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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36화 (36/240)

36화

“…대단해.”

이민아는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며 순수하게 감탄했다.

“저것이 A급 헌터구나.”

붉은 불길에 순식간에 죽는 골렘들.

하세리는 그 학살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중이었다.

“저렇게 쉽게……. 나는 한 마리 잡는 데도 오래 걸렸는데.”

이민아는 B급과 A급 헌터 사이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 또다시 깨달았다.

‘내가 A급이 될 수 있을까?’

이민아의 아버지, 그러니까 이진성 또한 하세리와 같은 A급 헌터였다.

그리고 이민아는 자신의 아버지를 따라잡는 걸 목표로 하고 있었다.

자신의 가족에게 인정받기 위해, 동시에…….

‘내 가족에게서, 아버지에게서 독립하려면 아버지를 뛰어넘어야 해.’

최근 박유진과 친해진 후.

이민아는 자신의 가족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고 있었다.

가족에게 인정받으면서, 동시에 그들에게서 독립하는 것.

그러기 위해, 이민아는 이진성을 뛰어넘고자 하는 목표를 세웠다.

그랬지만…….

‘내가 뛰어넘을 수 있을까?’

이민아는 그 목표를 세울 당시에도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하세리의 강력함을 보자, 더욱더 자신감이 사라졌다.

‘하세리 헌터님은 아버지와 같은 A급이야. 근데 하세리 헌터님이 저 정도면, 아버지도 분명 비슷한 수준일 거야.’

B급까지는 어찌어찌 올라왔지만, 이민아는 그 위로 어떻게 올라갈지 도저히 감을 못 잡고 있었다.

아니, 감을 잡았다 해도 더 성장할 거라는 확신이 도저히…….

“그 우울한 표정 뭐냐? 너답지 않게.”

“응?”

속으로 온갖 생각들을 하던 도중, 이민아 옆에 있던 박유진이 입을 열었다.

“보나 마나 내가 A급이 될 수 있을까, 내가 하세리 헌터님처럼 강해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거겠지.”

“나, 나 그런 생각한 적, 아, 아니. 뭐, 그래. 그런 생각 하고 있었다, 왜? 근데 그걸 네가 어떻게 안 거야? 너 또 이상한 아이템으로 내 생각을…….”

“사람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아이템이 있으면 알려 줘라, 나 좀 쓰게.”

박유진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네 생각쯤은 뻔하거든. 얼굴만 봐도 다 읽힐 정도야.”

“네가 나에 대해 그렇게 잘 아냐?”

“모르는 편은 아니지.”

박유진은 회귀 전에 이미 이민아에 대해 많이 알게 됐었다.

하지만 그는 굳이 그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네가 나와 친해진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럼 나에 대해 뭘 아는지 말해 봐.”

“이것저것 많지. 예를 들자면…….”

박유진은 저 앞에서 골렘들을 학살하는 하세리를 잠시 바라보다, 이내 이민아 쪽으로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여기 셋 중 네가 제일 강해질 거라는 거지.”

* * *

게이트에 들어오기 전, 이민아는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바로 하세리 헌터님이라고요.’

맞는 말이었다.

전투력 측면에서 봐도 당연했고, 하세리가 앞으로 몰고 올 위협들만 봐도 맞았다.

그리고 질문을 바꿔서, 이 셋 중에 가장 강해질 사람을 꼽으라면 나는 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이민아지.’

내가 두려워하면서도 부러워한 몇 안 되는 재능.

회귀 전, 나도 늑대인간의 유전자를 이식할까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도중에 이민아가 성장을 포기한 건 여러모로 아쉬웠지.’

아무튼 중요한 건, 이민아는 크게 될 녀석이라는 것이었다.

정작 이민아 본인은 그 사실을 몰랐지만 말이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제일 강해질 거라니?”

“말 그대로의 의미야. 나, 하세리 헌터님. 그리고 너. 이 셋 중 가장 강해질 사람은 너일 거다.”

“…하, 그게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너에게는 말도 안 되는 소리 같겠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

자존심도 세고, 남들을 쉽게 깔보고 다녔지만, 이민아의 자존감은 상당히 낮은 편이었다.

그러니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그나저나 아까 하세리를 보던 이민아의 표정은 분명, 자기도 저만큼 강해지고 싶다. 대충 이런 표정이었지.’

이민아는 하세리만큼, 아니.

정확히는 자기 아버지, 이진성만큼 강해지고픈 욕망을 분명 지니고 있었다.

다만 강해질 수 있다는 확신을 못 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니 내가 이 녀석의 멘탈 관리를 잘 해 줘야지.’

지난 생의 이민아는 방구석 폐인으로 끝났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되도록 둘 생각이 없었다.

늘 말하는 거지만, 성장시키지 않는 건 인류의 손해였다.

게다가 인류 최강의 탱커가 내 편이면, 나도 이후에 여러모로 편할…….

“박유진.”

“음?”

“넌 진짜로 그렇게 생각해? 내가 하세리 헌터님보다 더 강해질 거라고, 진짜 그렇게 생각해?”

“확신한다. 그러니 도중에 포기하지 말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 누가 뭐라 해도, 넌 재능이 있으니까.”

“아버지는 내가 재능이 없다고…….”

이민아는 내 시선을 피한 채 무언가 중얼거리다 말끝을 흐렸다.

그러고는 이내 다시 나를 바라보며, 무언가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아, X발. 그래, 어떻게든 되겠지.”

“뭐가?”

“너 믿고 한번 해 볼 거라고. 내 제대로 된 첫 친구인 네 말을 믿겠다는 거야, 새끼야.”

“뭐, 그런 말을 해 주면 나야 고맙지.”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근데 너, 방금 내가 너의 제대로 된 ‘첫’ 친구라고 했잖아. 그럼 그동안 친구가 없다는 걸 인정한 거…….”

“닥쳐. 못 들은 거로 해.”

이민아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내 시선을 피했다.

그런 그녀를 웃으면서 바라보다가, 나는 이내 다시금 앞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앞쪽, 그러니까 하세리가 골렘들을 학살하고 있던 방향으로 말이다.

아니, 정확히는 학살하던 방향이었다.

“박유진 씨, 이민아 양, 제 쪽으로 오세요. 이 층의 몬스터들은 다 잡았으니, 빠르게 다음 층으로 내려갑시다.”

하세리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이 층에 있던 골렘 수백 마리를 다 잡은 것이었다.

‘하세리도 대단한 건 인정해야 해.’

괜히 한국 최강, 몇 년 뒤에는 세계 최강의 화염술사라 불린 게 아닐 터였으니까.

아무튼, 그건 나중에 생각하는 걸로 하고.

“네, 지금 그쪽으로 가겠, 음? 이민아.”

“박유진.”

하세리 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이민아가 나를 붙잡아 내게 작게 말했다.

“만약 내가 하세리 헌터님 밑으로 들어가서 배우면, 더 빠르고 확실히 강해질 수 있겠지?”

“…뭐라고?”

나는 살짝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게, 이민아가 하세리와 어울려 다니는 건 절대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으음, 굳이 안 그래도 될 거 같은데. 너라면 하세리 헌터님의 힘 없이도, 혼자만의 힘으로도…….”

“아니야. 나는 저분의 도움을 받아야 되겠어.”

이민아는 확신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B급까지는 어찌어찌 올라왔지만, 그 이상은 혼자만으로는 불가능할 거야. 이미 A급에 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해.”

“아니, 그러니까 너는 혼자서도 된다니까.”

당장 나만 해도 E급에서 A급으로 혼자 올라갔었다.

나보다 더한 잠재력을 지닌 이민아도 마음만 먹으면 가능할 터였으나, 그녀는 이미 마음을 굳힌 거 같았다.

“나는 아버지가 아닌 저분 밑에서 배워야겠어. 그리고 배우면서, 네가 말한 대로 나도 내 가족에게서 천천히 독립할 준비를 해야지.”

“네가 가족에게서 독립하는 거야 좋은데, 굳이 하세리 헌터님이 아니더라도…….”

“그런 의미에서 박유진, 너도 나랑 같이 하세리 헌터님 밑에서 배워 볼래? 너도 재능이 꽤 있어 보이는데, 나랑 같이 하세리 헌터님한테 배우면…….”

아니, X발.

지금 하세리 밑에 들어가면 몇 년 뒤에 X된다고.

마음 같아서는 미래를 말하고 싶었지만, 천기누설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미래를 말했다가,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지 몰랐기에, 이에 대해서는 나도 신중해야 했다.

“박유진 씨, 이민아 양! 어서 오세요! 혹시 무슨 일 있나요?”

뭘 어떻게 해야 망설이던 중, 저 멀리서 하세리가 웃으며 말했다.

분명 나와 이민아의 대화를 못 들었을 거리였지만, 어째서인지 하세리는 웃고 있었다.

그것도 무언가 얻어 냈다는 듯, 상당히 만족스러운 미소였다.

약 한 시간 뒤.

“자, 끝! 이번 토벌도 역시 쉬웠네요.”

하세리는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고생했어요, 하세리 헌터님.”

토벌 끝.

말 그대로였다.

나, 이민아, 하세리.

우리 셋은 게이트 토벌을 마치고 게이트 밖으로 나온 후였다.

정확히는 ‘우리 셋’이 게이트를 토벌한 게 아니라…….

‘저 누나가 혼자 다 했지.’

나는 여유롭게 웃고 있는 붉은 머리의 그녀를 바라봤다.

다른 걸 다 떠나, 실력만 보면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대단하시네요, 하세리 헌터님.”

이민아는 하세리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하세리 헌터님의 화염이 강하다고는 들었는데, 직접 보니까 들었던 것 이상으로 강하더라고요.”

“저도 두 사람의 실력을 아까 잘 봤어요.”

하세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가능성도 잘 봤고요.”

아.

하세리가 방금 보인 저 눈빛.

사람을 자기 편으로 영업할 때 보이던, 끈기와 집착이 넘치던 그 눈빛이 순간적으로 보였다.

“더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음. 게이트의 몬스터들은 제가 확실히 다 잡았고, 보스였던 아이언 골렘도 죽였고, 히든 몬스터의 여부도 박유진 씨 덕에 빠르게 확인했고, 게이트의 코어도 확실히 파괴했었으니까…….”

하세리는 익숙하게 게이트 토벌과 관련된 사항들을 정리했다.

“게이트 내에 남기고 온 아이템들은 나중에 협회에서 사람들 부르면 되고, 좋았어. 네. 저희가 할 건 다 한 거 같네요. 애초에 제가 맡은 건 게이트의 토벌뿐이지, 그 외의 것들은 협회에서 다 해 주기로 했거든요.”

그렇다면, 이라고 말하며 하세리는 다시금 나와 이민아를 바라봤다.

“협회에서 사람들을 부르기 전에, 저희 잠깐 이야기 좀 할까요?”

“하세리 헌터님, 미리 말하지만 저는…….”

“무슨 이야기죠?”

나는 일단 거절의 의사를 표하려고 했으나, 이민아가 내 말을 끊었다.

그것도 이미 결심한 눈빛으로 말이다.

“아까 게이트에서 말했듯이, 저의 게이트 토벌에 두 분을 부른 이유는 첫째, 제가 두 분의 실력을 보는 것. 그리고 둘째, 제가 두 분께 제 실력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어요.”

“네, 그랬죠. 그래서요?”

나는 태연히 대답했으나, 하세리는 그저 여유롭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제 실력을 본 소감, 어땠나요?”

“뭐, 딱히…….”

애초에 회귀하기 전에 실컷 본 게 하세리의 화염이었다.

그래서 이제 와서 딱히 특별한 소감은 없었다.

“대단했어요.”

하지만 이민아는 다르게 생각한 듯했다.

“A급과 B급 사이에 엄청난 격차가 있다는 걸 다시 깨달았고… 저도 하세리 헌터님처럼 강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런 거라면.”

하세리는 눈을 반짝이며 이민아를 바라봤다.

“협회에 들어와서, 저와 함께하도록 해요. 제가 직접 가르쳐 드려서, 이민아 씨의 잠재력을 전부 끌어내도록 할게요.”

“그렇게만 해 준다면, 저는…….”

“야, 이민아. 협회에 넘어가기 전에 네 아버지와 이야기해 봐야 하는 거 아니냐?”

나는 재빨리 두 여자 사이에 끼어들었다.

“너 갑자기 ‘용혈’ 버리고 협회에 가면…….”

“내 가족에게 목매지 말라고 말한 건 박유진, 너 아니었나?”

“어어…….”

그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이 없었다.

물론 이민아가 가족에게서 벗어나면 좋았다.

그러면 이민아의 성장이 멈출 일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하세리에게 가는 건 안 된다고, 인마.’

몇 년 뒤에 가는 거면 모를까, 지금 가는 건 곤란했다.

지금 갔다가는 뒷골목 미친놈들한테 찍혀서…….

‘잠깐, 몇 년 뒤에 가는 게 괜찮은 거면…….’

나는 문득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를 하나 생각해 냈다.

“하세리 헌터님. 저와 이민아, 혹시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 협회에 같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

“오호. 우리 조카가 요즘 남자와 같이 다닌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저 친구인가 보구나?”

말하던 중, 내 말이 또다시 끊겼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세리나 이민아에게 끊긴 게 아니었다.

“건강해 보이고, 무엇보다 눈에 생기가 넘치네, 후후.”

저 멀리, 등산길을 따라 올라오는 한 여자.

딱 한 가지 특징을 빼면 평범해 보이는 여자였다.

그래, 딱 한 가지 특징만 빼면.

그건 다름이 아닌, 하세리와 같은 붉은 머리카락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이 여자가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고모?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오신 거예요?”

하세리는 고개를 갸웃한 채, 갑자기 나타난 여자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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