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51화 (51/240)

51화

“제게 거래를 제안한다고요?”

하세리는 옅게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라봤다.

“재밌네요. 무슨 거래죠?”

“‘카시아’라는 길드를 아시나요?”

“카시아요? 잠시만요.”

하세리는 자신의 책상 위에 있던 컴퓨터를 살짝 건드렸다.

그리고 그녀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네. 알고 있어요. 작년 말인가 올해 초에 새로 생긴 길드라 기억이 나네요. 근데 그 길드는 갑자기 왜요?”

“그 길드의 길드장이 최근에 납치를 당했거든요. 그리고 제가 그분을 구해 왔고요.”

“그러니까 카시아의 길드장, 으으음, 아. 김민호 씨.”

하세리는 모니터를 슬쩍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김민호 씨가 납치됐고, 박유진 씨가 그분을 구했다는 거죠?”

“네.”

“협회 소속의 길드에서 그런 일이… 아무튼, 알겠어요. 혹시 그걸 제게 언급한 이유가 그에 대한 보상을 원하시는…….”

“그분을 구한 것에 대한 보상은 원하지 않아요.”

“그럼 제게 뭘 원하는 거죠?”

“김민호 씨가 어디로 납치됐는지 아시나요?”

“모르죠. 어디죠?”

“하세리 헌터님도 아시는 곳입니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인 뒤,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대림동 암시장에서 김민호 씨를 구해 온 거예요.”

“네? 암시장에서요?”

하세리는 잠시 당황한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잠시였을 뿐, 하세리는 이내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재밌는 농담이었네요, 박유진 씨.”

“농담이라니요?”

“분위기를 풀기 위한 농담이었다면, 뭐, 나쁘지 않았네요.”

하세리는 의자에 앉은 채, 살짝 허리를 내 쪽으로 내밀었다.

“근데 박유진 씨가 이런 농담을 할 줄은 몰랐네요. 물론 대림동에 암시장이 있다는, 그런 도시 전설이 최근에 퍼졌지만, 설마 박유진 씨가 그걸로 농담을 할 거라고는…….”

“하세리 헌터님, 저는 지금 농담 따위를 하는 게 아니에요.”

나는 조금은 진지한 투로 말했다.

“저는 직접 대림에 위치한 암시장에 갔었고, 거기서 김민호 씨를 구했어요.”

“…일단 그렇다고 가정해 보죠.”

하세리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 그녀 또한 진지한 투로 입을 열었다.

“박유진 씨 말대로 대림에 진짜로 암시장에 있다고 쳐요. 근데 그거를 굳이 제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뭐죠? 대림에 암시장이 있다 해도 헌터 협회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고 그건 저랑은 더더욱 관련이 없는…….”

“진짜로 관련이 없나요?”

“…무슨 말씀이시죠?”

하세리는 전혀 모르겠다는 투로 말했지만, 그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뭐, 연기를 완벽히 했다 해도 나는 이미 다 알고 있지만 말이다.

“그 암시장의 주인, 김진철. 누군지 아시죠? 그 사람 장부에 하세리 씨의 이름이 있었거든요. 그것도 주요 고객, 정확히는 VIP로 쓰여 있더라고요.”

물론 김진철의 거래 상대들이 누군지 모르고, 그 아저씨의 장부를 본 적도 없다.

하지만 하세리가 김진철과 면식이 있다는 것, 그리고 하세리가 그 암시장을 이용한다는 건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 아는 척, 하세리에게 허세를 한 번 부려 봤고.

“하아아. X발. 김진철. 내 이름은 제대로 숨기라고 몇 번을 말해야…….”

하세리에게 내 허세가 통한 듯했다.

항상 여유롭던 하세리답지 않게, 그녀는 들릴 듯 말 듯 작게 욕을 중얼거렸다.

“후우우. 네, 맞아요, 박유진 씨. 저는 대림에 있는 암시장에 대해 알고 있었고, 거기를 이용도 했어요.”

붉은 머리의 A급 헌터는 한숨을 쉬며 내게 말했다.

“그래서 이걸 제게 언급한 이유가, 혹시 저를 협박하기 위해서인가요? 헌터 협회의 최연소 A급 헌터, 알고 보니 암시장의 관계자다. 이런 식으로 폭로하기 위한 거면…….”

“저는 그런 식으로 하세리 헌터님을 협박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대림동 암시장에 대해서는 더더욱 폭로할 생각이 없고요.”

“…그런가요?”

“폭로해 봤자 제게 좋을 게 전혀 없거든요.”

그냥 한 말이 아니라, 회귀하기 전이나 지금이나, 대림동 암시장과 엮여 봐야 좋을 거 하나 없었다.

특히 그 암시장을 세상에 폭로하는 건 더더욱 좋을 거 하나 없는, 아니, 사실상 자살에 가까운 행위였다.

‘김진철은 정치, 언론, 헌터계. 대부분 분야에 인맥이 있으니까.’

그 암시장에 대해 폭로해 봤자 정치와 언론의 힘에 의해 묻히고, 몇몇 헌터들이 나를 사냥하러 올지도 몰랐다.

나는 그걸 매우 잘 알고 있었기에, 그런 미친 짓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럼 박유진 씨. 제게 이걸 말씀하신 이유는 대체 뭐죠?”

“아까 말씀드렸듯이, 저는 거래를, 아니. 하세리 헌터님께 부탁 하나를 하고 싶어요.”

“부탁, 말인가요?”

“김진철, 그 사람의 연락처 있으시죠?”

“네, 있죠.”

“그 사람에게 연락해서, 암시장에서 따로 김민호 씨를 안 쫓겠다는 약속을 받아 내 줄 수 있을까요?”

나는 김진철이 운영하는 암시장이 어떤 곳인지 잘 알았다.

그래서 그곳은 도망친 포로들을 끝까지 쫓아서 잡는다는 것 또한 잘 알았다.

이왕 주하나를 돕기로 했으니,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하고 싶었다.

“그분이 또 같은 일을 안 당했으면 하거든요.”

“…길드장이 김민호 씨라고 했죠?”

“네.”

“흐음.”

하세리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틈을 이용해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암시장에서 장수풍뎅이 인간과 싸우던 검은 코트의 인간도 쫓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내 주면 감사하겠네요.”

“…그 검은색 코트의 인간.”

하세리는 내가 입은 네메이아의 코트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혹시 박유진 씨인가요?”

“김민호 씨를 구해 내는 과정에서 조금 일이 있었거든요.”

“장수풍뎅이 인간이라는 건…….”

“일이 있었어요.”

나는 자세한 설명을 할 생각이 없었고, 하세리 또한 그걸 눈치챘는지 그녀는 더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김진철에게 약속을 받아 내는 거 자체는 어렵지 않을 거예요. 그 사람은 전에 제게 빚을 몇 번 졌거든요.”

알고 있었다.

김진철과 하세리가 어떤 관계인지, 나는 이미 회귀 전부터 알았으니까.

“하지만 그 약속을 아무 대가 없이 받아 내기에는 조금 아깝네요.”

하세리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내게 보였다.

“아까 박유진 씨가 이거 거래라 하셨잖아요. 제가 뭘 해 드리면, 박유진 씨도 제게 무언가를 해 주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래서 제가 하세리 씨가 암시장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입 닫고…….”

“솔직히 박유진 씨, 그거 진짜로 말할 생각 없었잖아요?”

하세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게다가 그거 말하고 다녀 봤자 박유진 씨만 손해라는 거, 아까 직접 말씀하셨잖아요 그쵸?”

“…예리하시네요.”

혹시나 했는데, 역시 안 통했다.

“그럼 제게 원하는 게 있나요?”

“제가 뭘 원하는지, 박유진 씨도 알지 않나요?”

“제가 헌터 협회에 들어가서, 하세리 헌터님과 함께 일하는 거요?”

“네. 역시 잘 아시네요.”

“흐음.”

나는 잠시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상황에서 내게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중 그나마 괜찮은 선택지라면…….

“…내년 초.”

“네?”

“내년 초부터 일해도 괜찮을까요?”

“내년 초라. 올해는 안 되나 봐요?”

“네, 올해는 이미 계획들이 있어서요.”

앞으로 일어날 잠재적 위험 요소들을 없애는 것.

그게 내 현재 목표였고, 그걸 이루는 데 최소 내년 초까지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걸 전부 다 해결하면, 하세리 밑에서 일하는 것도 상관없지.’

아니, 오히려 하세리 밑에서 일하는 건 좋았다.

애초에 헌터 협회 최고의 에이스 밑에서 일할 기회는 흔치 않았으니까.

“내년 초에 바로 학교 자퇴하고 헌터 협회로 가겠습니다. 그러니 제가 부탁한 것만 해 주시면…….”

“학교는 계속 다니셔도 괜찮아요. 대학 생활과 협회 일. 둘 다 병행 가능할 거예요.”

“어어어.”

회귀하기 전에 학교생활과 일을 같이 했었다.

그리고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었다.

하지만 일단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알겠어요. 내년부터 하세리 헌터님과 같이 일할 테니, 김진철에게 제가 부탁한 약속들만 받아 내 주세요.”

“좋아요. 그럼 지금 바로 김진철에게 연락할게요. 근데 그 전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뭐죠?”

“혹시 3일 전에, 대림동 암시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시나요?”

“…별일 없었어요.”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그냥 김민호 씨를 구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조금 있던 거예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요약을 조금 많이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 * *

“후우우. 끝났다.”

하세리와 이야기를 마무리한 후.

나는 하세리의 사무실 밖으로 나오며 굳었던 몸을 풀어줬다.

‘일단 김민호와 관련된 일만큼은 얼추 끝난 거 같네.’

아까 말했듯, 김진철이 운영하는 암시장은 다른 암시장에 비해 집요한 성격이 있었다.

그러니까 절대 자신들의 상품이 도망치게 놔두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김민호를 구해 냈다고 끝이 아니었고, 그가 김진철 무리에게 사냥 안 당하게끔 손봐 줘야 했다.

‘그래서 하세리에게 따로 부탁하러 왔고, 결과적으로 잘 된 거 같네.’

물론 내년부터 하세리와 함께 헌터 협회에서 일하게 됐지만, 그건 딱히 상관없었다.

올해 안에 잠재적 위험 요소들을 전부 없앤다면, 이편이 오히려 좋았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김민호를 구하려다가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이야.’

나는 엘리베이터 쪽을 향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김진철의 암시장이 수면 밖으로 드러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

암시장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마주치게 된 정수민.

그리고 정수민과의 전투로 인해 암시장에서 가두고 있던 수많은 몬스터들이 탈출했고, 그 결과 시민들에게 암시장의 존재가 노출되었다.

‘뭐, 그래도 이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고, 김진철이 알아서 잘하겠지.’

김진철, 그 아저씨는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들과도 인맥이 있으니, 이번 사고를 생각보다 쉽게 덮을 수 있을 터였다.

그렇기에 김진철이나 그의 암시장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뭐, 애초에 내가 걱정한다고 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말이다.

“하아. 뭐, 내가 남 걱정할 때는 아니지.”

나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내려가며, 한숨과 함께 작게 중얼거렸다.

암시장 건은 나름 잘 해결될 듯했다.

하지만 내게는 아직 남은 문제가 있었다.

‘정수민과 신예진. 그 둘은 아직 살아 있겠지.’

정수민은 내가 마무리를 못 지었고, 실키의 가면의 원래 주인인 신예진 또한 마무리를 못 지었다.

신예진은 내 얼굴을 제대로 못 봤을 테니 그나마 나았지만, 문제는 정수민이었다.

캅테리온의 유전자가 발현됐으니, 그는 앞으로 더 위험해질 것이 뻔했다.

그런 위험한 놈이 나를 죽이려 달려들면, 일이 여러모로 귀찮아질 터였다.

“올해 안에 다시 찾아가서 죽이든가 해야지.”

어느새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또다시 한숨을 쉬었다.

‘해야 할 일들이 많네.’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헌터 협회의 로비를 지나, 나는 천천히 출구로 향했다.

일이 갑작스럽게 많아진 거 같았지만, 일단 하나하나 처리해야 됐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은 바로.

“김민호 씨에게 연락부터 드려야지.”

나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지난 3일 동안 누가 언제 어디서 김민호를 찾아올지 몰랐다.

그래서 나는 김민호에게 카시아 길드 본사에서, 다른 길드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잠시 지내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는 없겠지.’

하세리가 김진철에게 약속을 받아 내기로 했으니, 이제 김민호도 마음 편히 돌아다녀도 되었다.

그래서 그에게 연락하려고 스마트폰을 켰는데, 몇 분 전에 내게 온 문자가 있었다.

“…유나구나.”

아까 하세리와 이야기할 때 스마트폰을 무음으로 해 놔서, 유나에게 연락이 온 줄 몰랐다.

그래서 뭔 연락이 왔나 확인을 했는데, 그 내용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오빠, 지금 오빠 지인이라는 분이 우리 집에 오셨는데, 오빠 언제 와?]

“…내 지인?”

유나가 보낸 문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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