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 호텔에서의 식사 】
“야, 박유진. 우리 이야기 좀 해.”
“뭔데 그래?”
“뻔하잖아. 아까 네가 왜 나 대신 선택을 내린 거야?”
하세리와 헤어진 지 약 30분 후.
나와 이민아는 같이 집으로 귀가하는 중이었다.
“나는 협회에 들어가서 하세리 헌터님께 배울 생각이었는데, 왜 그걸 네가…….”
“다 이유가 있어, 인마.”
아까 게이트 앞에서, 나는 하세리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나와 이민아는 졸업 후에 헌터 협회에 들어가겠다고 말이다.
이에 하세리는 의외라는 눈빛으로 그 이유를 물었고, 나는 나와 이민아는 졸업장은 받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러니 졸업한 후에 같이 다시 연락을 드리겠다. 대충 이렇게도 덧붙였지.’
그 후 하세리와 나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으나, 나는 한결같이 ‘졸업 후에 같이 찾아가겠다’라고만 말했다.
그리고 대화를 마무리 짓고, 나는 이민아를 데리고 도망치듯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내 입장에서는 하세리의 눈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았으나,
“뭔 이유인데. 내게 적어도 설명은 해야 될 거 아니야, 새끼야.”
이민아는 불만이 있어 보였고, 사실 그럴 만했다.
그도 그럴 게, 이민아는 아까 나와 하세리의 대화 중에 한마디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입을 열 틈이 없었다.
대화에 끼기에는, 나와 하세리 사이의 분위기가 워낙 진중했던 탓이었다.
‘거기다 이유도 못 들은 채 이렇게 귀가하게 됐으니까.’
이건 굳이 이민아가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불만을 표하며 따질 만했다.
어떻게 보면 여기 올 때까지 내게 한 마디의 불만도 안 보인 이민아가 이상했다.
뭐, 애초에 이민아는 인간관계에 있어 은근히 소심한 구석이 있었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친구를 못 사귄 탓이겠지.’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형성해 보지 못했으니,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 모를 법도 했다.
근데 생각해 보면, 이런 종류의 사람은 흔히 찐따라고 부르던 것 같은…….
“너 그 눈 뭐냐?”
“…응?”
“너 방금 나 친구 없는 찐따 바라보듯이 보고 있었거든?”
“그렇게 티가 많이 났, 다는 건 아니라. 으흠. 아무튼, 내가 이런 행동을 한 이유를 방금 물었지?”
“야! 너무 대놓고 말 돌리는 거 아니냐?! 너 죽을래?!”
이민아는 살짝 빨개진 얼굴로 내게 외쳤다.
“나 찐따 아니야! 친구도 있다고!”
“그치. 친구가 나밖에 없겠지만, 있기는 있는 거니까.”
“너, 그, 야! 아니, 나는…….”
“진정해, 인마. 그리고 버스 안이니까 너무 소리 크게 내지 마.”
지금 타고 있는 버스에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공공장소니 말이다.
“치, 친구 없는 게 죄도 아니고, X발.”
“야, 울지는 말고.”
“안 울어!”
“아, 네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으나, 이민아는 삐진 듯이 고개를 홱 돌렸다.
“미안하다, 친구 없는 찐따라서.”
“야, 그러지 말고. 어어, 미안해, 응?”
“미안하면 이유나 설명해.”
이민아는 나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들어가도 좋은데, 왜 하필 졸업 후에 협회에 가자고 한 거야? 만약 그사이에 하세리 헌터님의 마음이라도 바뀌면 우리는 좋은 기회를 걷어찬 게 된 거라고.”
“일단 아까 말한 것처럼, 졸업장은 따는 편이 좋으니까. 다른 대학교도 아니고, 고연대학교 정도의 졸업장이면 가치가 있잖아?”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너에게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내게는 별 의미가 없어. 나는 졸업장이 있든 없든 큰 차이가 없거든.”
“그치. 나 같은 E급에게나 졸업장이 중요하지. 너 같은 B급 헌터들은 고졸, 아니, 중졸이라도 어지간한 길드에서 다 받아 줄 테니까.”
뭐, 회귀하기 전의 나는 그냥 중퇴해서 졸업장을 못 받았지만 말이다.
“근데 졸업장 받는 것 말고도, 지금 하세리 헌터님의 밑에 들어가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야.”
“그러니까 그 이유가 뭔데?”
“너는 협회에 들어가는 것보다, 하세리 헌터님 밑에서 배우고 싶은 거잖아, 맞지?”
“그렇지? 그게 왜?”
“하세리 헌터님에게 배우는 거, 추천 안 하거든.”
나는 나름 진지하게 이민아에게 설명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B급까지는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받고 도움을 받으며 성장해도 괜찮아. 아니, 오히려 그러는 편이 맞고, 가장 효율적이야.”
“B급까지 그렇다는 건…….”
“B급에서 A급으로 올라가는 건 혼자만의 힘으로 하는 편이 좋아.”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내 나름대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조언이었다.
“가장 밑바닥인 F급에서 B급까지 올라가는 것보다, B급에서 A급으로 올라가는 게 훨씬 힘들다는 거 알지?”
“어어, F급에서 A급까지 올라간 사람이 있었나?”
“E급에서 A급까지 올라간 사람은 있어. 유명한 사람은 아니지만, 분명히 있기는 있었어.”
그 사람이 미래의 나라는 건 함정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 사람 말에 따르면 B급까지는 남의 조언을 받고, 다른 사람의 방식을 따라 하면서 성장하는 게 좋다고 했어. 하지만 B급에서 A급으로 올라가는 건, 자기만의 길을 찾아야 된다고 그 사람이 말했어.”
“자기만의 방식?”
“네가 하세리 헌터님 밑에 들어가서 배우면, 아마 1년 안에 A급으로 올라갈 수는 있을 거야. 네가 가진 재능이면 충분히 가능할 테니까. 하지만 A급이 된 이후가 문제일 거야.”
회귀하기 전, 내가 겪었던 경험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남의 손을 빌려 A급이 된 헌터는, 그 이상으로 성장을 못 할 거야. 자기만의 방식을 찾지 않는 이상 한계가 뚜렷하게 보일 것이거든.”
A급부터는 재능의 영역이었다.
헌터들이 각자 지닌 자신만의 재능을 찾아, 그 재능을 키우는 것만이 다음 단계, 그러니까 S급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재능이 전류를 활용하는 것이었지.’
실제로 나는 나만의 재능, 나만의 길을 찾았고, 덕분에 S급에 한 발자국씩 다가갈 수 있었다.
물론 S급이 되기 전에 죽고 회귀했지만 말이다.
“하세리 헌터님이 키운 인재들 중 A급까지 오른 사람들이 꽤 있을 거야. 하지만 대부분은, 아니. 사실 그 사람들 전부 다 그 이상은 성장 못 했어. 하세리 헌터님의 가르침 받고 A급에 오른 사람들이라, 자기만의 재능, 자기만의 길을 못 찾았거든.”
“그럼 네가 아까 졸업 후에 협회에 들어가라는 건, 내가 졸업하기 전에 나만의 재능을 찾으라는 거야?”
“정답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너만의 재능과 너만의 길을 찾도록 해. 그럼 장담하는데, 네 재능이면 졸업하기 전에 A급에 올라갈 수 있을 거야.”
“내가, A급에…….”
“그리고 A급이 된 후에 협회에 들어가서 하세리 헌터님과 같이 일하면 될 거야. 하세리 헌터님은 너보다 경험이 더 많으니까, 굳이 네 성장과 관련된 게 아니더라도 이런저런 조언들을 받을 수 있을 거다.”
“…너 이런 거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비하하려는 건 아닌데, E급이 이렇게까지 자세히 아는 건…….”
“다 알 방법이 있어, 인마.”
나는 적당히 대꾸해 얼버무렸다.
“아무튼 헌터 협회에 들어가는 건 대학교 졸업한 후에 하는 거다, 알겠냐?”
“…근데 박유진. 내가 진짜 A급에 올라갈 수 있을까?”
이민아는 바닥을 바라보며, 들릴 듯 말 듯 작게 말했다.
“네가 내게 재능이 있다고 말하는데, 솔직히 내게 재능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 일단 B급까지 빠르게 올라온 건 맞는데, 그것도 사실 내 혼자의 힘으로 했다고 보기 애매해.”
“흠, 왜 그렇게 생각하냐?”
“그야, 아버지가 내게 투자해서 남들보다 좋은 환경에서 훈련했고, 거기다 내가 B급이 된 건 늑대인간의 유전자가 적지 않은…….”
“이민아.”
“음? 또 왜, 어어?! 야! 야, 너 뭐 하는…….”
내가 이민아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자, 이민아는 여러모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이민아의 머리를 내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이민아가 내 눈을 바라볼 수 있게끔 했다.
“이민아. 너는 재능이 있어. 다른 건 몰라도, 이 말 하나만큼은 믿어 줘.”
“어어, 그, 어, 아니, 갑자기 왜 이런…….”
“너는 네 아버지를 뛰어넘을 탱커가 될 거야. 너에게 그만한 재능 있으니까. 알겠지?”
“아, 알겠으니까, 그, 너랑 눈 마주치는 게 조금…….”
“졸업하기 전까지 같이 열심히 해 보자. 그리고 말한 것처럼, 너는 졸업하기 전에 A급이 될 수 있을 거야. 내가 장담할게.”
“으, 응.”
이민아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알아들은 표정이었기에, 나는 이민아의 머리에서 손을 떼었다.
그러자 이민아는 재빨리 내게서 고개를 돌려, 다시금 바닥을 바라봤다.
“얼굴은 왜 그렇게 빨개진 거냐?”
“아, 아니! 갑자기 그렇게 눈을 마주치면, 나 보고 뭐 어떻게 하라는…….”
“친구끼리 눈 마주 보는 게 뭐 이상하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지금까지 친구가 있었던 적이 있어야…….”
“친구 없다는 거 처음으로 인정했네?”
“…개새끼.”
이민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X발, 근데 남자와 여자가 눈 마주치면서 이야기하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하잖아. 내가 친구는 없지만, 그래도 들은 게 있는데, 저 새끼는 대체 뭔…….”
작게 구시렁거리는 이민아.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중얼거림을 못 들은 척했다.
그렇게 나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버스를 타고 가던 중.
위잉―!
위잉―!
나와 이민아의 스마트폰이 동시에 울렸다.
뭔가 싶어서 우리 둘은 바로 꺼내서 확인했는데.
“아, 돈 들어왔구나.”
헌터 협회에서 온 돈.
아마 오늘 게이트 토벌을 통해 얻은 돈일 터였다.
“생각보다 많이 주네.”
이민아는 계좌에 들어온 금액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4급 게이트이기는 하다만, 우리가 한 활약에 비해 뭔가 더 많이 받은 거 같은데?”
“아마 하세리 헌터님이 보너스로 더 준 걸 거야.”
나는 살짝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앞으로도 나와 일할 테니, 잘 부탁한다. 이건 선입금이야.’ 뭐, 대충 이런 의미겠지.”
내가 아는 하세리라면 분명 그럴 사람일 테니 말이다.
“뭐, 그건 그렇고. 돈 들어왔으니까.”
나는 다시금 이민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계좌번호 불러 줘. 돈 보내 줄게.”
“응? 뭔 소리야? 돈을 보내 준다니?”
“지난번에 한식당에서 네가 점심값 다 내 줬잖아. 그거 갚아야지.”
“아아, 그거.”
이민아는 생각났다는 표정을 지었다.
“근데 그거 진짜 안 보내 줘도 괜찮아. 그냥 친구에게 밥 한 번 사 준 거라 생각하고…….”
“됐어. 나 이런 거 빚지고 사는 스타일 아니야. 특히 돈 관계는 확실히 해야지.”
“하아아. 이런 게 너답다고 해야 되나, 고지식하다고 해야 되나.”
“야, 내가 어딜 봐서 고지식하냐? 나만큼 융통성 넘치는 사람 없거든?”
“하, 퍽이나 그렇겠다.”
하세리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뭐. 돈을 굳이 보내 주고 싶으면 받을게. 근데 그 전에, 주말에 약속 잡은 거 기억하고 있지?”
“주말에 잡은 약속이라면…….”
“내가 너 호텔에 데려가서 밥 먹여 준다는 거. 너 여동생과 같이 오고 싶다고 했잖아.”
“그거야,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
“꼭 와라, 알겠지? 예약까지 다 해 놨는데, 네가 갑자기 안 오면 곤란하거든.”
“걱정 마, 인마. 공짜 밥 사 주는 사람과의 약속은 절대 안 어기거든.”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고, 이에 이민아 또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때의 나는 모르고 있었다.
오늘 하윤경을 만난 것처럼 이번 주말에도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을 만나게 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