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 * *
하세리와 함께 고민수를 만나고 온 다음 날 점심.
“…야, 이민아.”
“왜?”
“너 삐졌냐?”
“…안 삐졌어.”
“너 지금 누가 봐도 삐졌거든?”
“안 삐졌다니까.”
삐졌네, 삐졌어.
“그 튀어나온 입술부터 집어넣고 말해. 그리고 불쌍한 강아지 눈빛 풀고, 내 시선 그만 피해.”
“나 그런 적 없어!”
“아, 네네. 그러시겠죠.”
고연대학교 근처의 한정식 식당.
이민아가 같이 가자고 했던 그 식당 말이다.
나는 어제 약속한 대로 이민아와 함께 오늘 이곳에 왔다.
근데 문제는 이민아와 학교에서 이 식당으로 오는 내내.
거기다 식당에 도착 후에도 이민아가 저 모양이었다.
“어제 너 놓고 하세리 헌터님과 같이 간 거 미안하다고 아까도 말했잖아.”
“알아.”
“그럼 기분 좀 풀어라.”
“…몰라.”
애는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아니, 그 전에 내가 아는 이민아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좀 모자란 구석이 있어도, 이 녀석은 자존심 때문에 절대 삐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민아가 이런 모습을 보이자, 여러모로 당황스러웠다.
정확히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회귀하기 전, 이민아의 볼 꼴 못 볼 꼴 다 봤지만, 이런 식으로 삐지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야, 박유진.”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던 중, 이민아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너, 그, 내, 내 친구 맞지?”
“그건 갑자기 왜?”
“마, 맞냐고? 나만 너를 친구로 생각한 그런 쪽팔리는…….”
“이민아.”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친구라는 건 그리 거창한 게 아니야. 대충 뜻이 맞고, 진심으로 웃으며 서로에게 말할 수 있으면 그게 친구지.”
“그렇다는 건…….”
“지금 내가 가짜로 웃는 걸로 보이냐?”
나는 웃음을 유지한 채 이민아를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친하지 않은 사람과는 밥 같이 안 먹는 편이야. 어느 정도 친한 사람들하고만 먹지.”
“그러냐?”
이민아는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 나와 눈 마주치는 걸 피했다.
하지만 그녀의 입꼬리가 조금씩 움직이는 걸 확실히 볼 수 있었다.
“그렇다는 건 나랑 친해서 이렇게 같이 밥 먹으러 왔다는 거구나? 후훗, 그럼 네 치, 친구인 내가 특별히 너랑 같이…….”
“너도 참 한결같다.”
“응? 그게 뭔 뜻이야?”
“있어, 그런 거.”
회귀하기 전이나 지금이나.
이민아는 내게 있어 참 많은 재미를 주는…….
“근데 박유진, 있잖아.”
“음? 왜?”
“만약, 그, 아니.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너는 나 안 버릴 거지?”
이민아는 최대한 태연히 내게 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럴 거지?”
“그건 갑자기 왜 묻는 거냐?”
“별 것 아니고, 네가 어제 나 버리고 하세리 헌터님과 같이 갔잖아?”
“그러니까 너를 버리고 간 게 아니…….”
“내가 네 친구로서 가치가 없어지면, 하세리 헌터님을 새로운 친구로 만들 생각인 거…….”
“아니, 너는 친구의 개념을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으나,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기야. 이 녀석이 살아온 환경을 생각하면, 친구에 대한 개념이 뒤틀려 있을 수밖에 없겠지.’
이민아의 아버지, 이진성.
그 남자는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한 사람이자, 여러 가지 의미로 최악의 아버지였다.
회귀하기 전에 그 아저씨를 몇 번 만나 봐서 잘 알았다.
“야, 이민아. 잘 들어.”
“응?”
“네가 먼저 나를 버리지 않는 이상 나는 너 안 버릴 거야. 이해했냐?”
“…진짜지?”
“어, 진짜다, 인마.”
이민아는 한국 최고의, 아니.
세계 최고의 탱커가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민아의 가족, 그리고 이민아의 부실한 멘탈이 그 잠재력을 날려 먹었다.
‘그걸 날려 먹은 건 인류에 있어서 엄청난 손해였지.’
그랬기에 이민아가 각성하기 전까지, 그러니까 이 녀석이 A급 헌터가 되기 전까지 조금 도와줄까 생각하고 있었다.
뭐, 도움을 준다고 해 봤자 이민아의 멘탈을 관리해 주는 것이지만, 그것만 잘해도 이민아는 알아서 성장할 터였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 널 절대 혼자 두지 않을 테니까, 너는 강해지는 것에만 집중해.”
“음? 강해지는 것에만 집중하라고? 갑자기?”
“그런 게 있어, 인마.”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충 얼버무렸다.
“아무튼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라는 거야. 알겠냐?”
“으응, 뭐…….”
“알면 됐다. 그럼 이 이야기는 이쯤하고.”
나는 고개를 슬쩍 돌려 뒤를 바라봤다.
수많은 음식들과 함께 우리 쪽으로 오는 식당 종업원이 있었다.
“빨리 먹기나 하자.”
이민아의 추천으로 함께 온 이 한정식 식당.
이 식당의 음식을 평가하자면…….
“맛있네.”
“그게 끝이냐?”
“…엄청 맛있네.”
“뭐, 너 치고는 풍부한 표현이네.”
이민아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그녀는 반찬을 밥에 올려 맛있게 먹었고, 나 또한 그녀를 따라 맛있게 식사를 했다.
‘근데 진짜 맛있기는 하네.’
내가 지금껏 먹었던 한정식 중, 이 식당의 음식을 따라올 음식이 없을 듯했다.
회귀 전과 후를 통틀어서 말이다.
“근데 이렇게 맛있으면 비싸단 말이지…….”
나는 고기를 젓가락으로 집어 먹으며, 들릴 듯 말 듯, 작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귀가 좋은 이민아는 나의 그 작은 중얼거림을 또 들었다.
“가격에 대해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 말했잖아. 여기 가성비 좋다니까.”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나는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며 이민아를 바라봤다.
“이 식당 음식 가격, 어떻게 되냐?”
“얼마 안 한다니까. 내 기억이 맞다면 여기는 아마…….”
이민아는 방금 시킨 음식들의 가격을 내게 말해 주었다.
그리고 그 가격을 듣자마자,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너랑 내가 알고 있는 가성비라는 단어의 개념이 많이 다르구나.”
가끔 잊는 사실이었지만, 이민아는 금수저였다.
가족 꼴이 말이 아니어서 그렇지, 이 녀석의 집안 자체는 돈이 매우 많았다.
그렇다 보니, 돈을 쓰는 개념 자체가 나와 다를 수밖에 없기는 했다.
“왜? 혹시 돈이 부족해?”
“돈이 부족한 건 아닌데…….”
지금의 밥값을 낼 돈 자체는 있었다.
문제는 오늘 그 돈을 내면, 아마 적어도 일주일 동안 쓸 점심값이 사라질 터였다.
“으음,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나는 반찬 하나를 입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이럴 줄 알았다면 이 식당에 안 오는 것이었는데, 일은 이미 저지른 후였다.
다른 방법은 없으니, 그냥 앞으로 일주일 동안 점심은 굶고 다니는 게…….
“걱정 마. 내가 내 줄게.”
“…이걸 전부?”
“응, 얼마 안 하니까.”
이민아는 별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신경 쓰지 말고 마음껏 먹어.”
“괜찮겠냐? 게다가 너 주말에 무슨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나랑 내 여동생 밥 사 준다면서. 그 돈까지 합하면 너 지출이…….”
“다 합쳐도 얼마 안 하는데? 오늘 거랑 이번 주말에 쓸 돈 다 합쳐도, 으음, 아마 내 한 달 용돈의 10분의 1? 그 정도밖에 안 될 거야.”
“그러냐?”
이민아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돈이 많은 녀석이었다.
그래서 사실 이 정도 지출은 진짜 아무렇지 않은 것일 터였다.
하지만 그냥 받기만 하는 건, 역시 나와 안 맞았다.
“돈은 나중에 갚을게.”
“안 갚아도 되거든? 치, 친구 사이에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거잖아.”
“그렇긴 하다만, 나는 빚 지고 사는 타입이 아니거든.”
나는 확실하게 말했다.
“돈 생기는 대로 바로 보내 줄게. 물론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아마 이번 달 내로, 아니. 잠깐만.”
생각해 보니, 이번 주에.
정확히는 이틀 뒤에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세리와 같이 게이트 토벌 가기로 했었지.’
반강제로 가는 거였지만, 일단 게이트 토벌은 맞았다.
그리고 게이트 토벌을 하면 돈은 자연스럽게 벌릴 터였다.
물론 얼마나 내 손에 들어올지 몰랐으나, 적어도 오늘 밥값만큼의 돈은 나올 터였다.
“목요일 저녁이나 금요일 오전까지 돈 보내 줄게.”
“오늘이 화요일이니까, 이틀 뒤에 무슨 일을 하러 가나 봐?”
“뭐, 일거리 하나 하러 가는…….”
“하세리 헌터님과 관련된 일이지?”
이민아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를 바라봤다.
“맞지?”
“너 의외로 머리가 돌아가는구나.”
“…야, 의외로 돌아간다는 건, 아니. 됐고, 그분이랑 무슨 일 하러 가는 거냐? 그리고 설마 단둘이서 가는 거냐?”
“정확한 거는 몰라도 되니까, 참견하지…….”
“야, 친구에게 그것도 말 못 해 주냐?”
“너 아까부터 자꾸 친구라는 단어에 집착하는 거 같은데…….”
나는 괜히 이야기를 길게 하기 싫어 말을 돌리려 했다.
근데 그 그러던 중.
위이잉―
내 주머니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뭔가 싶어 스마트폰을 꺼내서 확인해 봤더니 문자가 와 있었다.
“…또 뭐냐?”
그 문자를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하세리.
뭔가 영 좋지 않은 느낌과 함께 나는 문자 내용을 확인했다.
[안녕하세요, 박유진 씨. 지금쯤 아마 이민아 양과 같이 식사 중이시겠죠?]
…이 누나는 이걸 또 어떻게 안 거야?
[어떻게 아셨죠?]
나는 답장을 보내며 주위를 둘러봤다.
상당히 고급진 분위기의 한정식 식당.
하지만 이 식당 안에 하세리의 붉은 머리카락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식당 바깥에도 안 보였다.
[박유진 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다 알 방법이 있죠’에요.]
참 나.
이거 한 방 먹었네.
근데 나는 하세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의 수법쯤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저 남자, 전종원이라 불린 남자였지?’
지난주에, 유나네 중학교에서 하세리를 따라다니던 헌터 협회의 직원.
그 남자가 근처의 자리에서 혼자 식사를 하고 있었다.
‘사람 부리는 솜씨는 여전하네, 그 누나는.’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튼, 제게 갑자기 연락하신 이유는 뭐죠?]
[다름이 아니라, 저희 이틀 뒤에 게이트에 가잖아요. 혹시 이민아 양도 데려갈까 해서요.]
게이트 토벌에 이민아까지 데려간다고?
나는 고개를 들어, 내 앞의 이민아를 슬쩍 바라봤다.
“뭐, 뭐야? 갑자기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갸웃하는 그녀.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이내 하세리에게 다시 한번 문자를 보냈다.
[왜죠?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이민아 양이 우리와 함께하면 더 재밌을 거 같아서요.]
“…하.”
나는 나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그리고 이에 이민아는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 쪽으로 가까이 가져왔다.
“왜 그러냐? 누구에게 연락 온 건데?”
“별 것 아니고……. 으음, 이민아. 너 혹시 이번 주 목요일에 시간 있냐?”
“이번 주 목요일? 아마 시간은 있을 거 같은데, 목요일은 갑자기 왜?”
“내가 이번 주 목요일에 게이트 토벌 가는데, 혹시 너도…….”
“그 게이트 토벌.”
이민아는 눈빛을 의미심장하게 빛내며 물었다.
“하세리 헌터님과 같이 가는 거지?”
“이럴 때는 또 눈치가 좋네.”
나는 피식 웃으며 이민아의 빛나는 눈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 확신했다.
이틀 뒤에 있을 하세리와의 게이트 토벌.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재밌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