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이건…….”
나는 하세리의 손에 들린 마도구를 바라봤다.
정확히 말하자면, 군화였다.
검은색의, 군인들이 흔히 신고 다니는 군화.
“제가 스피드를 중심으로 싸우는 건 맞죠. 근데 이 군화는 정확히 뭐 하는 물건이죠?”
나는 하세리의 손에 들린 검은색 군화를 다시 살폈다.
겉으로만 봤을 때는 딱히 특별할 게 없는 장비였다.
군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군화였는데.
‘이 창고에 있던 물건이니까, 무언가 특별한 게 있겠지.’
이 창고에 있었다는 건, 고민수가 직접 만든 물건이라는 뜻이었다.
근데 겉으로만 봤을 때는 도저히 특별한 점이 안 보이는……
“테페로스라는 몬스터를 이용해 만든 군화다.”
어느새 다가온 고민수.
그는 하세리 손에 있던 군화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착용자의 속도를 올려 주는 마도구다. 근데 이건 성장형 마도구이기도 해서, 초반부터 엄청난 속도를 올려 주지는 않을 거야.”
“성장형 마도구라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이죠?”
“복잡한 원리인데, 최대한 쉽게 풀어서 설명하자면, 으음. 일단 이 군화는 성장이 전혀 안 된 마도구야. 지금 이걸 신으면 평소보다 이동 속도가 10% 정도 빨라질 거야.”
10%면 얼마 안 되는 수치지, 라고 고민수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방금 말한 것처럼 이 군화는 성장형 아이템. 착용자의 힘이 성장하면, 이 군화도 같이 성장할 거야. 예를 들어, 자네가 지금 E급이잖아? 만약 D급으로 성장하면, 아마 이 군화는 너의 이동속도를 20%까지 올려 줄 거야.”
“아하.”
나는 이해를 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제가 성장할수록, 이 군화가 올려 주는 이속 효과가 더 증가한다는 뜻이죠?”
“그렇지. 그러니까 쉽게 말해 대기만성형 마도구지. 획득한 초반에는 그리 큰 효과는 없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효과가 극대화되지. 게다가 성장 한계치도 매우 높아서, 오래 갖고 있을수록 도움이 확실히 될 물건이야.”
“흐음, 그런가요?”
이속 효과를 주는 마도구면 확실히 괜찮았다.
나는 암살과 정찰을 전문으로 하던 헌터였고, 그 두 분야에서는 속도가 생명이었다.
그런 만큼, 테페로스인가 하는 몬스터로 만들었다는 이 군화, 나쁘지 않았다.
그래,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좋다고 보기도 힘들어.’
이미 한 번 A급 헌터까지 성장해 본 적이 있었다.
덕분에 A급이 되었을 때의 내가 얼마나 빨라질 수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아이템 같은 거 없어도 충분히 빨랐지.’
물론 이 군화를 신으면 더 빨라지기는 할 터였다.
하지만 굳이 더 빨라질 필요성까지는 못 느꼈다.
아이템 없이도 몬스터든 사람이든 전부 죽이고 다닐 정도로 나는 충분히…….
“아, 맞다. 내가 기능 하나 더 추가해 놨었지?”
“네? 무슨 기능이죠?”
“이 군화, 착용자의 발소리를 없애는 기능까지 있어. 애초에 암살자나 척후들을 위해 만든 아이템이라, 내가 덤으로 그 기능을…….”
“발소리를 완전히 없애나요?”
“응? 어, 발소리는 완전히 없애지. 물론 숨소리라든가 하는 것들은 못 없애지만, 발소리 하나는 완전히 음 소거를…….”
“이걸로 할게요.”
나는 하세리의 손에 있던 군화를 가져왔다.
그것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가져왔다.
“이거 가져가도 괜찮은 거죠?”
“으음, 근데 진짜 그거로 괜찮겠어? 내가 만든 것들 중에 훨씬 좋은 것들도 많은데 말이야.”
“무한 와이어를 선택한 것과 같은 이유에요.”
나는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 방금 가져온 군화를 신으며 말했다.
“이게 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아이템이기 때문이죠.”
암살자이자 척후로 오랜 시간 활약했던 덕에, 나는 습관적으로 움직이는 데 소리를 줄이고 다녔다.
하지만 소리를 아예 없앨 수는 없었다.
물론 어지간한 적들은 내가 접근하는 소리를 못 들었지만…….
‘아주 작은 소리조차 듣는 자들이 있었지.’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이희나 교수.
그 외에도, 나의 아주 작은 발소리와 최대한 죽인 숨소리까지 듣는 적들이 꽤 있었다.
그래서 발소리를 완전히 없애는 이 군화가 끌리는 건 당연했다.
발소리만 없애 주는 거였지만, 수없이 많은 암살과 정찰을 한 나는 이게 얼마나 큰지 잘 알았다.
동시에, 이게 나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 것인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혹시 척후 관련 분야로 일할 생각이니?”
“네, 맞아요.”
“흠. 전방에서 싸우는 것보다 세리처럼 후방에서 화력 지원을 하는 게 더 좋아 보이기는 하다만, 아까 싸우는 거 보니까 척후도 잘 어울리는 거 같고…….”
고민수는 잠시 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으나,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선택은 내가 아니라 너의 것이니, 내가 뭐라고 해서는 안 되겠지. 게다가 자네는 일렉트로 마스터든 척후든, 뭘 하든 그 분야의 정점에 오르게 될 거야. 그건 내 보장할게.”
그런 의미에서, 라고 말하며 고수민은 내게 다가왔다.
“내게서 받아 갈 마도구로 무한 와이어와 테페로스. 이 두 개 맞지?”
“네, 이 두 개요.”
“전혀 예상 못 한 두 개를 골랐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그 군화, 너에게 조금 크지?”
“아아, 네. 조금, 아니. 조금 많이 크기는 하네요.”
나는 방금 신은 검은색 군화를 내려다보며 대꾸했다.
군화가 생각보다 컸던 터라, 내 발을 넣었음에도 군화 안에 남은 공간이 상당히 많았다.
“처음부터 크게 만든 거라 그럴 수밖에 없을 거다. 잠깐만 기다려 보거라.”
이 말과 함께, 고민수는 내 발을 향해 손을 뻗어 마법을 발동했다.
그러자 잠시 뒤.
“…으음?”
군화의 크기가 줄어들었다.
내 발과 딱 맞을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엄청 딱 맞게 줄어든 것도 아니야.’
적당히 공간이 남아 움직이는 데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아니, 불편은커녕, 마치 평생을 이 군화를 신었던 것만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마법으로 군화 크기 좀 조정했어. 아마 신고 다니는 데 불편하지 않을 거다.”
“네, 그런 거 같네요.”
나는 발을 몇 번 굴러 보며 대꾸했다.
그런 후, 군화를 신은 채 창고를 잠시 걸어 봤는데.
‘발소리가 전혀 안 나네.’
일부러 소리를 내기 위해 발에 힘을 줘도 안 났다.
진짜 말 그대로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었다.
‘마음에 들어.’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암살과 정찰을 해 오던 내게 있어 이보다 마음에 드는 마도구는 없을 터였다.
“왼쪽 군화에 버튼 하나 있어.”
창고를 걷던 도중, 고민수가 내게 말했다.
“그거 누르면 네 이동 속도가 빨라질 거다.”
“이 버튼 맞나요?”
“응, 저거. 복숭아뼈 근처에 있는 거.”
나는 내 왼발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내 발걸음이 방금 전보다 더 빨라진 게 약간 체감됐다.
‘엄청 빨라지는 건 아니네.’
성장형 아이템이라 초반에는 효과가 미미할 거라고 고민수가 말했다.
10%라고 했나?
고민수의 말에 따르면 당장은 기존보다 10% 정도밖에 더 안 빨라질 거라고 했다.
‘근데 이 정도면 10%도 안 될 거 같은데?’
빨라진 건 맞지만, 10%까지는 아닌 듯했다.
해 봤자 6%, 7%?
아무튼 눈에 띄게 빨라진 건 아니었다.
‘그래도 성장형 아이템이니, 내가 성장할수록 이속 효과도 점차 증가하겠지.’
게다가 나는 애초에 이속 효과를 보고 이 군화를 선택한 게 아니었다.
‘발소리를 없애는 걸 보고 선택한 거지.’
솔직히 이속 효과는 덤에 가까웠다.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발소리의 제거.
이것만 해도, 앞으로 내가 하게 될 헌터 일들에 매우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마음에 드냐?”
“네, 마음에 드네요.”
나는 다시금 고민수, 그리고 하세리 앞으로 가며 말했다.
“고민수 씨의 배려 덕분에 좋은 마도구 두 개를 얻게 됐네요.”
“자네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으니까.”
고민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까도 말한 거지만, 나중에 유명해지면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니도록 해. 자네가 쓰는 아이템은 나, 그러니까 ‘바렐’의 수제품이라고.”
“그 정도는 당연히 해 드려야죠.”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아무튼 저에게 이런 선의를 베풀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나는 고민수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고, 이 말은 진심이었다.
고민수의 선의 덕에, 회귀하기 전보다 더 쉽게 무한 와이어를 얻을 수 있었다.
거기다 덤으로 테페로스라는 군화까지 얻었으니, 더더욱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 최강의 화염술사 】
“민수 아저씨의 마음에 어지간히 들었나 보네요.”
“그런가요?”
“네. 민수 아저씨가 저렇게 밝게 손님을 맞이한 적은 거의 없거든요.”
창고에서 군화를 챙기고 나온 뒤.
고민수의 빌딩에 더 남을 이유가 없었던 터라, 나와 하세리는 곧바로 거기서 나왔다.
“근데 민수 아저씨도 참. 손님이 가면 1층까지 내려와서 배웅하라니까, 진짜 끝까지 안 내려오네요. 아무리 바로 연구실에 들어가고 싶다고 해도, 매번 저렇게…….”
“그럴 수도 있죠.”
나는 별 상관없다는 듯 대꾸하며, 뒤를 슬쩍 돌아봤다.
고민수가 혼자 사는 저 빌딩에서 기계 소리들이 조금씩 들려왔다.
마치, 고민수의 연구실에 있던 그 커다란 기계들이 움직이는 것만 같은 소리였다.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참 한결같은 사람이라니까.’
나는 한 번 피식 웃은 뒤, 시선을 돌렸다.
내 허리의 벨트에 착용된 무한 와이어와, 내 양발에 신겨진 군화, 테페로스.
오늘 한 고생에 비해, 얻은 결과물은 훌륭했다.
‘아직까지는 순조롭네.’
이대로만 간다면 회귀 전에 내가 주로 썼던 아이템들은 전부 손에 넣을 듯했다.
그것들만 다 손에 넣으면, 그다음에는 강해지는 데 집중할 수…….
“집까지 태워다 드릴까요?”
“…네?”
속으로 생각하던 도중, 하세리는 내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집까지 제가 태워다 드릴 수 있다고요.”
고민수의 빌딩 근처에 주차된 하세리의 붉은색 스포츠카.
아까 고연대학교에서 여기까지 올 때 타고 온 차였다.
“왜 그렇게 당황한 표정이시죠? 아까 제 운전 실력 보셨잖아요.”
“네, 알아요.”
하세리가 의외로 안전 운전한다는 건 진작 알고 있던 사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집에 따로 가도록 할게요.”
“네? 왜요? 이왕이면 제 차를 타고 가는 편이…….”
“하세리 헌터님의 시간을 더 뺏는 게 미안해서요.”
“아니, 저는 괜찮…….”
“마음은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나는 친절하게, 그리고 동시에 단호히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앞으로 최소 5년 동안은 하세리가 우리 집 근처에, 아니.
정확히는 유나 근처에는 안 갔으면 했다.
“네, 뭐. 박유진 씨가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굳이 더 권하지는 않을게요.”
하세리는 피식 웃으며 혼자 천천히 차에 탔다.
“아무튼. 오늘 제가 박유진 씨를 민수 아저씨에게 데리고 와 줬으니까…….”
“3일 뒤에 게이트에 같이 가도록 할게요.”
“네, 좋아요.”
하세리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게이트를 토벌하고, 앞으로 저랑 같이할지 다시 생각해 주세요. 알겠죠?”
“…네, 알겠어요.”
나는 운전석에 올라탄 하세리를.
아니, 하세리의 두 눈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저 자신만만하고 여유 넘치는 A급 헌터의 눈빛.
마치 자신의 가족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가족 때문에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전혀 모르는 눈빛이었다.
‘3일 뒤에 게이트에 같이 갔다 오고, 그 후로 몇 년 동안 만나는 걸 어떻게든 피해야지.’
아까 말했듯, 아직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하지만 앞으로가 진짜다.
그렇기에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듯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