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49화 (49/240)

49화

“정수민 씨. 아직 늦지 않았어요.”

나는 일단 눈앞의 남자에게 설득을 시도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자리에 가만히 계세요. 약효가 온몸에 퍼지기 전에 제가 해독제를…….”

“해독은 뭔 해독이야, X발.”

정수민은 진심으로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이 약은 나를 강하게 해 줄 약이야. 최소 A급 헌터와 맞먹을 힘을 갖고 싶다고 말하니까, 하윤경, 그 아줌마가 내게 준 거라고.”

“하윤경이 누군지는 알아요?”

“이 바닥에서 꽤 알아주는 과학자라며. 그리고 그 아줌마는 나를 강하게 해 줄 약쯤은 바로 줄 수 있다고 했…….”

“하, 참 나.”

나 또한 정수민을 진심으로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봤다.

“저 약은, 그러니까 STX―4387은 정수민 씨를 강하게 해 주는 약은 맞아요.”

“그래, 맞겠지. 그래서 이 약을 해독할 이유가 전혀…….”

“하지만 정수민 씨는 몬스터가 될 거예요.”

“…뭐?”

“저 약은 몬스터의 유전자를 인간의 유전자와 융합시켜 주는 약이거든요.”

전에 하윤경의 연구소에 몇 번 몰래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연구하던 약품들 중 몇몇 개는 알고 있었고, 그중 저 STX―4387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저 약은 사람에게 상당히 위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정수민 씨가 드신 저 약들 안에는 수십 마리의 몬스터들이 유전자가 혼합되어 있어요. 그리고 그중 몇 개가 랜덤으로 발현될 거고요.”

“하지만 그 아줌마는 이 약들은 그냥 내 신체를 강화시키는…….”

“굳이 따지자면 강화는 되겠죠. 몬스터들의 유전자가 발현되면 신체는 강해질 테니까요.”

하지만, 이라고 나는 정수민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렇게 되면 정수민 씨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되겠죠.”

“…….”

“정수민 씨. 아직 늦지 않았어요.”

나는 자바니아를 살짝 내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방금 드신 약의 해독제는 톡시르의 심장이고, 그건 이 암시장의 지하 1층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요. 약을 드신 지 얼마 안 됐으니, 지금 당장 가서 먹으면…….”

“…그딴 거 필요 없어.”

조용히 있던 정수민은 나를 노려보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네가 전에 나한테 말했잖아, 강해지기 위해 노력을 더 하라고. 그래서 지금 노력하고 있잖아, 이 개새끼야.”

“정수민 씨. 이건 노력이 아니라 그냥 편법이에요. 그리고 장담하는데, 지금 바로 그 약을 해독 안 하면, 정수민 씨는 분명 후회하게 될 거예요.”

“하, 후회는 무슨. 그래, 몬스터의 유전자가 발현된다 치자. 하지만 그냥 몬스터의 유전자만 나타났을 뿐이지, 나는 여전히 인간일 거 아니야.”

정수민의 두 눈이 서서히 광기로 잠식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용혈’ 길드인가 뭔가의 막내딸 있잖아. 그년도 유전자 이식받아서 늑대 인간인가 무언가가…….”

“이거와 그거는 다른 경우에요.”

이민아가 늑대인간의 유전자를 이식받은 거 또한 하윤경의 기술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민아에게 쓴 것과 지금 정수민이 먹은 저 약은 완전히 달랐다.

이민아는 최대한 안정적으로 진행한 거면, 저 약은 최소한의 안정성조차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방금 저 약들을 한 번에 전부 먹었어.’

한 알만 먹어도 어떻게 될 줄 모르는데, 정수민은 약 열 알을 동시에 입에 넣었다.

덕분에 지금 뭔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정수민 씨. 만약 자꾸 고집 피우시면 제가…….”

“시끄러워, 개새끼야!”

정수민은 갑자기 내게 소리쳤다.

“너를 만난 이후로, 칠보산에서 그 게이트를 토벌한 이후로 내가 얼마나 엿 같은 일들을 당했는지 알아?!”

“하아아.”

갑자기 흥분한 정수민.

심한 감정 기복은 STX―4387의 초기 증상으로 알고 있었다.

“너 같은 애새끼에게 맞은 것도 모자라, 길드 내에서도 무시당했다고! 네가 그게 얼마나 X 같았는지…….”

정수민은 쌓인 게 많았는지, 꽤 흥분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냥 지금 죽일까?’

약효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전에 마무리 지어야 했다.

안 그랬다가는 뭔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음?”

“네가 내 기분을 알아?! 아냐고!”

정수민은 소리치며 내게 갑자기 달려들었다.

이에 나는 재빨리 몸을 틀어 그의 돌진을 피했지만.

‘…빨라졌네.’

약효가 벌써 돌기 시작했는지, 정수민의 속도가 전보다 훨씬 빨라진 상태였다.

“널 죽이고, 길드에 있는 그 새끼들까지 전부 죽이겠어!”

이 말과 함께 내게 주먹을 날리는 정수민.

이번에도 그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했고, 그 주먹은 옆의 콘크리트 벽을 향해 날아갔다.

쾅―!

“…X발.”

그리고 그 콘크리트 벽에 깊은 구멍이 생겨났다.

“잘못 맞았다가는 골로, 으읏?”

“이 개새끼가!”

쉴 틈을 줄 생각이 없었는지, 정수민은 곧바로 내게 주먹을 날렸다.

공격은 여전히 어설펐기에 쉽게 피했지만, 속도와 위력은 전과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시간을 오래 끌어서는 안 되겠네.’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근처에 기절해 있던 신예진 쪽을 슬쩍 바라봤다.

정수민도 문제였지만, 신예진 관련 문제 또한 빠르게 처리해야 했다.

저 여자가 정신 차리기 전에 말이다.

파지직―

나는 왼손에 전류를 불러내, 그대로 정수민의 목을 향해 날렸다.

그를 단번에 기절시킬 목적으로 날린 공격이었다.

“뭐 하는 거냐, 응?”

“…아.”

“따갑잖아, 개새끼야.”

하지만 정수민은 전혀 타격이 없었다.

아니, 그냥 아예 아픈 기색조차 없었다.

뭔가 싶어서 그의 목을 확인했는데.

“아, 하윤경. 이 미친 아줌마가.”

정수민의 목 위로 갑주 같은 게 생겨나고 있었다.

갑주, 아니, 정확히는 곤충의 등껍질 같은 거.

보다 정확히는, 장수풍뎅이의 등껍질 같은 것이 정수민의 몸에 서서히 나타났다.

“…대체 캅테리온의 유전자는 어디서 구한 거야?”

나는 하윤경의 광기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할 수밖에…….

“크아아악!”

아니, 그럴 틈조차 없었다.

곤충의 모습을 보이기 서서히 시작한 정수민은, 내게 또다시 돌진해 왔다.

* * *

“김진철 님. 지하 3층의 폭동이 거의 다 진압됐습니다.”

“야, 박재우.”

“예.”

“거의 다 진압? 완전히 진압된 건 아니고?”

“죄, 죄송합니다.”

“내가 30분이나 줬는데, 왜 아직도 안 된 거야?”

“노예들이 생각 외로 날뛰는 바람에, 저희 인력 갖고는…….”

“하아아. 그래, 그렇겠지. 무능한 새끼들아.”

대림동 암시장의 주인, 김진철.

지하 5층의 위치한 사무실에서, 그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것보다 지하 3층의 감옥들이 왜 열린 거야?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거의 몇십 개가 동시에 열렸다면서?”

“그건 저희도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잠금장치들이 전부 연결된 것도 아닌데, 왜 동시에 열린 건지는 저희도 그 원인을 아직도…….”

“CCTV를 돌려 보, 아아. 그치. 관리하기 귀찮아서 최근에 다 없애라 했지.”

김진철은 욕을 중얼거리며 또 한 번 한숨을 쉬었다.

“아무튼, 지하 3층 그거 빠르게 마무리 지어. 손님들 더 기다리게 했다가는 벌 돈도 못 버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하 3층 관리자. 그 키 작은 놈. 어딨다고 했지?”

“지하 4층의 의무실에 있습니다. 풀려난 노예들에게 구타당해서, 지금 의식을 잃은…….”

“일어나면 바로 나한테 보내. 이번 건에 대하여 내가 직접 그 새끼에게…….”

쾅―!

김진철이 말하던 도중, 사무실의 문이 열리며 또 다른 남자가 들어왔다.

“기, 김진철 님!”

“아이씨. 야! 넌 노크도 할 줄 모르냐?!”

예고도 없이 들어온 남자 때문에 김진철은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방금 들어온 남자는 상당히 급한 표정이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금 큰일 났습니다.”

“또 뭔데?”

“지하 2층에서 싸움이 일어났었는데, 그 싸움이 지하 2층에서 지하 1층으로 이어지고…….”

“결론만 말해. 그리고 싸움이 일어나는 건 늘 있는 일이잖아. 그 정도는 너희들이 직접…….”

“그냥 싸움이 아닙니다.”

남자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면에 단검을 든 놈과 그, 무슨 정체 모를 괴물이 싸우는 중입니다. 인간과 무슨 벌레가 섞인 듯한 괴물이…….”

“인간과 벌레가 섞였다고?”

김진철은 이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근데 지하 1층에서 지금 싸움이…….”

“그게 문제입니다. 그 싸움의 규모가 생각보다 커서 지하 1층의 각종 시설들이 파괴되고 있는데, 그, 아시지 않습니까? 지하 1층에는…….”

“설마 몬스터들을 가두고 있던 우리들을 건든 건 아니지?”

“…이미 몬스터들 몇 마리가 지상으로 탈출을…….”

“이런 X발!”

김진철은 욕을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 그쪽으로 안내해! X발, 오늘 뭔 날이냐?!”

그렇게 김진철은 부하들과 함께 빠르게 지하 1층으로 향했다.

“꺄아악!”

“도망쳐! 어서 나가!”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보인 건 혼란에 빠진 사람들.

쿠와와와!

끼에에엑!

거기다 지하 1층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수많은 몬스터들이었다.

불법 거래를 위해 들였던 몬스터들이 대부분 탈출한 것이었다.

“하아아. 개새끼들.”

김진철은 욕을 중얼거리며 부하들을 데리고 계속 걸었다.

그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몬스터들을 보관하던 우리.

그쪽 부근에 들어서자, 그의 눈에 들어온 광경이 있었다.

“…야, 저거 뭐냐?”

일단은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등 뒤에 서서히 형태를 갖추는 갑주, 그리고 사람보다는 곤충의 것에 가까워지는 손.

무엇보다 남자의 이마에 장수풍뎅이의 뿔이 이마에 자라나는 중이었다.

“저런 몬스터가 우리 암시장에 있었냐?”

김진철은 고개를 갸웃했으나, 의문에 대한 답을 듣지 못했다.

“크아아악!”

키가 2m를 넘어, 점점 더 커지는 남자.

그는 주변의 것들을 있는 대로 파괴하고 있었다.

“죽이겠어!”

그로 인해, 수많은 몬스터들이 우리에서 계속 탈출하는 중이었다.

“야, 야! 가만히들 있지 말고 몬스터들부터 잡아! 어서!”

“넵!”

명령을 내린 후, 김진철은 암시장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괴물을 다시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그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몬스터였다.

“그보다 저놈은 뭐야?”

정체불명의 괴물.

그 괴물과 싸우는 남자가 한 명 있었다.

검은 코트에 검은 단검, 그리고 가면을 쓴 의문의 남자.

김진철이 처음 보는 손님이었다.

그리고 저 괴물이 저 남자를 노리고 있다는 걸, 김진철은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 * *

‘에라이. 이제 하다 하다 김진철까지 온 거냐?’

나는 내게 돌진해 오는, 어느새 덩치가 나의 두 배 가까이 된 정수민을 피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거 안 좋은데.’

정수민을 지금 어찌어찌 쓰러뜨린다고 해도, 이제 김진철이라는 문제가 생겼다.

저 아저씨 성격상, 분명 나를 붙잡아 놓을 게 뻔했다.

지금이야 가면을 쓰고 있어 내 얼굴을 숨길 수 있지만, 만약 김진철에게 내 얼굴이 드러나면 일이 여러모로 귀찮아질…….

키이이익!

쿠워워워!

“더럽게 시끄럽네.”

나는 내게 달려든 독수리 비스무리한 몬스터들을 자바니아로 베었다.

어쩌다 보니 정수민과의 싸움이 길어졌고, 어쩌다 보니 지하 2층에서 지하 1층으로 싸움 장소가 변경되었다.

거기다 전혀 원치 않았지만, 나와 정수민의 대결은 이 지하 1층의 감옥들.

그러니까 몬스터들을 가두고 있던 장소에서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몬스터들을 가두던 우리들은 박살 났고, 거기에 있던 몬스터들은 탈출.

덕분에 지하 1층은 더더욱 아수라장이 되었다.

“후우우.”

이 상황은 좋지 않았다.

막대한 손해를 입은 김진철은 누군가에게 이 책임을 물을 것이고, 아마 그게 나일 확률이 높았다.

정수민과 이렇게 싸우는 내가 좋은 먹잇감일 테니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 얼굴이 드러나고, 지하 3층의 난동 원인이 나라는 걸 알게 되면…….’

…이렇게 된 이상, 그냥 정수민이고 뭐고 여기를 빠르게 탈출해야 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시선을 끌 만한 거대한 무언가가…….

“내 손에 잡히면, 죽을 줄 알아!”

어느새 커다란 장수풍뎅이 뿔이 생긴 정수민은 내게 다시 돌진해 왔고, 나는 이번에도 손쉽게 피했다.

근데 피했음에도 정수민은 돌진을 멈추지 않았고, 이내 근처의 두껍고 거대한 철문에 머리를 들이박았다.

그리고 그 철문은 으깨지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는데, 그 순간.

“아니! 야! 이 개새끼들아! 저 문은…….”

근처에 있던 김진철은 상당히 놀란 얼굴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야! 너희들! 어서 저 문 잡아! 저거 열리면 안 된다고!”

김진철은 근처의 부하들에게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그보다 김진철이 왜 저렇게 반응을…….

“…아.”

생각났다.

대림동 암시장의 지하 1층.

몬스터들을 가두고 있는 우리들.

그쪽에 있는 거대한 철문.

그 철문 안에는 분명…….

“아, X 됐네.”

지금까지 탈출한 몬스터들은 크기가 2m 내외인, 나름대로 소형종(?)들이었다.

하지만 저 철문 뒤에 있는 녀석들은 아니었다.

김진철, 저 아저씨가 돈에 미쳐서 구입한 위험한 놈들이 저 안에 있었고…….

끼이익.

정수민이 냅다 들이박은 덕에, 그 철문이 지금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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