쪽으로 향했다.
“나는 적어도 내가 한 말은 반드시 지키거든. 그러니까 어서 따라와. 내 창고로 안내해 줄 테니까.”
그리고, 라고 고민수는 한 마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