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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45화 (45/240)

45화

“주하나 씨. 혹시나 해서 여쭈는 건데.”

카시아 길드 본사에서 나온 지 약 15분이 지난 후.

나는 내 옆에 있던 주하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미행하시는 거 처음이신가요?”

“네, 그렇긴 한데, 보통은 다 처음이 아닐까요? 살면서 다른 사람을 미행할 일이 얼마나 있다고.”

“틀린 말씀은 아니네요.”

나는 피식 웃으며 하얀 머리 힐러에게 대꾸했다.

“아무튼 저 잘 따라오세요. 정수민 씨 놓치면 안 되니까요.”

“네, 알겠는데, 그, 혹시 정수민 씨가 지금 보여요? 저는 지금 안 보이는데.”

“약 500m 전방, 지금 막 편의점을 지나고 있어요.”

“…저게 보여요?”

“제가 시력이 좋은 편이거든요.”

시력이 좋은 것도 있었지만, 암살을 워낙 자주 했던 탓에 이런 방면으로 여러모로 도가 튼 상태였으니 말이다.

“흐음, 그보다…….”

나는 내 복장을, 그러니까 5월 중순의 날씨에 걸치고 있던 네메이아의 코트를 바라봤다.

이 시기에 검은색 코트는 너무 눈에 띄어 미행에 좋을 거 같지 않았다.

“주하나 씨.”

“네?”

“혹시 마법으로 제 코트 위에 환각을 덧씌울 수 있을까요?”

“환각 마법이요? 어렵기는 한데, 아마 가능할 거예요.”

주하나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알 수 없는 언어를 중얼거렸다.

그러자 잠시 뒤, 내 코트의 모습이 바뀌었다.

얇은 검은색 코트에서, 흰색 반팔 티와 청바지로 말이다.

“이거면 될까요?”

“완벽하네요.”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이제 빨리 따라가죠. 정수민 씨를 놓치면 곤란하니까요.”

“네, 알겠어요.”

주하나는 내 옆에 딱 달라붙은 채 나를 따라왔다.

“근데 박유진 씨? 그냥 궁금한 건데, 왜 코트를 입고 있으신 거예요? 요즘 날씨 꽤 덥지 않나요?”

“이거 그냥 코트가 아니거든요.”

나는 저 멀리 있는 정수민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설명했다.

“총, 칼, 마법. 그냥 어지간한 공격들은 다 막아 주는 아이템 같은 거라고 이해하시면 될 거예요.”

“아하, 아이템이었군요.”

“네. 근데 그보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앞을 바라봤다.

“지금 이 방향에, 혹시 지하철이 있나요?”

“네, 아마 고속버스 터미널 역이 이쪽 방향이었을 걸요?”

“…X발.”

다른 때였으면 지하철은 별문제가 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오후 6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

그러니까 쉽게 말해 퇴근 시간대였다.

* * *

“놓쳤나요?”

“네, 놓쳤네요.”

정수민이 지하철로 향하는 걸 알게 되자, 나는 빠르게 그를 쫓아갔다.

하지만 나는 간발의 차로 그를 놓치고 말았다.

“하아아, 이럴 줄 알았으면 더 가깝게 거리를 유지하는 건데.”

나는 이제 막 출발하는 지하철, 그러니까 정수민이 방금 탑승한 지하철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미행당한다는 낌새를 안 주기 위해 최대한 멀리서 미행한 것이었으나, 일이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나도 이제 이런 실수를 하는구나.’

표적이 지하철을 통해 도망칠 거라는 가능성을 생각 못 하다니.

암살을 안 한 지 하도 오래된 탓인지, 내 감이 많이 죽은 느낌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죠?”

빠르게 움직이던 나를 따라오느라 지친 건지, 주하나는 숨을 고르며 내게 물었다.

“지금이라도 경찰에 신고할까요? 일단 정수민 씨가 수상한 건 확실하니까, 제가 말을 잘하면…….”

“지금 신고해 봤자 늦을 거예요.”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게다가 신고하면 오히려 못 잡을 가능성이 높아요. 경찰들이 갑자기 들이닥치면, 정수민 씨가 눈치채고 도망칠 수도 있거든요.”

“그럼 어떻게 하죠? 정수민 씨가 어디로 향하는 건지 저희는 모르잖아요.”

“…꼭 그렇지만은 않죠.”

확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수민이 어디로 향했을지, 감이 잡히는 장소가 하나 있었다.

애초에 사람을 납치해 팔아넘길 수 있는 장소는, 서울에 단 한 곳밖에 없었다.

‘물론 그곳이 아닐 가능성도 있지만, 지금은 뭐라도 해 봐야겠지.’

정수민을 놓친 이 시점에 결국 도박을 하기는 해야 했다.

뭐, 물론 이건 밑져야 본전인 도박이었지만 말이다.

“주하나 씨. 혹시 지갑 들고 오셨나요?”

“지갑이요? 네, 들고 왔죠? 왜요?”

“택시를 타고 갈 생각인데, 택시비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가 돈이 그렇게 많지가 않아서요.”

사실 돈 자체는 어느 정도 있었지만, 나와 유나의 미래를 위해 최대한 아끼고 싶었다.

그리고 다행히, 주하나 씨는 별로 상관없는 표정이었다.

“네, 괜찮아요. 근데 택시 타고 어디에 갈 생각이죠? 혹시 정수민 씨가 어디 갔는지 아시는 건가요?”

“짚이는 장소가 하나 있거든요.”

“혹시 정수민 씨의 집으로 향할 생각인가요? 그런 거면 제가 길드원에게 부탁해서 주소를 알아 올 수…….”

“아마 자기 집으로 향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곳이 개장하는 시간에 맞춰 가려면, 집에 들를 시간이 없을 테니까요.”

“그곳이요?”

“일단 출발하죠. 아, 참고로 저희가 갈 곳은 대림이에요. 거기가 어딘지 아시죠?”

* * *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네.’

퇴근 시간이라 차가 많이 막힐 줄 알았는데, 다행히 택시 기사님이 지름길을 통해 가로질러 와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나와 주하나는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먼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주하나 씨, 여기요.”

나는 방금 사 온 음료수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주하나 씨가 방금 내 주신 택시비에 비하자면 별것 아니지만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리고 고마워요. 때마침 목말랐는데.”

주하나는 음료수를 마시며 내게 미소를 지어 줬다.

그러다가 그녀는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보다 일단 박유진 씨를 따라 여기를 오기는 했는데, 왜 여기에 온 거죠? 이곳으로 정수민 씨가 오는 건가요?”

“아마 높은 확률로 이곳에 나타날 거예요.”

나는 편의점 창문 너머로, 저 멀리 있는 골목길을 가리켰다.

“저 골목길 보이죠?”

“네.”

“지금이 6시 25분쯤 됐으니까……. 지금부터 저 골목길 안으로 사람들이 몇 명이나 들어가는지 한 번 세어 보세요.”

“네? 어어어, 일단 알겠어요.”

음료수를 계속 마시며, 하얀 머리의 힐러는 내가 가리킨 골목길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6시 30분이 막 지나게 되었을 때, 나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5분 정도 지났는데, 그 5분 동안 저 골목길로 몇 명이나 들어갔죠?”

“16명이나 들어갔네요.”

“17명일 거예요. 아까 캐리어를 끌고 가던 남자 있었죠? 그 안에 사람 한 명 더 있었거든요.”

“네? 그걸 어떻게 알아요?”

“다 알 방법이 있어요.”

음지에 몸을 담고 지내다 보면, 별 요령이 다 생기는 법이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5분 만에 17명. 그것도 저 좁고 어두운 골목에. 무언가 수상해 보이죠?”

“…네, 수상하네요.”

주하나는 다 마신 음료수를 쓰레기통에 버리며 말했다.

“저 골목 안쪽에 뭔가가 있는 건가요?”

“네, 있죠. 그리고 때마침.”

나는 창밖을 또다시 가리켰다.

“제 예상대로 나타나 줬네요.”

주위를 심하게 경계하며 걷는 정수민을 바라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누가 봐도 초보 범죄자구먼.’

뭐랄까, 참 귀여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당장은 그런 감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주하나 씨. 저는 이제 저 골목길 안으로 향할 거예요.”

정수민이 골목길 안쪽으로 사라지는 걸 바라보며, 나는 주하나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원한다면 굳이 안 따라오셔도 괜찮아요. 제가 혼자 김민호 씨를 구하고 나올 자신이 있…….”

“따라갈게요.”

주하나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일인데, 박유진 씨 혼자 보낼 수는 없으니까요.”

“위험한 일이니까 남으라고 하는 건데, 진짜 괜찮겠어요?”

“네. 게다가 박유진 씨가 혹시라도 다치면 제가 바로 치료해 드려야죠. 제가 부탁해서 온 건데, 저 때문에 다치기라도 하면…….”

“아마 제가 다칠 일은 없을 거예요. 그래도 굳이 따라오시겠다면 말리지는 않을게요.”

솔직히 말해, 내 뒤를 봐주는 힐러 한 명이 있으면 여러모로 든든하기는 했다.

물론 주하나를 지켜야 하기에 귀찮아지겠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힐러를 데려가는 편이 훨씬 이득이었다.

“아무튼, 따라오실 거면 몇 개만 약속해 주세요.”

“어떤 약속이죠?”

“제가 뭘 시키지 않는 이상, 제게서 떨어지지 마세요. 그리고 곧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될 건데, 거기 사람들과 3초 이상 눈을 마주치지 마세요. 그것 때문에 괜히 시비가 붙으면 귀찮아지거든요.”

“알겠어요. 근데 박유진 씨가 말씀하시는 장소가 정확히 뭐 하는 곳이죠?”

“아, 그러고 보니 말씀 안 드렸구나. 뭐, 별 것 아니고, 그냥 암시장이에요.”

“암시장이요?”

“네, 암시장이요.”

나는 당연하다는 듯 주하나에게 말했다.

“일단 따라오세요. 말로 설명 드리는 것보다 직접 보여 드리는 편이 나을 테니까요.”

* * *

대림에 위치한 골목길 안쪽,

그 골목길의 깊숙한 곳에 들어가자, 벽에 기댄 채 앉아 있는 노숙자 한 명이 있었다.

정확히 말해, 굳게 닫힌 것만 같은 철문 앞에 앉아 있는 노숙자였다.

이렇게 겉으로만 봤을 딱히 특별한 건 없어 보였다.

“지켜보세요.”

나는 내 옆에 있던 주하나에게 작게 속삭였다.

그리고 잠시 뒤, 우리보다 앞서가던 남자가 그 노숙자에게 다가갔다.

그 남자는 노숙자에게 동전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던져 줬다.

동전을 받은 노숙자는 그걸 잠시 확인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두들겼다.

그러자 잠시 뒤, 굳게 잠긴 것만 같던 철문이 서서히 열렸다.

“규칙은 잘 아시죠?”

노숙자의 물음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남자가 들어가자마자 문은 바로 닫혔다.

“저 문이 그 암시장의 입구라는 거죠?”

“네, 그렇죠. 그리고 아마 정수민 씨가 저 안에 들어갔을 거예요.”

“그렇군요. 그럼 저 안에 길드장님도…….”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죠.”

대림의 지하에 위치한 이 암시장에서 인신매매가 자주 일어났었으니 말이다.

“근데 박유진 씨? 저희가 저기에 들어가야 된다는 건 알겠는데, 어떻게 들어가죠?”

“아까 남자가 동전을 건네는 걸 보셨죠? 저 동전이 일종의 출입증 같은 건데, 보통은 그게 있어야 들어갈 수 있어요.”

“아, 박유진 씨께서 그 동전을…….”

“아니요. 저는 없죠. 애초에 선량한 시민인 제가 그걸 어떻게 갖고 있겠어요.”

물론 회귀하기 전에는 그 동전이 차고도 넘쳤지만, 지금의 내게는 아예 없었다.

“…박유진 씨. 진짜 죄송한데 보통의 선량한 시민은 암시장의 존재를 아예 모르고 사는…….”

“으흠,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죠. 지금 중요한 건 저 안에 들어가는 거니까요.”

“네, 그렇죠. 그래서, 방법이 있는 건가요?”

“하나 있죠.”

확실한 방법은 아니었지만, 지금으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방법이었다.

“주하나 씨. 마법으로 저희의 얼굴을 다른 사람의 얼굴로 바꿀 수 있을까요?”

“네. 환각 마법을 쓰면 가능할 거예요.”

주하나는 대답과 함께 무언가를 중얼거리자 내 얼굴 주위로 약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주하나의 얼굴에도 똑같은 빛이 생겼고, 이내 주하나의 얼굴이 다른 여자의 얼굴로 바뀌었다.

그리고 내 얼굴도 달라졌다는 게 느껴졌다.

“제가 이쪽 계열 마법이 전문이 아니라 10분밖에 지속 안 될 텐데, 괜찮나요?”

“10분이면 충분해요.”

나는 스마트폰 화면으로 내 바뀐 얼굴을 확인한 뒤,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30대 후반의 낯선 남자의 얼굴로 변했는데, 딱 지금 상황에 어울리는 변장이었다.

“아무튼, 주하나 씨. 지금부터 주하나 씨는 제 여자 친구예요. 알겠죠?”

“…네? 제, 제가 왜 박유진 씨의 여자 친구가…….”

“그냥 그런 척 연기하라는 거죠. 할 수 있죠?”

“네, 할 수는 있는데…….”

“그럼 바로 움직이죠. 따라오세요.”

“에? 무, 무슨…….”

주하나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주하나와 팔짱을 낀 채 노숙자 앞으로 다가갔다.

“여어, 그, 이동현이었지? 오늘도 수고가 많네. 나 오늘 진철 형님과 만나기로 한 거니, 어서 문을 열게.”

나는 당당히, 그리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문을 지키는 노숙자에게 말했다.

그러자 노숙자는 나를 경계하듯이 바라보며 천천히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너는 누구냐? 누구길래 내 이름을 알고. 게다가 뭐? 진철 형님? 네가 뭔데 우리 보스의 이름을 그렇게 친구처럼 부르는 거냐, 엉?”

예상외로 덩치가 큰 노숙자.

그 모습에 위압감을 느꼈는지 주하나는 살짝 떨었지만, 나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다.

“하, 거참. 내가 누군지 모른다고? 게다가 진철 형님이 내 친구냐고? 허허. 야, 암시장 문지기 이동현. 너는 모르겠지만 내가 진철 형님과 밥도 같이 먹고, 사우나도 같이 가 보고. 아무튼 되게 친한 사이야.”

이게 내가 방금 말한 방법이었다.

말 그대로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가능성이 제일 높은 방법이었다.

‘물론 이 방법이 안 통하면…….’

나는 내 허리춤의 자바니아에 손을 가져갔다.

‘여차하면 이 자식을 죽이고 들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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