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 * *
“예, 접수가 완료됐습니다.”
‘실전 전투’ 수업이 끝난 후.
나는 이민아와 함께 고연대학교의 헌터학부로 향했다.
그곳으로 향한 이유는 하나.
“박유진, 이민아. 이렇게 두 분이 한 팀인 거 맞죠?”
“네. 맞아요.”
다름 아닌 여름 방학에 있을 헌터 대전에 신청하기 위해서였다.
“네, 알겠어요. 으음, 근데 두 분이라…….”
“혹시 무슨 문제가 있나요?”
“아니요.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두 명에서 한 팀으로 신청하는 건 처음이라서요.”
‘헌터 대전’의 신청서를 받던 직원은 나와 이민아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보통은 최소 여섯 명이 팀을 짜서 신청을 하거든요. 대회 규정상 팀당 최소 두 명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진짜 두 명이 신청한 건 처음 보거든요.”
“하긴, 그럴만하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충 대꾸했다.
“아무튼 신청은 다 된 거죠?”
“네, 다 됐어요. 그러니 다음 주 금요일, 오후 5시에 있을 예선에 꼭 와 주세요.”
“네, 알겠어요.”
나는 직원에게 간단히 인사한 후 뒤, 내 뒤에 있던 이민아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더 할 거 없지?”
“응, 없어.”
“그럼 가자.”
나는 이민아와 같이 학부 사무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나오자마자, 나는 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예선이 다음 주인데, 신청을 아직도 안 했던 거냐?”
“야, 솔직히 그건 네가 할 말이 아니다. 넌 애초에 내가 말 안 했으면 다음 주가 예선인 것도 몰랐을 거잖아.”
“그럼 그 사실을 왜 일찍 안 말한 거야? 탓하는 게 아니라, 그냥 진짜 궁금해서.”
“원래 지난주에 말하려고 했는데, 너도 알잖아. 대림에서 몬스터들이 대량으로 풀려난 거.”
“아, 그러고 보니 너 지난주에 학교를 거의 안 나왔지?”
대림동 암시장 사건이 발생한 후.
암시장에서 탈출한 수많은 몬스터들이 서울 곳곳에 퍼졌다.
그래서 정부는 지난 한 주 동안 서울에 거주 중인 헌터들을 모아, 그 몬스터들을 사냥하게 했다.
‘그 헌터들 중에 이민아도 있었지.’
아무래도 흔치 않은 B급 헌터다 보니, 이민아는 정부의 요청을 따라 몬스터들을 지난주 내내 사냥했다.
그로 인해 이민아를 지난주에는 거의 못 봤고, 이렇게 만나서 대화하는 것도 꽤 오랜만이었다.
“으음, 그러네. 지난주에 서로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지?”
“너 거의 일주일 만에 보는 거야, 새끼야.”
“그래서? 일주일 만에 날 보니까 그렇게 좋냐?”
“뭐, 뭔 개소리야? 내가 왜 널…….”
“농담 좀 해 본 거야, 인마.”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왜 그렇게 과민 반응하냐? 찔리는 거라도 있어?”
“내, 내가 찌, 찔리는 게 어디…….”
“없으면 말고. 뭐, 됐고.”
나는 건물 내의 복도에 있던 벤치에 앉았다.
“너 오늘 더 이상 수업 없지?”
“응, 다 끝났어.”
“잘됐네. 나도 오늘 수업 없거든. 그런 의미에서 한 번 이야기나 해 보자.”
“무슨 이야기?”
이민아는 내 옆에 앉으며 물었고, 이에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뭐긴 뭐야, 헌터 대전에 관한 이야기지.”
평소의 나라면 이런 건 귀찮아서 안 했을 거다.
하지만 말했듯, 이 헌터 대전에 참가하는 것이 졸업 조건 중 하나였고, 이번 생의 목표 중 하나가 대학 졸업장을 받는 것이었다.
그래서 최소한의 준비는 해야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거 예선, 어떤 식으로 치러지는지 혹시 알아?”
“별것 없고, 그냥 랜덤한 몬스터와 싸우는 거야.”
“진짜로 별 것 없네.”
생각보다 허무한 답에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예선은 딱히 준비 안 해도 되겠다.”
랜덤한 몬스터를 상대하는 거지만, 그래 봤자 학생 수준에서 충분히 상대할만한 몬스터일 터였다.
그리고 그런 수준의 몬스터라면 나 혼자서도 충분, 아니.
굳이 내가 안 나서도 B급인 이민아 혼자서도 충분할 터였다.
그래서 쉽게 쉽게 갈 생각이었는데, 이민아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우리끼리 합을 한 번 맞춰 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
“몬스터 잡는 거에 굳이 합을 맞춰 볼 필요가 있나? 그냥 우리가 각자 능력으로 찍어 누르면…….”
“예선은 준비 안 해도 된다 쳐. 하지만 본선에 대한 준비는 해야지 새끼야.”
“아, 그러고 보니 본선에서는 뭐 어떤 걸 하냐?”
“…너 우리 학교 학생 맞지?”
이민아는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적어도 헌터학과 학생이면 이 정도는 알아야 되는 거 아니냐?”
“거 참, 사람이 모를 수도 있지.”
고연대학교에서 매년 열린다는 헌터 대전.
나는 이 대회를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었다.
쉽게 말해, 그냥 뭐 하는 대회인지 몰랐다.
“아무튼, 본선 때 뭐 하는 거냐?”
“헌터 대전은 3일에 걸쳐 진행되고, 일정이 매일 달라.”
“3일이라. 길게도 하네.”
3일 동안 고생할 생각에 벌써 한숨이 나올 거 같았다.
하지만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이민아는 설명을 계속했다.
“첫날은 몬스터 사냥. 이건 말 그대로 몬스터를 그냥 잡으면 되는 거야.”
“그거랑 예선이랑 뭐가 다른 거야?”
“몬스터의 강함이 다르지. 본선에서 만날 몬스터들은 예선에서 상대했던 몬스터에 비해 두 등급 정도 차이가 나거든.”
“두 등급이라. 예선에서는 보통 몇 급의 몬스터가 나오는지 알아?”
“나도 이번에 처음 참가하는 거지만, 듣기로는 7급 정도? 예선에는 그 수준의 몬스터들을 준비한다더라.”
예선에서 7급.
그럼 본선은 대충 5급이나 6급 위험도의 몬스터를 준비할 터였다.
‘그 수준의 몬스터들이라면 약하지는 않겠네.’
하지만 그렇다고 상대 못 할 정도는 또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나 혼자서만 하는 거면 결과를 확신 못 했다.
그러나 내 편에는 이민아가 있었다.
이 녀석과 함께라면, 어지간한 몬스터들은 거의 다 상대할 만했다.
“알겠어. 일단 첫째 날은 그렇다 치고, 둘째 날은?”
“둘째 날은 팀전이야. 진짜 간단히 말하자면, 그냥 팀끼리 싸워서 이기면 되는 거야.”
“뭔지 대충 알 거 같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마지막 날에는 뭐하냐?”
“마지막 날은 개인전이야. 개인전 룰은 매 대회마다 달라서 나도 자세히는 몰라.”
“뭐, 개인전은 알아서 하면 되니까 그렇다 치고.”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다시금 입을 열었다.
“첫째 날과 둘째 날은 생각을 좀 해 봐야겠네.”
“생각할 게 뭐 있냐?”
이민아는 피식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지금 해야 할 건 뻔하잖아. 같이 훈련을 해서 합을 맞추기. 그거 말고 할 게 뭐 더 있어?”
“그렇기는 한데, 솔직히 첫째 날. 그러니까 몬스터 잡는 건 딱히 준비를 안 해도 될 거 같다. 그건 그냥 우리 둘이 능력껏 찍어 누르면…….”
“아니, 몬스터 잡는 것도 따로 연습하자.”
이민아가 내 말을 끊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유비무환이라잖아. 하나하나 확실히 준비해야 우리가 우승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
“…왜?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어?”
“아니, 그냥 네가 사자성어 쓰니까 안 어울려서. 원래 너는 살짝 무식한 이미지인데, 갑자기 유식한…….”
“너 죽을래, 개새끼야?”
“아니, 죽고 싶지는 않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충 대꾸했다.
“근데 너 우승을 노리고 있었냐?”
“당연하지. 이왕 할 거면 최고를 노리고 하는 게 맞잖아, 안 그래?”
“…그러냐?”
사실 나는 우승에 대해 전혀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애초에 졸업 조건이 헌터 대전 참가지, 거기서 우승이나 준우승하는 게 아니었다.
근데 이민아가 우승을 노린다고 하는데…….
“혹시 가족 때문이냐?”
“…내 가족은 이런 대회에서 매번 우승, 최소 준우승은 했거든.”
이민아는 짧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근데 나는 그동안 한 번도 우승한 적이 없는데, 이번 기회에 보여 주고 싶거든. 나도, 나도 마음먹으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뭐, 그러냐?”
그냥 적당히 참가에만 의의를 둘 생각이었는데, 방금 이민아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꾸었다.
‘우승하고 싶다고 하니, 조금은 열심히 해 볼까?’
이민아에게 크게 빚진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도움을 아예 안 받았던 건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신세 진 거를 조금은 갚아 주고 싶었다.
“뭐, 알겠다. 네 말대로 이왕 하는 거 최고를 노려 봐야지.”
“오, 웬일로 말이 통하네?”
“통할 수도 있지, 인마.”
나는 대충 대꾸한 후, 다시금 생각을 했다.
몬스터를 잡는 거야, 대충 한두 번 합을 맞춰 보면 얼추 될 듯했다.
하지만 문제는…….
“근데 둘째 날에 하는 팀전, 너 혹시 생각해 둔 계획 있냐?”
“어어어, 아, 아니? 그건 갑자기 왜?”
“보통 이런 팀전은 최소 여섯 명에서 한 팀을 이루는 편이야.”
회귀하기 전, 이런 팀전 매치업을 가끔 본 적이 있어, 이에 대한 지식이 조금은 있었다.
“탱커, 딜러, 힐러. 보편적으로 이렇게 팀을 이루고, 각자만의 역할이 있어.”
“나도 알아. 탱커들이 앞으로 나아가서 자리를 먹어 주고.”
“그동안 딜러들이 뒤에서 화력을 쏟아부어서 적들을 몰아내지. 그리고 힐러들은 탱커들이 쓰러지지 않게끔 어떻게든 보조해 주고.”
팀전뿐만 아니라, 게이트의 토벌도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편이었다.
그래, 이게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문제였다.
“근데 우리는 두 명밖에 없잖아.”
이민아는 탱커, 그리고 나는 딜러.
그것도 상당한 물 몸에, 공격력이 그냥저냥인 근접 딜러.
힐러도 없는 이 팀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상당히 파멸적인 구성이었다.
“어어, 그, 그렇지?”
“…나랑 단둘이 팀 하자고 제안했을 때, 너 팀전에 대해서 생각 아예 안 했지?”
“아, 아예 안 한 건 아니야. 그냥 우리 둘이서 힘을 합치면 충분히 우승할 만하다고…….”
“할 만하기는 뭐가 할 만해, 인마. 힐러 없이 우리 둘이서 잘도 하겠다.”
게이트 토벌은 몰라도, 이런 팀전에서는 힐러의 유무가 상당히 컸다.
아니, 힐러의 유무보다는 머릿수의 차이가 컸다.
그래서 나와 이민아, 단둘이서 팀전을 진행하는 건 솔직히 많이 어려워 보였다.
“지금이라도 신청 취소하고, 팀원들 몇 명 더 구한 후에 다시 신청을…….”
“야,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이민아는 재빨리 내 말을 끊었다.
“우리 둘이서도 충분하다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거야. 그러면 대회를 구경하러 온 스카우터들에게 너의 가치를…….”
“너 나 말고 친구 없어서 그냥 다른 팀원을 못 구하는 거잖아, 인마.”
“야! X발, 그렇게 따지면 너도 나 말고 학교에 친구 없잖아?!”
“…그치. 그게, 어어어, 하아아. 그래, 찐따끼리라도 힘을 합쳐야지.”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됐고. 구체적인 전략을 세우기 전에, 훈련장이나 가자. 지금쯤이면 비어 있겠지?”
“응? 훈련장은 왜?”
“합 맞추자며. 시간 있을 때 해 봐야지.”
“아, 그, 그래! 어서 가자!”
“너 왜 이렇게 신나 보이냐?”
“따, 딱히 안 신났거든? 처음으로 친구랑 같이 훈련을 해서 신났다거나 그런 거 절대 아닌…….”
“아, 네네. 어련하시겠어요.”
나는 피식 웃으며 갈색 단발머리를 바라봤다.
뭐, 어쩌다 보니 이렇게 단둘이서 팀을 짜게 됐지만, 큰 문제는 없을 듯했다.
이민아도 나름 B급이니, 분명 자기에게 주어진 것 이상의 역할을 수행할 터였다.
【 예선 준비 】
…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쾅!
“크억.”
“박유진!”
고연대학교 내의 훈련장.
커다란 훈련장이었고, 다양한 기능들이 있는 장소였다.
그 기능들 중 하나가 바로 골렘을 소환해, 모의 몬스터 토벌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와 이민아는 훈련장에 자리를 잡아, 크기가 3m나 되는 골렘을 소환해 싸웠다.
그랬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맞이했다.
그 결과, 나는 골렘에 의해 멀리 나가떨어졌다.
“박유진, 괜찮아? 뼈 부러진 곳은…….”
“아으, 야. 이민아. 솔직하게 말해.”
나는 이민아의 부축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너 탱커 역할, 해 본 적 없지?”
“으, 응. 보조는 여러 번 해 봤지만, 내가 직접 해 본 적은… 아직 없어.”
“…그러냐.”
이민아는 한국 최고의 탱커가 될 인재가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의 이민아에게 탱커 경험이 아예 없었고, 이건 내가 전혀 예상 못 한 문제였다.
‘…X된 거 같은데?’
알고 보니 이민아는 탱커가 아닌, 유사 딜러에 가까웠다.
즉, 안 그래도 파멸적인 우리 팀은 더 파멸적인 꼴이 된 것이었다.