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김진철은 말에, 옆에 있던 그의 부하는 빠르게 파일들을 확인했다.
“예. 확인해 보니까 최근 도망친 사람들의 목록 중에 김민호가 있습니다. 지금 추적조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럼 김민호는 추적하지 마.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세리 말은 무시 못 해. 내가 그 친구에게 진 빚이 꽤 많거든.”
“예, 추적조에게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3일 전에 그 장수풍뎅이와 싸우던 검은 코트. 기억나지?”
“예. 김진철 님이 그 사람을 어떻게든 찾아내라고…….”
“그 인간도 찾지 마.”
“…잘 못 들었습니다?”
“그 인간 찾지 말라고.”
“하지만 김진철 님이 그 인간만큼은 어떻게든 찾으라고….”
“하아, 그랬지.”
김진철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번에 내 암시장에 터진 사고의 원인이 그 인간에게 있을 거 같다고, 내 감이 말해 줬으니까. 근데 하세리가 그 인간도 찾지 말라더라.”
“예? 근데 하세리가 어떻게 그 인간에 대해…….”
“몰라. 그 인간이 협회 쪽 인간이거나, 하세리의 개인적인 부하이거나, 아무튼 하세리에게 있어 중요한 사람인가 보지.”
“그럼 그 인간에 대한 추적도 중단합니까?”
“어, 중단해. 어쩔 수 없다.”
김진철은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하세리. 그년도 진짜. 내가 X나게 바쁜 거 알 텐데도 연락하네.”
“그러게. 엄청 바빠 보이더라?”
김진철이 한숨 쉬던 중, 그의 사무실 문이 열리며 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에게 암시장을 들킬 뻔하고, 그걸 덮기 위해 또 열심히 뛰어다니고. 우리 진철이, 많이 바빴지?”
“그래, X나게 바빴다, 이 아줌마야.”
“아줌마라니, 말이 심하네.”
김진철의 책상 근처로 다가온 붉은 머리의 여성은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네가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나 같은 VIP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는 건 실례 아니니?”
“좀 오래 기다리게 하기는 했지. 거의 두 시간을 방치했으니까.”
김진철은 노골적으로 귀찮음을 드러내며 여자에게 말했다.
“그래서 우리 암시장의 VIP 하윤경 씨. 저는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거래를, 아니. 부탁 하나 하려고 왔어.”
붉은 머리의 여성, 그러니까 하윤경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나는 진철이가 그 부탁을 반드시 들어줄 거라 믿어, 후훗.”
“하아아. 일단 들어나 보자.”
김진철은 또다시 한숨을 쉬며 하윤경을 바라봤다.
“뭔 부탁인데? 나 할 거 많으니까, 요점만 말해.”
과장이 아니라, 김진철은 현재 진짜로 할 일들이 많았다.
3일 전, 그의 암시장에서 한바탕 난리가 있었고, 그로 인해 암시장에 있던 몬스터들이 탈출했다.
그 결과, 그 사건을 덮기 위해 김진철은 지금 모든 인맥들을 동원하고 있었다.
덕분에 김진철은 한창 바빴는데, 그 타이밍에 하윤경이 찾아온 것이었다.
‘이 아줌마를 쫓아낼 수도 없고… 하아아. 하세리도 그렇고, 빨간 머리 두 명이 날 귀찮게 하네.’
김진철은 하세리와 하윤경이 혈연관계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고, 둘이 어떤 사이인지도 조금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 두 여자의 가족 사정이 중요하지는 않았다.
‘둘 다 내 암시장의 VIP라는 게 중요한 거지.’
그뿐만 아니라 김진철은 전에 두 사람에게 각각 몇 번 빚을 졌었다.
그래서 김진철은 두 여인의 말을 함부로 무시할 수 없었다.
“3일 전에 네 암시장에서 날뛰던 캅테리온, 생포하고 있지?”
“캅테리온? 그건 또 뭐야?”
“아아, 캅테리온이라고 하면 모르려나? 그럼 장수풍뎅이라고 하면 알려나?”
“아아, 그 장수풍뎅이 인간?”
김진철은 바로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수풍뎅이라고 하면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3일 전 사태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바로 그 장수풍뎅이였으니 말이다.
“근데 그 장수풍뎅이 새끼는 갑자기 왜?”
“생포해 두고 있지?”
“그치. 아직 죽이지는 않았거든. 지금 지하 6층의 감옥에 넣어 두고 있어.”
“지하 6층이면, 고문실 아니야? 그리고 아직 죽이지는 않았다는 건, 곧 죽일 생각이라는 거야?”
“아줌마. 그 새끼는 내 암시장을 망가뜨려 놨어.”
김진철은 분노가 담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디서 뭘 하다 굴러온 새끼인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내 암시장에서 그 난리를 쳐서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어. 아줌마 같으면 안 죽이고 배기겠어?”
“모르겠네? 그런 상황을 겪은 적이 없어서.”
“아줌마 실험실을 어떤 새끼가 박살 내고 다니면 어떤 기분일 거 같아?”
“그럼 그 새끼를 붙잡아서 실험 재료로 써 줘야지.”
“그렇겠지.”
김진철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나는 그 새끼를 극한까지 고문하다가 죽일 생각이야. 근데 그 장수풍뎅이는 갑자기 왜?”
“다른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내게 넘겨줄 수 있나 묻고 싶었거든.”
“…뭐?”
김진철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 새끼를 넘겨달라고? 아니, 그보다 그 ‘사람’을 넘겨달라고?”
“응, 그 사람을 넘겨달라고.”
“…그러니까 사람이라고? 그 장수풍뎅이가?”
“몰랐어? 너도 아까 장수풍뎅이 ‘인간’이라고 했잖아?”
“장수풍뎅이와 인간이 반반 섞인 거 같아서 그렇게 부른 건데, 설마 진짜로 사람일 줄이야. 그냥 어디에서 굴러온 몬스터인 줄 알았는데.”
김진철은 대꾸하며 3일 전, 그 장수풍뎅이 인간을 처음 봤을 때를 떠올렸다.
당시에는 그냥 반은 인간 반은 곤충의 형태를 한 몬스터인 줄 알았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인간의 형태가 사라지고 점점 곤충으로 변하던 중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의 형태를 잃었고, 그 몬스터는 지금도 점차 인간보다는 몬스터에 가까워지게 변하는…….
‘잠깐만? 변하는 중?’
하윤경은 아까 그 장수풍뎅이 몬스터가 사람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리고 김진철은 그 사람이 점차 몬스터로 변해 가는 걸 목격했고, 거기다 지금 하윤경이 그 인간을 원하는 중이었다.
이걸 다 고려했을 때, 김진철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였다.
“이봐요, 아줌마. 혹시 저 몬스터, 아줌마 짓이야?”
“내가 약을 주기는 했지.”
“이런 X발. 아줌마. 내가 아줌마에게 빚진 건 많은데, 아무리 그래도 이런 것까지 참아 줄 생각은…….”
“아, 진철아. 일단 좀 들어 봐. 나도 억울한 점이 있으니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김진철을 다시 앉히며, 하윤경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정수민, 그 남자에게 약을 준 건 맞아. 근데 나는 분명 암시장 밖에서 먹으라고 했는데, 그 남자가 멋대로 네 암시장에서 먹은 거야.”
“…야, 재우야. 정수민, 이름 찾아봐.”
“예, 알겠습니다.”
김진철의 말에 옆에 있던 그의 부하는 빠르게 서류 파일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0초도 채 안 돼서 부하가 입을 열었다.
“찾았습니다. 정수민, 나이 33세. 현재 서울에서 거주 중이며 직업은…….”
“아니, 그런 건 됐고, 핵심만 말해.”
“알겠습니다. 저희 암시장을 이용한 건 얼마 안 됐고, 가장 최근에 팔아넘기기 위해 김민호라는 남자를 암시장에 끌고 왔습니다.”
“잠깐, 김민호? 김민호라면 아까 하세리가 추적하지 말라던 사람 아니야?”
“예, 맞습니다.”
“…생각보다 복잡한 일에 연관됐었나 보네.”
김진철은 또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는 오늘 몇 번이나 한숨을 쉬는 건지, 이제 도저히 기억이 안 날 정도였다.
“내 조카가 너에게 따로 부탁한 게 있나 봐?”
“VIP 고객의 요청 사항은 함부로 못 알려 줘.”
“나도 VIP인데?”
“같은 VIP여도 못 알려 줘. 정 궁금하면 나중에 직접 조카님에게 물어봐.”
“우리 진철이 많이 까칠해졌네.”
“잡담은 이쯤하고, 그러니까 정수민이라는 남자에게 아줌마가 약을 준 거라고?”
“응, 그치. 내가 최근 실험에 쓸 인간이 필요했는데, 정수민이 데리고 와 주겠다고 하더라. 그리고 그 남자가 내게 요구한 건 약간의 돈, 그리고 강해질 수 있는 약이었어.”
“그래서 강해질 수 있게, 몬스터가 되는 약을 준 거야?”
“거짓말은 안 한 거잖아? 몬스터가 돼서 더 강해지기는 했을 테니까.”
“…하. 참 한결같은 아줌마라니까.”
김진철은 어이없다는 듯이, 그리고 동시에 소름 끼친다는 듯이 하윤경을 잠시 바라봤다.
하지만 잠시였을 뿐, 그는 이내 하윤경을 사무적인 눈빛으로 다시 바라봤다.
“아무튼 그 장수풍뎅이, 아니, 그 정수민이라는 남자를 넘겨달라고?”
“넘겨줄 거지?”
“최대한 고통스럽게 실험해 주기로 약속한다면 넘겨줄게.”
“진철아, 내가 장난감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본 적 있지?”
“…소름 끼치기는 했지.”
김진철은 헛웃음을 지은 뒤, 자기 부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재우야. 지하 6층 쪽에 연락해서, 그 장수풍뎅이를 미리 마취시켜 놓으라고 해.”
“알겠습니다.”
“됐지, 아줌마?”
김진철은 다시금 하윤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준비되는 대로 바로 넘겨줄게. 더 필요한 거 있어?”
“아니, 없어. 오늘은 그 남자만 손에 넣으러 온 것이거든.”
하윤경은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정수민. 쓸모없는 인간인 줄 알았는데, 그 귀한 캅테리온의 유전자를 발현시키다니. 조금은 다시 봐야겠어.”
하윤경은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작게 중얼거렸고, 이에 김진철은 그녀를 질렸다는 듯이 바라봤다.
“내게 더 부탁할 거 없으면 얼른 가, 아줌마. 나 할 거 많아.”
“알겠어, 진철아. 아, 근데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자.”
“뭔데?”
“3일 전에 나도 이 암시장에 있었거든? 그때 변형을 시작한 정수민을 누가 상대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누군지 혹시 알아?”
“우리도 누군지 몰라. 있는 정보라고는 검은 코트에 괴상한 가면과 괴상한 단검. 이 정도뿐이야.”
김진철 또한 그 사람을 찾고자 했지만, 아까 하세리에게 온 연락 때문에 추적을 중단해야 했다.
하지만 김진철이 말해 준 그 사람의 인상착의는 하윤경에게 결정적 단서가 되어 줬다.
“이 날씨에 검은 코트라. 흔치는 않지.”
“뭐야, 아줌마? 그 사람 누군지 알아?”
“감 오는 사람, 딱 한 명 있기는 해.”
하윤경은 옅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검은 코트에 괴상한 단검을 쓰는 남자를 한 번 본 적 있거든.”
* * *
“으음. 흠?”
“오빠, 왜 그래?”
“아니, 그냥. 귀가 조금 가려워서.”
유나와 주하나와 같이 집에서 밥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누가 오빠 욕하는 거 아니야?”
“그런가? 근데 나를 욕할 사람이…….”
…조금 있기는 하겠네.
정수민과 신예진이 살아 있다면, 그 둘은 지금쯤 나를 신나게 저주하고 있을 거다.
게다가 내 얼굴은 모르겠지만, 김진철 또한 내 욕을 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에휴, 뭐. 어떻게든 되겠지.’
이런 문제는, 그냥 일이 터지면 그때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주하나가 준비해 준 소고기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맛있네요, 주하나 씨. 고기 간이 진짜 잘 됐어요.”
“아, 고마워요. 그리고 여기, 반찬도 드세요. 유나야, 너도 먹어.”
“고마워, 언니.”
솔직히 불안감이 아예 안 느껴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당장은, 식사를 즐기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