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 * *
서울 뒷골목.
아니, 뒷골목이라기보다는 지하 조직?
아무튼 서울의 음습하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두 대가족이 있었다.
하나는 생물에 대해 연구하는 가족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기계에 대해 연구하는 가족이었다.
이렇게만 보면, 그냥 서울의 지하에서 아무도 모르게 연구하는 괴짜 과학자 가족으로만 보일 터였다.
‘하지만 그 가족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하자가 있었지.’
바로 윤리 의식이 없다는 것.
생명 따위를 신경 쓰지 않았으며, 오직 연구 결과, 새로운 지식 등, 그들에게는 오직 그런 것들만이 중요했다.
그리고 극과 극이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그 두 대가족은 몇십 년 전에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됐고,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냥 친해진 거면 모르겠다만, 두 가족은 생각 이상으로 사이가 좋아졌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각자 집안에서 자식을 보내 둘을 결혼시키기로 했지.’
우정의 증거라거나 뭐라나, 들은 바에 의하면 정략결혼에 가까웠다고 했다.
아무튼 두 과학자 집안, 아니.
두 매드 사이언티스트 집안은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에 정략결혼을 진행했다.
생물들에 대해, 주로 몬스터들을 연구하는 붉은 머리의 집안에서는 남자를.
기계와 인간의 호환성에 대해서 연구하던 초록색 눈동자의 집안에서는 여자를.
그렇게 서로에 대해 잘 모르던 남녀는 결혼하게 되었다.
‘여기서 끝났으면 그냥 무난한 이야기가 됐겠지만, 결국 일이 하나 터지게 됐지.’
결혼한 지 약 2년이 지난 후.
부부는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딸을 갖게 되었다.
화염을 다루는 힘을 지닌 여자아이였다.
그리고 그 딸 덕분에, 부부는 생각을 바꾸었다.
‘항상 각자의 집안에 순종하고, 그들처럼 윤리 의식 없이 연구만을 했지. 하지만 자식을 갖게 되자 시야가 달라진 거야.’
두 사람은 자신의 아이에게는 보다 밝은 세상을, 보다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선물하고자 했다.
그래서 부부는 아이를 데리고 도망쳤다.
다시는 자신의 집안과 연관되지 않게, 아예 해외로 도망칠 계획이었다.
하지만 부부는 얼마 못 가서 잡혔고, 자신들의 가족에게 살해당했다.
‘그때 딸은 살아남았지.’
그들은 처음에는 아이를 실험 재료로 쓰고자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작은 여자아이에게 의외의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두 집안은 생각을 바꾸었다.
‘그 아이를 성장시켜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만든다. 그 후, 정부 기관에 그녀를 심어 최대한의 이득을 취한다.’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계획.
하지만 그 부부의 딸은 상상 이상의 재능을 지녔고, 그 어려운 일을 쉽게 해냈다.
그녀는 20대의 나이에 헌터 협회에 들어갔고, 이후 A급 헌터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게 됐다.
‘그 두 미친 집안이 원하는 대로 됐지.’
붉은 머리의 헌터가 된 여자아이는 헌터 협회에서 진행되는 일들,
때때로 정부에서 진행되는 일들을 고스란히 자신의 ‘가족’에게 전했다.
그리고 그녀의 ‘가족’은 그 정보를 매번 요긴하게 써먹었다.
‘정작 그 당사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
그 여자아이, 그러니까 하세리.
하세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자랐다.
자신이 ‘가족’이라고 칭하는 사람들.
그녀의 친가와 외가가 뭘 하는 인간들인지 전혀 몰랐다.
‘아마 하세리의 재능을 두려워한 거겠지.’
하세리는 단신으로 그 두 집안을 몰락시킬 힘을 지니고 있었다.
아마 그들은 그걸 두려워해, 하세리를 평범하게 키웠을 터였다.
게다가 무엇보다…….
‘하세리는 자신의 부모님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몰라.’
하세리가 이 모든 진실을 알게 되는 날, 여러모로 큰일이 터질 게 분명했다.
실제로 내가 회귀하기 전.
모든 진실을 알게 된 하세리의 모습은 내게도 상당히 무서웠다.
* * *
“고모? 여기는 왜 오신 거예요?”
“오랜만에 내 조카를 보겠다는데, 이유가 필요하니?”
“그건 아닌데, 그보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오신 거죠?”
“애는 참. 너 오늘 게이트 토벌 간다고 지난번에 나한테 말했잖아.”
“그랬기는 했는데, 제가 게이트의 위치까지 고모한테 말했나요?”
“그럼. 그저께 말했잖아.”
“어어, 그랬나?”
하세리는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러든지 말든지, 하세리에게 고모라 불린 여자는 나와 이민아를 한 번씩 바라봤다.
“못 보던 여학생분이 있으시네. 그리고 남학생분은 분명. 내 기억이 맞는다면 최근 세리와 자주 다니던 거 같은데, 맞나?”
“…네. 요즘 하세리 헌터님과 조금 자주 얼굴을 보고 있죠.”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표정을 관리하며 대꾸했다.
‘X발, X됐네.’
하지만 속으로는 전혀 침착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오늘 하세리의 가족을 만나는 건 완벽히 내 예상 밖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필이면 이 여자가 왔어.’
하세리가 고모라 부른 이 여자.
이름은 하윤경으로, 상당히 위험한 인물이었다.
‘현재 하세리 친가 쪽의 실질적인 지도자지.’
다른 사람도 아닌, 하필이면 그 매드 사이언티스트 집안의 리더 격 인물을 오늘 만난 것이었다.
‘이거 어떻게 해야 되냐?’
내가 하세리와 거리를 두려고 했던 이유.
말했듯 하세리의 가족들 때문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앞으로 몇 년 뒤에 하세리는 모든 것의 진실을 알게 된다.
가족이라는 작자들이 뭘 하고 다녔는지, 자신의 부모가 어떻게 죽었는지 말이다.
그리고 결과부터 말하자면, 서울의 강남 쪽이 불바다가 됐다.
하세리와 그녀의 집안 전체의 전투로 인해서.
‘뭐, 전투가 일어나는 건 좋아. 근데 그때 연관되는 사람들이 하나 같이 하세리 지인들이라는 게 문제지.’
하세리를 돕기 위해 직접 전투에 참여한 인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참가할 의사가 없음에도 끌려간 사람들이 많았다.
다름 아니라, 하세리의 외가와 친가가 하세리의 지인들을 인질로 잡았었다.
그리고 그 인질들, 내 기억이 맞는다면 대부분이 죽었다.
‘나만 연관되는 거면 상관없어. 나는 인질로 안 잡힐 자신이 있으니까. 근데 문제는 유나야.’
만약 유나가 이로 인해 다치거나 죽으면, 나는 내 스스로를 용서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이래서 하세리와 거리를 두려고 했던 건데, 일이 이렇게 되네.’
내 원래 계획은 오늘을 마지막으로, 앞으로 몇 년 동안.
그러니까 하세리가 가족 문제를 마무리 짓기 전까지 그녀와 연을 맺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하세리의 고모, 하윤경이 나타나 나를 두 눈을 바라봤다.
하유경은 아마 내 얼굴을 분명 기억할 테고, 이건 이후에 어떤 일로 이어질지 몰랐다.
‘하아아, 전반적인 인생 계획을 다시 뜯어고쳐야지.’
유나를 지키려면, 일단 저 미친 집안부터 어떻게 하는 게 먼저였으니 말이다.
“흐음, 그나저나 이 갈색 머리 친구.”
하윤경은 고개를 돌려, 내 옆에 있던 이민아를 바라봤다.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 특히 이 진한 갈색 머리는 분명…….”
“이민아예요. ‘용혈’ 길드의 길드장, 이진성의 딸이요.”
“아아, 이진성 씨. 그분의 딸이구나. 근데 어려 보이는데, 혹시 막내딸이니?”
“네, 맞아요.”
“오호, 막내딸이면. 늑대인간의 유전자를 이식했다는?”
“네……. 그것도 맞아요.”
이민아는 살짝 불편하다는 투로 대꾸했으나, 하윤경은 전혀 개의치 않은 채 미소를 지었다.
“그래, 몇 년 전에 한 수술. 워낙 유명했던 거라 나도 잘 알지. 물론, 그놈들이 우리 연구 성과를 몰래 훔쳐 가서 써먹은 건 괘씸했지만 말이야.”
“네?”
하윤경의 이 말에 이민아는 고개를 갸웃했고.
“고모,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하세리 또한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하지만 하윤경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아니란다. 아무튼, 이 두 학생. 이번에 네가 점 찍어 둔 친구들이지?”
“그쵸. 두 사람 다 재능이 뛰어나거든요.”
“으음, 그렇구나.”
하윤경은 나와 이민아를 또다시 바라봤다.
그리고 그 눈빛은, 하세리와 비슷하면서도 많이 달랐다.
하세리 같은 경우에는, 나와 이민아를 보석의 원석을 바라보듯이 바라봤다.
하지만 하윤경은 실험 재료를 보듯 우리를 바라봤다.
‘생명 윤리를 개에게나 줘 버린 사람답네.’
물론 나도 암살자였던지라, 생명 윤리니 뭐니 떠들 자격이 없었다.
하지만 하윤경은 나와 차원이 달랐다.
“좋은 재료, 아니. 좋은 인재들이네. 딱 봐도 그게 보여. 그럼 아무튼. 잘 해 보렴, 세리야.”
나와 이민아를 바라보다가, 하윤경은 이내 자신의 조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시 가 볼게. 게이트 토벌 잘 끝내고, 틈틈이 연락해. 알겠지?”
“고모, 벌써 가요? 방금 왔잖아요?”
“네 얼굴만 잠깐 보러 온 거니까. 네가 건강하게 잘 지내는 걸 확인했으니까, 이제 또 가야지.”
“그래도 오랜만에 이렇게 직접 만난 건데, 밥이라도 한 끼 같이…….”
“게이트 토벌부터 마무리하렴. 같이 밥 먹는 건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그렇기는 한데, 몇 달 만에 고모를 보는…….”
“오늘 내가 시간이 없기도 하거든. 지금도 네 얼굴 한 번 보려고 시간을 쪼개서 온 거야.”
“아아,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하세리는 별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하윤경의 그러한 대답에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 없기는 무슨. 집안의 리더 격인데, 시간이야 얼마든지 낼 수 있으면서.’
애초에 하윤경이 지금 나타난 건, 단순히 하세리를 보러 온 게 아닐 터였다.
하윤경을 비롯한 그 미친 과학자 집단은, 하세리를 전혀 소중히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하세리는, 그저 정부 기관의 주요 정보들을 알아 와 주는 도구에 불과했으니까.
‘하윤경이 직접 이곳에 온 이유는, 아마 나와 이민아를 보기 위해서겠지.’
하윤경의 성격상, 이번에 하세리가 고른 인재들이 누군지 궁금했을 터였다.
회귀 전, 하세리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하윤경은 하세리가 인재를 발굴할 때마다 그들을 직접 확인하러 왔다고 했다.
아마 실험 재료로 써먹을 만한지,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어서 그랬을 것이었다.
‘그리고 저 얼굴을 보니, 우리가 마음에 들었나 보네.’
아마 하윤경은 기회가 오면 분명 나 또는 이민아를 납치해 갈 거다.
아니, 납치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예정이었다.
하세리가 자기 집안과의 대립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그들이 하세리의 지인들을 있는 대로 납치할 테니까.
‘내가 이래서 하세리와 거리를 두려고 했던 건데, 결국 이렇게 되네.’
아무래도 대비를 확실히 할 필요가 있었다.
여차하면, 내가 직접 나서서 저 미친 집안을 손봐야 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다음에 보자, 세리야. 연락해.”
하윤경은 등을 돌려 왔던 길을 돌아갔다.
말 그대로 우리들의 얼굴만 보고 바로 간 것이었다.
“…으흠. 네. 조금 늦기는 했지만, 방금 돌아가신 저분은 제 고모에요.”
“네, 그런 거 같더라고요.”
나는 대충 대꾸하며 하윤경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내 기억과 크게 다를 거 없는, 광기 넘치는 기운이 느껴지는 여자였다.
“아무튼 잠깐 화제가 넘어갔지만,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죠.”
하세리는 다시금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나와 이민아를 바라봤다.
“지금껏 계속 이야기한 거지만, 이제 마지막으로 물어볼게요. 헌터 협회에 들어와, 저와 앞으로 같이 일해 볼래요? 그리고 아까 말한 것처럼, 저는 두 분을 적어도 제 수준으로 성장시켜 줄 자신이 있어요.”
“네, 저는 더 강해지기 위해 하세리 헌터님과 함께…….”
하세리의 말에 이민아는 바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나는 재빨리 그녀의 말을 끊었다.
“저와 이민아는 당장 헌터 협회에 갈 생각이 없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대학교 졸업 후에 갈 생각이니, 몇 년만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 말에 이민아는 당황한 눈빛으로, 하세리는 의외라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반응을 신경 쓰지 않았다.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면, 지금의 이 선택이 최선이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