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용혈’ 길드의 길드장, 이진성.
이민아의 아버지이자, 키가 2m 가까이 되는 거구의 남자.
나는 이 남자를 회귀하기 전에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만남들을 통해, 나는 이진성이 정상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이 얼마나 강한지만을 중요시하는 인간이었지.’
내가 E급이었을 당시에 이진성을 만났을 때, 이진성은 나를 없는 사람 취급을, 아니.
사람 취급조차 안 했었다.
당시에 게이트에서 E급치고 꽤 활약을 보였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A급이 된 이후에 이진성을 다시 만났을 때는 달랐다.
‘나를 엄청 중요한 사람인 것처럼 대했으니까.’
어떻게 보면 참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강함만을 중요시하고, 그 외의 것들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남자.
인류가 더 강해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면 안 된다고 주장했고, 그걸 또 실제로 실행했다.
‘그것도 자기의 딸을 대상으로 했지.’
내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이민아.
무능력자로 태어났지만, 이진성은 자기 가족에 약한 자는 있을 수 없다며 그녀에게 강제로 능력을 부여했다.
그것도 매우 위험한 실험을 통해, 이민아의 목숨을 판돈으로 걸고 말이다.
‘신념이 확고하지만, 그렇기에 위험한 남자.’
이게 내가 내린 이진성에 대한 평가였다.
“이민아. 내 질문에 대답해야지?”
그리고 그 위험한 남자는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너 여기서 뭐 하는 거냐? 그리고 이 두 사람은 누구니?”
“…여, 여기는 무슨 일로 오신 거죠, 아버지?”
이민아는 최대한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민아의 질문은 상당히 합당했다.
나 또한 이진성이 갑자기 이곳에 나타나자 많이 당황하고 있었다.
‘지난번에는 하세리의 고모를 만나더니, 이번에는 이민아의 아버지냐?’
어째 만나면 안 되는 인간들만 만나게 되는 느낌이었다.
뭐, 그래도 하세리의 고모, 그러니까 하윤경보다는 이진성이 나았다.
하윤경은 하세리의 지인이기만 하면 어떤 사람이든 상관하지 않고 다 잡아갔다.
하지만 이진성은 자기에게 밉보이지만 않으면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래, 밉보이지만 않으면 말이다.
“오늘 아버지께서 식사 약속이 없으셨던 걸로 기억을…….”
“아까 네 통장에서 상당한 금액이 빠져나가는 걸 확인했거든.”
이진성 또한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디에서 쓰였는지 보니까, 이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쓰였더라고.”
“그렇다는 건, 설마 제가 돈을 어디에 쓰는지 전부 확인이 가능…….”
“그게 왜?”
이진성은 전혀 감정이 없는 목소리였다.
“내가 너에게 준 돈이잖아. 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내가 알아도 되지 않을까?”
“그건…….”
“네가 갑자기 이런 비싼 식당에서, 이렇게 많은 금액을 지불해서 뭔가 싶었다. 그래서 궁금해서 이렇게 직접 온 거야.”
거구의 남자는 자신의 딸을 내려다봤고, 이민아는 고개를 숙인 채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굳이 오늘이 아니더라도, 날 잡아서 한 번쯤 이렇게 갑자기 너를 찾아왔을 거다.”
“네? 왜, 왜요?”
“지난 며칠 동안, 너는 평소와 다르게 행동했으니까.”
이진성은 말하며, 내 쪽을 슬쩍 바라봤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네가 학교에서 E급 남학생에게 진 것이 시작이었지.”
“그…….”
“그러더니 다음 주에 같은 녀석에게 또 지고. 그리고 그날 저녁에 정찬우의 시체를 네가 발견했었지? 거기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저께 게이트에 나 몰래 갔다 왔고.”
“아버지, 그걸 전부 어떻게 알고 계신…….”
“내가 따로 알아본 거야. 요즘 네 행동이 많이 이상했거든. 강해지는 것에만 몰두해야 할 네가 딴 길로 새는 것만 같아서 말이다.”
이민아는 이진성의 말에 뭐라 대꾸하지 않았다.
아니, 아마 못한 것이지 않을까 싶었다.
이진성은 그런 자신의 딸을 잠시 바라보다, 이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네가 박유진이었지?”
“저를 아시나 봐요?”
“알지. B급인 내 딸을 이긴 E급 헌터. 신기해서 알아봤단다.”
이진성은 나를 내려다보며, 아무 감정 없는 말투로 말했다.
“우선 내 소개를 하자면, 나는 민아의 아버지라네.”
“예, 알고 있어요. 이진성 씨.”
“나를 아는 건가?”
“E급 헌터지만, 저도 일단은 헌터라서요. 그리고 한국의 헌터라면, ‘용혈’ 길드의 길드장 정도는 다 알고 있지 않을까요?”
“…예상은 했지만, 특이한 녀석이네.”
이진성은 나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만난 김에 묻지. 그저 전류를 다루는 게 전부인 자네가 어떻게 내 딸을 이긴 건가?”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 좋았다라. 꼭 무언가 숨기는 인간들이 그렇게 말하지.”
…이 아저씨는 성격이 지금이나 그때나 한결같네.
뭐, 하지만 오히려 좋았다.
성격이 한결같으면 내가 대응하기 편했으니까.
“저에게 뭘 요구하고 싶은 거죠?”
“요구라니?”
이진성은 깔끔하고 간단하게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그걸 잘 알고 있었고, 일단은 그에 맞춰 줄 생각이었다.
“지금 저에게 무언가를 바라고 있는 거 아닌가요?”
“으음, 자네에게 바라는 건 없네. 하지만 자네에게 궁금한 건 있지.”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나가자, 이진성 또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자네는 내 딸과 무슨 관계인가?”
이진성의 질문에 근처에 있던 이민아가 흠칫 떨었다.
하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은 채, 그 질문에 바로 대답을 했다.
“친한 친구입니다.”
“친구?”
“서로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지만, 네. 저희는 단순히 친구일 뿐입니다.”
나는 당당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돌려 이민아 쪽을 바라봤다.
“으, 으흠.”
이민아는 헛기침을 하며 내 시선을 피했지만, 그녀의 입꼬리가 조금씩 움직이는 게 너무나도 뻔히 보였다.
“친구라.”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진성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박유진 군, 자네가 민아에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민아에게 친구가 없네.”
“으읏.”
옆에서 이민아가 흠칫했지만, 이진성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내게 계속 말했다.
“민아의 성장에 방해가 되는 건 내가 전부 쳐 냈거든. 친구를 사귈 거면 강해지는 데 도움이 될 법한 친구를 만들어 오라고 했지만, 아쉽게도 민아는 그러지 못했지.”
“네, 그런가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라 딱히 놀라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 눈에는 자네가 민아에게 도움이 될 거 같지가 않아. 오히려 방해하는 걸로 보여.”
이진성은 나를 차갑게 내려다봤다.
“내 딸이 주말에 훈련을 안 하고 친구를 만나기 위해 외출하는 건, 거의 처음이지. 거기다 친구를 위해 돈을 이렇게 많이 쓴 것도 처음이고.”
“아버지. 그건 제가 설명을…….”
“조용히 하고 있거라. 너는 이따 나와 집에서 이야기하자.”
“…네.”
이민아는 할 말이 참 많아 보였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고개를 끄덕이는 것밖에 없었다.
그것도 살짝 몸을 떨면서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민아에게 있어 이진성은 일종의 공포의 대상이나 마찬가지였다.
“박유진 군. 자네는 민아에게 도움이 될 거 같지가 않아.”
“그러니까, 저보고 이민아와 절교하라는 말인가요?”
“그렇게 해 준다면 이야기가 쉬워지지.”
“흐음.”
나는 이진성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이민아 쪽을 바라봤다.
“…….”
이민아는 무언가 작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너무나도 작게 중얼거린 거라 안 들렸지만, 입 모양으로 봤을 때.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마치 전에도 이런 일을 겪은 듯한 반응이었다.
뭐, 이민아가 살아온 인생을 생각하면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이진성 씨.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할게요. 저는 이민아와 계속…….”
“5,000만 원.”
“…네?”
“자네 같은 사람을 처음 만난 건 아니거든.”
이진성은 예상했다는 듯이 말했다.
“내 딸에게서 떨어지게. 그럼 5,000만 원을 자네에게 주도록 하지.”
“왜 그렇게까지…….”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래도 내 가족이거든. 그리고 나는 내 가족이 그 누구보다 강해지기를 바라고 있어.”
“그래서 저를 떨어뜨리려는 겁니까?”
“강해지는 데 있어 정은 방해야. 그리고 친구를 만들면, 나중에 약점이 될 수도 있어. 나는 내 가족이 그런 사소한 약점조차 없었으면 하거든.”
참 한결같은, 신념이 확고한 남자였다.
그것도 극단적일 정도로 신념이 확고했다.
‘그나저나 5,000만 원이라.’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돈을 받고 이민아에게서 떨어졌을 거다.
아니, 돈을 안 주더라도 이진성의 위압감에 눌려 그랬을 거다.
나야, 전에도 이진성을 여러 번 만나서 괜찮았지만.
“으으.”
곁에 있던 유나는 겁에 질린 듯 몸을 떨고 있었다.
유나는 말 그대로, 이진성의 이 위압감에 압도당한 것이었다.
그리고 유나뿐만이 아니었다.
“…….”
“…….”
수많은 사람들이 있던 이 레스토랑.
이진성이 등장한 이후부터 계속 조용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이 수많은 사람들이 이진성의 위압감에 압도당한 것이다.
‘이 아저씨를 빨리 내보내든가 해야지.’
기껏 유나를 비싼 식당에 데려왔는데, 이런 아저씨 때문에 그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 제안, 거절할게요.”
“음?”
“바, 박유진? 왜…….”
이민아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특히 이진성, 그의 무표정했던 얼굴에 순간 당황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돈이 부족한 건가? 5,000만 원이면 분명 적은 돈이 아닐…….”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돈을 제게 얼마나 제안하든, 저는 이민아의 친구로 계속 남고 싶고, 그럴 생각이거든요.”
5,000만 원.
분명 큰돈이었다.
하지만 이민아가 나중에 성장해서 가져올 이익에 비하자면, 5,000만 원은 작은 돈이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이민아 곁에 있어 줘야지.’
만약 내가 이진성에게 돈을 받고 이민아에게서 멀어지면, 이민아는 매우 높은 확률, 아니.
100%의 확률로 날개가 꺾일 터였다.
나는 인류의 미래에 손해가 될법한 짓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군.”
이진성은 여전히 당황한 눈빛이었지만, 그는 다시금 내게 말했다.
“지금까지 민아뿐만 아니라 내 다른 자식들 전부, 도움이 안 될 친구를 몇 번 만든 적이 있었지. 하지만 내가 나서니까 전부 내 자식들과 관계를 끊었어, 가끔은 돈을 안 줬는데도 그랬지.”
“저에게는 돈 같은 게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나는 옅게 미소를 지은 채, 이민아를 슬쩍 바라봤다.
“이진성 씨 말씀대로 부족한 점이 많은 녀석이에요. 하지만 사람 자체는 좋은 녀석이고, 무엇보다 크게 될 가능성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제게 돈을 얼마나 주든, 저는 이런 친구를 놓치고 싶지 않네요.”
“크게 될 친구? 민아가?”
이진성은 어이없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자네의 안목이 좋지는 않은 거 같군. 물론, E급에 불과해서 당연한 거겠지만.”
“제 안목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나중에 알게 되겠죠?”
“…당돌하네. 내게 이렇게 당당하게 맞서는 사람은 오랜만이야.”
…아.
너무 열 냈다.
아까 말한 것처럼, 밉보이지만 않으면 이진성은 타인을 건드리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진성에게 밉보일만한 짓을…….
“그보다 저 여학생.”
이진성은 갑자기 유나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자네의 가족인가? 조금 닮은 구석이 있어서 말일세.”
“제 여동생입니다. 그리고 아무런 능력이 없는 일반인이니, 관심을 안 가지셔도 됩니다.”
이진성 성격상, 아마 내 가족까지는 건들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밉보인 대상에게만 보복하지, 그 대상의 가족은 건들지 않는 편이었으니까.
“자네의 여동생?”
“네, 그리고 방금 말한 것처럼 일반인이니 관심을, 으윽?!”
내가 말하던 도중, 이진성이 갑자기 움직였다.
말 그대로 갑자기, 그는 거대한 주먹을 내게 휘둘렀다.
나는 당황했지만 재빠르게 그의 주먹을 피했다.
그리고 나는 본능적으로 허리춤에 있던 자바니아를 꺼내, 이진성의 목에 칼날을 가져갔다.
하지만 이진성 또한 빠르게 움직여 내 멱살을 잡은 것이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죠?”
어느새 침착함을 되찾은 나는 이진성을 노려보며 차갑게 물었다.
“마음에 드는군, 마음에 들어.”
하지만 이진성은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옅게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