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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46화 (46/240)

46화

【 대림동 암시장 】

“네가 어떻게 우리 보스의 이름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각오나 하도록 해. 너 같은 애송이는 내가 직접…….”

엄청난 기세와 함께 다가오는 이동현.

주하나는 조금 겁먹은 듯했지만, 나는 평온하게 그를 바라봤다.

‘이동현. 이 아저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이 문을 지키는구나.’

회귀하기 전에 몇 번 만났고, 직접 싸워 보기도 했다.

그래서 이동현의 전투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지금의 나도 처리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겠지.’

나는 빠르게 결론을 내리며, 자바니아에서 손을 뗐다.

지금 이동현을 죽이면 암시장에 쉽게 들어가겠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이동현의 시체가 발견되면 암시장을 관리하는 인간들이 나설 테고, 그렇게 되면 김민호를 구해 내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이었다.

그러니 당장은 조용히 일을 처리해야 했고, 나는 그 방법을 알고 있었다.

“9062, 1563, 7236, 1290.”

“…어?”

“뭔 번호인지 잘 알지?”

나는 최대한 여유로운 척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 문 비밀번호잖아. 지금이야 열려 있지만, 만약 네가 자리를 비우거나 죽게 되면 문이 자동으로 잠기게 되는데, 그때 문을 열려면 필요한 비밀번호. 맞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내가 진철 형님과 친하다고 아까 말했잖아. 친하니까 그 형님이 직접 내게 알려 준 거 아니겠어?”

“설마 진짜로…….”

내게 다가오던 이동현은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허, 아직도 나를 못 믿겠다는 표정이네. 야, 솔직히 이 문의 비밀번호는 암시장 고위 관계자들만 아는 거잖아. 내가 그걸 아는 시점에서 그냥 보내 줘도 되는 거 아니냐?”

“…저는 그쪽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이동현은 이내 존댓말과 함께 입을 다시 열었다.

“제가 아는 얼굴이면 모르겠지만, 모르는 사람을 함부로 들일 수는…….”

“거 참 귀찮게 하네.”

나는 귀찮은 듯이 대꾸하며, 속으로 빠르게 기억을 뒤져 봤다.

이 시기의 김진철이 암시장에서 벌이던 일이라면…….

“요즘 보안이 왜 이리 빡빡한… 아아, 그래. 그러고 보니 최근 너희들, 은성 그룹과 사업 하나 시작했지?”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알긴, 진철 형님이 내게 친히 알려 주셨지. 아직도 못 믿나 본데, 나 그 형님과 진짜 친하다니까.”

당황한 이동현을 바라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 기세를 몰아가면 될 듯싶었다.

“무기를 밀수해서 그거 전부 은성 그룹에게 팔 거라며? 게다가 은성 그룹과 함께 무기 개발도 같이하고. 내 말 맞지?”

“으으음.”

이동현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그는 내게 고개를 숙였다.

“무례하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제가 보스의 친구를 못 알아뵐 줄은…….”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문지기 일을 하다 보면 사람 헷갈릴 수도 있지.”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들어가 봐도 되는 거지?”

“예, 들어가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죄송한데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보스께 오셨다는 보고를…….”

“아니야, 굳이 그럴 필요 없어.”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내가 도착했다는 걸 진철 형님도 알고 계시거든. 그러니 형님을 따로 귀찮게 하지 말자고. 너도 알잖아. 이런 보고 들어가면 또 온갖 사람들이 다 확인하는 거.”

“예, 그렇기는 합니다.”

“그치? 그러니까 그냥 적당히 가라 치자고.”

일단 이동현은 잘 속인 듯했다.

그러니 이제 마무리를 잘 해야 했다.

“그리고 방금 무례했니 뭐니 하는 건 너무 신경 쓰지 마. 어떻게 보면 문지기로서 일을 잘하는 거니까. 네가 일을 잘하고 있다는 건, 내가 진철 형님께 따로 언급해 줄게.”

“그러면, 매우 감사하겠습니다.”

이동현은 무표정을 유지한 채 말했지만, 그의 입꼬리가 조금씩 움직이는 게 보였다.

역시 암시장의 문지기, 이동현.

이 아저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성격이 참 한결같았다.

“문 열어 드리겠습니다.”

이동현은 굳게 닫힌 문을 두 번 노크했다.

그러자 몇 초 뒤, 문이 천천히 열렸다.

“계단을 조심히 내려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 수고해.”

“예. 알겠, 아. 근데 혹시 옆에 계신 여자분은…….”

“왜? 내 여자한테 관심이라도 있는 거냐?”

“아, 아닙니다.”

내가 차갑게 말하자 이동현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

“편하게 보내다 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 수고해라.”

이 말과 함께 문은 닫혔다.

그렇게 나와 주하나는 어두운 계단에 남겨지게 되었다.

“계단 미끄러우니까 조심해요.”

“네, 박유진 씨.”

“혹시 모르니까, 제 팔 붙잡고 내려가시죠.”

나는 주하나와 팔짱을 낀 채 조심히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아까 들어왔던 문에게서 적당히 멀어진 후.

“주하나 씨. 이제 마법 풀어도 괜찮아요.”

“아, 네.”

주하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 수 없는 언어를 중얼거렸다.

그러자 나와 주하나의 얼굴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제 옷도 원래 모습으로 되돌려도 괜찮아요.”

“네.”

내가 입고 있던 평범한 하얀 티셔츠와 청바지가 검은색 코트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주하나 씨.”

계단을 조금 더 내려가자, 사람들의 말소리가 점점 들려왔다.

“제가 아까 말씀드린 거 기억하시죠? 제게서 떨어지지 말고, 사람들과 3초 이상 눈 마주치지 마세요. 괜히 시비가 걸리면 귀찮아지거든요.”

“알겠어요.”

“좋아요. 그럼… 시작해 보죠.”

어느새 끝에 다다른 계단.

그리고 계단 끝에서 우리를 맞이한 건 엄청난 크기의 광장이었다.

“자! 이번에 들어온 페리지트의 소총일세! 방금 거래가 파기돼서 싸게 팔아 줄 테니…….”

“슈라이그 날개. 500만 원. 맞지? 이리 줘. 돈은 바로 주지.”

“나이트퓨리의 알, 이거 얼마죠?”

“피리 레이스의 지도, 구해 왔어? 내가 의뢰한 물건이잖아.”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인 광장.

“아미사엘의 새끼일세. 한국에서 쉽게 못 구하지.”

“드래고뉴트. 약하지만 관상용으로는 최고인 드래곤입니다.”

별 해괴한 물품들부터 시작해 온갖 생물들이 전시된 곳이었다.

‘여기도 내 기억과 크게 다르지는 않네.’

전에 이곳을 자주 와 본 경험이 있던 터라, 내게는 여러모로 익숙한 장소였다.

하지만 이곳이 처음인 주하나에게는 아닌 듯했다.

“박유진 씨. 그러니까 여기가 그, 암시장이라는 거죠?”

“서울의 유일한 암시장이자, 전국에 있는 다섯 개의 암시장 중 하나죠.”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대림동 암시장.

가장 큰 암시장은 저 밑 부산에 있지만, 뭐,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었다.

“주하나 씨. 이쪽으로 오세요.”

마치 시장처럼 북적이는 사람들.

나는 주하나를 이끌고 그 사람들 사이를 지나갔다.

“제 팔 꽉 붙잡고 있으세요. 여기서 길 잃어버리면 큰일 날 수도 있거든요.”

“큰일이라면…….”

“남자인 저는 모르겠다만, 여자인 주하나 씨는, 네. 뭐, 험한 일을 당할 수도 있겠죠.”

그 험한 꼴을 당한 여자들을 자주 봤기에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소매치기도 조심하세요.”

“네, 알겠어요.”

주하나는 긴장한 듯했지만, 어느 정도 각오를 다진 표정이었다.

“여기서 정수민 씨를 찾으면 되는 건가요?”

“그래야죠. 근데 아마 여기서는 찾지 못할 거예요.”

“그게 무슨 뜻이죠?”

“정확히는 이 층, 그러니까 지하 1층에 지금 없을 거예요.”

주하나의 손을 잡은 채, 나는 저 멀리 보이는 또 다른 계단 쪽을 향해 다가갔다.

“인신매매는 지하 3층에서 이루어져요. 만약 정수민 씨가 김민호 씨를 팔려는 거면, 분명 그쪽에 있겠죠.”

* * *

“끄아악!”

“살려 줘!”

“살려 주세요! 제발!”

나름 밝은(?) 시장 분위기였던 지하 1층과는 달리, 지하 3층은 지옥과도 같은 분위기였다.

“나 죽기 싫어! 죽기 싫다고!”

“크아아악!”

조그마한 우리에 동물처럼 갇혀 있는 수많은 사람들.

남녀노소 관계없이, 거기다 국적이나 인종에 상관없이. 많고도 다양한 사람들이 절규를 하고 있었다.

“여, 여기는 대체, 어떻게 이렇게 끔찍한…….”

“저 사람들과 눈 마주치지 마세요.”

나는 재빨리 그녀에게 작게 속삭였다.

“잘못 결렸다가는 일이 귀찮아질 수 있거든요.”

“하지만 이건… 다른 건 몰라도 이건 경찰에게…….”

“신고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요. 이 암시장은 경찰들, 그리고 정치인들과도 이어져 있거든요. 신고해 봤자 불이익을 받는 건 주하나 씨일 거예요.”

나도 이 암시장을 없애려고 시도 안 해 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워낙에 많은 세력들이 얽혀 있던 곳이라, 나 혼자서 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이런 반인륜적인 짓은…….”

“김민호 씨를 구하는 것만 생각하세요. 지금은 그게 제일 중요하니까.”

나는 최대한 단호하게 말했다.

“아마 이곳에 정수민 씨와 김민호 씨가 있을 거예요. 그 두 사람 중 한 명이라도 보이면 바로 제게 알려 주세요.”

“…네.”

그렇게 나와 주하나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앞으로 나아갔다.

감옥에 갇힌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사려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이다.

“구매자들이… 별로 없네요?”

“적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나는 주위를 꼼꼼히 둘러보면서 설명했다.

“비싸고, 무엇보다 리스크가 크거든요. 그 리스크를 짊어지면서까지 사람을 사려는 인간들은 별로 없겠죠.”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은… 어? 박유진 씨? 저쪽에서 목소리가…….”

“네, 저도 들었어요. 따라오세요.”

지하 3층의 구석 쪽.

“구매자가 아직도 안 왔다고요? 벌써 약속한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안 오는 건 대체 무슨…….”

그쪽에서 정수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네. 기분은 이해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죠.”

정수민 말고 또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주하나는 몸을 숨긴 채 구석 쪽을 슬쩍 확인했다.

그곳에 정수민이 있었고, 정수민과 대화하는 키 작은 남자 한 명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 작은 감옥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안에…….

“…길드장님.”

김민호가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아니, 지난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이년은 시간 개념이 없는 거야? 원하는 대로 해 줬는데 약속에 또 늦으면…….”

“자, 자. 진정하시고, 근처에 휴게실이 있으니 거기 가서 기다리도록 하죠. 따라오세요. 제가 차라도 한 잔 대접해 드리죠.”

“하아아. X발. 여기 오래 있으면 안 되는데…….”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죠. 여기까지 와서 돌아가기도 애매하잖아요? 들어 보니까 오늘 돈과 무슨 약을 받으신다는데, 그 약을 받으시면…….”

“날 깔보던 놈들을 전부 죽일 수 있겠지. 그 X 같은 길드도 박살 내고, 박유진. 그 새끼도 죽일 수 있을 거야.”

내 이름이 나오자 나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애초에 내게 원한을 품은 인간들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따라오시죠. 휴게실에 차를 준비해 드릴 테니.”

그렇게 정수민과 키 작은 남자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와 주하나 바로 옆을 지나갔지만, 잘 숨어 있었기에 어찌어찌 안 들킬 수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시야에서 어느 정도 멀어지자, 나는 바로 움직였다.

“주하나 씨. 따라오세요.”

“네.”

나는 주하나와 함께 구석의 작은 감옥 쪽을 향했다.

“길드장님. 길드장님, 괜찮으세요?”

“…죽지는 않았어요.”

나는 감옥 안에 쓰러진 김민호의 상태를 빠르게 확인했다.

“하지만 좋은 상태는 아니네요. 빨리 꺼내고 치료를 해야겠어요.”

“네. 근데 이걸 어떻게 열죠?”

주하나는 감옥 문을 힘껏 잡아당겼으나 꿈쩍도 안 했다.

“으음, 이 감옥의 잠금장치. 전기로 작동되는 거면…….”

나는 감옥의 잠금장치에 손을 가져가 약간의 전류를 흘려보냈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하나 씨. 망 좀 봐주세요.”

“이 감옥 열 수 있는 건가요?”

“네, 가능할 거예요. 근데 시간이 조금 걸릴 거 같아요. 그러니까 누가 이 근처로 오면 바로 제게 알려 주세요.”

“네, 알겠어요.”

“부탁드리죠.”

나는 이 말과 함께 감옥의 잠금장치에 다시 집중했다.

복잡한 장치였지만 충분히 할만했다.

나는 이보다 더 복잡한 것도 해 봤으니 말이다.

‘내가 괜히 최강의 일렉트로 마스터 중 하나라 불린 게 아니지.’

전에 말했듯, 전류의 활용에 있어서는 내가 최강이었다.

전류의 활용, 그러니까 해킹이나 기계들의 조작 또한 가능했다.

“후우우우. 어디 보자.”

나는 잠금장치에 전류를 흘려보내며, 복잡한 구조의 기계를 조금씩 건드렸다.

그렇게 약 6분, 7분?

그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좋았어.”

감이 잡혔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열 수…….

“박유진 씨. 누가 오고 있어요.”

“…에라이.”

조금만 더 하면 끝나는데……. 어쩔 수 없었다.

“저 사물함 안으로 들어가세요.”

“네, 아. 네. 근데 저기 저희 둘 다 들어갈 수가…….”

“들어갈 수 있어요. 물론 제가 주하나 씨께 실례를 범하게 되겠지만요.”

“네? 그게 무슨… 으읏?”

“실례 좀 할게요.”

나는 주하나를 끌어안은 채 사물함 안으로 들어갔다.

주하나의 얼굴이 확 빨개진 게 보였지만, 당장은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네. 그 남자가 잘 준비해 줬습니다. 솔직히 멍청하게 생겨서 제대로 해 올지 의문이었는데 의외로 잘 했더라고요.”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

아까 정수민과 있던 키 작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뭐,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다음에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헌터는 헌터니까요. 그 정도는 잘 했겠죠.”

여자의 목소리.

그것도 전에 들은 적 있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들어, 사물함 밖을 슬쩍 바라봤다.

그리고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붉은색의 머리카락이었다.

‘X발, 왜 하필 저 아줌마가 여기 온 거냐고?’

하윤경을, 그러니까 하세리의 친척을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욕을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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