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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54화 (54/240)

54화

회귀한 후에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고, 최근에 대림동에서 암시장 일로 꽤 곤욕을 겪었다.

하지만 어찌어찌 잘 넘겼고, 시간도 늘 그렇듯 빠르게 흘러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김진철의 암시장을 방문한 지 일주일이 지났고.

“야, 박유진! 너 좀 한다? 최근 빡세게 훈련이라도 받았냐?”

“딱히 그런 건 없었네요, 이희나 교수님.”

나는 다시금 고연대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희나의 수업을 듣는…….

“이리 와 봐!”

“이런 말씀을 드려 죄송하지만, 교수님의 손에 잡히고 싶지는 않네요.”

아니, 듣는 것보다 참여 중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이희나의 수업에 참여해, 그녀에게서 실전 전투를 배우는 중이었으니까.

“분명 느린데, 왜 안 잡히는 걸까? 잡으려고 하면 내 시야에서 사라져 있고 말이야.”

“저만의 특기가 있거든요.”

“후, 재밌네.”

오늘 이희나가 제안한 수업은 다름 아닌 술래잡기.

이 거대한 체육관 안을 돌아다니며, 30분 동안 이희나에게 안 잡히면 되는 매우 간단한 놀이였다.

“좋았어! 누리! 너 잡혔다!”

“꺄, 꺄아각?! 어, 언제 내 뒤에…….”

“네 뒤쪽도 항상 경계하라고. 아무튼 잡혔으니까, 구석 쪽으로 가 있어.”

“아으으윽. 예.”

…‘놀이’라고 표현하기에 이 술래잡기는 조금 과격했다.

그도 그럴 게, 이희나에게 잡히면 조금 많이 아플 거 같았다.

“자, 이제 누리까지 잡혔고 이제 남은 건…….”

이희나는 미소와 함께 나, 그리고 내 근처에 있는 이민아를 한 번씩 바라봤다.

“너희 둘이네?”

“네, 그러네요.”

말했듯, 오늘 수업은 30분 동안 이희나에게 안 잡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작한 지 10분 만에 약 30명이나 되는 학생들 전부 이희나에게 잡혔다.

그렇게 해서 남게 된 사람은 나와 아민아, 단둘뿐이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꼭 피하기만 할 필요는 없어.”

이희나는 이 말과 함께, 자신의 벨트에 헐렁하게 걸려 있는 손수건을 들어 올렸다.

“이 손수건만 내게서 뺏으면 너희들이 이기는 거니까.”

“알고 있어요. 근데 이희나 교수님께 안 닿고 그걸 뺏어야 하잖아요.”

“왜? 그 정도는 별로 안 어렵잖아?”

“엄청 어려워 보이는데요?”

나는 헛웃음과 함께,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이희나를 바라봤다.

아무리 조절을 하고 있다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저 여자에게 안 닿는 건 상당히 힘들었다.

‘지금도 겨우겨우 피하는 중이지.’

회귀하기 전, 그러니까 A급 시절의 나라면 몰랐다.

하지만 E급에 불과한 지금의 나에게는 불가능했다.

‘아니, 이제 E급은 아니려나?’

회귀한 후, 워낙 많은 일들을 겪은 탓, 아니.

많은 일들을 겪은 ‘덕’에 내 실력이 확실히 상승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만약 조만간 등급을 검사받으러 가면, 아마 잘만 하면 D급 헌터로 승격이 될 법도…….

“전투 중에 한눈팔거나.”

“읏?”

“딴생각하는 건 좋은 습관이 아니야.”

언제 다가온 건지, 이희나는 내 얼굴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뒤로 몸을 빼, 그녀의 손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와, 이걸 피하네?”

“…운이 좋았네요.”

사실 방금 이희나를 피한 건 운이라기보다 내 오랜 경험 덕이었다.

내 목을 노리던 공격들을 자주 피해 봤기에, 방금 것도 피할 수 있던 것이었다.

“운이 아닌 거 같은데? 한두 번 피하는 거면 운일지 몰라도, 이렇게 계속 피하는 건 운이 아니야.”

이희나는 나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너 암만 봐도 E급이 아닌 거 같은데? 몇 주 전에는 확실한 E급이었는데, 지금은 D급? 일단 최소한 E급은 더 이상 아닌 거 같단 말이지.”

“저도 비슷한 생각을… 윽.”

“전투 중에 한눈팔지 말랬지?”

“…한눈 안 팔고 있었어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나는 이희나에게서 눈을 안 떼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내게 다가오자마자, 나는 미리 계획했던 대로 움직였다.

이희나가 내게 뻗은 손을 피한 뒤, 그녀의 사각으로 재빨리 몸을 틀었다.

“엇?”

이희나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내가 그녀의 시야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희나 입장에서는, 내가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진 걸로 보였을 거다.

‘…좋았어.’

나는 이희나의 벨트에 있는 손수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가 틈을 보인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

휙!

“…에라이.”

이희나의 발이 내 머리를 향해 날아오자, 나는 바로 뒤로 피했다.

“…야, 박유진. 아까도 그렇고 너 자꾸 내 시야에서 갑자기 사라지는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

“그냥 E급이 부리는 잔재주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대꾸했다.

‘이래서 이희나는 상대하기 어렵다니까.’

이희나의 시야에서 벗어났다고 전부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다른 감각들이 그녀를 지켰기 때문이다.

‘방금도 그런 상황이었지.’

이희나의 시야에서 벗어났으나, 그녀는 다른 감각들을 이용해 내 위치를 바로 알아차려 발차기를 날렸다.

이희나는 지금이나 그때나, 암살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였다.

‘근데 이제 어떻게 하냐?’

나는 이희나를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30분이 다 되기까지 이제 대략 20분 남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20분 내내 이희나를 피해 다닐 자신이 없었다.

아니, 피할 수는 있을 거다.

하지만 그 전에 내 체력이 다 떨어질 게 분명했다.

아직 E급 헌터에 불과한 내 체력은, 이희나에 비하자면 보잘것없었으니까.

‘그냥 잡힐 리스크를 감수하고 저 손수건을 뺏어야 하나?’

확실한 방법은 아니지만, 지금 그 방법이 가장 좋을…….

“야, 박유진.”

“음? 아, 너구나.”

나는 내 옆에 다가온 이민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뭐 할 말이라도 있어?”

“힘을 합치자.”

“뭐?”

“힘을 합쳐서, 교수님의 저 손수건을 뺏어 보자고.”

“야, 그게 말이 쉽지.”

나는 이희나를 슬쩍 바라봤다.

그녀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나와 이민아가 대화를 마치기를 기다려 주었다.

“우리 둘이서 그게 가능했으면 진작에…….”

“그래도 직접 해 보기 전까지는 모르잖아, 새끼야. 안 그래?”

“…틀린 말은 아니네. 그래서, 계획은 있어?”

“네가 시선을 끌어. 내가 몰래 다가가서 저 손수건을 뺏을게.”

“반대 아니야? 탱커인 네가 시선을 끌고, 내가 몰래 다가가서…….”

“내게 기회를 줘. 내가 한 번 네 역할을 해 보고 싶거든.”

“뭐, 알아서 해라.”

이 녀석이 내 역할을 갑자기 왜 하고 싶어 하는지 의문이었지만, 자세한 건 나중에 묻기로 했다.

일단 이 술래잡기부터 먼저 마무리하는 게 좋아 보였다.

“둘이 작전은 다 세웠어? 나 이제 다시 움직여도 괜찮지?”

“네, 괜찮아요.”

나는 이희나에게 대꾸한 뒤, 옆에 있던 이민아에게 작게 말했다.

“내가 최대한 시선을 끌게. 그러니까 잘 해 봐.”

“걱정 마, 새끼야. 나 이번에 자신 있거든.”

이민아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이며 내게서 떨어졌다.

그 후, 나는 이희나 쪽을 향해 다가갔다.

“오, 더 이상 도망 안 가게?”

“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있죠.”

“그치. 내가 아주 좋아하는 말이지.”

“저는 그 말을 한 번 실천에 옮겨 볼까 생각을…….”

나는 이희나에게 말하며 옆을 슬쩍 바라봤다.

이민아는 조용히 이희나의 뒤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민아가 이희나의 손수건을 뺏을 수 있나?’

아까 말했듯, 이희나의 감각은 나도 못 속였다.

그래서 만약 이민아가 이희나에게 다가가면, 분명 이희나가 눈치챌 거다.

하지만 이민아가 꽤 자신만만하던데, 그 이유가…….

‘아, 혹시 속도로 밀어붙이려는 건가?’

이민아의 B급 헌터답게 신체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그래서 힘도, 속도도 나름 상위권이었다.

만약 이희나가 반응하지 못할 속도로 달려들면, 어쩌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랐다.

‘만약 이민아가 진짜 그걸 노리는 거면, 그에 응해 줘야겠지.’

머릿속으로 빠르게 결론을 내린 후, 나는 이희나에게 달려들 자세를 취했다.

“교수님, 혹시 괜찮다면 제 공격을 한 번만 맞아 줄 수 있나요?”

“하, 되겠냐?”

이 말과 함께 이희나는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그녀의 이런 반응을 예상했기에 쉽게 피했다.

그 후로도 이희나는 어떻게든 나를 붙잡으려 했고, 나는 옛날 경험을 살려 어떻게든 도망쳤다.

하지만 오래는 못 할 거 같았다.

‘체력 문제가 크기는 하네.’

상대적으로 약한 체력 탓에, 이희나를 상대로 금방 숨이 차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슬슬 운동을 빡세게 시작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나저나 이민아는 대체 어디에…….’

이희나의 손을 피하며 재빠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보였다.

이희나에게 달려드는 이민아가 말이다.

‘X나 빠르기는 하네.’

괜히 B급이 아니란 걸 보여 주듯이, 이민아는 매우 빠른 속도로 이희나에게 달려들었다.

저 정도 속도면, 이희나가 이민아의 존재를 눈치채도 반응하기 힘들 것이 분명…….

휙!

…정정한다.

이희나는 이민아의 돌진을 눈치챈 후, 빠르게 옆으로 피했다.

덕분에 이희나의 손수건으로 향하던 이민아의 손은 허공을 갈랐고.

“…X발.”

그 손은 내 얼굴을 향해 그대로 날아왔다.

그리고 말했듯, 이민아는 매우 빨랐다.

나조차도 쉽게 반응을 못 할 정도로…….

“아악.”

이민아의 손은 내 얼굴을 가격했고, 나는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 * *

“으아아아. 야, 미안해. 진짜로. 내가 일부러 그러려던 게 아니라, 그러니까…….”

“괜찮아, 인마.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는 거지.”

약 5분 뒤, 그 ‘술래잡기’라는 수업을 얼추 마무리한 후.

나는 얼굴에 아이스팩을 갖다 댄 채, 체육관 구석에서 쉬고 있었다.

“지, 진짜 괜찮은 거지?”

정확히 말하자면, 이민아와 함께 쉬고 있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마. 좀 많이 얼얼하기는 하지만, 심하게 다친 건 아니니까. 그래도 덕분에 네가 평소에 내게 불만이 조금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는…….”

“그런 거 아니라고, 새끼야!”

“알아. 농담 좀 해 본 거야, 인마.”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이민아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러던 중, 이희나가 우리 쪽을 향해 다가왔다.

“괜찮니? 얼굴이 조금 부었던 거 같은데?”

“괜찮아요. 아프기는 하지만, 병원에 가거나 할 정도는 아니거든요.”

“그럼 다행이기는 한데, 혹시 많이 아프면 참지 말고 바로 말해, 알겠지?”

“네, 알겠어요.”

“그래. 그럼 난 일단 다른 애들과 수업 마저 하고 올 테니까, 너희 둘은 좀 쉬고 있어라.”

“그냥 쉬어도 되는 거 맞죠?”

“날 상대로 꽤 오래 버텼는데, 쉬게 해 줘야지.”

피식 웃으며 대꾸한 뒤, 이희나는 다시금 체육관 중앙, 그러니까 다른 학생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덕분에 나와 이민아, 이렇게 단둘이 체육관 구석에 남게 되었다.

“박유진. 진짜 미안해. 내가 일부러 너를 때린 게…….”

“얼굴 맞은 것 때문에 절교 안 할 거니까, 그만 미안하다고 해, 인마.”

“어, 어어? 내, 야! 내가 설마 절교당할까 봐 무서워서 사과하는 걸로 보…….”

“그럼 아니냐?”

“아, 아예 아니라고는 말 못 하지만, 그, 그래도 내가…….”

“그래, 네가 그렇지 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야, 됐고. 미안하면 내가 묻는 것에나 대답해 봐.”

“응? 뭐를?”

“아까 술래잡기할 때, 내가 시선을 끌고 네가 손수건을 빼앗겠다고 했잖아. 보통 그 반대로 할 텐데, 왜 갑자기 네가 내 역할을 하겠다고 한 거냐?”

다른 의도 없는, 그냥 순수히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내 질문에 이민아는 태연히 대답했다.

“그거? 그거야, 조만간 우리 팀으로 같이 싸울 건데, 서로의 스타일을 미리 파악하고 있으면 편하잖아? 그래서 내가 한 번…….”

“음? 같이 싸우다니?”

“뭐야? 너 설마 잊은 거야? 여름 방학 때 헌터 대전. 그거 우리 같이하기로 했잖아.”

“…아, 그거.”

여름 방학 때마다 고연대학교의 헌터학과는 ‘헌터 대전’이라는 대회를 열었다.

원래 같았으면 이런 대회에 안 나가겠지만, 알고 보니 이 대회에 참가하는 게 졸업 요건 중 하나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반강제로 이번 여름 방학 때 이민아와 같은 팀으로 참가하기로 했었다.

“그리고 헌터 대전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우리 그 대회 예선 슬슬 준비해야 해. 예선에서 떨어지면, 여름 방학 때의 대회에 참가 못 하거든.”

“그거 예선도 있어?”

“몰랐어?”

“내가 이런 거에 딱히 관심이 없거든. 그래서 그 예선 언제야?”

나는 당연히 시간 여유가 있을 줄 알고 물어본 것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내 예상 밖이었다.

“다음 주 금요일.”

“…다음 주 금요일? ‘다음 주?’”

“응. 다음 주 금요일.”

“…오늘이 수요일이니까… 열흘도 안 남은 거 아니야?”

“그치?”

“아니, 그치가 아니라. 그, 아니, 나한테 왜 말 안 한 거야?”

“네가 안 물어봤잖아, 새끼야.”

“…할 말이 없기는 하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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