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 * *
‘이제 뭐 해야 되려나?’
나름 많은 일이 있었던 주말이 지나간 후, 다시 찾아온 월요일.
“네, 그럼 교재의 다음 문제로 넘어갈게요. 203페이지의 이 문제를 보면, 헌터들이 최초로 발견했던…….”
나는 고연대학교에서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었다.
아니, ‘열심히’라는 표현은 틀렸다.
지금 난 아무리 봐도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이민아와 관련된 문제야, 천천히 생각해 본다 치자. 그럼 남은 건 하세리. 그리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 얼굴에 손을 가져갔다.
‘내 가면을 얻는 거겠지.’
나는 손을 내 얼굴에, 정확히는 가면을 썼었던 얼굴 부분을 매만졌다.
‘실키의 가면.’
내가 최근에 얻은 네메이아의 코트는 나의 방패나 마찬가지인 장비였다.
하지만 내가 쓰고 다녔던 이 ‘실키의 가면’이라는 아이템도 여러모로 나를 많이 보호해 줬다.
‘뭐, 가면이라기보다는 마스크에 가깝지만 말이야.’
나는 마지막으로 구할 내 장비에 대해 생각하며, 수업 내용을 반쯤 흘려들었다.
‘근데 문제라면, 그게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거야.’
회귀하기 전, 나는 그 가면을 다른 사람에게서 뺏었었다.
정확히 말해, 나를 죽이려고 급습한 암살자가 쓰던 가면이었는데, 내가 그 암살자를 역으로 죽이고 탈취했었다.
그 당시에는 전혀 문제가 되는 일이 아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문제가 되었다.
‘그 암살자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니까.’
얼굴은 기억이 났다.
하지만 그 암살자의 이름, 나이, 출신 등, 그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그때는 그냥 죽이고, 가면을 뺏고, 그냥 시체를 적당히 유기했었는데. 이럴 줄 알았다면 이름 정도는 알아볼 걸 그랬나?’
살짝 후회가 됐지만, 다 부질없었다.
애초에 내가 회귀할 거라고는 예상을 전혀 못 했으니까.
‘그 암살자가 다시 나를 죽이러 오기를 기다리는 건, 으음, 좋은 방법은 아니지. 애초에 그 인간이 내게 또 올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놈을 찾아갈 수는 없고…….’
뭔가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여차하면 ‘실키의 가면’을 포기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 가면을 포기하기에는 영 아깝단 말이지.’
유독 가스를 막아 주고, 물에서도 숨 쉬게 해 주고, 목소리도 바꿔 주고, 얼굴도 숨겨 주는 등, 좋은 기능들이 많이 달린 아이템이었다.
그래서 마음 같아서는 꼭 다시 얻고 싶었다.
‘…에이, 됐다. 그냥 천천히 손에 넣든가 하자.’
그 가면이 좋은 물건은 맞았지만, 당장의 내게는 필요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자바니아, 네메이아의 코트, 무한 와이어.
내가 회귀하기 전에 쓰던 이 세 개의 장비들.
이 셋만 있어도 어지간한 상황들에 충분히 대응이 가능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나는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을 밀어낸 후, 다시금 눈앞의 강의에 집중했다.
‘수업이나 마저 듣자.’
이번 생은 다르게 살아 보기로 결심했으니, 공부를 제대로 한번 해 볼까 생각 중이었다.
* * *
“에라이, 못해 먹겠네.”
수업이 끝난 후, 나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역시 공부는 나랑 안 맞는다니까.”
몬스터에 대한 것들은 많이 알았고, 많이 알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회귀하기 전, E급 몸으로 살아남으려면 반강제적으로 몬스터들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어야 했다.
덕분에 몬스터들에 관해서 만큼은 전문가인 나였지만.
‘역사는 도저히 못 하겠는데?’
역사, 그것도 정확히는 헌터의 역사.
20살 때의 내가 대체 왜 이 과목을 골랐는지 이해를 못 하고 있었다.
‘이걸 다 외우면 어찌어찌 될 거 같기는 하다만, 하아아. 내가 이걸 굳이 해야 되나?’
차라리 이 시간에 훈련을 해 더 강해지는 것에 집중하는 편이…….
“야, 박유진. 너 표정이 왜 이렇게 어둡냐?”
“음? 뭐야? 이민아?”
한숨을 쉬며 강의실 밖으로 나오자, 갈색 단발머리의 여학생이 나를 맞이해 줬다.
“너 왜 여기에 있냐?”
“이 학교 학생인데 당연히 학교에 있는 게…….”
“아니, 그게 아니라 어떻게 알고 여기서 나 기다리고 있었냐고?”
“나, 나 너 기다린 적 없는데? 그냥 가다가 우연히 네가 보여서…….”
“퍽이나 그렇겠다.”
나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이민아를 바라봤다.
“너 설마 진짜로 내 학교 시간표를 몰래 알아본 거 아니지? 네가 나를 좋아하는 건 상관없는데, 그렇게까지 내게 관심을 보이는 건 조금…….”
“그, 그런 적 없거든? 그리고 나 너 좋아한다거나 그렇지는…….”
“친구로서는 좋아하지?”
“어? 어어, 어. 뭐, 친구로서라면…….”
“그래, 알겠다.”
나는 대충 대꾸한 후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를 이렇게 만난 것까지야 그렇다 쳐. 이제 뭐 하려고?”
“뭐 한다니? 어어, 그, 글쎄? 우리 이제 뭐 하지?”
“너 오늘 수업 다 끝났냐?”
“아니. 나 두 시간 뒤에 수업 하나 더 있어.”
“그럼 밥이나 먹으러 가자. 점심 먹었냐?”
“난 아직 안 먹었어.”
“그럼 학식이나 먹으러 가자. 괜찮지?”
“학식보다 밖에서 먹는 게 낫지 않을까? 우리 학교 학식 맛없다는 소문이…….”
“네 귀한 입맛에는 안 맞을 수도 있지. 근데 내 싼 입맛에는 잘 맞는 편이거든.”
“그, 그래?”
“게다가 학식은 가성비가 좋아서 먹는 거야. 너도 알잖아. 나 돈 많지 않다는 거.”
나는 학생 식당 쪽 방향을 향해 앞장서며 말했다.
“그래서 같이 갈 거야, 안 갈 거야? 나는 혼자 밥 먹어도 상관없기는 한데, 원한다면 그냥 가도…….”
“같이 가! 같이 밥 먹어!”
이민아는 나를 바로 따라오며 외쳤다.
“그리고 네가 오해하는 거 같은데, 나 입맛 안 까다로워.”
“알고 있어.”
“…그걸 어떻게 아는데?”
“그러게. 어떻게 알았을까?”
나는 이민아와 평소처럼 이야기를 나누며 학생 식당으로 향했다.
“으으, 야, 박유진. 이거 좀 짜지 않아? 조미료 향이 확 나는 거 같기도…….”
“거참 입맛 한번 까다롭구먼.”
“그, 그런 거 아니야! 진짜로 이거 짠맛이…….”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니까, 이건 내가 뭐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나는 오늘 학식으로 나온 파스타를 먹으며 대충 대꾸했다.
“못 먹겠으면 억지로 먹지 마.”
“으음, 그래도 좀 아까운데.”
“돈도 많은 녀석이 무슨.”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그건 그렇고. 주말에 집 들어가고, 네 아버지. 나에 대해 별말씀 안 하셨냐?”
“아아아… 내, 내 아버지?”
이진성의 이야기가 나오자, 이민아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으, 응. 별말씀은 안 하셨어.”
“진짜로?”
“…사실 아예 안 하신 건 아니야.”
이민아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가 내년까지 시간을 주겠대. 내년 초까지 내가 유의미한 성과를 못 내면, 너를 어떻게 해서든 내게 떨어뜨리겠다고 하셔.”
“이민아. 전에도 말했지만 너무 가족에 목매지 마. 싫은 건 싫다고 말하고, 여차하면 그냥 그 집에서 나와서…….”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야. 그리고 나는 지금 네가 더 걱정되는 거야.”
“네 아버지가 내게 뭔 짓을 할지 모르니까?”
“…극단적일 경우에는, 응. 직접 나서시겠지.”
이민아는 또다시 한숨을 쉬었다.
“나도 내 아버지가, 그리고 내 가족이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나 때문에 너에게 피해가 가는 건 원치 않아.”
“우선 여기서 네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어. 그리고 걱정하지 마. 나는 알아서 잘 피해 갈 자신 있거든.”
이진성 성격상, 아마 내 가족인 유나는 건들지 않을 거다.
그렇다면 만약 움직인다면 내게 직접적인 무언가를 할 터였다.
‘하지만 그 정도야 뭐, 문제없지.’
나는 나름 이진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보다, 내년까지 성과를 보여라?”
“응, 그렇게 말씀하셨어.”
“뭐, 내년 초까지면 충분한 시간이지.”
나는 이민아를 성장시킬 자신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게, 회귀하기 전에 그녀와 함께 자주 협력했고, 덕분에 그녀가 어떤 길에 들어서야 되는지 알고 있었다.
올해 말까지 이민아를 그 길에 들어서게 만들고, 그 후에는 이민아가 아마 알아서 성장을…….
“그, 박유진? 그거와 관련해서 말인데, 하나 부탁해도 될까?”
“음? 부탁이라니?”
“이번 여름방학 때, 헌터 대전 같이 나갈래?”
“헌터 대전?”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그건 또 뭐냐?”
“몰라? 우리 대학교에서 여름방학 때마다 여는 대회. 헌터학과 학생들끼리 헌터로서의 역량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뭐 그런 거 있잖아.”
“어어, 뭔지는 대충 알겠다. 근데 나랑 같이 거기에 나가고 싶다고?”
“응.”
“어어, 미안. 아마 나 여름방학 때는 좀 바쁠 거 같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방학 동안 할 것들이 조금 있었다.
그래서 대회 준비 같은 걸 할 여유가 없을…….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이 대회에 참가해야 졸업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지?”
“…뭐?”
“헌터 대전에 최소 2회 참가하는 게 헌터학과 졸업 조건 중 하나야. 몰랐어?”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네.”
워낙 학교를 대충 다녔던 터라, 이런 졸업 조건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내년에 하고 싶기는 한데…….’
말했듯, 이번 여름방학 때 할 일이 있었다.
그 할 일이란 바로 하세리의 가족들을 조사하는 일.
나름 중요한 일이었지만…….
“…하아.”
이민아의 여러모로 간절한 눈빛을 무시하기 어려웠다.
“좋아. 같이 하자.”
“와아! 고마워!”
이민아가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반응을 보이자, 나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후우, 뭐. 어차피 하세리의 가족들이 사고를 일으키는 건 몇 년 뒤의 일이었지. 그냥 천천히 하고, 여차하면 대회 준비도 하면서 조사도 같이 하면 되겠지.’
이민아의 멘탈을 케어하면서 성장시키는 것과 하세리의 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
그 두 가지를 저울질했을 때, 역시 이민아 쪽이 당장 더 중요했다.
특히 이민아는 생각보다 유리 멘탈이라, 잘 돌봐 줘야 했다.
“근데 그보다 그 헌터 대전, 그거 정확히 뭐 하는 거냐?”
“일단 개인전과 팀전이 있거든? 개인전은 알아서 잘하면 되는데, 문제는 팀전이야. 팀전을 하려면 최소 2인에서 최대 8인까지 필요해.”
“최대 8인. 좋아. 그럼 일단 너와 내가 같은 팀이고, 생각해 둔 다른 사람들 또 있어?”
“응? 뭔 소리야?”
“…너야말로 뭔 소리냐?”
“그 팀전, 너와 나. 단둘이서만 할 생각이었는데.”
“뭐?”
나는 어이없다는 듯이 이민아를 바라봤고, 이민아는 그게 뭐 어떠냐는 표정이었다.
“박유진, 생각해 봐. 너에게 두 번이나 졌지만, 나는 나름대로 B급이야. 적어도 이 학교 내에서는 나보다 강한 사람이 거의 없어. 게다가 너는 그런 나를 두 번이나 이겼잖아. 이 정도면 우리 둘이서도 할만하지 않을까?”
“전투에 있어서 머릿수는 은근히 큰 변수야. 게다가 이 학교의 다른 헌터들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는데, 섣불리 우리 둘이서만 팀을 맺으면…….”
나는 논리적으로 이민아에게 내 의견을 설명했다.
근데 설명하던 도중.
위잉―
내 주머니의 스마트폰이 갑자기 울렸다.
“미안. 잠시만.”
누군가에게 온 전화.
그리고 전화가 누구에게서 온 건지 확인하자, 나는 조금 당황했다.
“…주하나 씨?”
- 박유진 씨. 갑자기 전화해서 죄송해요. 혹시 바쁘세요?
“아니요. 괜찮아요. 혹시 무슨 일 있나요?”
지난번 칠보산 게이트에서 만난, 카시아 길드의 힐러, 주하나.
회귀하기 전에 나랑 인연이 있던 사람이었다.
근데 지금 그 사람의 목소리가 어째서인지 다급하게 들렸다.
- 네, 일이 생겼어요. 그래서 도움을 구하려고 했는데, 박유진 씨가 가장 먼저 떠올라서 전화를…….
“일단 진정하시고, 무슨 일이시죠?”
- …후우, 네. 그게… 길드장님이 실종됐어요.
“길드장이라면, 혹시 김민호 씨가…….”
- 네 그분이 실종됐어요. 그리고…….
주하나는 말하기를 망설이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결심한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최근 정수민 씨의 행동이 수상해 보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