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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52화 (52/240)

52화

유나가 보낸 문자를 보자마자 나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시점에서 내 지인은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었다.

근데 누군가가 유나가 혼자 있는 집을 찾아갔다는 건.

‘유나를 노리는 건가?’

진짜로 내 지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지인을 사칭해 내 집안에 몰래 들어가려는 도둑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내게 원한이 있어, 유나에게 해코지하려는 쓰레기일 수도 있었다.

[문 열어 주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바로 갈게.

혹시 그 사람 이름이 뭔지 물어봤어?]

유나에게 이렇게 답장을 보낸 후, 나는 바로 집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헌터 협회의 본사에서 집까지 거리가 상당했지만 상관없었다.

E급이기는 했지만, 나도 일단은 헌터.

일반인들에 비해 체력이 신체가 월등히 뛰어났다.

‘별일 없어야 할 텐데.’

나에게는 몰라도, 유나에게는 절대 무슨 일이 안 일어났으면 했다.

그렇게 바랐지만, 내가 문자를 보낸 후 유나에게서 답장이 안 왔다.

뛰는 와중에도 계속 스마트폰을 확인했지만, 몇 분 동안이나 스마트폰은 울리지 않았다.

“…제발.”

쉬지 않고 뛰어, 최대한 빠르게 집에 도착했다.

“유나야!”

그리고 나는 현관에 들어서며 주위를 둘러봤다.

일단 유나의 신발이 있었고, 또 다른 누군가의 신발도 있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나는 허리의 자바니아에 손을 가져갔는데, 그 순간.

“어, 오빠? 왔어? 되게 빨리 왔네?”

거실에 있던 유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혹시 뛰어왔어? 급하게 올 필요는 없었는데, 일단 물이라도…….”

“유나야.”

나는 내 여동생을 빠르게 살폈다.

다친 흔적 같은 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앞의 사람은 유나가 맞았다.

환각이나, 다른 누군가가 변장한 것이 아닌, 진짜 내 여동생이 맞았다.

“아까 문자로 내 지인이 왔다고 했잖아. 그 사람, 왔다 간 거야?”

“아니, 지금 저기에…….”

유나는 부엌 쪽을 가리켰다.

지금까지 유나만 보느라 집의 다른 곳을 확인 못 했는데, 부엌에 있던 건 다름 아닌…….

“아아, 박유진 씨. 오셨어요?”

“…주하나 씨?”

내 지인이었다.

“제가 간단히 식사를 준비했는데, 혹시 점심 드셨나요? 안 드셨으면 같이 먹을까요?”

부엌에서 무언가를 요리하던 백발의 힐러는, 미소와 함께 나를 맞이해 줬다.

* * *

“박유나. 다시 말하는 거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문 함부로 열어 주지 마. 알겠어?”

“오빠. 오빠 지인분이라는데 밖에서 기다리게 하는 건 좀…….”

“만약 내 지인이 아니었으면? 만약 주하나 씨가 아니라 그냥 범죄자였으면 어떻게 했을 건데?”

“그래도, 그건…….”

“혼자 있을 때 아무나 쉽게 들이지 마. 약속하는 거다?”

“알겠어, 오빠. 근데 내가 애도 아니고 뭔…….”

“내 눈에 넌 항상 애야, 인마.”

나는 유나의 머리에 딱밤 한 대 날렸고, 이에 유나는 울상을 지었다.

그리고 부엌에서 반찬을 준비하던 주하나는 멋쩍은 듯이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동생분에게 너무 뭐라 하지 마세요, 박유진 씨.”

“이런 건 확실히 교육하는 게 맞거든요. 그리고 수저와 젓가락은 주세요. 제가 놓을게요.”

“아, 고마워요. 그리고 따지고 보면 제 잘못이거든요. 제가 간다고 먼저 연락했어야 했는데, 깜박하고 안 했거든요.”

“그런가요? 근데 제 집 주소는 어떻게 아신 거죠?”

“지난번에 게이트 토벌 짐꾼으로 신청하셨잖아요. 그 신청서에 박유진 씨 개인 정보들이 있거든요.”

“그거 함부로 보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제가 길드장님께 집 주소만 알려 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박유진 씨에게 선물을 따로 전하기 위해 방문하고 싶다면서요.”

“그리고 그 선물이라는 게…….”

“이것저것 준비해 봤어요. 별것 없지만요.”

“…별것 많은 거 같은데요?”

나는 주하나가 부엌에서 준비하던 음식들을 슬쩍 바라봤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소고기에 반찬들, 거기다 되게 비싸 보이는 술.

그리고 그 외에도 근처에 선물들이 몇 개 놓여 있었다.

“전부 주하나 씨께서 사신 건가요?”

“아니요, 몇 개는 길드장님이 준비했고, 길드원들이 따로 돈 모아서 준비한 것들도 있어요.”

“그리고 요리는…….”

“유나가 아직 점심을 안 먹었다는 걸 듣고, 제가 한 끼 차려 주기로 한 거예요. 원래 외식할까 하다가, 최근 대림동에서 풀려난 몬스터들 때문에 집에서 먹는 게 더 나을 거 같았거든요.”

“틀린 말씀은 아니네요. 근데 굳이 이렇게까지 선물들을…….”

“박유진 씨는 엄청 큰일을 하신 거예요. 저와 길드장님, 그리고 저희 길드원들 모두 박유진 씨에게 고마워하고 있어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했다.

이런 식으로 감사를 받는 것에 영 익숙하지 않다 보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이 안 잡…….

“오빠 최근에 무슨 일 했어?”

유나는 식탁에서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하나 언니가 말하는 거 보니까 오빠가 엄청 큰일을 한 거 같은데?”

“그런 거 있어, 인마.”

다른 일이면 모르겠으나, 이번 사건은 워낙에 복잡했기에 그냥 유나에게 말 안 하는 편이 나아 보였다.

“그보다 너 언제 주하나 씨랑 그렇게 친해졌냐? 하나 언니라고 부르고 말이야.”

“오빠 오기 전에 이야기 나누다가 친해진 건데, 왜? 안 돼?”

“아니, 그냥 나보다 더 빨리 친해졌구나 싶어서.”

나는 별 상관없다는 투로 대꾸했다.

이에 주하나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표정이었지만, 그녀는 어째서인지 말하는 걸 망설이는 듯했다.

“그, 박유진 씨도, 워, 원하신다면 펴, 편하게 저를…….”

“네? 뭐라고요?”

“아아,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네, 뭐. 알겠어요.”

분명 내게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저렇게 반응하니 굳이 캐물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주하나 씨. 길드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혹시 지금 카시아에서……. 아.”

나는 말하다 말고 내 여동생 쪽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지금부터 할 이야기를 유나가 안 듣는 편이 더 좋을 거 같았으니…….

“유나야. 받아.”

나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유나에게 던져 줬다.

“근처 빵집에서 가서 케이크 아무거나 사 와. 손님이 왔는데, 우리도 뭐라도 준비해야지.”

“어? 아, 알겠어. 케이크 아무거나 괜찮지?”

“응. 돈은 넉넉할 테니까, 맛있어 보이는 걸로 사 와.”

“박유진 씨. 저 괜찮은데 굳이…….”

“괜찮아요, 주하나 씨.”

그리고 애초에 케이크가 목적이 아니라 주하나와 단둘이 되는 게 목적이었으니 말이다.

“근데 오빠. 하나 언니와 둘이서 뭐 이상한 짓 하려는 거 아니지? 지난번에 민아 언니도 그렇고, 오빠 주변에 은근히 여자들이 잘 꼬이는…….”

“얼른 갔다 오기나 해, 인마.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장난스럽게 말하던 유나의 말에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꾸해 줬다.

그리고 그렇게 유나가 집 밖으로 나가, 나와 주하나는 단둘이 남게 되었다.

“그, 박유진 씨? 방금 유나가 말한 민아라는 분은…….”

“제 대학 친구예요.”

“아아, 친구분이시구나.”

“네, 뭐. 그보다 주하나 씨?”

“네?”

“지금 카시아 길드원들 중에 최근의 암시장 일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나요?”

“없을 거예요.”

주하나는 바로 대답했다.

“길드장님은 동네 양아치들에게 납치되었고, 저와 박유진 씨가 둘이서 구해 왔다. 다들 이렇게만 알지, 자세한 사정은 몰라요.”

“제가 부탁한 대로 했군요.”

3일 전, 나는 주하나와 김민호에게 부탁을 했었다.

암시장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김민호는 암시장에 끌려간 게 아니라, 그냥 정체 모를 양아치들에 의해 납치된 거라 말하고 다니라고 말이다.

“경찰에게도 그렇게 말했죠?”

“네. 경찰에게도 그렇게 설명했고, 대림 쪽에 감금됐었다고 말하니까 그냥 알았다면서 가더라고요.”

그렇겠지.

경찰들은 어지간하면 대림 쪽과 엮이기는 싫을 거다.

특히 최근에 사고가 터진 대림이라면 더더욱 꺼릴 터였다.

‘아무튼 잘 끝난 거 같네.’

내가 주하나와 김민호에게 거짓말하라고 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이들이 더 이상 대림동 암시장과 엮이지 않기를 바라서였다.

그리고 다행히 그 둘은 내 말을 따라 주었고, 덕분에 일을 이렇게 잘 끝낼 수 있었다.

“박유진 씨. 말 나와서 여쭈는 건데, 혹시 길드장님이 언제까지 본사에 있어야 하시죠? 오늘로 3일째 본사에 계시는데, 진짜로 위험하면 그냥 경찰에 솔직하게…….”

“아, 그건 이제 해결됐어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주하나에게 말했다.

“이제 마음 편히 돌아다녀도 상관없을 거예요.”

“와, 다행이네요. 그럼 어서 연락을…….”

“제가 아까 따로 연락 드렸으니까 안 하셔도 돼요.”

“아아.”

주하나는 잠시 말없이 나를 바라봤고, 나 또한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잠시 뒤, 그녀는 살짝 붉어진 얼굴과 함께 웃음을 보였다.

“고마워요, 박유진 씨. 진심으로 고마워요.”

“고마워할 거 없어요. 아까 말한 것처럼, 그냥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까요.”

“아니요. 그런 걸 다 떠나서, 저를 이렇게까지 도와주신 건 제게 있어 큰 빚이에요. 보통은 남을 이렇게까지 잘 안 도와주는데, 박유진 씨는 저를 도와주셨잖아요.”

“주하나 씨에게 진 빚이 있는데, 이 정도는 해 줘야죠.”

나는 작게 웃으며 대꾸했고, 이번에는 주하나가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근데 박유진 씨께서 제게 진 빚이… 있나요? 물론 제가 박유진 씨를 칠보산 때 치료해 주기는 했는데, 겨우 그걸로 저를 이렇게까지 도와준 건…….”

“그것 말고도 저는 주하나 씨에게 진 빚이 있어요.”

“그래요?”

“네. 모르시겠지만, 아무튼 하나 있어요.”

회귀하기 전, 주하나는 나를 살려 줬다.

딱 한 번 나를 살려 주고, 딱 한 번 만난 것뿐이었다.

하지만 당시 나에게 있어 매우 간절했던 구원의 손길이었다.

특히 그때의 나는 온갖 냉대를 다 받았는데, 그때 주하나에게 받은 따스한 손길은 여전히 기억에 남았다.

“뭐, 그건 그렇고.”

나는 말이나 돌릴 겸, 주하나가 부엌에서 준비하던 음식들을 바라봤다.

“주하나 씨 요리 되게 잘하시네요. 고기를 굽는 것도 그렇고, 된장찌개에, 오. 계란말이, 이거 전에 제가 시도해 봤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아아, 딱히 어려운 요리들은 아니에요. 그리고 대부분 반찬들은 다 사 들고 온 건데…….”

“그래도 아까 요리하시는 거 보니까, 뭔가 요리 고수? 그런 느낌이 나던데요?”

“아아, 네. 뭐, 제가 혼자 살다 보니까 요리를 하게 됐는데, 근데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에요. 사실 제가 준비한 게 박유진 씨와 유나 입에 맞을지 잘 모르겠네요.”

“걱정 마세요. 저희 남매는 어지간한 건 다 잘 먹거든요. 그리고 찌개, 한 번 맛봐도 될까요?”

“아, 네. 여기 수저.”

“네, 그럼… 오. 맛있는데요.”

주하나가 준비한 찌개를 맛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맛있었다.

적어도 내가 유나에게 해 주는 것보다는 맛있었다.

“다행이네요. 급하게 한 거라 맛이 어떨지 몰랐는데.”

“요리 잘하시네요. 근데 아까 집에 왔을 때 주하나 씨가 부엌에서 요리하는 거 보고 제가 조금 당황했었는데…….”

“아아, 그건, 그. 원래 선물만 드리고 갈 생각이었는데, 막상 생각해 보니까 선물만 드리면 성의가 없을 거 같았고, 적어도 식사 한 끼 대접은 해야 될 거 같은데, 그렇다고 밖에서 사 드리기에는 아까 말한 것처럼 요즘 몬스터들이…….”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나는 횡설수설하는 주하나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아무튼 요리는 되게 잘하시네요. 나중에 남편이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분은 진짜 행복하겠네요.”

“네, 나, 남편이요?”

“…아. 혹시 결혼하실 생각이 없으신 거면…….”

“아,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그냥, 결혼에 대해 생각을…….”

주하나는 말을 더듬으며, 어째서인지 얼굴이 확 빨개졌다.

그리고 그 상태로 나를 바라봤는데, 그녀의 눈빛이 어째서인지 참으로 의미심장했다.

“주하나 씨? 혹시 제게 하실 말씀이…….”

내가 입을 먼저 열어 주하나에게 이에 대해 물으려 했는데, 그 순간.

띠로리.

현관문이 열리며 유나가 들어왔다.

“오빠, 나 왔어, 케이크는 그냥 생크림으로 샀는데, 괜찮지? 하나 언니도 생크림 케이크 괜찮죠?”

유나는 케이크를 보이며 부엌 쪽으로 다가왔다.

근데 유나가 나와 주하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어, 오빠. 하나 언니랑 뭔 일 있었어?”

유나는 무안한 듯 서 있는 나, 그리고 얼굴이 빨개진 채 내 시선을 피하던 주하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고는 이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뜸 내게 말했다.

“오빠, 민아 언니랑 썸 타면서 다른 여자를 또 노리는 건, 아무리 내 오빠라지만 선을 많이 넘…….”

“넌 또 뭔 개소리를 하는 거냐?”

나는 진심으로 어이없다는 듯이 내 여동생을 바라봤다.

* * *

한편 그 시각.

대림동 암시장의 지하 5층, 김진철의 사무실.

“야, 재우야.”

“네, 김진철 님.”

“방금 하세리에게 연락 왔다.”

“헌터 협회의 하세리 말입니까?”

“어. 걔가 김민호? 최근에 우리 암시장에 잡혀 왔다는 남자가 하나 있는데, 그놈에 대한 추적을 그만하란다.”

김진철은 책상에 앉은 채 귀찮다는 듯이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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