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34화 (34/240)

34화

* * *

“이게 말씀하신 그 게이트인 거죠?”

“네, 이거 맞아요.”

어느새 시간이 흘러 목요일이 되었다.

그러니까 하세리와 같이 게이트 토벌을 하기로 한 날이 되었다.

대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뒤, 나는 하세리와 같이 게이트가 나타날 거라는 곳으로 향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와 하세리, 이렇게 단둘이서 향한 게 아니었다.

“오오, 게이트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것도 오랜만이네.”

함께 따라온 이민아는 산 중턱에 나타난 균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산 중턱, 그러니까 관악산이라는 산에 나타난 게이트.

하세리의 말에 따르면 4급 위험도의 게이트이자, 원래 하세리가 혼자서 토벌할 예정인 게이트였다.

‘근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갑자기 나와 같이 가자고 제안했지.’

원래 같았으면 거절했을 거다.

하지만 지난번에 하세리가 나를 고민수에게 데려가 줬던 터라 거절할 수 없게 되었다.

‘근데 나는 그렇다 쳐도.’

나는 내 옆에 붙어 있는 이민아를 바라봤다.

‘얘는 갑자기 왜 데려온 거지?’

지난 이틀 동안 생각해 봤지만, 나는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회귀하기 전.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은 알고 있으나 만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하세리가 갑자기 게이트 토벌에 이민아를 부른 것에 의문을 가졌다.

‘이민아에게서 뭔가 노리고 있는 건가?’

물론 이민아가 엄청난 성장 가능성을 지닌 건 맞았지만, 하세리는 자신의 편에 끌어들일 사람을 어느 정도 가렸다.

그리고 이민아는 하세리가 끌어들이기 꺼리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이진성 때문에 함부로 접근하기 어려웠겠지.’

이진성, 그러니까 이민아의 아버지는 까다로운 남자였다.

하세리가 그 사실을 모를 리가…….

“하세리 헌터님?”

“네, 이민아 양. 무슨 일이죠?”

“아까부터 묻고 싶던 건데, 저를 여기에 왜 부른 건가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던 중, 이민아가 하세리에게 내가 궁금해하고 있던 걸 대놓고 질문했다.

“후훗, 그런 질문은 갑자기 왜 하신 거죠?”

“그야, 궁금하니까요. 하세리 헌터님의 실력이면 저 없이도 4급 게이트 하나는 혼자서 충분할 텐데, 왜 굳이…….”

“이민아 양 말대로, 4급 게이트 정도면 저 혼자서도 충분하죠. 근데 그렇다면 제가 왜 박유진 씨를 데려온 걸까요?”

“그야, 하세리 헌터님은 그, 박유진을 꼬시려 하고 있어서요?”

“…꼬신다는 표현은 마음에 안 들지만, 틀린 말은 또 아니네요.”

하세리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네, 저는 지금 박유진 씨를 설득해 헌터 협회에 데려오려고 하고 있어요. 오늘 게이트 토벌을 위해 부른 것도 그 때문이죠.”

“네, 그건 대충 예상했어요. 그럼 저는 왜…….”

“같은 이유에요.”

붉은 머리의 헌터는 갈색 단발머리 헌터를 여유롭게 바라봤다.

“저는 이민아 양도 욕심내고 있거든요. 그래서 오늘의 게이트 토벌에서 이민아 씨의 실력을 한 번 제대로 보려고 부른 거예요.”

“하세리 헌터님. 저는 그 누구의 밑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는…….”

“그건 두고 보면 알게 되겠죠.”

그보다, 라고 하세리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이민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민아 양께서 생각보다 쉽게 제 제안을 받아 줘서 조금 놀랐어요. 역시, 제가 박유진 씨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건 원치 않았나 봐요?”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요.”

“후훗, 이해해요. 저도 이민아 양과 같은 나이일 때 솔직하지 못했던 적이 있거든요. 근데 이민아 양은 누가 봐도 박유진 씨에게 애착이…….”

“하아아, 하세리 헌터님.”

나는 한숨과 함께 두 여자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상한 말씀은 안 해 주셨으면 하네요.”

“이상하다니요? 저는 그저 인생 선배로서 이민아 양에게 조언을…….”

“아, 네. 그러시겠죠. 그보다 잠깐 저쪽으로 같이 가 줄 수 있나요? 따로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네? 아, 그럼요. 근데 따로 할 이야기라면, 역시 마음이 바뀌었나요? 혹시 헌터 협회에서 저랑 같이 협력을…….”

“그런 거 아니에요.”

나는 실소를 흘리는 것과 함께, 하세리와 함께 이민아에서 멀어졌, 아니, 멀어지려고 했다.

“야, 박유진. 나만 빼놓고 어디 가? 나 왕따시키는 거냐?”

이민아는 혼자 남는 걸 못 참았는지 바로 나를 붙잡았다.

뭐, 살짝 애정 결핍인 녀석이라 이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이민아.”

“응?”

“기다리고 있어. 금방 돌아올 거니까.”

“…으, 응.”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이민아는 고개를 팍 숙이며 내게서 떨어졌다.

생긴 거와 하는 짓은 저래도, 이민아는 은근히 소심한 구석이 있었다.

아무튼, 이민아를 떨어뜨려 놓은 뒤, 나는 하세리에게 물었다.

“하세리 헌터님. 이민아까지 협회에 데려가려는 건가요?”

이민아의 청력이 쓸데없이 좋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최대한 작게 말했다.

그리고 내 질문에 하세리는 그게 뭐 어때서라는 표정을 지었다.

“20살에 B급. 비록 후천적으로 능력을 얻은 거지만, 저 정도면 최상위권의 탱커가 될 능력이죠. 저런 인재야말로 협회에서 제가 책임지고 키워야 할…….”

“이민아의 아버지, 누군지는 아시죠?”

“알죠. ‘용혈’ 길드의 이진성 씨. 한국 최고의 탱커 중 한 분이잖아요.”

“그분을 따로 만난 적이 있나요?”

“네, 전에 두, 세 번 정도 만나 봤죠. 되기 신사적이신 분이던데요?”

“…그렇군요.”

확실했다.

지금의 하세리는 이진성의 진짜 성격을 몰랐다.

이진성이 어떤 인물인지 알았으면, 하세리는 절대 이민아에게 먼저 접근하지 않았을 거다.

아니, 이민아뿐만 아니라 이진성과 관련된 모든 것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을 터였다.

“근데 저라면 이민아를 협회에 데려가지 않을 거예요.”

“네? 왜요? 이민아 양 정도면 박유진 씨만큼은 아니더라도, 엄청난 재능을 갖고 있잖아요.”

“정확히는, 아마 저보다 더한 재능을 갖고 있을 거예요.”

저 뒤에서 나를 힐끗힐끗 바라보는 이민아.

지금은 저래 보여도, 나중에 상상 이상으로 성장할 소지가 다분했다.

“하지만 이민아는 건들지 마세요. 그랬다가는 아마 일이 많이 귀찮아질 수도 있거든요.”

“그게 무슨 말이죠?”

“그런 게 있어요.”

이민아의 가족 문제만 해결된다면, 오히려 하세리가 이민아를 데려가는 데 찬성이었다.

아마 하세리라면 분명 이민아의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을 테니까.

“아무튼 이민아를 데려가는 건, 몇 년 뒤에 생각해 주세요. 그리고, 으음…….”

“네? 왜요?”

“하세리 헌터님은, 그, 가족들과 평소에 연락하고 지내시죠?”

“네, 매주 한 번씩 가족에게 연락하는데요?”

“…그렇군요.”

사실, 이민아의 가족보다 하세리의 가족이 더 문제였다.

그 미친 과학자 집단은 몇 년 뒤에 대형사고를 칠 인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일만 생각하면 머리가 어지러운…….

“어?! 야! 박유진! 여기! 지금 게이트가 열렸어!”

속으로 생각들을 정리하던 중, 뒤에서 이민아의 외침이 들려왔다.

“몬스터들 나오고 있어! 어서 준비해!”

고개를 돌려 보니, 균열의 크기가 급속도로 커지고 있었다.

거기다 그 균열에서 몬스터들이 한두 마리씩 튀어나왔다.

“머드 골렘이네요.”

찰흙으로 이루어진 인간 형태의 몬스터를 바라보며, 하세리는 침착하게 말했다.

나 또한 머드 골렘을 바라보며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골렘들이 서식하는 게이트인가 보네요. 그럼 게이트의 코어를 지키는 몬스터가 아이언 골렘일 확률이 높겠어요.”

“게이트 안에 스톤 골렘들도 있겠죠? 제 불이 잘 안 통하는 몬스터들이라 조금 귀찮은데.”

“그건 걱정 마세요. 스톤 골렘의 약점은 제가 알고 있으니까, 그리 어렵지는 않을 거예요.”

어느새 완전히 형태를 이룬 게이트와 거기서 튀어나오는 머드 골렘들.

그런 상황에도 나와 하세리는 침착했다.

“아니! 박유진! 하세리 헌터님! 자금 골렘들이 나오고 있다니, 으윽?!”

이민아는 신체의 일부를 늑대인간 형태로 변형시켜, 게이트에서 나오는 머드 골렘들을 쓰러뜨렸다.

머드 골렘은 7급 위험도의 몬스터라, 이민아 혼자서도 충분했다.

아니, 정확히는 한두 마리 정도라면 감당 가능했다.

“X발! X나 많이 나오네!”

게이트에서 튀어나오는 머드 골렘의 수가 점점 많아지자, 이민아의 얼굴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하긴, 이래야 4급 게이트지.’

칠보산의 8급 게이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몬스터들이 나오고 있었다.

원래 같았으면 나 또한 이민아처럼 얼굴이 어두워졌을 거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건, 나에게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세리 헌터님.”

“네, 알아요.”

붉은 머리의 헌터는 피식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아으! 진흙! 이거 왜 이렇게 끈적거리는…….”

이민아는 탱커답게, 전방에서 수많은 머드 골렘들을 상대했다.

하지만 혼자서 싸우던 터라, 그녀는 모든 머드 골렘들을 막을 수 없었다.

몇몇 머드 골렘은 이미 게이트에서 벗어나, 산 아래쪽을 향하고 있었다.

시민들에게 피해가 가는 걸 막아야 했기에, 저 골렘들을 우선적으로 잡아야 했다.

보통은 내가 직접 뛰어가서 잡았을 테지만…….

화르르륵―!

오늘은 굳이 안 그래도 됐다.

“구워워워!”

하세리의 불덩이들이 도망치던 골렘들에게 명중하자, 골렘들은 순식간에 녹아 없어졌다.

“흠, 좋아. 일단 도망친 것들은 다 잡았고…….”

화르륵―!

하세리 주위로 거대한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불길은 게이트에서 나오던 머드 골렘 군단을 덮쳤다.

“구와와왁!”

“쿠워워!”

이민아를 피해 머드 골렘들만 정확히 공격한 붉은 화염.

머드 골렘들을 단번에 녹이는 위력에, 이민아는 꽤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감탄할 거 없어요, 이민아 양.”

하세리는 피식 웃으며, 더 많은 불길을 불러냈다.

“이쯤은 해야 A급 헌터를 할 수 있거든요.”

“…X나 세기는 하네, A급 헌터는.”

순식간에 녹아 사라진 몬스터들을 바라보며, 이민아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박유진 씨와 이민아 양은 잠시 뒤에서 쉬고 계세요.”

하세리는 골렘들을 향해 더 강한 화염을 날리며 말했다.

“초반의 웨이브는 제가 혼자 처리할게요.”

* * *

“자, 다 끝난 거 같네요.”

약 10분 뒤.

게이트에서 몬스터들이 더 안 나오자, 하세리는 웃으며 나와 이민아 쪽으로 다가왔다.

“바로 게이트 안으로 출발할까요?”

“…하세리 헌터님은 역시 대단하네요.”

완전히 재가 된 머드 골렘들을 보며, 이민아는 입을 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보니까 더 대단하시네요.”

“아까 말했잖아요. 이쯤은 해야 A급이라 불릴 수 있거든요.”

하기야.

나도 A급이었던 적이 있어, 하세리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근데 A급인 걸 고려해도, 역시 대단한 누나이기는 하네.’

순식간에 없어진 골렘 군단.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하세리의 화염이 정확히 골렘들만 골라 죽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관악산의 나무들이나 풀 등의 생물들에게 일절 피해를 주지 않았다.

‘나도 능력의 활용에 있어 천재라 들었지만, 이 누님도 만만치 않았지.’

특히 섬세한 부분에 있어서는, 하세리가 나보다 위였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바로 게이트 안으로 출발할 생각이죠?”

“네, 박유진 씨나 이민아 양만 괜찮다면 바로 토벌을 시작해도 될 거 같네요.”

“알겠어요. 그럼 하세리 헌터님은 이민아와 잠시 쉬고 계세요.”

“네? 뭐라고요?”

내가 혼자 게이트 쪽으로 향하자, 하세리가 나를 붙잡았다.

“저보고 쉬고 있으라니요? 그리고 왜 박유진 씨께서 혼자서 게이트를 향하는…….”

“게이트 안을 먼저 정찰하고 오려고요.”

“정찰이요?”

“네. 게이트 내의 구조와 서식 몬스터들을 미리 파악하는 게 도움이 될 테니까요.”

“그건 저도 당연히 아는데, 박유진 씨가 정찰을 한다고요?”

“걱정 마세요. 자신 있거든요.”

회귀 전, 나는 인류 최고의 암살자이자 척후로 불렸다.

물론 암살자로 더 유명했지만, 척후로서도 나름 명성이 있었다.

‘오랜만에 밥값 좀 해 보자.’

자바니아.

네메니아의 코트.

무한 와이어.

나는 내 장비들을 한 번씩 확인한 후, 여유롭게 게이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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