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끼이익.
“이런 미친! 야! 다들 뒤로 피해! 어서!”
그 광경에 김진철은 자기 부하들을 데리고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들을 따라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어딜 도망가려고! 너는 내가 죽일 거라니까!”
“아, 제발 좀.”
점차 거대해지며 장수풍뎅이의 모습으로 변화하는 정수민이 내 앞길을 막아선 것이었다.
“야 정수민, 이럴 시간 없어. 저거 열리면 둘 다…….”
“죽어! 죽으라고!”
“하, X발. 이제 말귀도 못 알아먹는 거냐?”
나는 내게 돌진해 오던 정수민을 피하고, 죽일 생각으로 자바니아를 그의 등을 향해 내리찍었다.
챙!
하지만 자바니아는 정수민의 등을 뚫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정수민의 등을 덮은 거대한 등껍질을 뚫지 못했다.
어느새 등을 다 덮을 정도로 자라난 정수민의 등껍질.
그건 마치 장수풍뎅이를…….
‘아니. 장수풍뎅이가 아니라, 캅테리온과 닮았네.’
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정수민과의 거리를 벌렸다.
캅테리온은 회귀하기 전의 나도 쉽게 못 죽이던 몬스터였다.
물론 정수민은 순혈 캅테리온보다는 훨씬 약하겠지만, 지금의 내가 쉽게 이길만한 상대는 확실히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한숨을 쉬며 정수민을 바라봤다.
“크아아악! 죽이겠어! 죽으라고!”
마음 같아서는 그냥 빠르게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정수민에게서 도망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저 인간, 아니, 저 몬스터에게 등을 보인 순간 바로 붙잡힐 가능성이 컸으니까.
끼이이익.
속으로 생각하던 중, 낡은 철문이 더 세게 삐꺽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쾅!
거대한 철문은 결국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아.”
그걸 보자마자 나는 바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정수민이 있든 없든, 당장은 이 자리를 어떻게든 벗어나야 했다.
“어딜 가! 넌 내 손에 잡히면…….”
정수민은 거대한 뿔을 앞세우면서 바로 내게 돌진해 왔고, 나를 거의 붙잡을 뻔했다.
크와와와!
“으으윽?! 뭐, 뭐야야야?!”
철문 뒤에서 나온 거인이 그의 다리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김진철, 대체 얼마나 미치면 거인족을 암시장에 들이는 거냐고?”
나는 근처의 엄폐물 뒤에 몸을 숨긴 채 작게 중얼거렸다.
“이거 놔! 놓으라고!”
정수민은 거인족의 손에 붙잡힌 채 발버둥 쳤지만, 키가 3m가 훌쩍 넘는 거인은 정수민을 그저 멀뚱멀뚱 바라볼 뿐이었다.
크오오오―
“으아아아악!”
그러다가 거인은 이내 관심 없다는 듯이 정수민을 저 멀리 구석을 향해 던졌다.
그리고 거인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소형 몬스터들 때문에 이미 난장판이 된 암시장 쪽을 향해 말이다.
“야! 저거 뭐야?!”
“거인족! 저거 내가 사려고 했던…….”
안 그래도 아수라장인 암시장은, 거인족의 등장으로 인해 더욱더 시끄러워졌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저, 저 공룡들 뭐야?!”
“으악! 매, 매머드가…….”
철문 뒤에서 나타난 건 거인족만이 아니었다.
공룡 형태의 거대한 몬스터들, 그리고 매머드와 비슷하게 생긴 몬스터들 등, 기본적으로 3m가 넘어가는 대형종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아아악! 내 다리!”
“이거 놔!”
“나, 나 먹지 마!”
덕분에 암시장은 비명과 고함이 난무하는 장소가 되었다.
“대형종들 들일 거면 관리나 제대로 할 것이지.”
나는 방금 바닥에 쓰러진 두껍고 낡은 철문을 바라봤다.
김진철은 다양한 소비자들을 위한 상품을 준비하고자 저런 크고 멋있고 위험한 몬스터들을 암시장에 들였다.
하지만 관리를 매우 소홀히 했고, 그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었다.
‘뭐, 내 알 바는 아니지.’
나는 엄폐물 뒤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여러모로 어지러운 상황이었지만, 나에게 썩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 혼란을 틈타 빠르게 지상으로 나가면…….
“박유진! 도망칠 생각하지 마!”
“하, 질리지도 않냐?”
정수민은 어느새 내 근처로 다시 와 있었다.
그는 여전히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다른 건 몰라도, 너만은. 너만은 죽이겠어.”
“야, 솔직히 내가 뭘 그리 잘못한 건지 잘 모르겠…….”
“으아아아!”
“그래, 알아서 해라.”
나는 자바니아를 들어 올리며 내게 돌진해 오는 정수민을 살폈다.
‘…등에 틈이 생겼네.’
아까 거인족에게 던져진 탓인지, 정수민의 두꺼운 등껍질에 작은 틈이 생겨 있었다.
작은 틈이었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나는 돌진해 오는 정수민을 피한 뒤, 자바니아를 그 틈에 찔러 넣었다.
“크아아악!”
갑작스러운 고통에 정수민은 비명을 질렀고, 나는 망설이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
파지지직―
나는 전류를 자바니아에게 흘려보냈고.
“으아아악! 으갸갸갹!”
그 전류는 그대로 정수민에게 전달되었다.
“아악! 으윽! 으으…….”
회귀하기 전에 비하자면 매우 약한 전류였지만, 정수민을 기절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고통 없이 죽여 드리죠.”
나는 바닥에 쓰러진 정수민을 잠시 바라보다, 이내 자바니아를 그의 목을 향해 가져갔다.
STX―4387을 먹은 시점부터, 정수민에게 남은 건 고통스러운 인생뿐이었다.
차라리 지금 죽는 편이 더 나을…….
크우우우우!
“이런 씨…….”
정수민의 목을 베려던 그 순간, 코뿔소처럼 생긴 몬스터가 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워낙 빠르게 달려오던 터라 나는 미처 반응할 시간이 없었다.
쾅!
“으윽.”
그로 인해, 나는 그대로 뒤로 날아가, 근처의 벽에 부딪혔다.
“아으, 미치겠네.”
신예진도 처리해야 했고, 정수민도 죽여야 했다.
근데 자꾸 세상이 나를 방해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크우우우! 크우우!
코뿔소처럼 생긴 몬스터, 그러니까 스컬 라이노라는 몬스터는 다시 내게 돌진하려는 자세를 보였다.
“아아, 더럽게 아프네.”
네메이아의 코트 덕에 치명상은 피했지만, 그래도 몸이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아픈 것과는 별개로, 이곳을 빠르게 탈출해야 했다.
“후우.”
나는 자바니아를 들어 올려, 스컬 라이노의 돌진을 받아칠 준비를 했다.
그리고 스컬 라이노가 돌진해 왔는데.
쾅!
“으음?”
스컬 라이노는 중간에 돌진을 멈추게 되었다.
마치 투명한 벽에 막힌 것처럼.
“박유진 씨. 괜찮으세요?”
“…주하나 씨?”
마법을 쓰며 나타난 하얀 머리의 여성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다친 곳 있어요? 일단 마법으로 방벽을 만들어 놨으니까, 그사이에 치료를…….”
“저는 괜찮아요. 그보다 여기는 왜…….”
“박유진 씨가 하도 안 와서 다시 온 거예요.”
주하나는 내 곁으로 다가와, 내 몸에 생긴 잔상처들을 마법으로 빠르게 치료해 줬다.
“그럼 김민호 씨는…….”
“길드장님은 제가 안전한 곳에 놓고 왔어요. 근데 박유진 씨. 여기에 대체 뭔 일이 있던 거죠? 왜 몬스터들이…….”
“이따 설명해 드릴게요. 우선 여기서 빨리 벗어나죠.”
“네, 알겠어요.”
“…주하나 씨,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내 머릿속에 문득 든 의문이 있었다.
“저를 어떻게 알아보신 거죠?”
“네?”
“저 가면 쓰고 있잖아요. 근데 저를 어떻게 알아보신 거죠?”
아까 손에 넣은 실키의 가면.
눈 밑부터 턱까지만 가려 주는 가면이었지만, 이 가면의 진가는 인식 저해에 있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이 가면을 쓰면 보통 사람은 나를 어지간하면 못 알아봤다.
하지만 주하나는 나를 바로 발견했는데, 대체 어떻게…….
“어어, 그냥 딱 봐도 박유진 씨던데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그러니까, 가면 때문에 얼굴은 못 알아봤는데, 그냥, 네, 그냥 알았어요. 뭔가 제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저 가면을 쓴 사람이 박유진 씨라고 소리쳤던 거 같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알겠어요.”
주하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를 못 했지만, 아무래도 자세한 건 나중에 들어야 할 듯했다.
크우우우우. 크우.
주하나가 불러낸 방벽에 부딪혔던 스컬 라이노는 우리에게 관심이 사라졌는지 이내 딴 곳으로 가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와 주하나에게 도망칠 기회가 생겼다.
“주하나 씨. 따라오세요. 이쪽에 제가 아는 길이 있어요.”
“아, 네. 알겠어요.”
“근데…….”
“음? 박유진 씨? 무슨 일 있나요?”
“일이 있다기보다는…….”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렸다.
저 멀리 정수민은 여전히 기절한 채로 쓰러져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죽이고 가고 싶었지만, 지금 그의 근처에는 몬스터들이 너무 많았다.
자칫했다가는 나도 어떻게 될지 몰랐다.
‘게다가 지하 2층에 신예진이 아직 있을 텐데.’
내게 실키의 가면을 빼앗긴 여자 암살자.
그녀는 내 얼굴을 제대로 못 본 듯했지만, 그렇다고 살려 두고 가자니 뭔가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암시장에 더 오래 있기에는 여러모로 위험 부담이 컸다.
“하아아.”
김민호를 구한다는 목적 자체는 이루었다.
게다가 덤으로 실키의 가면까지 손에 넣었으니 더 좋았다.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면 그랬다.
‘하지만 신예진과 정수민. 그 두 인간을 살려 두고 가는 건 뭔가 마음에 걸리네.’
하지만 당장은 어쩔 수 없었다.
“…아니에요. 어서 가도록 하죠.”
“네.”
나는 주하나를 데리고 지하 1층에 위치한, 나만이 아는 출구로 향했다.
그리고 이동하는 도중, 저 멀리서 김진철의 외침이 들려왔다.
“야! 몬스터들 못 나가게 막아! 출구 봉쇄시켜! 몬스터들이 도망치면 내 암시장이 들킨다고!”
【 붉은 머리들의 거래 】
일단 결론부터 말하면, 김민호를 무사히 암시장에서 구해 냈다.
하지만 그 여파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컸다.
[대림동에서 갑자기 출현한 몬스터들. 그 원인은?]
- 목격자에 따르면 몬스터들이 지하에서 갑자기 튀어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이번에 나타난 몬스터들은 게이트에서 출현한 것과 양상이 전혀 다르다는 의견입니다.
- 대림동 지하에 몬스터들의 불법 거래가 있었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는데, 이에 저희 취재진들이…….
나는 단순히 김민호만 빼내 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정수민이라는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고, 그 변수 덕에 일이 꽤 커졌다.
‘도심에 나타난 몬스터들. 그리고 암시장의 존재에 대한 의심.’
정수민이 깽판 친 것으로 인해 암시장의 몬스터들이 풀려나 지상으로 탈출했다.
물론 몬스터들의 수가 그리 많지 않았고, 덕분에 헌터 협회에서 직접 나서 그 몬스터들을 빠르게 제압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암시장의 존재가 수면 밖으로 약간 드러나게 되었다.
‘이건 회귀하기 전에는 없던 일이었지.’
회귀하기 전에는 사람들이 서울에 암시장이 있을 거라고 전혀 생각을 못 했다.
하지만 내가 회귀하면서, 기존에 내가 알던 역사와는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앞으로의 내 행적 또한 많이 달라질 듯했다.
당장 지금만 해도 그렇다.
“후우우.”
김민호를 암시장에서 구해 낸 지 어느새 3일.
그 3일 동안 암시장에서 탈출한 몬스터들 때문에 서울은 난리가 났었고, 헌터 협회는 바쁘게 뛰어다녔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될지가 더 중요했으니까.
“오랜만에 뵙네요, 하세리 헌터님.”
“네, 오랜만이네요.”
헌터 협회의 최상층.
그 최상층에 위치한 사무실 안에서, 나는 하세리와 마주하고 있었다.
“우선 바쁘신 와중에도 제 방문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쁘기는 했죠. 3일 전에 대림동에서 갑자기 몬스터들이 나타난 것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잤거든요.”
붉은 머리의 헌터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아무튼 박유진 씨. 무슨 일로 여기를 오신 거죠? 솔직히 말하자면, 다른 사람도 아닌 박유진 씨가 먼저 저를 보자고 한 이유가 뭔지 궁금하네요.”
“3일 전의 대림동 사태와 관련한 일로 온 거예요.”
“…그래요?”
하세리의 눈빛이 아주 약간이지만 떨리는 게 보였다.
그래서 나는 바로 말을 이어서 했다.
“하세리 헌터님. 제가 거래 하나만 제안해도 괜찮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